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네이밍스폰서 논란] 애매한 규약에 눈치만 보는 KBO
[프로야구단 히어로즈 네이밍스폰서 논란] 애매한 규약에 눈치만 보는 KBO
summary | 프로야구단 히어로즈가 대부업 경력의 일본계 J트러스트와 네이밍스폰서 계약을 추진하면서 논란을 빚었다. 여론에 밀려 한발 물러났지만 뒷맛은 개운치 않다. 더 큰 문제는 규약에 네이밍스폰서와 관련한 구체적 조항이 없어 눈치만 보는 KBO다. 2008년에 히어로즈가 ‘우리 담배’와 계약을 하면서 비슷한 문제가 노출됐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달라진 건 없다.국내 타이어 회사인 ‘넥센’과 네이밍스폰서 계약을 했던 히어로즈가 새로운 스폰서를 찾으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후보로 거론되는 기업이 문제다. 일본계 제2 금융업체인 J트러스트. 이 회사는 서민들을 상대로 고금리 대부업으로 돈을 번데다, 국적이 일본이라 비난 여론이 거세다. 한국프로야구협회(KBO)는 물론이고 다른 구단들도 직간접적으로 반대의 뜻을 나타냈다.“J트러스트는 현재 대부와 관련된 사업을 모두 정리한 저축은행”이라고 항변하던 히어로즈도 냉랭한 여론에 밀려 “공식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계약 대상을 변경할 여지를 남겼다.
히어로즈는 왜 논란이 일게 불 보듯 뻔한 일을 추진했을까? 답은 간단하다. 여러 얘기가 나오고 있지만 결국 돈 때문이다. 히어로즈는 국내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야구단이다. 모기업의 지원을 받는 다른 구단과 달리 야구 자체에서 수익을 내야 기업으로 존속할 수 있다. 입장권과 기념품 판매, 유니폼에 부착하는 광고 계약, TV중계권료 수익 등으로 구단을 운영해야 한다. 한국 프로야구의 환경을 감안하면 200억원이 넘는 1년 운영비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히어로즈는 최근까지도 해마다 40억~60억원가량의 적자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목동구장보다 비싼 고척돔 사용료 부담
국민의 정서와 프로야구의 위상을 무시한 히어로즈의 선택이 1차 비난 대상은 맞다. 그러나 이 문제를 야기한 KBO의 책임도 가볍지 않다. 히어로즈의 스폰서네이밍 이야기를 접한 양해영 KBO 사무총장은 10월 26일 KBO의 입장을 밝혔다. “히어로즈와 J트러스트의 계약에 KBO가 직접 개입해 협상을 강제로 중단할 수 있는 권한은 없다. 하지만 여론을 생각한다면 히어로즈가 협상을 재고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국내 최대 규모의 프로스포츠 리그를 운영하는 협회의 발언치고는 다소 무책임하다. 정확한 규약과 조항에 의거한 발언이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지금 KBO 규약엔 네이밍스폰서와 관련한 구체적 조항이 없다.
문제는 이런 일이 처음이 아니라는 점이다. 히어로즈가 창단한 2008년부터 비슷한 문제가 이어졌다. 히어로즈의 전신은 현대 유니콘스다. 2007년 모기업이 경영상 어려움을 이유로 야구단 운영을 포기했다. KBO는 히어로즈를 인수할 기업을 찾았지만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다. 지금처럼 프로야구 인기가 높지도 않았고 경제도 좋지 않았다. 농협·KT·STX가 구단 인수 협상을 벌였지만 모두 결렬됐다. 그 때 구세주처럼 나타난 기업이 미국계 투자전문회사 ‘센테니얼 인베스트먼트’, 지금의 ‘히어로즈 야구단’이다. 히어로즈의 등장에 야구계가 술렁였다. 미국계 글로벌 투자사라고만 알려졌을 뿐 기업의 실체가 모호했다. 모기업의 지원 없이 야구단을 효율적으로 경영해 수익을 내겠다고 하니 신뢰도는 더 떨어졌다. 당시 프로야구의 현실을 생각하면 불가능에 가까운 계획이었다. ‘결국 선수를 팔아 수익을 남기고 종국엔 구단을 매각할 것이다’는 예상이 많았다. 이에 KBO는 ‘적어도 2년 이상은 구단을 운영할 수 있는 든든한 자금력을 갖춘 회사’로 히어로즈를 소개하며 ‘새로운 경영방식을 도입해 국내 프로야구 문화를 선도할 것’이라는 전망과 함께 창단을 승인한다.
KBO의 장밋빛 전망에 얼룩이 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08년 지금과 비슷한 사건이 일어났다. 히어로즈가 첫 번째 네이밍스폰서로 ‘우리담배’를 선택한 것. ‘아이들도 즐겨 보는 스포츠에 담배 회사의 이름이 붙어서는 안 된다’는 비난이 일었다. 결국 히어로즈 스스로 ‘우리담배’에서 ‘담배’라는 명칭을 뺀 ‘우리 히어로즈’라는 구단명을 사용하면서 유야무야 넘어갔다. 그러나 그때라도 ‘네이밍스폰서’와 관련한 규약을 제대로 가다듬었다면 지금의 논란은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히어로즈와 관련된 문제는 거기가 끝이 아니다. 야구계가 우려하던 ‘선수 장사’가 시작됐다. 2008년 11월 히어로즈는 소속 투수 장원삼을 삼성 라이온즈에 넘기는 대신 30억원을 받는 현금 트레이드를 추진했다. 히어로즈가 한국프로야구협회의 공식 회원이 된 이상, 현금 트레이드는 그들의 정당한 권리 행사였다. 그러나 여론이 좋지 않았다. 다른 구단과 대중의 눈치를 살피던 KBO는 트레이드 발표 일주일 만에 기자회견을 연다. 11월 21일 당시 신상우 KBO 총재가 직접 마이크를 잡았다. “히어로즈의 트레이드를 불허한다. 히어로즈는 창단 당시 약속했던 현금 트레이드 사전 승인 합의를 위배했다. 또 처음에 약속한 입회금 중 30억원도 미납했다.” 뒷맛이 개운치 않았다. 일단 ‘승인 불가’의 입장을 정하고 ‘이유’를 짜맞춘 느낌이 강했다.
바로 이듬해 결국 사단이 났다. 가입금을 완납한 히어로즈가 대규모 선수 장사에 나선 것이다. 히어로즈는 2009년 3명의 선수를 다른 구단에 보내고 55억원의 현금과 5명의 선수를 받는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뚜렷한 명분이 없었던 KBO는 결국 3건의 트레이드를 승인한다. 이후 새로운 공식입장을 내놓는다. “앞으로 더 이상 히어로즈의 현금 트레이드를 승인하지 않겠다.” 물론 이때도 제도나 규약을 근거로 한 명분은 없었다. 협박에 가까운 발언이었다. 히어로즈는 굴하지 않았다. 2010년 다시 3건의 트레이드를 진행했다. 한화와 진행한 1대1 트레이드에는 현금 3억원이 포함됐지만 KBO는 승인했다. 나머지 2건은 현금이 없는 선수간 트레이드로 진행됐다. 하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이는 없었다. 양쪽이 교환한 선수 간의 전력 균형이 맞지 않았다. ‘뒷돈이 오갔을 것’이라는 말이 무성했다. 심증은 있지만 증거가 없어 KBO는 다시 침묵했다.
현금 트레이드로 ‘선수 장사’ 논란
- 박성민 기자 park.sungmin1@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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