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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약 생산지로 떠오른 레바논

마약 생산지로 떠오른 레바논

레바논 동부의 아름다운 고대도시 바알베크에는 요즘 소규모 마약 제조시설이 수두룩하다
근엄한 생활을 요구하는 자국에선 제대로 즐길 수 없는 부유한 아랍인은 레바논을 유흥지로 생각한다. 그러나 그처럼 세속적인 레바논도 지난 10월 26일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바논 당국이 압델 모센 빈 왈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29) 사우디 왕자를 체포했다. 사우디 수도 리야드행 전용기에 암페타민 2t을 싣고 가려한 혐의였다. 레바논 경찰은 베이루트 국제공항에서 다른 사우디 남자 4명도 구속했다. 그 공항 사상 최대 규모의 마약 적발 사건이었다.

사우디 왕자가 체포되면서 레바논의 악명 높은 마약밀매 네트워크와 그들이 중동의 정치적·종파적 경계선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는 사실에 이목이 집중됐다. 실제로 시리아 내전에 참가한 전투원, 전쟁에 지친 민간인, 걸프 국가들의 부유층 사이에서 마약이 갈수록 인기다. 그런 수요는 마약조직 두목과 민병대에 새로운 수익을 창출한다. 콜롬비아나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전쟁에서 그랬듯이 그들은 대부분 편의를 위한 동맹을 결성한다.

전문가의 분석에 따르면 레바논 경찰은 이웃 나라의 전쟁으로 마약 단속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들은 불안한 국경 지대를 감시하는 일만 해도 벅차다. 그곳을 넘나드는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은 시리아 내전에 개입한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동조적이다. 경찰과 군이 마약 생산지에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서 암페타민 밀거래가 기승을 부린다.

레바논의 대마초 생산업자들은 특히 지난 2년 동안 군경이 베카 계곡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면서 마리화나 공급이 넘쳐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고 말했다. 수익이 줄어들고 중동에서 암페타민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대마초 거래상의 암페타민 생산이 급증했다.

베카 계곡 동부에서 압수한 마약류를 소각하는 레바논 보안군.
근년 들어 레바논의 마을과 시리아와의 국경지대에서 임시 마약 제조시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이런 시설은 ‘캡타곤’ 모조품을 생산한다. 캡타곤은 널리 금지된 합성 암페타민 페네틸린의 상표명으로 흔히 최음제로 알려졌다. 레바논 경찰에 따르면 사우디 왕자의 비행기에서 캡타곤이 발견됐다.

베카 계곡의 마약상들은 주로 걸프 국가들의 고객을 상대한다고 말했다. 시리아와의 국경에서 멀지 않은 마을의 레바논 마약상 아부 후세인은 “사우디를 비롯한 그 지역 국가의 부자들이 캡타곤의 최대 고객”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그 약이 섹스에 효과적이라고 믿는다”며 그는 짓궂은 미소를 띠었다.

물론 캡타곤이 최음제라는 소문으로만 인기가 있는 건 아니다. 시리아 내전에 참여한 모든 파벌의 전투원은 전쟁터에서 장시간 기민성을 유지하기 위해 캡타곤을 복용한다. 모든 파벌의 선전매체는 적의 전투원 사망자와 포로에게서 캡타곤이 발견됐다고 주장한다.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와 시리아 정부군으로선 적이 그 약을 사용한다고 주장하면 자신들이 이교도 ‘테러리스트’에 맞서 싸운다는 명분에 힘이 실린다.

시리아 내전이 공급과 수요 둘 다를 창출했다. 2013년 시리아 정부군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가 반군이 장악했던 전략 요충지 쿠사이르를 빼앗긴 뒤 그 지역의 캡타곤 공급이 크게 늘었다. 쿠사이르는 캡타곤 생산·유통 중심지로서 레바논 시아파 마약밀매업자들의 은신처가 됐다. 마약상 아부 후세인에 따르면 그중 일부에겐 살인과 납치, 위폐 제작 등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됐다.

대다수 수니파인 주민 5만 명이 살던 쿠사이르는 시리아의 수도 다마스쿠스와 정부군의 지중해 해안 거점을 연결하는 전략적 통로에 놓여 있다. 지금 그곳은 헤즈볼라와 정부군 지지 민병대의 주둔지로 변했다.

지난 2년 동안 베카 계곡에선 마약류 공급이 넘쳐나 가격이 크게 떨어졌다
마약조직 두목과 군벌 사이의 경계선이 모호한 경우도 있다. 레바논의 가장 유명한 마약왕 노아 자이터는 지난 9월 반군 장악지역인 자바다니를 포위한 헤즈볼라 전투원들과 함께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다. 늘 카우보이 모자를 쓰는 자이터는 헤즈볼라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의 뜻에 따라 IS 격파를 서약했다.

레바논-시리아 국경의 양쪽 주민, 마약 조직과 민병대는 혈연 관계가 깊다. 따라서 마약과 무기, 전투원들이 거의 방해 받지 않고 양쪽을 오갈 수 있다. 마약의 대부분은 베카 계곡을 통과한다. 레바논 동부와 시리아의 국경을 따라 펼쳐진 좁고 비옥한 분지다. 이곳은 암페타민 모조품의 중동 중심지로 알려졌다. 양쪽으로 산맥을 낀 이 아름다운 분지는 오랫동안 마약 생산과 밀매로 유명했다. 현지에서 생산한 대마초와 라틴아메리카·서아프리카에서 밀반입한 코카인이 주 상품이다.

레바논에서 유엔 평화유지 담당 관리를 지냈고 현재 온라인 뉴스매체 알-모니토르에서 일하는 티무르 고크셀은 “베카 계곡은 중무장한 민병대가 지배하며 마약 거래를 일삼는 부족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그곳에선 경찰이 힘을 못 쓴다. 레바논 당국이 사실상 방치한 지역이다.”

레바논 군경은 지난 2월 베카 계곡의 범죄 활동을 철저히 단속하겠다고 천명했지만 9개월이 지난 지금 레바논 정치인들은 그 작전이 실패했다고 판단한다. 레바논 의회의 헤즈볼라 소속 의원은 지난 10월 당국의 베카 계곡 단속 계획을 “총체적인 실패”라고 선언했다. 헤즈볼라 반대파에 속하는 무함마드 마크누크 내무장관도 기자들에게 단속이 “말뿐인 약속”이었다고 개탄했다. 경찰 대변인은 새로운 계획을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베카 계곡은 30여 년 전 이란의 혁명수비대가 설립한 헤즈볼라의 탄생지로 그들의 뒷마당이자 훈련장이다. 베카 계곡의 타라야 마을 부근에서 높이 자란 넓은 대마밭에 서 있는 유일한 건물은 작은 이슬람 사원이다. 그 사원은 헤즈볼라 깃발과 종교적 구호가 적힌 검은 깃발을 휘날린다.

압델 모센 빈 왈리드 빈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사우디 왕자가 베이루트 공항에서 압수당한 마약
헤즈볼라와 이곳의 시아파 마약거래 부족은 서로 이익이 맞아 떨어진다. 최근 부족은 시리아에서 싸우는 헤즈볼라 대원에게 보급품을 운송하는 병참선 확보에 도움을 줬다. 헤즈볼라는 간헐적인 당국의 단속에서 부족 고위층에게 정치적 보호망을 제공한다.

이 지역의 잘 알려진 마약조직 두목 여럿은 캡타곤 거래로 시리아 내전을 지속시킨다는 지적을 강하게 부인했다. 마약의 도매가가 최저로 떨어졌고, 암시장에서 무기 가격이 치솟았으며, 외국에서 자금이 대량으로 유입되는 상황에서 마약을 아무리 많이 팔아봤자 그 수익이 시리아 내전에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마약상 아부 하산과 그의 가족은 수십 년 동안 이곳에서 대마를 재배·판매하고 코카인을 유통하면서 재산을 모았다. 그에 따르면 캡타곤은 생산이 쉽고 비용이 적게 들어 걸프 국가 부유층의 수요가 늘어나면서 수년 전부터 사업이 급성장했다. 중국제 알약 생산기계는 1대에 700∼2000달러면 구입할 수 있고, 사용되는 화학약품도 터키에서 밀수 경로를 통해 쉽고 싸고 구할 수 있다.

캡타곤은 중동에서 가장 싼 마약에 속한다. 레바논 동부의 로마 시대 고대도시로 사실상 무법지대인 바알베크에는 소규모 마약 제조시설이 수두룩하다. 그곳에선 캡타곤 1알이 1∼2달러에 팔린다. 그러나 베이루트에선 1알의 평균 가격이 10달러다.

몇몇 레바논 코카인 밀매상은 가끔 캡타곤을 섞어 판다고 인정했다. 유엔 마약범죄사무소(UNODC)는 사우디인에게 인기 있는 마약이 암페타민이며 주로 캡타곤 형태로 사용된다고 밝혔다. UNODC에 따르면 2009년 세계에서 압수된 암페타민 중 약 40%는 중동산이었다. 그중 절반 이상이 마약 사범에게 최고 사형까지 선고하는 사우디에서 압수됐다.

베카 계곡 출신으로 IT 전문가인 마르완(31, 성은 밝히지 않았다)은 캡타곤을 수시로 사용한다고 말했다. “형편없는 마약이지만 가격이 아주 싸다. 코카인은 특별한 경우에만 사용한다.”

사우디 왕자의 체포로 이 지역의 마약 밀수가 주목을 끌지만 마약상 아부 후세인은 생산업자와 거래자에 대한 단속은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군은 단속을 발표만 하고 경찰은 좀처럼 나서려 하지 않는다. 늘 그런 식이다. 우리 친척 몇 명이 매년 체포되지만 기소 없이 금방 풀려난다. 레바논엔 공권력이 없다.”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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