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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먹여 살릴 ‘유전자 도서관’

미래 먹여 살릴 ‘유전자 도서관’

1948년 네덜란드 태생의 미국 식물생리학자 F W 웬트는 작은 실험을 시작했다. 그 실험이 점점 커져 지금 세계적인 과학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갈수록 적대적인 환경에서 인류를 구하려는 야심을 담은 프로젝트다. 그러나 처음 목표는 겸허했다. ‘씨앗이 얼마나 오래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아주 간단한 의문의 답을 구하는 것이었다.

식물 종자 보존의 선구자였던 F W 웬트 박사(1903~1990).
그 실험이 시작된 해 라이프 잡지는 360년 동안 지속될 ‘너무도 느긋한’ 실험을 상세히 보도했다. 당시 캘리포니아공과대학 교수였던 웬트가 현지 토종 식물 120종의 말린 씨앗을 담은 유리관 2400개가 진열된 선반 뒤에 서서 포즈를 취한 사진도 실었다.

그가 보관한 씨앗은 지금 콜로라도주립대학에 딸린 베이지색 건물 안에 있다. 미국 농무부의 국립유전자원보존센터(NCGRP)다. 흔히 유전자 은행의 ‘포트녹스’로 불린다(켄터키주의 포트녹스는 미국 연방 금괴가 보관된 곳으로 철의 요새로 불린다). NCGRP는 급속히 변하는 지구 환경의 수많은 위협에서 미국의 식량안보를 지키려는 목적으로 설립됐다.

기후변화로 가뭄·홍수·해수면 상승·해양 산성화와 그에 따른 기아·영양실조·난민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진다. 개도국의 가난한 국민이 가장 취약하지만 미국 같은 부유한 나라도 대응책이 시급한 실정이다.

더구나 생물다양성은 급속히 사라진다. 지구가 제6차 대멸종기에 들어섰다고 믿는 사람이 많다. 인위적 원인에 의해 동식물종이 대량으로 급감하는 현상을 가리킨다. 지금 살아남은 것은 잘 보존해 번식에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사라진다. 작물과 가축의 다양성이 사라지면 식량 공급이 환경의 위협에 버티지 못한다. 2050년까지 거의 100억 명으로 불어날 인구를 고려하면 결코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식량 공급에 이상적인 작물을 추적하고 보존하는 프로젝트는 1세기 전 시작됐다. 1898년 미국 정부는 작물을 평가하고 씨앗을 보존할 수 있는 ‘식물도입보존국’을 전국에 설립해 유전자 보존 작업에 들어갔다. 농무부는 세계 각지에 과학자를 파견해 과일·채소·곡물을 수집했다. 1958년엔 웬트 교수의 프로젝트를 포함해 각 기관이 수집한 샘플을 통합하는 국립종자저장소(NSSL)를 로키산맥 남쪽 기슭인 콜로라도주 프론트레인지에 설립했다. 그 기구가 NCGRP의 전신이다.

콜로라도주 중북부는 고산지대로 습도가 낮고 기후가 온화해 씨앗 속의 수분을 조절해 수명을 최대화하기가 용이하다. 따라서 종자 저장에 이상적이다. 1999년 NCGRP는 식물의 씨앗·싹·줄기·꽃가루 외에 가축의 혈액·정액·난소·고환·배아도 수집했다. 과학자들은 이 물질을 수백 년, 일부의 경우 수천 년 동안 저장할 계획이다. 미래를 위한 보존이다.

웬트 교수의 샘플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러나 그가 사용한 방법은 아주 구식이었다. 안전성이 떨어지는 진공 밀폐한 유리관에 씨앗을 넣어 상온에서 저장했다. NCGRP의 식물생식질보존연구부 부장인 크리스티나 월터스는 그 유리관이 들어 있는 금속용기 뚜껑을 열고 누런 봉지를 꺼냈다. 봉지 겉엔 ‘2307’이라고 적혀 있다. 개봉할 연도를 의미한다.

월터스 부장은 1980년대 코넬대학 대학원생 시절 씨앗의 수분을 완전히 제거해도 오래 보존할 수 있다는 사실에 매료됐다. “씨앗은 건조해도 오래 살아남을 수 있는 최대의 생물학적 물질이다.” 식물 자체는 건조시키면 죽는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씨앗은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NCGRP 시설 깊숙이 홍수(인근의 호스투스 댐이 무너질 경우)와 지진, 허리케인급 강풍, 1t 물체가 시속 200㎞로 부딪칠 때의 충격에 견딜 수 있는 금고가 있다.

미국 농무부 산하 국립유전자원보존센터(NCGRP)는 수십만 건의 작물 유전자 물질 샘플을 보유한다.
금고 내부의 기온은 영하 18℃이며 씨앗 샘플 60만 건이 보관돼 있다. 각각에 든 씨앗은 약 3000개다. 수분을 완전히 제거한 뒤 냉동된 샘플이다. 이곳에 저장된 씨앗 약 18억 개 중 밀·콩 같은 종은 400년 동안 살아남을 수 있다. 반면 상추·양파 같은 씨앗은 약 100년 밖에 가지 못한다. 포장지에 인쇄된 바코드만 보면 내용물이 뭔지 알 수 없다. 9·11 테러 후 보안조치가 강화된 결과다.

그러나 수분과 기온이 종에 따라 씨앗의 수명에 영향을 미치고 일부 유전물질(싹이나 줄기 또는 특정 씨앗)은 건조와 냉동 과정을 견디지 못한다. 그런 종을 위해 극저온 저장고가 56개 있다. 액화질소에 넣은 생식질(유전 정보를 가진 살아있는 식물 조직으로 잎, 줄기, 꽃가루, 세포 등)뿐만 아니라 효모·박테리아·바이러스 같은 미생물도 보관한다.

NCGRP는 매년 1만2000∼1만8000개 식물 샘플을 추가한다. 일부는 국제 농업연구 기구와 민간 농기업에서 나오지만 대부분은 미국 식물생식질시스템의 약 30개 지부에서 수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생식질을 평가하고 재배해 연구자와 육종 전문가에게 배포한다.

월터스 부장은 유전자 은행보다는 ‘유전자 도서관’이라는 표현을 더 좋아한다. 멸종 후 뿐만 아니라 현재도 사용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이곳에 보관된 물질에는 유전적 다양성과 병충해·가뭄에 대응하는 자연의 전략에 관한 소중한 정보를 담고 있다”며 “이런 공공 도서관의 정보는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1800년대 중반 아일랜드에서 대기근을 일으킨 감자역병이 1990년대 초 미국에서 발견됐을 때 연구자들은 미국 농무부가 수집한 식물 생식질을 사용해 멕시코 중부가 원산지인 야생 감자에서 그 병을 막아내는 유전 물질을 찾아냈다. 그 결과 약 10년 전 미국 농무부 산하 농업연구소는 역병에 내성을 가진 감자 ‘디펜더’를 선보였다.

하지만 그로써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건 아니다. 주기가 반복되면서 새로운 도전이 등장한다. 월터스 부장은 “기아가 발생하기 전에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몇 단계 앞서가는 게 우리의 임무다. 작물을 끊임없이 개선할 수 있는 지식과 방법이 우리에게 있다.”

1970년 고온다습한 기후로 잎마름병이 미국 콘벨트(중·서부의 옥수수 재배 지역)를 망쳐놓았다. 육종 전문가들이 수확량을 크게 늘이는 잡종 옥수수 종자를 개발했지만 그 종은 잎마름병을 일으키는 진균에 매우 취약했다. 미국에서 재배되는 잡종 옥수수의 80% 이상이 감염됐다. 미국 농산업은 이 특수종에 사활을 걸었기 때문에 경제적 충격이 매우 컸다. 잎마름병이 제어될 때까지 약 10억 달러의 손실이 발생했다.

작물 종의 다양화를 무시한 결과 더 큰 재앙이 발생한 사례가 아일랜드 대기근이다. 1800년대 아일랜드 농민은 척박한 좁은 땅에서 잘 자라는 ‘럼퍼’라는 감자 1종만 재배했다. 1845년 가난한 주민과 소작농 등 많은 아일랜드 인구가 식량을 감자에 의존했다. 그러나 럼퍼 감자는 유전자가 전부 똑같아 감자역병이 발생하자 극심한 흉작이 시작됐다. 기아로 1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고 최소한 그 정도의 아일랜드인이 해외로 떠났다.

그런 실수에서 우리가 교훈을 얻었는지는 미지수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2010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세기 동안 작물의 유전적 다양성이 75% 줄었다. 그러나 이제는 무서운 질병이 등장해 주요 작물을 멸종시킨다 해도 우리에겐 대체 작물이 있다. NCGRP 덕분이다. 현재 감귤류 산업이 직면한 위협이 비근한 예다.

1919년 중국 남부에 감귤나무를 망치는 질병이 생겼다. 1921년엔 필리핀, 1928년엔 남아공에서도 비슷한 질병이 나타났다. 그 다음 몇 십 년 동안 과학자들은 아연 결핍이나 광물 독성을 원인으로 지목했지만 같은 질병이 태국과 인도에서도 등장하면서 그 두 가지 다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1995년이 돼서야 국제감귤류바이러스전문가기구(IOCV)는 이 박테리아 감염병을 황롱빙(HLB)으로 공식 명명했다.

감귤나무의 잎과 줄기를 갉아먹는 작은 곤충 ‘아시아 감귤 나무이’가 타액을 통해 이 질병을 전파한다. HLB가 중국의 감귤나무를 고사시키면서 그레이프푸르트·오렌지·레몬-포멜로 수확이 몇 년 안에 크게 감소했다. 뿌리가 썩어 나무가 성장하지 못하면서 잎이 얼룩덜룩해졌고 과일이 기형으로 변하고 써서 먹을 수 없었다. 익으면 녹색으로 변해 감귤그린병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감염된 나무는 얼마 안 가 죽는다.2004년 과학자들은 캘리포니아주와 함께 미국 감귤산업의 중심지인 플로리다주에서 HLB를 발견했다. 2012년 미국의 감귤산업 규모는 34억 달러였다. 그해 HLB가 로스앤젤레스의 주택지에서 자라는 레몬-포멜로 나무 한 그루에서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현재 이 질병을 세계 감귤산업이 직면한 최대 위협이라고 본다.

NCGRP에선 과학자들이 작물 다양성을 연구하며(위) 세계 최대 규모의 냉동고와 극저온 저장용기 속에 유전 물질을 보존한다(오른쪽).
미국 정부는 지난해 HLB 저항성을 가진 품종이나 새로운 항균제를 개발하기 위해 4개 대학에 약 2300만 달러를 지원했다. 지난 2월 톰 빌색 농무장관은 HLB 퇴치를 위해 22개 프로젝트에 3000만 달러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감염된 나무를 탐지하도록 개를 훈련시켜 그 나무를 신속히 제거하는 프로그램도 포함됐다.

HLB의 수그러들 줄 모르는 속성 때문에 건강한 감귤나무의 유전물질을 보존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약 5년 전 NCGRP의 식물생리학자 게일 볼크가 감귤나무의 생식질 보존 기술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감귤나무 씨앗은 보존이 매우 까다롭다. 씨앗을 건조시켜 보관할 수 있지만 건조 과정에서 죽기도 한다. 정상적인 극저온 저장도 결과를 예측할 수 없었다.

볼크 팀장은 표준 극저온 저장법을 개조해 품종을 보존하는 새로운 방법을 개발했다. 캘리포니아주 리버사이드의 농무부 지부에서 보낸 감귤나무 샘플이 NCGRP에 도착하면 볼크의 팀이 어린 가지에서 순의 맨 윗부분 1㎜를 잘라 극저온 저장한다. 그 물질을 사용하려면 다시 녹여 뿌리에 미세접목한다. 과학자들은 이런 식으로 감귤나무 100종 이상을 보존했다. HLB가 계속 퍼지면 NCGRP에 보관된 종이 배포될 것이다.

HLB의 확산은 기후변화 탓일 가능성이 크다. 온난화로 비롯되는 건조한 땅은 비가 오면 홍수에 더 취약하다. 홍수가 작물을 망치고 비옥한 표토를 쓸어가 질병이 더 잘 번진다. 볼크 팀장은 “겨울이 따뜻해지면서 병균이 살아남아 더 많은 피해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기후변화에 따라 새로운 기후에 더 잘 적응하는 다른 품종이 필요하다.”

기후변화가 세계의 식량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극심한 가뭄도 더 잦아진다. 세계에서 생산성이 가장 높은 농업 지역 중 하나인 캘리포니아주 센트럴밸리는 사상 최악의 가뭄으로 염류화된 지하수를 과다하게 사용하면서 작물의 성장이 위협받고 있다. 해양 산성화 문제도 심각하다. 바닷물이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화학작용을 일으켜 해양 생물을 고사시킬 위험이 있다. 이미 갑각류의 껍질이 얇아지고 플랑크톤이 줄어들며 가리비와 익족류가 고사한다. 연어·대구·명태 등 냉수성 어류가 그 다음 차례다.가축도 위협 받는다. 자연선택 과정에서 DNA에 차이가 생겨 동물이 기후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능력이 달라졌다. 그에 따라 ‘열충격 단백질(heat shock proteins)’ 수준이 각각 달라 일부는 더운 곳에 잘 적응하고 일부는 추운 기후에 잘 견딘다. 한 지역의 기후가 변하면 그곳의 가축산업에 큰 영향을 미친다.

과학자들은 감귤그린병이 확산될 경우에 대비해 우수 품종의 생식질을 보존한다.
다행히도 NCGRP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 NCGRP에서 동물유전학자 하비 블랙번이 이끄는 동물유전자원보존연구부는 농민·육종 전문가와 교류하며 샘플을 수집한다. 2만5000종의 정액·배아·난소·고환·혈액 샘플이 80만 건 수집됐다. 따라서 질병이나 잘못된 육종으로 한 종이 위협 받으면 우수 종의 재도입을 위한 유전 물질을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블랙번의 부서는 닭의 난소를 극저온 저장했다가 이식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현대 양계산업은 소수의 종만 취급해 닭의 유전적 다양성이 위험할 정도로 줄었다. 보통은 유전적 다양성 결여의 위험을 막기 위해 정자를 냉동시키지만 닭의 경우엔 그 방법이 통하지 않는다. 암탉 육종에는 정액이 사용될 수 있지만 병아리가 부화한 뒤엔 성적으로 숙성하려면 약 1년이 걸리며 그 닭은 특정 종을 육종하는데 필요한 우수 유전자의 50%만 가진다.

그 암탉을 다시 육종하면 우수 유전자 비율이 75%로 높아진다. 그 병아리가 성적으로 숙성하려면 또 1년이 걸린다. 그런 과정으로 완전한 육종엔 3∼5년이 소요된다. 따라스 블랙번의 부서는 다양한 닭 종의 난소를 극저온 저장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 난소를 녹여서 건강한 닭에 이식하면 1년 안에 특정 종을 복원할 수 있다.

세계 각국의 유전자 은행이 이런 문제에 도움을 준다. 그러나 샘플이 중대한 위협에 노출되기도 한다. 2006년 태풍으로 필리핀 유전자 은행이 손상됐다. 필리핀 과학자들은 유전자 은행을 다시 만들기 위해 NCGRP에 도움을 요청했다. 2012년엔 시리아 알레포에 본부를 뒀던 국제건조지역농업연구센터(ICARDA)가 내전 초기에 기존 시설을 폐기하고 레바논 베이루트로 자리를 옮겼다. 그 과정에서 수집 샘플 대부분이 손상됐다.

지난 9월 ICARDA는 시리아 내전으로 유실된 종자를 재건하기 위해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에 맡긴 종자표본 중 일부를 되돌려달라고 요청했다. ICARDA는 이전에 보유 종자표본의 거의 80%를 국제종자저장고에 제공했다. 유엔 산하 세계작물다양성재단(GCDT)의 재원을 바탕으로 2008년 건설된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4000종에 이르는 식물의 종자표본 72만 종을 보유한다. 핵전쟁이나 기후변화, 질병 등으로부터 지구의 농작물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 저장고는 ‘인류 최후의 보루’로 노르웨이령 북극 동토 130m고도의 산 위에 있으며 내진설계가 돼 있다. 설립 이후 그런 요청은 처음이었다. 지난 10월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는 수만 개의 종자 표본을 선박편으로 레바논에 보냈다. 선박에 실린 종자들은 ICARDA가 보유했던 밀과 보리, 렌즈콩, 병아리콩, 야생콩류와 곡류의 샘플이었다.

이번에 인출된 종자표본은 인류 최초의 농경문화 발상지인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생산돼 세계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 나일강 유역부터 시리아·팔레스타인의 동지중해 유역을 거쳐 옛 메소포타미아에 이르는 이 초승달 지대는 세계 최초로 곡물이 경작된 곳이다.

이런 사례는 세계 유전자 은행의 협력과 공동 작업이 필수적이라는 점을 말해준다. 좋은 소식은 유전자 은행이 지난 10년 동안 많이 늘었다는 사실이다. 세계 전역에 약 1750개가 있으며 샘플도 740만 건으로 늘었다. 식량농업식물유전자원국제조약(ITPGRFA) 덕분이다. 국제종자협약으로도 알려진 이 조약은 세계의 가장 중요한 작물 64종(식물에서 얻는 식량의 80%를 제공한다)의 유전 물질과 종자를 세계의 농민과 육종 전문가, 과학자들이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해준다. 유럽연합(EU)과 134개국이 이 조약을 비준했다.

20세기 상반기 미국의 산업형 농장은 고수확 옥수수 1종만 재배했다가 1970년 병해가 닥치면서 큰 손실을 입었다.
이 조약으로 형성된 거대한 네트워크는 이론상 세계의 모든 전문가들이 기후에 잘 적응하는 작물과 가축을 육종해 세계 식량안보를 개선할 수 있게 해준다. 이 국제 네트워크의 핵심에 NCGRP가 있다. NCGRP는 세계 최대 규모의 유전자 은행 중 하나로 전 세계 가축·작물의 유전 물질 10% 이상을 보관하며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아울러 현재 가장 중요한 농업 연구도 지원한다. 볼크 팀은 감귤나무 프로젝트 외에도 마늘·사탕수수·뚱딴지(돼지감자)의 생식질을 보존하는 방법도 개발했고 현재는 포도 생식질 보존 방법을 개발 중이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이 인류 미래에 중요한데도 유전자 은행은 심각한 재정 위협에 직면했다. 예를 들어 NCGRP는 연간 예산이 480만 달러에 불과하다. 세계적인 ‘유전자 도서관’을 유지할 수 있는 국제 기금이나 장치가 거의 없다. 스발바르 국제종자저장고를 관리하는 GCDT는 내년 8억5000만 달러를 목표로 모금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기후변화를 막으려는 국제적인 노력 덕분에 곧 사정이 좋아질지 모른다. 오는 11월 말 시작되는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의 핵심 의제 중 하나가 개도국의 기후변화 대응을 돕기 위해 녹색기후기금에 연간 1000억 달러를 지원하는 것이다. 그중 일부는 청정에너지 인프라에 사용되며, 많은 부분은 기후 적응 프로젝트에 투자될 계획이다. 그러나 억만장자 빌 게이츠를 포함한 자선사업가 다수는 그 자금의 상당 부분을 기후변화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 소규모 농민을 돕는데 할애하도록 촉구했다.

만약 자금이 그 방향으로 투입된다면 작물 다양성 프로젝트가 중심이 돼야 한다. 게이츠는 작물 종자를 가뭄에 더 잘 적응하고 생산성을 높이는 연구에 쓰일 “자금이 터무니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유전자 은행 네트워크와 긴밀하게 연결된 국제농업연구자문그룹(CGIAR)이 그런 연구를 이끈다.

무엇보다 좋은 소식은 수년 동안 위기를 무시했던 정치인과 정책 전문가들이 기후변화 탓으로 식량안보가 크게 위협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10월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2015 엑스포에서 “전 세계의 농민과 어민이 작물을 재배하고 물고기를 잡고 가축을 기르기가 더 힘들어진다면 식량안보가 위협받는다”고 말했다. 이번 엑스포의 핵심 주제가 ‘세계 인구를 어떻게 먹여 살릴 것인가?’였다. 그 답은 작물과 가축의 방대한 유전자 정보를 가진 NCGRP에서 찾을 수 있다.

- SENA CHRISTIAN NEWSWEEK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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