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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맞수 열전 (4) 제주항공 VS 진에어

기업 맞수 열전 (4) 제주항공 VS 진에어

저가항공 시대가 열린지 올해로 10년, 예상을 뛰어넘어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는 평가다. 저가항공 업계 1위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제주항공과 진에어의 승부에 따라 저가항공 업계 다음 10년의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지난 1월 20일 저가항공사(LCC, Low Cost Carrier, 저비용항공사로도 불린다) 제주항공 사이트는 몸살을 앓았다. 제주항공이 창립 10년을 맞이해 정규 항공권 대비 최대 95%까지 할인되는 ‘찜(JJIM) 특가 프로모션’을 실시했기 때문. 제주항공 사이트가 한꺼번에 몰려든 고객들로 서버가 다운됐다. 2만 명이 동시 접속할 수 있도록 대비했지만, 이날 동시 접속자 수는 예상을 훨쩍 뛰어넘는 4만 명을 기록했다.

당시 제주항공이 내놓은 항공권 가격(편도 기준)을 알게 되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이해하게 된다. 인천-후쿠오카 5만8000원, 인천-오사카 6만8000원, 인천-칭다오 5만3000원, 인천-괌 13만6100원 등이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우리는 얼리버드 요금체계라고 부르는데, 다음 계절 여행을 준비하는 소비자를 위한 상품이다. 모든 저가항공사가 이런 특가 상품을 마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내 저가항공사들은 매년 정기적으로 특가상품을 내놓고 있다. 특가 행사를 한 저가항공사는 포털사이트 검색 순위에 오르내리기도 한다. 특가 상품에 대한 인기가 그만큼 높다는 것이다.
 비행기 고객 늘려 시장 확대에 성공
저가항공사의 대중화는 시장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 2005년 8월 한성항공(현 티웨이항공)의 프로펠러를 장착한 72인승 비행기가 청주공항에서 제주공항을 향해 이룩한 것이 저가항공사 운항의 시작이다. 이후 제주항공(2005년 1월 설립), 에어부산(2007년 8월 설립), 이스타항공(2007년 10월 설립), 진에어(2008년 1월 설립)로 이어졌다.

저가항공사는 지난 10년간 훨훨 날았다. 우선 저가항공사 덕분에 항공기 이용객이 급증했다. 항공정보포탈 시스템 통계에 따르면 2005년 국내선을 이용한 전체 이용객은 1715만 명이었다. 저가항공사가 본격적으로 운행하기 시작하면서 2009년 1806만 명, 2010년 2021만명, 2014년 2464만 명으로 확대됐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저가항공사의 등장으로 국내외 여행이 쉬워졌고, 선택의 폭도 넓어졌다. 누구나 쉽게 비행기로 여행할 수 있는 대중화시대를 열었다”고 평가했다.

항공사의 성장세도 눈부시다. 대신증권 이지윤 연구원은 항공산업 보고서를 통해 “한국의 경우 철도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고, 국내선 시장이 작아 LCC도입이 비교적 늦었음에도 불구하고 LCC의 점유율 확대속도는 미국, 유럽보다 2~3배 빠르다”고 분석했다. 국내선 점유율 변화 추이가 이를 확인해준다. 인천공항 자료에 따르면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내선 점유율은 2012년 56.2%였고, 저가항공사가 43.8%를 차지했다. 이 비율이 2013년에는 국적항공기의 국내선 점유율이 51.8%로 떨어졌고, 2014년에는 49.6%로 하락했다. 이와 반대로 저가항공사는 2014년 국내선 점유율이 48.2%, 2015년에는 50.8%로 급성장했다. 국내선 시장에서 저가 항공사의 급격한 성장세를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부응해 아시아나항공도 최근 ‘에어서울’이라는 저가항공사 설립을 공식화했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저가항공사가 5개에서 6개로 늘어나는 것이다. 저가항공사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는 상황. 국내 저가항공 시장을 이끌어가는 쌍두마차 제주항공(애경그룹 계열사)와 진에어(대한항공 계열사)의 진검 승부가 시작됐다.
 제주항공, 채형석 부회장의 전폭 지원이 큰 힘
국내 저가항공의 역사는 제주항공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제주항공은 국내 저가항공사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는 자신감과 ‘최초’라는 자존심을 가지고 있다. 2015년 10월 기준으로 제주항공 누적 탑승객이 2850만 명이다. 올 연말에 2대가 추가되면 보유 항공기만 22대로 저가항공사 중 가장 많다. 2008년 7월 국제선 취항을 시작한 이래 일본·중국·홍콩 등 20개 국제 노선에 취항 중이다. 올해 말까지 취항하는 인천-다낭, 부산-오키나와 노선까지 합하면 22개의 국제노선을 가지고 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지난 10년 동안 제주항공 이용객이 두 배로 늘었다. 저가항공을 대중화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4년 제주항공의 매출액은 5106억원, 영업이익이 295억원을 기록했다. 저가항공사 처음으로 5000억원의 매출을 돌파했다는 기록도 남겼다. 국제선이 3020억원, 국내선이 1859억원, 기타 227억원으로 전체 매출액 대비 국제선이 59.2%를 차지했다. 창사 10년 만에 급성장을 기록했지만, 초기에는 불안하다는 평가가 높았다.

창업 후 5년 동안 제주항공의 실적은 적자였다. 모기업인 애경그룹 또한 항공사를 운영해본 경험이 없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항공산업의 특성상 초기 투자금이 많았다. 운영상 문제는 없었지만, 재무적인 어려움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애경그룹이 제주항공에 투자한 금액만 900여 억원이 넘었다. 그룹사 내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제주항공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낸 이는 장영신 애경그룹 회장의 장남 채형석 총괄부회장이다.

제주항공의 현재는 채 총괄부회장이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04년 11월 제주지역 항공사 설립 파트너 자격을 받았을 때 채 총괄부회장은 “오래전부터 항공사업에 관심이 있었다”고 말한 바 있다. 채 총괄부회장은 매제인 안용찬 애경그룹 생활항공부문 부회장에게 운영을 일임했지만 사업 초기에는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적자운영이 계속되자 안 부회장이 “사업을 그만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채 부회장에게 말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 부회장은 안 부회장이 맘껏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대규모 투자를 계속 이어나갔다. 2009년 말에는 애경그룹의 주력업종 중 하나인 AK면세점을 롯데그룹에 매각하기도 했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채 부회장은 초반에 어려울 것임을 이미 예상했고, 그럼에도 제주항공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채 부회장은 평소 “제주항공을 제1의 저비용 항공사로 생각하지 말라. 우리는 대한민국 항공 빅3로 자리매김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항공사업에 대한 애착이 크다고 한다. 제주항공은 현재 애경그룹 매출의 10% 정도를 차지하면서 미래성장 동력원이 되고 있다.

제주항공은 11월 저가항공사 최초 상장을 통해 자금을 모을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장거리 노선에 취항할 비행기를 들여올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다. 제주항공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 취항은 아직 검토 중이다. 상장으로 모은 자금으로 제주항공을 더 견실하게 만들 것”이라고 대답했다. 채 부회장이 요즘 신경을 쓰는 것은 애경그룹과 제주항공의 시너지 효과다. 애경그룹의 인프라를 제주항공과 연계해 많은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복안이다.

12월 19일이면 저가항공 역사의 한 페이지에 ‘장거리 노선 취항’이라는 단어가 올라가게 된다. 진에어가 들여온 393석 규모의 B777-200ER 항공기가 비행시간 8~9시간 거리의 인천-호놀룰루 노선에 첫 취항을 하는 것. 그동안 저가항공사는 최대 4~5시간 거리의 중단거리 노선에만 집중했다.

진에어는 포화상태인 중단거리 노선 대신 장거리 노선에 뛰어들면서 업계의 관심을 받고 있다. 진에어가 장거리 노선에서 올린 성적표에 따라 경쟁사의 대응이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진에어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에 대해서는 모든 저가항공사가 공감하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다만 노하우와 재무적인 상황을 보면 진에어처럼 장거리에 뛰어들 수 있는 곳은 그리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진에어, 조현민 전무 경영능력의 바로미터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동안 저가항공사는 단일기종 비행기를 리스해 운영해왔다. 정비나, 조종사와 객실 승무원 교육 등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장거리 노선에 뛰어든다는 것은 정비와 조종사, 객실 승무원 등을 새롭게 정비를 해야 한다는 것과 같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항공사가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항공사를 설립하는 것과 같다”고 말할 정도다.

진에어의 장거리 노선 취항은 저가항공사 업계에서 1위를 하기 위한 승부수다. 2014년 진에어의 매출액은 3511억원, 영업이익은 169억원이다. 제주항공에 비해 매출액은 2000여 억원이 뒤지는 상황이다. 운항 비행기 대수도 제주항공이 앞선다. 이에 대해 진에어 관계자는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기 위해 큰 비행기 3대를 들여오는데, 그러면 전체 좌석수가 제주항공과 비슷해진다”고 주장했다. 장거리 노선에 취항하는 B777-200ER 항공기 좌석은 355~399석으로, 통상 180~189석 규모의 B737- 800 항공기 좌석의 2배다. 이를 통해 비행기 대수가 아닌 좌석수로 진에어의 경쟁력을 어필하고 있다.

한국 항공업계의 1위는 항상 대한항공이 차지해왔다. 하지만 대한항공이 지분 100%를 출자해 설립한 진에어는 여전히 업계 2위에 머물러 있다. 한국 항공업계를 이끈다는 자존심에 금이 간 상황. 더군다나 진에어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둘째 딸 조현민 진에어 전무(마케팅 본부장)의 경영능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진에어가 저가항공 업계 1위를 탈환하기 위해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진에어의 장거리 노선 취항은 대한항공과 경쟁을 불러올 것’이라는 우려에도 장거리 노선 취항을 결정한 이유다. 이에 대해 진에어는 “대한항공과 경쟁하는 게 아니라 고객이나 시장의 규모를 늘리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진에어의 시작과 공격적인 사업 행보의 중심에는 조현민 전무가 있다. 진에어 출범 당시 “제가 서울대학교에서 MBA과정을 이수한 것은 진에어 때문입니다”라고 말했을 정도. 진에어의 로고 디자인, 유니폼, 포인트제도 등 진에어의 전반적인 사항을 조 전무가 챙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조 전무는 진에어 등기이사로 임명됐다. 진에어 관계자는 “마케팅본부장으로서 진에어의 마케팅에 관련된 전반적인 사안을 모두 챙기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2013년 10월에는 조 전무가 2박 5일 동안 한국과 동남아시아 저가항공사를 직접 체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진에어 하면 떠오르는 청바지 유니폼, 나비포인트, 특가상품권 매장 역할을 하고 있는 진마켓 등이 모두 조 전무의 진두지휘로 탄생했다고 한다.

두 저가항공사의 승부는 내년이 고비가 될 전망이다. 업계 1위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제주항공과 진에어. 장거리 노선에 뛰어든 진에어가 어떤 성적을 내느냐에 따라 두 기업의 승패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 최영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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