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야심적인 외교 게임
푸틴의 야심적인 외교 게임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떠나거나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하지만 러시아는 그를 내쫓고 무정부 상태가 되는 걸 용납할 수 없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1·13 파리 테러를 두고 SNS에 이런 글을 올렸다. “테러리스트를 용서할지 말지는 신이 결정하겠지만 그들을 신에게 보낼지 말지는 내가 결정한다.” 터프한 어법으로 잘 알려진 푸틴다운 표현이다. 실제 그의 행동도 터프했다. 러시아 공군은 시리아의 수니파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거점 공습을 강화했다. 하루 120회 이상 출격하며 Tu-95 전략폭격기까지 동원해 IS의 돈줄인 밀수 석유를 운반하는 트럭 500대 이상과 훈련시설을 파괴했다. 더구나 사상 최초로 러시아가 프랑스·미국과 공습을 조율했다.
2개월에 걸친 논의에도 공동의 적인 IS에 맞서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의 옛 동맹국들을 단합시키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IS가 파리를 공격하고 이집트에서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키자 연합전선이 곧바로 구축됐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군사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한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이 “형세를 바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러시아와 서방의 ‘정보 교환 강화’를 높이 사며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과 반군(IS 제외) 사이의 휴전이 ‘앞으로 3∼5주 안에’ 성사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준비가 돼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의 정치 과정을 신속히 되살릴수록 폭력사태가 빨리 줄어들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던 푸틴 대통령이 순식간에 중동의 필수적인 파워 브로커로 등장했다. 일부 서방 국가가 IS 격파라는 목적을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그가 저지른 죄를 덮어두려는 듯한 태도도 그런 부상을 가속화했다.
러시아의 개입은 3가지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첫째, 사면초가에 처했던 시리아 정부군과 아사드 정권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둘째, 외교 전선에서 러시아의 전면적인 압박으로 평화 정착 계획의 초안이 마련됐다. 모든 ‘온건’ 반군 단체들이 교전을 중단하고 IS를 격파한 뒤 총선을 치른다는 계획이다(물론 지금까진 아사드 정권만 그 안을 지지하며 미국은 시라아의 쿠르드족을 비롯한 일부 반군 단체에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IS가 러시아 여객기를 폭파해 224명이 숨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의 혼돈 상황에서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낼까? 또 러시아의 입장에선 승리가 어떤 것일까?
러시아의 중동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외교관은 “붕괴가 임박한 아사드 정권을 살리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의 ‘긴급한’ 모스크바 방문이 러시아 개입의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시리아 정부군이 와해 직전이며 자유시리아군과 연계한 반군 단체가 곧 정부를 접수할 기세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수도 다마스쿠스와 홈스·하마를 거처 시리아 북부를 연결하는 M5 간선도로 주변으로 퇴각한 상황이었다. 그곳을 빼앗기면 아사드 대통령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해안 지역이 다마스쿠스로부터 차단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시리아 동북부의 반군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습으로 전선이 안정됐다(미국에 따르면 공습의 85∼90%는 IS가 아니라 ‘온건’ 반군단체를 표적으로 했다). 11월 중순이 되자 러시아 공군의 폭격기와 시리아군이 조종한 러시아제 Mi-24 하인드 공격용 헬기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알레포주의 크웨이리스 공군기지를 둘러싼 IS의 2년에 걸친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의 전략은 공세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자문역을 지낸 시리아 전문가 조슈아 랜디스는 “알레포 탈환이 목표”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이 그럴 듯한 국가의 모양을 갖출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영토의 탈환을 도우려 한다. 주요 항구도시인 알레포와 이드리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시리아 지도부는 3개월 안에 알레포를 탈환하고 1년 안에 시리아 서북부를 통합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다수 관측통은 전투에 지친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 공군력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더라도 그처럼 넓은 지역을 단시일에 탈환하긴 어렵다고 본다. 정부군은 알레포의 인구 밀집 구역에 원시적이지만 위력이 대단한 통폭탄을 떨어뜨렸고 2012년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린 신경가스를 사용하는 등 필사적으로 나섰지만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면서 전력을 소진했다.또 수니파가 대다수인 그 지역의 반군 지지자들이 러시아에 맞서 지원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모스크바의 군사 분석가 파벨 펠겐하우어는 “점진적인 전투의 격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군이 약진하면 반군은 터키와 카타르 공군의 직접 개입 같은 형태로 지원 받을 것이다. 또 사우디가 미국에서 구입한 스팅어·어벤저 미사일 같은 정교한 대공 무기도 지원받을 수 있다.”
랜디스는 “러시아로선 아사드 정권의 공세를 지원하는 전략으로 카타르와 사우디, 터키가 반군의 무장을 돕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아사드 대통령만이 시리아의 안정을 되찾고 난민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서방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러시아의 계획을 둘러싼 외교적 논의에서 표면상의 핵심은 시리아 총선 준비에 필요한 최소 18개월 동안 아사드 대통령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러시아의 주장이다. 지난 10월 아사드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은 4년만의 첫 해외 나들이였다. 그가 러시아 군용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푸틴 대통령이 그를 개인적으로 강력히 지지한다는 뜻으로 비쳤다.
그러나 러시아에 진정 중요한 것은 시리아의 국가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가 건설하고 소수파인 이슬람 알라위파의 지배를 바탕으로 한 45년 정권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아사드 대통령이 떠나거나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통치자가 될지는 시리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사드를 내쫓고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러시아는 시리아가 제2의 이라크나 리비아가 되는 걸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에만 제거 대상인 건 아니다.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29일 시리아 위기 해결을 위한 오스트리아 빈의 관계국 회담에서 “미국을 비롯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터키,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수십 개국이 아사드 대통령을 시리아 평화 정착의 장애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위 미국 정책 전문가들도 러시아의 판단이 옳을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사드 축출은 즉시 시리아의 붕괴와 대학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랜디스는 “아사드를 축출하면 알라위파의 지배권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서방은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 붕괴 없이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현지 실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라크에서 봤듯이 정권을 무너뜨리면 국가도 무너진다. 시리아는 종파 정권이다. 군과 경찰 등 주요 기관은 위부터 아래까지 알라위파 아사드 지지자로 구성됐다. 수니파 인사를 수장으로 앉히면 그 아래 전원을 파면해야 한다. 보복이 아니라 그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2013년 누스라 전선(알카에다 지부) 같은 이슬람주의 극단주의 단체의 존재가 전투에서 주요 요인으로 부상했을 때 일부 미국 관리는 아사드 축출이라는 미국의 공식 입장이 과연 현명한지 회의를 품었다. 미국 연방의회의 한 고위 간부는 “아사드 축출과 대체 인물에 관한 우려가 크다는 외교 전문을 봤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 시리아 주재 미국 대사 로버트 포드는 정부의 시리아 정책에 항의하며 사임했다.
동시에 러시아도 장기적으로 아사드보다 온건한 인물이 화해 과정을 더 잘 이끌 수 있다고 인정한다. 시리아 반정부세력 연합체 시리아국민연합(SNC)의 칼레드 코자 대표는 빈 회의 참가 직전 지지자들에게 “이란과 러시아는 다르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가 대통령으로 머물든 축출되든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 반면 이란은 철저히 아사드 대통령 편이다. 다른 누구도 그처럼 이란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아사드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을 찾는 일이다. 러시아와 미국은 지난 수 년 동안 그럴 듯한 인물을 물색했다. 포드 전 대사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에서 가장 유능한 야전 사령관으로 평가 받는 수헤일 하산 대령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알 니므르(아랍어로 호랑이라는 뜻)로 불리는 그는 IS의 크웨이리스 공군기지 포위망을 푸는 공훈을 세웠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시리아 정계와 군 양쪽에서 괜찮은 인물 여러 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우린 시리아와 수십 년 간 교류했다.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은 소련에서 미그 전투기 조종술을 배웠다. 고위 장교들도 우리와 함께 훈련했다. 우린 그들을 잘 안다.”
그러나 미국의 시리아 전문가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랜디스는 “러시아가 미국보다 시리아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친했던 고위 장교는 오래 전에 숙청되고 없다.”
랜디스는 내전 발발 전 어느 시리아군 준장과의 대화를 돌이켰다. “누군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을 묻자 그는 ‘군 최고위 인사 12명 전부 자신이 아사드보다 나라를 더 잘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유지할 순 없다’고 대답했다. 아사드의 축출은 알라위파의 허약함으로 비친다. 지역의 매파들이 알라위파 인프라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다.”
시리아를 지배하는 알라위파의 ‘포식자 정치 문화’는 지난 4년의 내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기지 4곳을 빼앗기고 타브카 공군기지에서 병력 250명이 사살되자 알라위파는 홈스의 거리로 뛰쳐나가 주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위기에 직면한 아사드 대통령은 사촌인 하페즈 마클루프를 안보국 간부직에서 파면했다. 마클루프와 동생 이하브는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로 피신했다. 지난 4월 아사드 대통령은 다른 조카인 문터 아사드를 국가전복 음모로 체포했다. 그 직후 알리 맘루크 정보국장은 아사드의 망명한 삼촌과 짜고 정부전복 음모를 꾸민 혐의로 가택연금됐다. 5월 이래 시리아 정부군 기갑사단장 등 여러 장성이 체포됐다.
그들이 제거된 원인이 전투 패배인지 정치적 범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랜디스는 평화적 선거로 시리아 지도자를 교체한다는 러시아의 발상은 헛된 꿈이라고 말했다. “알라위파가 민주적 절차를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사드가 없으면 알라위파의 고위 간부들이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이 유일한 대안이라면 그게 무슨 뜻일까? 최근 그를 만난 외교관과 언론인들은 아사드가 심하게 자기부정을 한다고 지적했다. 유엔의 시리아 담당 특사를 지낸 라크다르 브라히미는 “아사드 대통령과 측근들은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며 “그들은 외부 침략으로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2월 영국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와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의무를 수행한다”며 내전을 “외부 테러리스트들의 침공” 탓으로 돌렸다. 또 그는 통폭탄 사용도 부인했다. 포드 전 대사는 그가 품위 있고 상냥하며 거만하지 않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유창한 영어로 농담도 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의 인권침해를 따지자 그는 곧바로 화냈다. 지난 1월 아사드 대통령을 인터뷰한 외교 잡지 포린어페어스의 조나선 테퍼먼 편집장은 “시리아 대통령은 아주 뛰어난 거짓말쟁이(소시오패스에 불과하다는 뜻)거나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결론 내렸다. “후자의 경우 편집증적 사이코패스처럼 훨씬 위험하다.”
한편 러시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관리들은 지난 10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사드 대통령을 보고 때 “침착하고 명료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인들로부터 온건 반군단체와 권력을 나눠 IS와 싸우는 ‘대테러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양보의 뜻을 밝혔다.
그 이래 러시아 공군이 시리아 반군을 공습하는 동안에도 러시아 요원들은 반군들과 접촉했다. 자유시리아군의 간부 무스타파 세이자리는 지난 10월 말 러시아가 자신을 포함해 여러 간부를 회담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무기를 내려 놓고 선거에 참여할 반군 지도자를 찾은 것이 회담의 목표였다. 협상을 거부하면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따랐다. 2000년대 초 체첸에서도 러시아의 그런 전략이 먹혀 들었다.
러시아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는 SNC 대표를 지낸 3명과 현 코자 대표를 포함해 반군단체에서 협조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38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프랑스로 망명한 마나프 틀라스 장군이 제시한 11개 ‘국가 프로젝트’(휴전과 IS 협동 공격 계획 등)도 지지했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아사드 정권의 최대 적대국과 자주 접촉했다는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로 돌아간 직후 걸프 국가와 요르단의 주요 수니파 지도자들과 대화했다. 또 최근 사우디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푸틴 대통령이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수니파 국가에 자신이 정직한 중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특히 그는 사우디 측에 이란과 러시아의 우호관계가 새로운 지역 동맹이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키려 애썼다. 지난 11월 23일 푸틴 대통령이 테헤란을 방문했지만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불신은 상당히 깊다. 11월 초 무함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러시아가 우리처럼 아사드 정권의 보전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의 생각이 옳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뛰어 넘는 외교 게임에 몰두한다. 혁명을 추구하는 이란이나 중동에서 거의 불가능한 정권 교체를 추진하는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현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특히 시리아에서 자국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보존하고 마지막 중동 동맹국인 시리아의 붕괴를 막으려 한다.
터키·사우디·요르단·카타르는 아사드 정권이 사라지고 시리아에서 이란이 물러나기를 원하지만 러시아는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리아에서 이란보다 러시아가 지배적인 외세로 부상하고 아사드 대통령은 실권 없는 의전 수반으로 남는 시나리오가 그 예다. 러시아는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동맹국이 그런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물론 사우디는 아직도 아사드 정권의 잔류에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나 뉴욕대학의 국제문제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 교수는 “현대전이 사전 계획된 공습 등 하이테크 추리극처럼 시작은 아주 멋지고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전쟁은 지저분해진다. 예측 불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세력이 필사적인 항전을 벌인다. 러시아도 머지않아 시리아 개입의 주도권을 잃고 수렁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시리아의 수많은 분파가 장기적인 내전의 여파로 평화 과정의 핵심인 상호이해와 용서를 수용하기 힘들다. 랜디스는 “시리아엔 민병대가 1500개나 되며 그들 모두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펠겐하우어 분석가는 “대다수 시리아인이 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며 소수파가 외세를 등에 업은 민병대의 탄압을 받는다는 게 러시아 지도부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민병대를 공습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완전 착각이다. 중동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렇게 믿는 데는 오랜 배경이 있다. 1985년 9월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소련 외교관 4명이 복면 괴한들에게 납치됐을 때 소련은 협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납치범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 헤즈볼라 소속이었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베이루트 지부장 유리 페르필례프 대령은 레바논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 아야톨라 무함마드 파들랄라에게 즉시 연락했다. 그는 소련 핵미사일이 테헤란이나 쿰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협박했다. 페르필례프 대령은 2001년 러시아 TV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강대국의 인내심이 바닥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련은 예측 불가한 결과를 초래할 중대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곧 KGB의 정예 알파부대 팀이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그들은 납치범 두목의 친척을 찾아내 그를 거세하고 사살한 뒤 시신을 난도질해 헤즈볼라 본부에 보냈다. 다른 친척이 다음 차례라는 경고였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납치범들이 잘못 짚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상대는 친절한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KGB는 헤즈볼라보다 훨씬 잔혹했다.”
그 얼마 전 헤즈볼라는 납치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이루트 지부장 윌리엄 프랜시스 버클리를 살해했다. 5개월에 걸친 협상도 소용없었다. 이제 소련도 똑같은 악몽에 직면한 듯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KGB 알파부대 팀의 작전 이틀 뒤 생존한 소련인 외교관 인질 3명이 풀려났다. 그 이래 중동에서 납치된 러시아인은 없다.
KGB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가 미국보다 한 수 위이며 중동 정치를 다루는 수완이 뛰어나다고 확신한다. 당시 이스라엘 신문 예루살렘포스트의 외교 담당 특파원이었던 역사가 베니 모리스는 “베이루트 사건이 소련의 특성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행동한다. 헤즈볼라가 겁먹을 정도였다.”
그처럼 초강력 폭력수단과 냉철한 프로페셔널리즘에다 대수롭지 않게 핵위협을 가하는 방법이 요즘 러시아의 중동 정책 담당자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만하다. 그러나 시리아를 위한 푸틴 대통령의 계획은 가식적인 것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그가 말했듯이 논리는 명확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정권 교체를 추구하다가 실패하면서 국가기관이 붕괴됐고 권력 공백이 생겼으며, 그 공백을 즉시 극단주의자와 테러리스트들이 메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개입은 “시리아 국가의 기능을 보존함으로써” 사담 후세인(이라크)과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의 몰락에 따른 것과 같은 무정부 상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휴전 계획에 따르면 이란부터 미국, 사우디까지 모든 관련국이 기대치를 수정해야 한다. 또 서방은 무자비한 독재자를 적어도 한동안 그대로 두는 게 IS의 지속적인 존재를 견디기보다 더 낫다는 아사드 대통령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도 굴욕적이다. 그러나 IS의 야심이 모스크바와 파리까지 넘보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계획이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 OWEN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 With JONATHAN BRODER in Washington.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2개월에 걸친 논의에도 공동의 적인 IS에 맞서기 위해 제2차 세계대전의 옛 동맹국들을 단합시키려는 노력이 결실을 맺지 못했다. 하지만 IS가 파리를 공격하고 이집트에서 러시아 여객기를 추락시키자 연합전선이 곧바로 구축됐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도 군사력과 외교력을 총동원한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이 “형세를 바꿀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인정했다. 그는 러시아와 서방의 ‘정보 교환 강화’를 높이 사며 바샤르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의 정부군과 반군(IS 제외) 사이의 휴전이 ‘앞으로 3∼5주 안에’ 성사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란과 러시아는 준비가 돼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러시아와 이란이 시리아의 정치 과정을 신속히 되살릴수록 폭력사태가 빨리 줄어들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따돌림당하던 푸틴 대통령이 순식간에 중동의 필수적인 파워 브로커로 등장했다. 일부 서방 국가가 IS 격파라는 목적을 위해 우크라이나에서 그가 저지른 죄를 덮어두려는 듯한 태도도 그런 부상을 가속화했다.
러시아의 개입은 3가지 극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첫째, 사면초가에 처했던 시리아 정부군과 아사드 정권의 사기를 진작시켰다. 둘째, 외교 전선에서 러시아의 전면적인 압박으로 평화 정착 계획의 초안이 마련됐다. 모든 ‘온건’ 반군 단체들이 교전을 중단하고 IS를 격파한 뒤 총선을 치른다는 계획이다(물론 지금까진 아사드 정권만 그 안을 지지하며 미국은 시라아의 쿠르드족을 비롯한 일부 반군 단체에 군사적 지원을 강화하고 있다). 셋째, 러시아의 시리아 개입에 대한 보복으로 IS가 러시아 여객기를 폭파해 224명이 숨졌다.
그러나 러시아는 현재의 혼돈 상황에서 어떻게 승리를 이끌어낼까? 또 러시아의 입장에선 승리가 어떤 것일까?
러시아의 중동 정책을 담당하는 고위 외교관은 “붕괴가 임박한 아사드 정권을 살리는 게 가장 시급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난 8월 이란 혁명수비대 고위 간부의 ‘긴급한’ 모스크바 방문이 러시아 개입의 결정적인 계기였다고 설명했다. 또 시리아 정부군이 와해 직전이며 자유시리아군과 연계한 반군 단체가 곧 정부를 접수할 기세라고 러시아에 경고했다.
당시 시리아 정부군은 수도 다마스쿠스와 홈스·하마를 거처 시리아 북부를 연결하는 M5 간선도로 주변으로 퇴각한 상황이었다. 그곳을 빼앗기면 아사드 대통령의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해안 지역이 다마스쿠스로부터 차단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 9월 시리아 동북부의 반군을 겨냥한 러시아의 공습으로 전선이 안정됐다(미국에 따르면 공습의 85∼90%는 IS가 아니라 ‘온건’ 반군단체를 표적으로 했다). 11월 중순이 되자 러시아 공군의 폭격기와 시리아군이 조종한 러시아제 Mi-24 하인드 공격용 헬기의 지원을 받은 정부군이 알레포주의 크웨이리스 공군기지를 둘러싼 IS의 2년에 걸친 포위망을 뚫을 수 있었다.
러시아와 시리아 정부군의 전략은 공세를 계속 밀어붙이는 것이다. 미국 정부의 자문역을 지낸 시리아 전문가 조슈아 랜디스는 “알레포 탈환이 목표”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권이 그럴 듯한 국가의 모양을 갖출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영토의 탈환을 도우려 한다. 주요 항구도시인 알레포와 이드리브가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 시리아 지도부는 3개월 안에 알레포를 탈환하고 1년 안에 시리아 서북부를 통합할 계획이다.”
그러나 대다수 관측통은 전투에 지친 시리아 정부군이 러시아 공군력와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을 받더라도 그처럼 넓은 지역을 단시일에 탈환하긴 어렵다고 본다. 정부군은 알레포의 인구 밀집 구역에 원시적이지만 위력이 대단한 통폭탄을 떨어뜨렸고 2012년엔 민간인을 대상으로 사린 신경가스를 사용하는 등 필사적으로 나섰지만 군사적 대치가 계속되면서 전력을 소진했다.또 수니파가 대다수인 그 지역의 반군 지지자들이 러시아에 맞서 지원을 강화할 가능성도 있다. 모스크바의 군사 분석가 파벨 펠겐하우어는 “점진적인 전투의 격화가 예상된다”고 말했다. “정부군이 약진하면 반군은 터키와 카타르 공군의 직접 개입 같은 형태로 지원 받을 것이다. 또 사우디가 미국에서 구입한 스팅어·어벤저 미사일 같은 정교한 대공 무기도 지원받을 수 있다.”
랜디스는 “러시아로선 아사드 정권의 공세를 지원하는 전략으로 카타르와 사우디, 터키가 반군의 무장을 돕지 않도록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러시아는 아사드 대통령만이 시리아의 안정을 되찾고 난민의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서방을 설득해야 한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러시아의 계획을 둘러싼 외교적 논의에서 표면상의 핵심은 시리아 총선 준비에 필요한 최소 18개월 동안 아사드 대통령이 계속 남아 있어야 한다는 러시아의 주장이다. 지난 10월 아사드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은 4년만의 첫 해외 나들이였다. 그가 러시아 군용기를 타고 모스크바에 도착했다는 사실은 푸틴 대통령이 그를 개인적으로 강력히 지지한다는 뜻으로 비쳤다.
그러나 러시아에 진정 중요한 것은 시리아의 국가 형태가 그대로 유지되는 것이다. 아사드 대통령의 부친 하페즈가 건설하고 소수파인 이슬람 알라위파의 지배를 바탕으로 한 45년 정권을 보존한다는 뜻이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아사드 대통령이 떠나거나 머물러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통치자가 될지는 시리아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아사드를 내쫓고 무정부 상태가 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러시아는 시리아가 제2의 이라크나 리비아가 되는 걸 두고 보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 반군에만 제거 대상인 건 아니다. 케리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29일 시리아 위기 해결을 위한 오스트리아 빈의 관계국 회담에서 “미국을 비롯해 사우디, 아랍에미리트, 터키, 카타르, 요르단, 이집트,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수십 개국이 아사드 대통령을 시리아 평화 정착의 장애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고위 미국 정책 전문가들도 러시아의 판단이 옳을지 모른다는 점을 우려한다. 아사드 축출은 즉시 시리아의 붕괴와 대학살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랜디스는 “아사드를 축출하면 알라위파의 지배권이 무너진다”고 설명했다. “서방은 지난 10여 년 동안 국가 붕괴 없이 정권 교체가 가능하다고 믿었지만 현지 실정은 절대 그렇지 않다. 이라크에서 봤듯이 정권을 무너뜨리면 국가도 무너진다. 시리아는 종파 정권이다. 군과 경찰 등 주요 기관은 위부터 아래까지 알라위파 아사드 지지자로 구성됐다. 수니파 인사를 수장으로 앉히면 그 아래 전원을 파면해야 한다. 보복이 아니라 그들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사드 아니면 누굴 내세워야 하나
동시에 러시아도 장기적으로 아사드보다 온건한 인물이 화해 과정을 더 잘 이끌 수 있다고 인정한다. 시리아 반정부세력 연합체 시리아국민연합(SNC)의 칼레드 코자 대표는 빈 회의 참가 직전 지지자들에게 “이란과 러시아는 다르다”고 말했다. “러시아는 아사드가 대통령으로 머물든 축출되든 시리아에서 영향력을 강화하려 한다. 반면 이란은 철저히 아사드 대통령 편이다. 다른 누구도 그처럼 이란에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직면한 문제는 아사드 대통령을 대체할 인물을 찾는 일이다. 러시아와 미국은 지난 수 년 동안 그럴 듯한 인물을 물색했다. 포드 전 대사에 따르면 시리아 정부군에서 가장 유능한 야전 사령관으로 평가 받는 수헤일 하산 대령이 가장 유력한 후보다. 알 니므르(아랍어로 호랑이라는 뜻)로 불리는 그는 IS의 크웨이리스 공군기지 포위망을 푸는 공훈을 세웠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시리아 정계와 군 양쪽에서 괜찮은 인물 여러 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우린 시리아와 수십 년 간 교류했다. 하페즈 아사드 전 대통령은 소련에서 미그 전투기 조종술을 배웠다. 고위 장교들도 우리와 함께 훈련했다. 우린 그들을 잘 안다.”
그러나 미국의 시리아 전문가들은 그런 말을 믿지 않는다. 랜디스는 “러시아가 미국보다 시리아를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친했던 고위 장교는 오래 전에 숙청되고 없다.”
랜디스는 내전 발발 전 어느 시리아군 준장과의 대화를 돌이켰다. “누군가 권력을 잡을 가능성을 묻자 그는 ‘군 최고위 인사 12명 전부 자신이 아사드보다 나라를 더 잘 통치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들이 권력을 유지할 순 없다’고 대답했다. 아사드의 축출은 알라위파의 허약함으로 비친다. 지역의 매파들이 알라위파 인프라를 완전히 무너뜨릴 것이다.”
시리아를 지배하는 알라위파의 ‘포식자 정치 문화’는 지난 4년의 내전에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지난해 9월 시리아 정부군이 군사기지 4곳을 빼앗기고 타브카 공군기지에서 병력 250명이 사살되자 알라위파는 홈스의 거리로 뛰쳐나가 주지사의 사퇴를 요구했다. 위기에 직면한 아사드 대통령은 사촌인 하페즈 마클루프를 안보국 간부직에서 파면했다. 마클루프와 동생 이하브는 가족과 함께 벨라루스로 피신했다. 지난 4월 아사드 대통령은 다른 조카인 문터 아사드를 국가전복 음모로 체포했다. 그 직후 알리 맘루크 정보국장은 아사드의 망명한 삼촌과 짜고 정부전복 음모를 꾸민 혐의로 가택연금됐다. 5월 이래 시리아 정부군 기갑사단장 등 여러 장성이 체포됐다.
그들이 제거된 원인이 전투 패배인지 정치적 범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아무튼 랜디스는 평화적 선거로 시리아 지도자를 교체한다는 러시아의 발상은 헛된 꿈이라고 말했다. “알라위파가 민주적 절차를 실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들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아사드가 없으면 알라위파의 고위 간부들이 서로 피 튀기는 싸움을 벌일 것이다.”
소시오패스인가 사이코패스인가
아사드 대통령은 지난 2월 영국 BBC 방송과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와 국가기관은 국민을 위해 의무를 수행한다”며 내전을 “외부 테러리스트들의 침공” 탓으로 돌렸다. 또 그는 통폭탄 사용도 부인했다. 포드 전 대사는 그가 품위 있고 상냥하며 거만하지 않고 유머 감각이 있으며 유창한 영어로 농담도 잘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시리아 정부의 인권침해를 따지자 그는 곧바로 화냈다. 지난 1월 아사드 대통령을 인터뷰한 외교 잡지 포린어페어스의 조나선 테퍼먼 편집장은 “시리아 대통령은 아주 뛰어난 거짓말쟁이(소시오패스에 불과하다는 뜻)거나 자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고 믿는 사람이거나 둘 중 하나”라고 결론 내렸다. “후자의 경우 편집증적 사이코패스처럼 훨씬 위험하다.”
한편 러시아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 관리들은 지난 10월 모스크바를 방문한 아사드 대통령을 보고 때 “침착하고 명료했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인들로부터 온건 반군단체와 권력을 나눠 IS와 싸우는 ‘대테러 연합전선’을 형성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정도 양보의 뜻을 밝혔다.
그 이래 러시아 공군이 시리아 반군을 공습하는 동안에도 러시아 요원들은 반군들과 접촉했다. 자유시리아군의 간부 무스타파 세이자리는 지난 10월 말 러시아가 자신을 포함해 여러 간부를 회담에 초청했다고 밝혔다. 무기를 내려 놓고 선거에 참여할 반군 지도자를 찾은 것이 회담의 목표였다. 협상을 거부하면 러시아의 무자비한 공습을 받을 것이라는 경고도 따랐다. 2000년대 초 체첸에서도 러시아의 그런 전략이 먹혀 들었다.
러시아의 외교 소식통에 따르면 러시아는 SNC 대표를 지낸 3명과 현 코자 대표를 포함해 반군단체에서 협조할 수 있다고 판단되는 38명의 명단을 작성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프랑스로 망명한 마나프 틀라스 장군이 제시한 11개 ‘국가 프로젝트’(휴전과 IS 협동 공격 계획 등)도 지지했다.
더 중요한 점은 러시아가 중동 지역에서 아사드 정권의 최대 적대국과 자주 접촉했다는 사실이다. 푸틴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이 시리아로 돌아간 직후 걸프 국가와 요르단의 주요 수니파 지도자들과 대화했다. 또 최근 사우디의 외무장관과 국방장관을 모스크바로 초청했다. 푸틴 대통령이 무시할 수 없는 막강한 수니파 국가에 자신이 정직한 중재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는 뜻이다.
특히 그는 사우디 측에 이란과 러시아의 우호관계가 새로운 지역 동맹이 아니라는 점을 납득시키려 애썼다. 지난 11월 23일 푸틴 대통령이 테헤란을 방문했지만 러시아와 이란 사이의 불신은 상당히 깊다. 11월 초 무함마드 알리 자파리 이란 혁명수비대 총사령관은 “러시아가 우리처럼 아사드 정권의 보전에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며 불만을 표했다.
그의 생각이 옳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뛰어 넘는 외교 게임에 몰두한다. 혁명을 추구하는 이란이나 중동에서 거의 불가능한 정권 교체를 추진하는 미국과 달리 러시아는 현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 특히 시리아에서 자국의 경제적·안보적 이익을 보존하고 마지막 중동 동맹국인 시리아의 붕괴를 막으려 한다.
터키·사우디·요르단·카타르는 아사드 정권이 사라지고 시리아에서 이란이 물러나기를 원하지만 러시아는 타협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시리아에서 이란보다 러시아가 지배적인 외세로 부상하고 아사드 대통령은 실권 없는 의전 수반으로 남는 시나리오가 그 예다. 러시아는 사우디를 비롯한 수니파 동맹국이 그런 타협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믿는다(물론 사우디는 아직도 아사드 정권의 잔류에 완강히 반대한다).
그러나 뉴욕대학의 국제문제 전문가 마크 갈레오티 교수는 “현대전이 사전 계획된 공습 등 하이테크 추리극처럼 시작은 아주 멋지고 쉽다”고 말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전쟁은 지저분해진다. 예측 불가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저항세력이 필사적인 항전을 벌인다. 러시아도 머지않아 시리아 개입의 주도권을 잃고 수렁에 빠질 수 있다.”
특히 시리아의 수많은 분파가 장기적인 내전의 여파로 평화 과정의 핵심인 상호이해와 용서를 수용하기 힘들다. 랜디스는 “시리아엔 민병대가 1500개나 되며 그들 모두 권력을 잡으려 한다”고 말했다.
펠겐하우어 분석가는 “대다수 시리아인이 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며 소수파가 외세를 등에 업은 민병대의 탄압을 받는다는 게 러시아 지도부의 믿음”이라고 말했다. “러시아는 민병대를 공습하면 승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완전 착각이다. 중동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처사다.”
그러나 러시아가 그렇게 믿는 데는 오랜 배경이 있다. 1985년 9월 30일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소련 외교관 4명이 복면 괴한들에게 납치됐을 때 소련은 협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납치범들은 이란의 지원을 받는 무장단체 헤즈볼라 소속이었다.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베이루트 지부장 유리 페르필례프 대령은 레바논 시아파의 정신적 지도자 아야톨라 무함마드 파들랄라에게 즉시 연락했다. 그는 소련 핵미사일이 테헤란이나 쿰에 떨어지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며 협박했다. 페르필례프 대령은 2001년 러시아 TV에서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강대국의 인내심이 바닥날 수 있다”고 말했다. “소련은 예측 불가한 결과를 초래할 중대한 행동을 취할 수 있다.”
곧 KGB의 정예 알파부대 팀이 베이루트에 도착했다. 그들은 납치범 두목의 친척을 찾아내 그를 거세하고 사살한 뒤 시신을 난도질해 헤즈볼라 본부에 보냈다. 다른 친척이 다음 차례라는 경고였다. 러시아 외교 소식통은 “납치범들이 잘못 짚었다”고 설명했다. “그들의 상대는 친절한 미국이 아니라 소련이었다. KGB는 헤즈볼라보다 훨씬 잔혹했다.”
그 얼마 전 헤즈볼라는 납치한 미국 중앙정보국(CIA) 베이루트 지부장 윌리엄 프랜시스 버클리를 살해했다. 5개월에 걸친 협상도 소용없었다. 이제 소련도 똑같은 악몽에 직면한 듯했다. 그러나 전혀 그렇지 않았다. KGB 알파부대 팀의 작전 이틀 뒤 생존한 소련인 외교관 인질 3명이 풀려났다. 그 이래 중동에서 납치된 러시아인은 없다.
KGB에서 그런 이야기를 자주 들었던 푸틴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를 상대하는 문제에 관한 한 러시아가 미국보다 한 수 위이며 중동 정치를 다루는 수완이 뛰어나다고 확신한다. 당시 이스라엘 신문 예루살렘포스트의 외교 담당 특파원이었던 역사가 베니 모리스는 “베이루트 사건이 소련의 특성을 잘 보여줬다”고 말했다. “그들은 말하지 않고 행동한다. 헤즈볼라가 겁먹을 정도였다.”
그처럼 초강력 폭력수단과 냉철한 프로페셔널리즘에다 대수롭지 않게 핵위협을 가하는 방법이 요즘 러시아의 중동 정책 담당자에게 매력적으로 비칠 만하다. 그러나 시리아를 위한 푸틴 대통령의 계획은 가식적인 것만이 아니다.
지난 9월 유엔 총회에서 그가 말했듯이 논리는 명확하다. 미국이 중동에서 정권 교체를 추구하다가 실패하면서 국가기관이 붕괴됐고 권력 공백이 생겼으며, 그 공백을 즉시 극단주의자와 테러리스트들이 메웠다는 것이다. 러시아의 개입은 “시리아 국가의 기능을 보존함으로써” 사담 후세인(이라크)과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의 몰락에 따른 것과 같은 무정부 상태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물론 푸틴 대통령의 휴전 계획에 따르면 이란부터 미국, 사우디까지 모든 관련국이 기대치를 수정해야 한다. 또 서방은 무자비한 독재자를 적어도 한동안 그대로 두는 게 IS의 지속적인 존재를 견디기보다 더 낫다는 아사드 대통령의 논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너무도 굴욕적이다. 그러나 IS의 야심이 모스크바와 파리까지 넘보는 상황에서 푸틴 대통령의 계획이 유일한 해결책일지 모른다.
- OWEN MATTHEWS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 With JONATHAN BRODER in Washington. ]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10호 종투사’ 출사표 던진 대신증권...교보증권에 쏠리는 눈
2국세청 조영탁 서기관, 15년이 넘도록 이어진 세무 ‘재능 기부’
3불확실의 시대, ‘길’ 찾는 세계 경제
4심판대 오른 종투사 제도…기존 종투사들 향방은
5국내 경제전문가 30인이 예상한 '2025 한국경제'
6급등도 급락도 아니었다...'횡보' 비트코인 '10만 달러' 고지 넘을까
7LG화학, 나주공장 알코올 생산 설비 가동 중단..."비용 절감"
8여야의정협의체, 20일 만 와해...의료계 "정부·여당 해결 의지 없어"
9일주일에 네 번 나오라던 포스코...팀장급 주5일제 전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