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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시리아 도박

푸틴의 시리아 도박

지난 9월 28일 뉴욕 유엔 본부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가운데)과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왼쪽)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 (오른쪽)을 만나 시리아 사태를 논의했다.
러시아는 지난 9월 중순 병력 약 9만5000명을 동원한 대규모 군사연습 ‘센터 2015’를 실시했다. 일반 관행과 달리 러시아 정부는 훈련 내용을 세세히 공개했다. 예를 들어 힌드 공격헬기가 지상 표적에 로켓포를 쏘고 폭탄을 투하했으며 저공 비행으로 지상군을 공중 엄호하는 훈련을 했다고 발표했다. 또 전투기에서 지상의 표적에 유도 로켓포를 발사했으며 엔진 고장을 가정해 엔진 1개를 끄고 고도 약 200m로 비행하는 연습도 했다. 미국 전쟁연구소의 보고서는 러시아군의 그런 훈련을 두고 “시리아에서 반군과 교전하는 시리아군, 이란군, 헤즈볼라(레바논 무장단체)에 근접 공중지원을 제공할 때 필요한 기술”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러시아군은 시리아에서 바로 그런 작전을 실행하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까지 최소 25만 명이 목숨을 잃었고 수백만 명이 난민이 됐다. 전투가 격화되면서 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이런 시리아 내전에 러시아의 개입이 예상된 것이었는지, 예상됐다면 막을 수 있었는지 여부는 이제 논의할 가치가 없어졌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그 전쟁의 판도를 순식간에 바꿔놓았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주요 후원국인 러시아와 이란은 아사드 정권을 보호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섰다는 사실을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

지난 9월 21일 이란은 혁명수비대 소속 최정예 부대 쿠드스 대원 수백 명과 카셈 술레이마니 사령관을 파견해 러시아의 공중지원을 받으면서 아사드 대통령에 반대하는 세력을 격파하는 지상전에 돌입했다.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그 이래 이란과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도 쿠드스 부대와 합류했다.

그들이 파견된 전략적 이유는 명확하다.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 싸우는 것만이 아니다. 러시아군의 초기 공습은 그런 점을 여실히 입증했다[공격 표적에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훈련한 시리아 반군이 포함됐다]. 그들은 서방이 내쫓겠다고 천명한 아사드 대통령을 지원하기 위해 그곳에 파견됐다. 사우디의 아델 알-주베이르 외무장관은 지난 9월 29일 유엔에서 기자들에게 “아사드 대통령은 시리아에서 미래가 없다”고 공언했다. “그를 옹호하거나 용납하려는 시도는 헛수고가 될 것이다.”

러시아의 개입은 결정적인 순간에 이뤄졌다. 미국은 아사드 정권과 싸우는 반군을 훈련하고 무기를 제공하는 면에서 상당히 미온적이었다. 하지만 강경 급진파 IS부터 좀 더 ‘온건한’ 수니파와 시리아 쿠르드족까지 다양한 종파와 민족 배경을 가진 숱한 반군 단체의 집요한 공격으로 아사드 대통령의 입지는 서서히 허물어지고 있었다.

푸틴 대통령의 동기는 간단하다(그는 ‘20세기 최대 지정학적 재앙’이 소련의 붕괴라고 믿는다). 모스크바 소재 정치공학센터의 알렉세이 마카린 부소장에 따르면 ‘친구를 저버려선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전부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러시아는 40년 전 소련군이 쫓겨난 지역에 다시 발판을 마련할 수 있다. 갈수록 유혈낭자하고 혼란스런 중동에서 미국이 손을 떼려는 듯한 시점에서 러시아는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나토의 문간인 지중해에서 군사력을 확대할 수 있다(시리아 서부 항구도시 라타키아에 새로 건설된 러시아 공군 기지는 터키 국경에서 약 120㎞ 거리다). 아울러 그런 행동은 크림 반도 합병에 따른 미국과 유럽의 경제제재에서 탈피하려는 러시아에 서방을 향해 사용할 수 있는 지렛대를 제공할 수도 있다.

한 아랍국의 고위 정보관리는 푸틴 대통령의 시리아 내전 개입을 두고 “지역 판도를 바꿔놓을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러시아의 행동을 다소 폄하하는 듯하다. 아니면 적어도 공개적으로는 러시아의 계책을 높이 사고 싶은 마음이 없을지 모른다. 그는 지난 10월 2일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푸틴 정권이 시리아에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것은 러시아가 강해서가 아니라 약해서”라며 “시리아 사태의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현명하지 못한 행위”라고 말했다.

중동인 대다수는 오바마 대통령의 그런 언급에 코웃음을 쳤고, 미국인 다수는 시리아 문제에서 발을 헛디딘 대통령의 심술 난 불평으로 일축했다. 그러나 오바마 대통령이 발을 헛디뎠는지와 상관없이 그의 언급에 깔린 논리는 일리가 있다.

시리아가 ‘뱀 구덩이’라는 지적은 분명한 사실이다. 또 러시아가 시리아에 더 많은 병력을 파견한다면 헤어날 수 없는 수렁으로 빠질 가능성이 크다. 크렘린의 정치 고문을 지낸 뒤 러시아 정부 비판자로 변신한 글레브 파블로프스키는 “현재로선 시리아의 러시아 기지가 신성한 의미를 갖는다”고 말했다. “러시아로선 그런 기지를 포기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기지를 유지하려면 병력이 필요하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경제가 여전히 암울한데도 국민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러시아가 국제무대에서 내로라하는 행위자라는 점을 보여주기 위해 그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런 좋은 이미지를 뒷받침한다. 그러나 시리아 반군을 상대로 하는 전쟁은 별로 인기가 없다. 러시아의 독립적인 여론조사기관 레바다 센터가 러시아군의 시리아 공습 전에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3분의 2는 지상군 파견에 반대했다(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된 바로 그날 유엔을 방문한 푸틴 대통령은 지상군 파견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지정학적 체르노빌’ 시리아
지난 10월 1일 러시아군의 공습으로 시리아 다마스쿠스 외곽의 다이르 알-아사피르에서 건물이 파괴됐다.
요즘 여러 이슬람 수니파 아랍국 수도에서 자주 들리는 단어가 있다. ‘아프가니스탄’이다. 9·11 사태 후 미국이 벌인 아프간전이 아니라 그 전에 있었던 전쟁을 가리킨다. 그 전쟁에서 막강하던 소련군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지하드 반군 무자헤딘(사우디 등 수니파 아랍국들이 자금을 대고 미국이 무기를 공급했다)에 쫓겨났다.

푸틴 대통령은 소련군이 아프가니스탄에서 10년의 전쟁 끝에 1989년 철수한 치욕적인 사실을 뼈 아프게 생각한다. 그 후 1992년 그가 사랑하던 조국 소련이 무너졌다. 아울러 1980년대에 아프간 반군을 지원한 나라들이 지금 시리아에서 아사드 정권에 대항하는 반군에 자금을 대고 있다는 사실도 너무나 잘 안다.

그렇다면 미국 공화당 대선 경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그랬듯이 미국이 ‘블라디미르 블라디미로비치(푸틴의 이름)여, 그렇게 하세요. 시리아를 당신 마음대로 하세요’라고 말해야 할까? 적어도 푸틴 대통령이 갖고 있는 계획의 일부가 IS 격퇴라면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이 시사했듯이 러시아의 개입을 환영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건 끔찍한 발상이다. 러시아의 군사력 배치와 이란의 지상군 증강은 두 나라가 원하는 한 아사드 대통령이 권좌에 머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아사드 정권을 지지하는 ‘추축’이 수니파의 지원을 받는 반군을 격파할 자금과 능력이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따라서 암울한 결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 전 CIA 국장이 최근 지적했듯이 시리아는 ‘지정학적인 체르노빌’이다(체르노빌은 1986년 원전 사고로 방사능이 유출돼 황폐화된 우크라이나 도시다). 내전의 지속되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미국기업연구소 주요위협프로젝트 담당 국장인 프레데릭 케이건과 전쟁연구소 소장인 킴벌리 케이건은 최근 보고서에서 이렇게 경고했다. “러시아군의 시리아 증파는 수백만 명의 난민을 만들어냈고 지역 전체를 급진화시켰으며 인도주의적 파멸을 초래했고 시리아를 글로벌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의 집합소로 변모시킨 끔찍한 교착상태를 영구 고착시킬 뿐이다.” 그런 지하디스트는 나중에 서유럽이나 미국에서 테러를 일으킬 수 있다.

러시아의 시리아 내전 개입으로 중동의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은 우려가 크다. 이스라엘·요르단·사우디는 지난 5년 동안 오바마 행정부가 그들의 철천지 원수인 이란과 핵협상을 열렬히 추진한 것을 지켜보며 가슴을 쳤다. 그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궁극적인 목표가 이란을 합법적인 국가로 변모시켜 국제 시스템에 통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인터뷰에서 “수니파 또는 수니파가 다수인 페르시아만 국가들과 이란 사이에 균형을 맞춰 서로 경쟁하고 때로는 의심할 수도 있지만 실제 전쟁이나 대리전은 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시리아 정부군이 화학무기로 민간인을 공격했을 때 단호한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또 시리아의 반군을 적극 지원하지도 않았다. 중동의 전통적인 미국 동맹국들은 오바마 행정부의 이런 태도를 보고 미국의 진의를 의심한다. 그들은 미국이 중동에서 손을 뗐다기보다 ‘말을 갈아탔다’고 믿는다. 오바마 대통령이 말한 그 ‘균형’을 찾기 위해 이란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백악관은 그런 의심을 강력히 부인한다.

이제 푸틴 대통령이 시리아에 개입했고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가 1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이 중동의 현 상황을 변화시킬 만한 행동을 취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유럽이 시리아 난민으로 몸살을 앓으면서 수니파 아랍국들은 혹시나 서방이 아사드 대통령을 제어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으로 러시아와 이란에 기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러시아군이 시리아에서 싸우는 이유는 그게 아니다. 그들은 아사드 정권이 ‘테러리스트’(그의 정권과 싸우는 모든 세력을 가리킨다)를 격파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아사드 대통령의 권좌를 유지시키려고 그곳에 파견됐다. 시리아 내전은 4년 반 전 시작됐다. ‘지정학적 체르노빌’이 된 지가 그만큼 지났다는 뜻이다. 원자로의 노심 용융이 이제 막 시작됐을지 모른다.

- BILL POWELL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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