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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데스밸리에 빠진 교육을 구하라

[박용삼의 ‘테드(TED) 플러스’] 데스밸리에 빠진 교육을 구하라

ⓒted.com
농담이거나 덕담이려니 했다. 하지만 은사님의 넋두리는 계속 되었다. “요즘 애들은 확실히 너희들만 못해. 이건 뭐 나이만 먹었지 하는 짓은 중딩, 고딩과 매한가지야. 학점에만 혈안이고, 학문에 대한 호기심은 손톱만큼도 없어.” 설마 그럴까? ‘요즘 애들’이 누구인가? 초등학교 때부터 학교, 학원, 부모의 밀착 지원 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난 (모)범생 수능세대 아니던가. 우리처럼 데모하고 술 퍼먹고 당구에 빠져 헤매다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사회인이 되어버린 세대와는 달라도 한참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이건 뭔가 한참 잘못되고 있다는 명백한 신호다.

1980년대 영국의 교육개혁을 이끌었던 공로로 작위까지 받은 바 있는 켄 로빈슨(Ken Robinson)경은 현대 교육제도가 총체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고 꼬집는다. 대부분의 국가가 마찬가지다. 맨 위에 수학과 과학이 있고 그 아래 국어와 언어학, 그 아래 인문학, 그리고 맨 마지막에 예술이 있다. 예술 중에서도 보통 미술과 음악이 드라마나 춤보다 위다. 이런 식의 교육은 아이들의 허리 위, 특히 머리에 초점을 둔다. 그것도 뇌의 한쪽으로 심각하게 치우쳐 있다.

로빈슨 경은 지금의 교육제도는 창의적 사고가보다는 성실한 노동자를 키우는 데 집중되어 있음을 지적한다. 과거 산업화 시대의 유물이라는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지금의 교육제도는 더 이상 생명이 자라지 못하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에 빠진 거나 진배없다(로빈슨 경의 TED강연은 무려 3600만건 이상의 뷰를 기록 중이다).

미국의 ‘낙오학생방지법(No Child Left Behind Act)’만큼 역설적인 법도 없다. 왜냐면 2002년 법이 시행된 이후 수백만 명의 학생이 ‘낙오’되었기 때문이다. 미국의 어떤 지역에서는 60% 정도의 아이들이 고등학교를 중퇴했고, 북미 원주민 공동체에서는 그 수치가 80%에 달한다. 만약 중퇴생 숫자를 절반으로 줄였다면, 지난 십여 년 간 미국 경제에 거의 1조 달러에 맞먹는 이득이 발생했을 것이라는 추산도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5년 12월 10일 미국 공립교육의 근간이 됐던 ‘ 낙오 학생방지법’을 대체하는 ‘모든학생성공법’에 서명했다. / 사진:뉴시스
 현대 교육제도로는 창의적 사고가 나오기 어려워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데에는 세 가지 원칙이 있다. 그런데 현재의 교육제도는 대부분 그 원칙들과 상충된다. 첫 번째 원칙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고 다양하다는 거다. 피를 나눈 형제 자매라 해도 아이들 간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그런데도 현재의 교육은 다양성 대신 획일성에 함몰되어 있다. 아이들의 적성과 선호를 무시하고 모든 아이들을 ‘STEM(과학·기술·공학·수학)’이라는 매우 좁은 스펙트럼에 몰아 넣고 있는 것이다. 미국 학생들의 10% 정도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 장애(ADHD)로 판정받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두 번째 원칙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호기심이라는 거다. 만약 아이들의 호기심에 불을 붙일 수 있다면 아이들은 아무런 도움 없이도 스스로 배운다. 교육의 요점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고 유발하는 멘토링에 있다. 현재의 지배적인 교육 문화는 진정한 가르침이나 배움이 아니라 시험에만 초점을 맞춘다. 시험이 필요하기는 하다. 하지만 시험은 배움을 리드하는 진단 역할에 그쳐야지 호기심을 억누르고 시험 자체에 순응하게 해서는 곤란하다.

세 번째 원칙은, 인간은 본질적으로 창조적이라는 거다. 우리는 매 순간 여러 대안과 가능성을 상상하면서 자신의 삶을 창조하고, 또 살아가는 과정에서 재창조해 나간다. 그래서 인간의 삶이 흥미롭고 다양하며 역동적인 거다. 교육의 역할은 이런 창의성의 힘을 일깨우고 발전시키는 거지, 정해진 틀에 끼워 맞춰 표준화하는 것이 아니다.

로빈슨 경은 모범적인 교육제도 사례로 핀란드를 든다. 우선 핀란드는 공부하는 사람은 결국 학생들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학생들의 호기심과 개성, 창의성에 집중하는 시스템을 택했다. 다음으로 핀란드는 가르치는 직업을 굉장히 높게 평가한다. 훌륭한 교원의 선발부터 지원, 지속적인 전문성 개발에 드는 돈을 비용이 아니라 투자로 인식한다. 마지막으로 핀란드는 교육과 관련한 모든 권한을 학교 당국에 넘겼다. 정부나 입법기관의 회의실이 아니라 실제로 교육이 이루어지는 학교 현장의 판단에 재량권을 맡긴 것이다.

로빈슨 경은 벤자민 프랭클린의 말을 인용하면서 강연을 마무리한다.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사람(who are immovable), 변화를 따르는 사람(who are movable), 그리고 변화를 일으키는 사람(who move). 교육개혁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변화를 따를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제 촉발하는 일만 남았다. 다양성, 호기심, 창의성에 기반한 새로운 교육제도는 시대의 흐름이 될 것이고 낡은 교육 체제에 일대 혁명을 가져올 수 있다.

본래 미국의 교육제도는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주정부의 자율을 존중해왔다. 그러다 2002년 당시 조지 부시 행정부는 민주당의 요청을 받아들여 낙오학생방지법을 채택했다. 이름과 취지는 좋았지만 현실과 동떨어진 제도였음이 곧 밝혀졌다. 낙제 학생에게 보충학습을 강요하자 대부분 저소득층 또는 이민자 계층 자녀들인 낙제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방정부 주도로 매년 치르는 표준시험 성적으로 교사를 평가하자 교사들은 인성이나 창의성은 제쳐놓고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다. 학교 자체도 우등생을 키우기보다 낙제생의 성적을 끌어올리는 데만 급급했다(왠지 익숙한 풍경 아닌가).

결국 2015년 12월, 미국은 공교육의 권한을 다시 주정부와 산하 교육구에 넘기면서 과거로 회귀했다. 새로운 법안 이름은 ‘모든학생성공법(Every Student Succeeds Act).’ 성공의 잣대를 획일화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읽혀진다. 이로써 이상적인 평준화를 추구했던 미국의 교육 실험은 13년 만에 실패로 마감하게 된다.

우리나라도 정부 주도의 교육제도에 대한 불신과 원망이 한계에 달한 듯싶다. 사실상 사설학원이 공교육을 대체한 지도 꽤 되었다. 그렇다고 학교에서 아이들의 인성이나마 제대로 키워주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워낙 얽히고 설켜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할 따름이다. 로빈슨 경의 제안과 미국 정부의 시행착오를 통해 한 가지 얻을 수 있는 힌트는 이제 민간의 자율에 맡길 때가 되었다는 거다.
 교육은 교육 당사자인 학생과 학교의 손에
‘데스밸리에 빠진 교육’ 강연 동영상.
우리나라 부모들의 교육열은 세계 최고다. 미국 오바마 대통령도 기절할 정도다. 문제는 그 열기가 오직 좋은 특목고,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이나 공무원 취직으로 귀결된다는 데 있다. 이건 아니다. 이래서는 결코 빌 게이츠나 스티브 잡스가 나올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물수능, 불수능을 오가는 데 있지 않고, 학생들이 목표로 삼을 수 있는 인생의 장(場)을 넓히는 데 있다. 스포츠도 1960~70년대 권투와 프로레슬링을 넘어 전 종목을 골고루 키워야 스포츠강국 소리를 듣지 않는가. 교육강국 소리를 들으려면 학생(실은 학부모)들이 꿈꿀 수 있는 매력적인 선택 대안을 많이 만들어 줘야 한다. 그게 정부의 몫이다. 나머지는 극성스런 부모와 말 잘 듣는 아이들, 귀신 같은 학원들이 다 알아서 할 거다.

박용삼 - KAIST에서 경영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한국전자 통신연구원(ETRI)을 거쳐 현재 포스코경영연구원 산업연구센터 수석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주요 연구분야는 신사업 발굴 및 기획, 신기술 투자전략 수립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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