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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400대 부자] 미국의 400대 부자 중 상위 20인

[미국의 400대 부자] 미국의 400대 부자 중 상위 20인

최고 부자의 타이틀은 여전히 빌 게이츠에게로 돌아갔다. 그러나 아마존닷컴의 제프 베저스와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의 순위가 대폭 반등해 이 두 기술업계의 선구자는 처음으로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한편 나이키의 필 나이트가 18년 만에 상위 20위권 재진입에 성공했다.
 1. 빌 게이츠(59)


760억 ▼




마이크로소프트 워싱턴주 메디나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는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인류의 삶을 개선하는 데 주로 활용하고 있다. 지난 7월 유럽 규제 당국은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이 빌&멜린다 게이츠 재단에서 후원하는 비영리 단체인 PATH와 공동으로 개발한 세계 최초의 말라리아 백신에 승인권고를 내렸다. 또한 빌 게이츠는 미국의 사회정책에 관심을 갖고 교육 개선에 막대한 금액을 기부하고 있으며, 아내인 멜린다와 함께 현재 거주하고 있는 워싱턴주의 총기규제 법안을 지원하고자 100만 달러를 기부했다. 한편 <뉴욕 타임즈> 지에같은 억만장자인 쉘던 아델슨 및 워런 버핏과 함께 미 의회가 이민법 개혁을 통과시킬 것을 촉구하는 사설을 연재한 바 있다. 빌 게이츠는 현재 나와 있는 대통령 후보 그 누구에게도 정치헌금을 기부하지 않았지만, 2012년 대선 캠페인 당시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후보에게 기부했다. 빌 게이츠 재단은 클린턴 재단에 2500만 달러 이상을 기부했다. 폴 앨런(28위)과 함께 마이크로소프트를 창업한 지 40년이 지난 현재, 빌 게이츠가 보유한 지분은 3%도 채 되지 않으며, 이는 빌 게이츠 총자산의 대략 13%를 차지하고 있다. 빌 게이츠는 2014년 2월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직에서 퇴임했다.
 2. 워런 버핏(85)


620억 ▼




버크셔 해서웨이 네브래스카주 오마하






워런 버핏은 힐러리 클린턴의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 하나로 손꼽힌다. 한때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다시 백악관으로 입성하기 위한 노력을 오랫동안 지원해왔으며, 캠페인 자금을 기부하고 이를 통해 무엇보다도 힐러리 클린턴의 출사표에 뚜렷한 승인도장을 찍어주었다.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표명하는 동시에, 워런 버핏은 극좌파 정치인인 버몬트주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에 대해 찬양에 가까운 발언을 한 바 있다. 솔직한 자유주의자인 워런 버핏은 자신이 자신의 비서보다도 더 낮은 세율의 세금을 내고 있다며, 미국정부의 과세방식의 불합리성에 대해 힐난을 퍼부었으며, 소리 소문 없이 가족계획 캠페인인 플랜드 패런트후드(Planned Parenthood) 및 총기규제단체인 에브리타운 포 건 세이프티(Everytown for Gun Safety)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다. 워런 버핏은 수십년 동안 현명한 투자전략으로 쌓은 명성을 통해 재계에서 기업의 신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자신이 운영하고 있는 버크셔 해서웨이를 통해 지난 8월 역사상 최대규모의 인수계획을 발표했다. 바로 항공우주 및 산업부품 제조사인 프리시전 캐스트파츠(Precision Castparts)를 370억 달러에 인수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최근 들어 워런 버핏은 몇몇 브라질 출신 억만장자들이 경영하고 있는 투자회사 3G 캐피탈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업하여 크래프트 푸즈, 하인즈, 버거킹 그리고 커피전문점 체인 팀 호튼 등을 인수했다. 버크셔 해서웨이는 게이코(Geico), 데어리 퀸(Dairy Queen), 프룻 오브더 룸(Fruit of the Loom)등의 기업을 거느리고 있다.

 3. 래리 엘리슨(71)


475억 ▼




오라클 캘리포니아주 우드사이드






비록 2014년 9월 최고경영자직에서 물러났지만, 래리 엘리슨은 그 후에도 데이터베이스 소프트웨어 거대기업인 오라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지난 6월 오라클은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 확장을 선언하며, 아마존닷컴의 웹 서비스(Web Services)와 직접적인 경쟁에 나섰다. 올해 5월까지 매출은 전년대비 소폭 하락한 382억 달러를 기록했다. CIA를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이후, 래리 엘리슨은 1977년 오라클을 창업하고 고객관계관리 CRM 데이터베이스에 대한 점증하는 기업들의 수요를 기회로 삼아 사업을 운영했다.

 4. 제프 베저스(51)


470억 ▲




아마존닷컴 워싱턴주 시애틀






지난 7월 아마존닷컴은 2사분기 9200만 달러의 수익을 기록하며 예상을 뛰어넘는 성과를 올렸다. 주가는 대폭 상승했으며, 최고경영자인 제프 베저스는 올해 순위가 가장 많이 상승한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희소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뉴욕 타임즈> 지는 높은 강도의 노동, 오랜 근무 시간 등 아마존닷컴 직원들의 근무 환경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기사를 내보냈다. 이에 대응해 직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워싱턴 포스트> 지의 소유주는 이 기사에서 묘사하는 기업이 어떤 기업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러한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계속 근무하다가는 미쳐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제프 베저스는 지속적으로 신기술에 대담한 베팅을 보여주고 있다. 7월 말, 아마존닷컴은 소비자에게 택배를 배달하는 비행로봇이 다닐 수 있는 고속드론용 영공계획을 제안했다. 9월, 제프 베저스는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우주항공기업인 블루 오리진(Blue Origin)이 2억 달러 이상을 투자해 재활용 가능한 로켓을 제작하고 이를 2020년 말까지 케이프커내버럴의 발사대에서 궤도로 쏘아올릴 것이라는 계획을 발표했다.
 5. 찰스 코크(79)


410억 ▼




다양한 사업 켄자스주 위치토












 6. 데이비드 코크(76)


410억 ▼




다양한 사업 뉴욕주 뉴욕시티






“우리의 조국을 구원하기 위한 노력에 저희와 함께 하시겠습니까?” 찰스 코크가 지난 8월 캘리포니아에서 개최된 프리덤 파트너스 정책지도자 회의에 모인 청중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공화당의 신진지도부인 젭 부시, 플로리다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 텍사스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 등이 모두 코크 가문에 대한 경의를 표하고자 이 자리에 참석했다. 도널드 트럼프(121위)는 초대받지 못했다. 찰스 코크는 더 작은 정부와 경제적 자유주의를 위한 자신의 투쟁을 시민권 운동에 비교한다. 그리고 수백명의 부유한 보수주의자로 구성된 그의 인맥은 보수주의 후보를 지지하는 데 3억 달러, 그리고 규제를 완화하고 형사사법시스템을 개혁하기 위한 노력에 추가로 6억 달러의 돈을 기부하려 한다. 코크 형제는 다방면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이들의 활동단체인 ‘번영을 위한 미국인(Americans for Prosperity)’이 있고, 프리덤 파트너스는 컨퍼런스뿐만 아니라 i360과 같은 하이테크 벤처사업에도 돈을 투자하고 있다. i360은 1억9100만 명의 등록 유권자에 대한 개인 프로필을 제공하는 앱으로, 투표 이력, 소비자 인구특징 그리고 라이프스타일 및 행동 데이터를 포함한다. 찰스는 미국에서 두 번째로 가장 큰 규모의 주식비공개기업으로 115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코크 인더스트리의 회장직을 계속 맡고 있다. 찰스 코크가 처음 회장직에 오른 1967년, 코크 인더스트리의 가치는 5000만 달러였으나, 오늘날 그 가치는 1000억 달러에 이른다. 뉴욕시티 시민 중 최고의 부를 자랑하는 데이비드 코크는 코크 인더스트리의 화학기술사업을 맡고 있다. 지난해 이 두 형제의 자산은 제조업 및 파이프라인 산업의 약세로 소폭 감소했다.

 7. 마크 저커버그(31)


403억 ▲




페이스북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지난 8월, 페이스북은 사상 처음으로 하루 사용자 10억 명의 기록을 세웠다. 가상현실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스타트업기업 오큘러스를 인수한 지 1년이 지난 후, 페이스북은 오큘러스의 리프트 VR(Rift VR) 헤드셋이 일반 소비자를 대상으로 2016년 초반 출시될 것이라 발표했다. 이 모든 호재들로 인해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자산은 지난해 한 해 63억 달러 증가했으며, 마크 저커버그는 처음으로 포브스 400대 부자 순위 중에서도 상위 10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마크 저커버그는 2004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인 페이스북을 창업하여, 실리콘 밸리로 사업의 본거지를 옮기기 위해 하버드 대학을 중퇴했다. 2014년 7월 인터넷 닷오그(Internet.org)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로, 페이스북은 아시아, 아프리카 그리고 라틴 아메리카 17개국에서 10억 명 이상의 사람들에게 무료로 기본적인 인터넷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지난 5월 마크 저커버그와 아내인 프리실라찬은 맞춤화된 하이테크 교육을 제공하고자 노력하는 신생기업인 알트스쿨(AltSchool)에 도합 1억 달러의 기금을 투자한 자금제공자들의 명단에 포함되었다. 6월 이 부부는 불법체류자를 위한 대학장학금펀드에 50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마크 저커버그는 2010년부터 뉴저지주 뉴어크의 공립학교 시스템에 1억 달러를 기부해왔으나, 자신이 주창하던 광범위한 개혁을 성취하는 데는 실패했다.

7월 말에는 페이스북에 3번의 자연유산 끝에 자신과 아내인 프리실라가 여자아이의 출산을 앞두고 있다는 개인사를 공개하며 모두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8. 마이클 블룸버그(73)


386억 ▲




블룸버그LP 뉴욕주 뉴욕시티






과거 뉴욕시 시장을 역임하며 미국에서 가장 부유한 정치인이었던 마이클 블룸버그는 현재 자신의 이름을 딴 금융데이터 및 미디어 기업을 회생시키는 데 전력을 다하고 있다. 2015년 초 최고경영자로 복귀한 이래, 마이클 블룸버그는 블룸버그 뉴스의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고 핵심사업인 경제뉴스에 다시 주력하기 위해 수석편집장을 교체했고 들리는 바에 따르면 주로 정치적인 견해의 문제로 무려 100여 명의 편집부 직원을 해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평생을 민주당원으로 활동했으나, 공화당 소속으로 뉴욕시 시장 선거에 출마하고 세 번을 연임한 마이클 블룸버그는 총기규제 및 여성의 경제력 신장과 같은 진보적인 이슈를 지지하는 데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며 여전히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그동안의 행보를 통해 마이클 블룸버그는 강력한 지지자들을 곁에 둘 수 있었다. 8월 보수주의자인 루퍼트 머독(38위)은 공개적으로 마이클 블룸버그에게 대통령 후보로 나설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전직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는 침묵을 지켰다. 이제까지 마이클 블룸버그는 그 어떠한 대선후보도 공개적으로 지지한 바 없지만, <뉴욕타임즈> 지에는 “힐러리 클린턴과 젭 부시 이 두 명만이 미국이라는 기차를 어떻게 움직여 나가야할 지 알고 있다”라고 이야기했다. 활발한 자선운동가이기도한 마이클 블룸버그는 6월 코넬 대학의 뉴욕시 소재 테크놀로지 캠퍼스에 1억 달러의 기부금을 쾌척하겠다고 선언했으며, 이로써 그가 평생동안 기부한 금액은 총 37억 달러가 되었다. 지난 4월 마이클 블룸버그는 2500만 달러에 런던에 두 번째 자택을 마련했다고 한다. 마이클 블룸버그는 햄턴, 맨하탄, 웨스트체스터 카운티, 콜로라도 및 버뮤다를 포함해 세계 각지에 다양한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
 9. 짐 월튼(67)


337억 ▼




월마트 아칸소주 벤턴빌






 10. 래리 페이지(43)


333억 ▲




구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11. 세르게이 브린(42)


326억 ▲




구글 캘리포니아주 로스알토스






8월 구글의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브린은 구글의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했다. 4분기 알파벳(Alphabet)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모기업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들의 목적은 “더욱 야심찬 것들을 해보겠다”라는 것이다. 구글(유튜브는 계속 구글의 일부로 남는다)은 알파벳이라는 모기업 아래에 존재하게 될 여러 개의 기업 중 하나가 되며, 여기에는 노화 방지 연구소 칼리코(Calico), 스마트홈 온도조절기 업체 네스트(Nest), 구글 벤처스(Google Ventures), 그리고 구글X가 포함된다. 래리 페이지는 알파벳의 최고경영자직을, 세르게이 브린은 사장직을 맡게 될 것이다. 알파벳을 설립하는 이유는 이 두 명이 구글 내부적으로 매달려온 야심찬 프로젝트의 실행을 위해 보다 공식적인 기업구조를 갖추기 위해서이다. 예를 들어 구글X 그룹은 무인자동차(지난해 프로토타입이 소개되었다) 및 안경렌즈와 컴퓨터를 결합한 구글 글래스 (현재 그 개발 상태는 정체되어 있는 듯하다)를 만들어냈다. 구글의 주가는 새로운 CFO 루스 포랏(Ruth Porat)이 재무적인 질서를 확립할 것이라 강경하게 이야기하고, 유튜브 및 모바일 검색 사업부에서 뛰어난 성과를 창출함에 따라 지난 7월 역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세르게이 브린이 한 젊은 구글 직원과 불륜을 저지른 행각이 신문지상에 보도된 지 거의 2년이 지난 올해 5월, 그는 유전자검사기업 23andMe의 최고경영자인 아내 앤 워즈츠키와의 이혼절차를 마무리했다.

 12. 앨리스 월튼(66)


320억 ▲




월마트 텍사스주 포트워스






 13. S. 롭슨 월튼(70)


317억 ▼




월마트 아칸소주 벤턴빌






 14. 크리스티 월튼(66) & 가족


302억 ▲




월마트 와이오밍주 잭슨






지난 6월 롭슨 월튼은 25년 만에 아버지 샘 월튼이 사망한 이후 맡아온 월마트의 회장직에서 퇴임했다. 가문의 장자인 롭슨 월튼은 동생인 짐 월튼과 함께 이사회의 이사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롭슨 월튼의 사위 그레고리 페너(Gregory Penner)가 그 뒤를 이어 회장직에 올랐다. 롭슨 월튼과 짐 월튼의 여동생 앨리스 월튼, 그리고 며느리 크리스티 월튼은 월마트에서 그 어떠한 직함도 맡고 있지 않으며, 대체적으로 전면에 나서지 않은 채 조용히 활동하고 있다. 크리스티 월튼은 샘 월튼의 둘째 아들인 존 월튼과 결혼했는데, 존 월튼은 2005년 비행기 충돌사고로 사망했다. 앨리스 월튼과 짐 월튼 모두 전통적으로 공화당 후보에 기부해왔으나, 앨리스 월튼은 2013년 11월 수퍼 팩(PAC, 민간정치자금단체)를 설립하는데 2만5000달러를 내놓으며 힐러리 클린턴의 지지자로 나섰다. 월튼가의 3형제와 며느리 크리스티 월튼은 1만1000여개의 지점을 거느린 세계 최대의 소매유통업체 월마트 지분의 51%를 소유하고 있다. 지난 한 해 브라질 및 중국과 같은 핵심 시장의 경기가 둔화됨에 따라 주가가 15% 하락하면서, 월튼가의 네 부자가 소유한 자산은 총 160달러가 사라져버렸다. 아버지 샘 월튼은 동생 버드 월튼과 함께 1962년 아칸소 로저스에서 월마트를 시작했다. 두 형제는 낮은 가격과 소박한 태도로 곧 미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1984년 월마트가 놀라운 재무성과를 이룩하면서 직원들과 건 내기에서 이기자, 샘 월튼은 약속한대로 월스트리트에서 훌라 댄스를 추었다.
 15. 쉘던 아델슨(82)


260억 ▼




카지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미국 최대의 카지노 기업인 라스베가스 샌즈를 경영하여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축적했으며, 이 막대한 자산을 공화당 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2014년 젭 부시, 존 케이식 그리고 크리스 크리스티를 포함한 공화당 대선후보들은 자신의 비전을 상세히 설명하고, 쉘던 아델슨의 축복과, 가능하다면 정치자금도 후원받기를 바라며, 쉘던 아델슨과의 회동을 위해 라스베이거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날아갔다. 몇몇 보고에 따르면 존 케이식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저는 이런 곳을 자주 다니지는 않지만, 이번 방문은 제가 정말, 실로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회장님이 하시는 일에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까지 쉘던 아델슨은 자신의 마음에 드는 후보에 대해 침묵을 지켜왔지만, 최근 들어 마르코 루비오 상원의원과 사우스 캐롤라이나 상원의원 린지 그레이엄에 공개적으로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2014년 쉘던 아델슨은 빌 게이츠(1위) 및 워런 버핏(2위)과 공동으로 <뉴욕 타임즈> 지에 이민에 대해 절충적인 태도를 취할 것을 촉구하는 기명 논평을 실었다. “명석한 두뇌를 지녔고 무언가 하고자 하는 의지에 차 있는 대학생들을, 종종 장학금까지 주어가며 교육을 시키고, 그 다음 졸업을 할 때쯤이 되면 강제추방해버리는 작금의 현실은 미친 짓에 가까운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 이 말은 쉘던 아델슨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적은 한 사람의 후보가 바로 공화당의 유력주자인 도널드 트럼프(121위)라는 말이다.
 16. 조지 소로스(85)


245억 ▲




헤지 펀드 뉴욕주 캔토나






나치 치하의 헝가리에서 살아남아 십대 시절 공산당 체제를 피해 달아났다. 과감한 거래전략으로 업계의 전설로 자리매김하며 세계최고의 부자 헤지펀드 매니저가 되기 전에는, 런던에서 철도역의 짐꾼 및 웨이터로 일하던 시절이 있었다. 민주당의 핵심인물 중 하나로, 2015년 힐러리 클린턴을 지원하는 수퍼 PAC에 이제까지 200만 달러를 기부했다. 1996년 미국에서 약물합법화, 이민 정책개혁, 그리고 말기환자케어프로그램 등과 같은 진보적인 프로그램에 대해 자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2004년 조지 W. 부시 대통령에 반하는 명백하고도 개인적인 투쟁을 시작하여, 부시 대통령을 백악관에서 몰아내고자 하는 단체들에 270만 달러의 금액을 지원했다. 그 이후로 세율인상과 부의 재분배를 주장하며 스스로를 “내가 속한 사회계급의 배반자”라 불렀다. 2008년 오바마 민주당 후보를 지지했으나, 2012년에는 오바마 정권이 공화당 주자 미트 롬니와의 차이점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판단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을 지원하던 열정은 사그라들었다. 조지 소로스는 2014년 8월 한 백인 경찰관이 무장하지 않은 흑인 십대를 총으로 쏜 사건이 발생한 이후, 사태의 진원지인 미주리 퍼거슨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민단체들을 대폭 지원한 바 있다.
 17. 필 나이트(77)


244억 ▲




나이키 오리건주 힐스버러






나이키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매우 성공적이었던 올 한 해, 스포츠웨어산업의 공룡기업 나이키의 주가는 지난 12개월 동안 무려 35%의 상승폭을 기록했으며, 필 나이트는 6월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 동시에 아들인 트래비스 나이트가 나이키 이사회에 합류했으며, 필 나이트는 자신이 보유한 나이키 지분의 대부분을 ‘스우시LLC(Swoosh LLC)’라는, 나이키 로고의 의성어를 연상시키는 명칭의 유한회사로 이전했다. 향후 1979년 신발 디자이너로 시작해 거의 초창기부터 나이키와 함께 해온 나이키 최고경영자인 마크 파커(Mark Parker)가 회장직을 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필 나이트는 스탠포드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바로 직후인 1964년 나이키를 창업했고, 전 세계를 여행하던 중 일본 신발제조업체들과 만나게 되어 이들 업체를 설득해 일본에서 생산된 운동화를 수입해 판매했다. 본국으로 돌아온 필 나이트는 자신의 예전 육상코치인 빌 보워먼(Bill Bowerman)과 각각 500달러의 자금을 투자해 블루 리본 스포츠를 설립했다.

필 나이트는 1978년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승리의 여신의 이름을 빌려 사명을 나이키로 바꾸었다. 초창기 빌 보워먼이 고안한 독특한 운동화 밑창 디자인은, 아내의 와플 기계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다. 공개적으로 정치헌금활동을 한 적이 거의 없는 필 나이트였지만, 올해 초에는 공화당 전국위원회와 유타주 상원의원 오린 해치(Orrin Hatch)에 정치자금을 기부했다.
 18. 포레스트 마스 주니어(84)


234억 ▲




M&M’s 와이오밍주 빅혼






 18. 재클린 마스(76)


234억 ▲




M&M’s 버지니아주 더플레인즈






 18. 존 마스(79)


234억 ▲




M&M’s 와이오밍주 잭슨






위 세 명의 부자가 소유한 마스(Mars Inc.)는 미국 최대의 캔디제조업체로, 미국에서 판매하는 사실상의 모든 제품을 미국에 소재한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마스사는 7월 캔자스주 토피카의 초콜릿 생산공장에 1억 달러의 자금을 추가로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비상장기업인 마스는 지난해 문을 연 이 초콜릿 공장에 이미 3억3000만 달러를 투자한 바 있으며, 이는 마스사가 35년 만에 처음으로 설립한 신규 초콜릿제조공장이다.

마스사가 생산하는 제품들은 M&M, 스니커즈, 밀키웨이 등처럼 애플파이에 비견될만한 미국 특유의 대표적인 간식거리로, 이외에도 엉클 벤(Uncle Ben) 쌀 및 애완동물사료 위스카스(Whiskas)처럼 식료품 가게에서 빠질 수 없는 주요아이템도 포함된다.

공개적으로 모습을 드러내는 법이 거의 없는 마스가의 남매들은 은둔생활을 하는 상속인의 이미지를 전형적으로 잘 보여준다. 과거 정치 지도자를 지원하고자 대중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아직 공개적인 행보를 드러내지 않았다.

남매의 할아버지는 워싱턴 타코마의 자택 부엌에서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도산의 위기를 겪은 후, 1923년 초코바 밀키웨이를 선보이면서 마침내 큰 성공을 거두었다.

2015 미국 400대 부자 리스트의 전체 순위는 www.forbes.com/forbes400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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