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으로 만나는 제임스 본드] 베일에 가린 본드의 실체 재조명

멘데스 감독은 관객이 본드 영화에서 기대하는 장면들을 보여주긴 하지만 상투적인 수법을 그대로 반복하진 않는다. [스펙터] 사전 홍보에서 그는 이전 작품인 [스카이폴]에서 자신이 시작한 본드 역사 탐험을 계속하겠다는 뜻을 넌지시 내비쳤다. 멘데스 감독은 이 과정에서 영국 작가 이언 플레밍의 원작 소설 12편에 나오는 주인공의 빈 부분을 채워 넣고자 했다. 소설의 제1편은 62년 전 출판됐으며 지금까지 이 시리즈는 총 1억부 이상 팔렸다. 하지만 [스펙터]를 보게 될 관객 대다수가 플레밍이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듯하다.
그들은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 차가운 마티니(본드의 트레이드마크)와 크레이그의 냉정한 시선, 제작자들이 심혈을 기울여 끼워 넣은 작품 속 광고에 빠져 있다 보면 2시간 반 동안 영화를 보고 나서도 본드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건 매우 제한적이다. 좀 더 큰 그림을 보려면 영화관에서 돌아오자마자 플레밍의 소설을 집어 들어라. 플레밍은 소설 속에서 본드의 됨됨이와 삶을 시시콜콜 늘어놓는 대신 대화와 사건 서술을 통해 묘사했다.
익숙하지만 상투적이지 않아

뒤이어 나온 소설들은 본드의 캐릭터와 역사에 흥미로운 사항들을 첨가한다. [여왕 폐하 대작전](1963)에서 본드의 결혼식 날 악당 에른스트 스타브로 블로펠드가 신부를 죽인다. 이렇게 해서 본드는 다시 외톨이가 된다. 끝에서 두 번째 소설 [두 번 산다](1964)에서 플레밍은 007이 스위스인 어머니와 스코틀랜드 출신의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11세에 고아가 됐다는 사실을 밝힌다. 이 이야기는 영화 [스카이폴] 후반부의 배경이 됐다. 멘데스 감독은 본드가 어린 시절 살던 스코틀랜드의 집을 배경으로 영화 종반을 이끌어 간다.
플레밍이 본드의 배경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지 않은 것은 의도적이었다. 1958년 4월 영국 신문 맨체스터 가디언이 본드의 세계가 ‘섹스와 폭력, 도덕적 붕괴’로 얼룩졌다고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을 때 플레밍은 그 신문에 이렇게 편지를 썼다. ‘본드의 실체가 베일에 싸여 있길 바랐다. 그의 주변에서 온갖 희한한 일들이 일어나지만 그는 중립적인 인물이다.’
플레밍은 인물의 현실감을 살리기 위해 본드에게 연극적인 소품을 갖춰줬다. 총과 담배, ‘얼음처럼 차가워질 때까지 잘 저은’ 다음 ‘얇고 넓적하게 썬 레몬 껍질 한 조각’을 곁들인 마티니 칵테일 등이다. 플레밍은 [카지노 로얄]에서 이 칵테일을 처음 소개했는데 몇 달 후 직접 마셔보고 나서 “입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레밍은 또 007에게 ‘단순하지만 값비싼 음식’을 허용했다(사실 전혀 단순하지 않다). 일례로 본드가 베스퍼와 처음 저녁 식사를 할 때 메뉴는 캐비어로 시작했다. 이어 아티초크 속잎을 곁들이고 베어네이즈 소스를 두른 투르느도(고급 소고기 스테이크의 일종)를 먹고 후식으로는 프랑스식 드레싱을 얹은 아보카도 반쪽이 나왔다. 이런 사치스런 음식은 전시 배급식량의 기억을 떨쳐내지 못한 당시 영국 독자들에게 동경의 대상이 됐다.
이 소설에는 음식 외에도 전후 영국에서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사치스런 요소가 많이 등장한다. 매력적인 여자들, 외국의 풍경, 본드가 그런 곳에 갈 때 이용하는 항공기, 도박·스키·스쿠버 다이빙 같은 돈 많이 드는 취미 등이다. 또 본드가 미 중앙정보국(CIA) 요원 펠릭스 라이터와의 관계에서 보여준 존중과 약간의 우월감이 뒤섞인 태도는 전후 탈 식민주의 시대의 영국이 여전히 미국과 동등한 파트너임을 암시했다. 이 모두가 1950년대와 60년대의 많은 독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시대 역행하는 성차별’ 비난도
또한 본드의 여자들과 동료, 적들을 포함한 조연 캐릭터들도 매우 실감나게 그려졌다. 이 인물들은 영화와 후속 소설에서 수없이 재해석됐다. 하지만 관심의 초점은 역시 본드다. 만약 [스펙터]가 [스카이폴]과 유사한 성공을 거둔다면 훌륭한 마케팅 덕분만은 아닐 것이다. 플레밍 소설의 중심을 이루는 이 수수께끼 같은 인물에 대해 우리가 더 알고 싶은 것이 아직도 많기 때문이다.
- 에드워드 플랫 뉴스위크 기자 / 번역=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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