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차(茶) 무역적자가 부른 탐욕의 전쟁
[서영수의 ‘돈이 되는 茶 이야기’] 차(茶) 무역적자가 부른 탐욕의 전쟁

영국 귀족사회에서 중국 차 대인기

영국도 아편의 폐해를 알고 있었지만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경영하기 위해 중국에서의 무역역조를 뒤집어야만 했다. 중국에서 수입하는 차의 양은 해마다 늘었지만 중국에 수출할 마땅한 품목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인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 상인들에게 몰래 팔고 이를 감시하는 관리들에게는 뇌물을 상납했다. 차를 영국으로 가져가며 은으로 결제하는 대신 아편으로 대체하고 아편 밀무역이 성행하게 되면서 오히려 중국의 은이 고갈되기 시작했다. 경제적 손실을 넘어 아편에 중독되어 죽거나 폐인이 되는 중국인이 거리에 넘쳤다. 린쩌쉬의 동생도 아편중독으로 비참하게 죽었다. 중국이 지금도 가장 싫어하는 동아병부(東亞病夫)라는 말이 이 무렵 생겨났다. 린쩌쉬가 1426t의 아편을 압수해 소각해버린 단호한 행동에 당황한 영국 무역 감독관인 찰스 엘리엇은 다른 관리와 달리 뇌물과 회유가 통할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는 ‘전쟁이 불가피하다’고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고했다. 린쩌쉬는 전쟁을 피하기 위해 빅토리아 여왕에게 외교문서를 보내 중국에서 아편은 불법이고 마약중독의 폐해를 소상히 밝히며 아편을 제외한 모든 무역에 최혜국대우를 제안하지만 거절당했다. 영국의회는 찬반이 분분했다.
영국의 식민지인 인도와 실론에서도 차가 생산되었지만 당시에는 중국차가 ‘갑’이었다. 1662년 찰스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의 캐서린 공주가 차를 가져오면서 영국에 알려진 중국차는 중국 문화에 대한 동경과 함께 귀족사회의 고품격 문화생활로 급속히 퍼졌다. 유럽제국의 동인도회사들은 ‘왕실 티파티’를 위해서 질 좋은 중국차를 먼저 진상하려는 경쟁을 벌였다. 산업혁명 이후에는 왕실과 귀족사회는 물론 신흥 부르주아가 상류사회를 이끌면서 차 문화를 확산시켰다. 중국차를 부와 명예의 ‘아이콘’으로만 부러워하던 노동자도 차를 마실 기회가 왔다. 공장주들은 노동효율을 높이기 위해 ‘티 브레이크’를 만들어 휴식시간에 노동자들에게 차와 간식을 제공했다. 술 대신 차를 공급해 생산성을 높이는 데 성공했다. 1837년 즉위한 빅토리아 여왕시대는 전 국민이 고급 문화가 아닌 생활필수품으로 차를 매일 마셨다. ‘티 홀릭’에 빠진 영국은 부도덕한 전쟁에 돌입했다. 19세기는 영국 지식인의 로망 ‘유니언 잭’이 세계를 넘어 우주까지라도 뒤덮기를 갈망하던 제국주의가 팽배하던 시대였다. 1840년 4월 영국 의회는 9표차로 중국에 대한 원정군 파견을 승인했다. 제국주의가 저물 무렵 영국인 스스로가 ‘아편전쟁은 영국 역사상 가장 추악한 전쟁’이었다고 반성했다.
린쩌쉬는 외국 상인들이 숨겨둔 아편을 압수하며 1상자에 5근의 차로 보상해줬다. 앞으로 ‘아편을 거래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외국 상인들에게 받았다. 미국과 포르투갈 등의 상인들은 순순히 협조했지만 영국 상인들은 서약서 제출을 거부하고 광저우를 떠나 마카오로 본거지를 옮겼다. 이 와중에 1839년 7월7일 술에 취한 영국군이 중국 농부를 살해하는 사건이 터졌다. 린쩌쉬는 범인 인도를 요구했지만 찰스 엘리엇은 거부했다. 마카오를 봉쇄한 린쩌쉬의 함대와 영국 함대가 9월 4일 격돌하며 전쟁의 서막을 올렸다.
세계 최강의 해군 전력을 자랑하는 영국군과의 해상 정면대결보다 지리에 익숙한 이점을 살려 육지로 끌어들인 후 유격전으로 승기를 잡겠다는 린쩌쉬의 전략을 도광제는 묵살했다. 낙담할 틈도 없이 린쩌쉬는 서양의 대포를 사들이고 상선을 전함으로 개조했다. 믿을 수 없는 관군 대신 상인과 민간인으로 해안경비대를 만들었다.
1840년 6월 4000명의 병사를 태운 47척의 영국 함대가 광저우에 나타났다. 린쩌쉬의 강력한 방어로 광저우는 함락되지 않았다. 광저우를 포기한 영국의 함대는 북상해 베이징의 관문인 텐진을 공격했다. 린쩌쉬의 예상대로 영국군이 움직였던 것이다. 영국군의 텐진 상륙에 놀란 도광제는 전쟁의 원인 제공과 책임을 물어 린쩌쉬를 파면했다. 유화파인 치샨을 직례총독으로 급히 임명해 영국과 강화교섭을 벌이게 했다. 인도 용병이 중심이 된 1만명의 응원군이 린쩌쉬가 없는 광저우를 격파하고 난징으로 진격했다. 전쟁은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싱겁게 끝났다.
중국이 외국과 맺은 최초의 불평등 조약
망국의 한을 품고 죽었지만 중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영웅으로 부활한 린쩌쉬 기념관이 있는 아편전쟁 박물관을 찾아갔다. 광저우와 이어져있는 동관시 후먼대교 옆에 있는 아편전쟁 박물관에는 1839년 아편을 태웠던 자리에 린쩌쉬가 동상으로 남아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은 흐렸다.
서영수 - 1956년생으로 1984년에 데뷔한 대한민국 최연소 감독 출신. 미국 시나리오 작가조합 정회원. 1980년 무렵 보이차에 입문해 중국 윈난성 보이차 산지를 탐방하는 등 차 문화에 조예가 깊다. 중국 CCTV의 특집 다큐멘터리 [하늘이 내린 선물 보이차]에 출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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