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 없는 빙산 사냥꾼들
겁 없는 빙산 사냥꾼들
빙산은 위험하다. 사전 경고 없이 떨어져나가 어둠 속에 숨어 있다가 배를 가라앉힌다. 변덕스럽고 크기도 엄청나다. 하지만 보드카를 만드는 데는 최고다.
상표에 푸르고 흰 빙산이 그려진 ‘아이스버그’ 보드카를 병에서 한 잔 따라 마시며 1912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여객선 타이태닉호를 생각했다. 보드카는 알코올이 약 40%, 물이 60%다. 따라서 내 앞에 놓인 병의 절반 약간 넘는 부분이 빙산에서 채취한 물이다. 산업혁명 훨씬 전, 지금은 거의 모든 곳의 대기에 섞여 있는 산업 오염물질이 나오기 오래 전인 수만 년 전, 눈으로 내린 물이다. 나는 보드카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 보드카는 어떤 것보다 더 부드러운 듯하다. 그런 평가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냥 낭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거대한 빙산에 저장된 고대의 물로 만든 술은 맛이야 어떻든 기분만은 황홀하다.
나만 빙산에 홀린 게 아니다. 내가 마시는 보드카의 빙산 물이 채취된 캐나다 뉴펀들랜드는 빙산 관광으로 유명하다. 빙산 물을 생수나 고급 보드카에 사용하는 산업은 아직 소규모지만 갈수록 성장한다. 캐나다빙산보드카는 연간 보드카 약 20만 상자를 생산한다. 사장 겸 CEO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20년 전엔 겨우 몇 천 상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의 빙산 물은 불순물이 거의 없다”며 일반 생수보다 산도가 약 10배나 낮아 맛이 부드럽다고 자랑했다. “우리 브랜드는 그런 얘기로 사람들을 끈다.”
북극과 남극의 현대판 카우보이가 된 빙산 사냥꾼의 이야기다. 리얼리티 쇼나 뉴스 기사는 거대한 빙산에서 조각을 떼어내 고급 생수로 만드는 기술을 보여준다.
인류는 최소한 1800년대 중반부터 빙산을 활용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 당시 기업가들은 얼음이 비싼 인도로 빙산을 끌어가 팔겠다고 했다. 또 “지구 기온을 동등하게 만들려고 빙산을 남방 대양으로 옮기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1970년대 중반엔 18개국의 과학자들이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모여 빙산을 아랍 반도나 건조 지역으로 이동시켜 수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그 복잡한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보장할 방법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검토하지만 여전히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빙산 사냥꾼 에드 킨이 매일 하는 일은 결코 공상이 아니다. 그의 생업은 세상의 꼭대기에서 빙산을 낚는 것이다. 킨이 빙산 조각을 공급하는 생수회사 글레이스 빙산생수의 광고 문구를 보자. ‘지구가 순수했을 때를 상상해 보라. 수만 년 전 지구의 모든 물이 원시 그대로 완전히 순수했을 때를 상상해 보라. 깨끗한 대기가 흡수한 물이 눈으로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실제로 뉴펀들랜드의 빙산은 1만∼2만5000년 전에 생겼다. 그린란드 빙상의 페테르만 빙하에서 떨어져나간 얼음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내린 눈이 압축돼 중력으로 빙상의 끝부분으로 밀려가 각각 2억5000t 정도로 쪼개진다. 크기는 마천루 1000개, 무게는 미국인이 1년에 배출하는 쓰레기 전량에 해당한다.
그 빙산은 3∼5년에 걸쳐 최종 목적지로 이동한다. 처음엔 남하하다가 해류를 타고 그린란드 서남쪽 해안 부근의 배핀만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하해 뉴펀들랜드에서 ‘빙산 골목’을 만든다.
매년 봄이 되면 3∼600개의 빙산이 ‘빙산 골목’을 통과한다. 4월부터 7월 중순까지 크기가 줄어들다가 여름 늦게 뉴펀들랜드 주도 세인트존스 해안에서 완전히 녹는다. 킨은 그 직전 빙산을 채취한다.
그는 지난해가 ‘풍년’이었다고 말했다.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빙산을 채취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원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해마다 차이가 심해 순전히 온난화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자신이 하는 일에 더 많은 이목이 집중된다며 지난 몇 년 사이 촬영 기자 30명 이상이 자신의 일을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킨은 뉴펀들랜드주의 빙산 채취 허가증을 받았다. 그는 일꾼 몇 명과 함께 50m 길이의 바지선을 타고 일한다. 한번에 생수 1000ℓ를 얻을 정도의 얼음을 쪼개내는 로봇 집게팔을 사용한다. 연간 채취하는 얼음은 약 1000t으로 생수 100만∼130만ℓ 분량이다. 1억∼2억5000만t 정도인 빙산 하나에 비하면 작은 방울 하나에 불과하다.
뉴펀들랜드 주민에겐 바다가 삶의 터전이다. 그들은 캐나다 대서양 해안 부근의 거대한 바위섬에서 어업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수백 년 동안 이어오던 대구잡이 산업이 무너지면서 4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야 했다.
킨도 그중 1명이었다. 그는 “난 늘 빙산 곁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잡은 대구, 연어, 북극 곤들매기를 냉장하기 위해 빙산 조각을 끌어올리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 산업이 무너진 뒤 킨은 현지 대학 연구자들을 위해 빙산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는 데이터 수집을 도왔다. 그러다가 보드카와 생수회사들이 들어왔다.
킨의 팀은 채취에 적합한 빙산을 찾는 데 몇 주가 걸린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차량 10∼15대 크기라면 그 아래 100대 크기의 얼음이 있다. 빙산이 뒤집어지면 큰 일이다. 킨은 “작은 보트는 물론 바지선과 심지어 타이태닉호도 침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몇 차례 침몰할 뻔한 적이 있다. 빙산과의 싸움은 아주 색다르다.”
킨의 바지선에서 열흘을 보낸 프랑스 사진기자 베로니크 드 비게리는 그런 아슬아슬했던 사건에 관해 들었다. 2013년 빙산 하나가 예상치 않게 뒤집어져 작은 해일이 일면서 배가 잠길 뻔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비게리 기자는 킨의 배에서 선원들이 각 빙하의 안전성을 예측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빙산을 여성 대명사로 부르며 “그녀는 위험해 보여. 그녀는 평온해”라고 말했다.
킨의 팀은 ‘다리’가 달린 빙산을 피하는 법을 안다. 거대한 얼음 촉수처럼 희한하게 사지 모양으로 튀어나온 형태를 가리킨다. 때로는 빙산이 녹으면서 그런 형태가 해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런 빙산은 무게 중심이 불안정해 잘 뒤집힌다.
킨의 팀이 오래된 얼음덩어리를 싣고 뉴펀들랜드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수만 년 전의 세계를 상상하기 쉽다. 어떻게 보면 빙산 사냥꾼은 고대의 물 분자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인 셈이다. 그러나 킨은 그리 감상적이지 않다. “얼어붙은 눈일 뿐이다. 단단히 압착된 눈이다.” 그에겐 그게 일일 뿐이다. 뉴펀들랜드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게다가 그냥 두면 어차피 녹는다”고 덧붙였다. 바다가 얼음을 줄 때 활용하는 게 낫다.
- 조에 슐랑거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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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표에 푸르고 흰 빙산이 그려진 ‘아이스버그’ 보드카를 병에서 한 잔 따라 마시며 1912년 빙산에 부딪혀 침몰한 여객선 타이태닉호를 생각했다. 보드카는 알코올이 약 40%, 물이 60%다. 따라서 내 앞에 놓인 병의 절반 약간 넘는 부분이 빙산에서 채취한 물이다. 산업혁명 훨씬 전, 지금은 거의 모든 곳의 대기에 섞여 있는 산업 오염물질이 나오기 오래 전인 수만 년 전, 눈으로 내린 물이다. 나는 보드카를 특별히 좋아하진 않지만 이 보드카는 어떤 것보다 더 부드러운 듯하다. 그런 평가가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인지 그냥 낭만에서 비롯된 것인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거대한 빙산에 저장된 고대의 물로 만든 술은 맛이야 어떻든 기분만은 황홀하다.
나만 빙산에 홀린 게 아니다. 내가 마시는 보드카의 빙산 물이 채취된 캐나다 뉴펀들랜드는 빙산 관광으로 유명하다. 빙산 물을 생수나 고급 보드카에 사용하는 산업은 아직 소규모지만 갈수록 성장한다. 캐나다빙산보드카는 연간 보드카 약 20만 상자를 생산한다. 사장 겸 CEO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20년 전엔 겨우 몇 천 상자였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의 빙산 물은 불순물이 거의 없다”며 일반 생수보다 산도가 약 10배나 낮아 맛이 부드럽다고 자랑했다. “우리 브랜드는 그런 얘기로 사람들을 끈다.”
북극과 남극의 현대판 카우보이가 된 빙산 사냥꾼의 이야기다. 리얼리티 쇼나 뉴스 기사는 거대한 빙산에서 조각을 떼어내 고급 생수로 만드는 기술을 보여준다.
인류는 최소한 1800년대 중반부터 빙산을 활용하는 기상천외한 발상을 했다. 당시 기업가들은 얼음이 비싼 인도로 빙산을 끌어가 팔겠다고 했다. 또 “지구 기온을 동등하게 만들려고 빙산을 남방 대양으로 옮기겠다”는 제안도 나왔다. 1970년대 중반엔 18개국의 과학자들이 미국 아이오와주 에임스에 모여 빙산을 아랍 반도나 건조 지역으로 이동시켜 수자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그 복잡한 프로젝트의 경제성을 보장할 방법이 없었다. 과학자들은 지금도 비슷한 프로젝트를 검토하지만 여전히 현실성이 없다.
그러나 빙산 사냥꾼 에드 킨이 매일 하는 일은 결코 공상이 아니다. 그의 생업은 세상의 꼭대기에서 빙산을 낚는 것이다. 킨이 빙산 조각을 공급하는 생수회사 글레이스 빙산생수의 광고 문구를 보자. ‘지구가 순수했을 때를 상상해 보라. 수만 년 전 지구의 모든 물이 원시 그대로 완전히 순수했을 때를 상상해 보라. 깨끗한 대기가 흡수한 물이 눈으로 떨어지는 것을 상상해 보라.’
실제로 뉴펀들랜드의 빙산은 1만∼2만5000년 전에 생겼다. 그린란드 빙상의 페테르만 빙하에서 떨어져나간 얼음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내린 눈이 압축돼 중력으로 빙상의 끝부분으로 밀려가 각각 2억5000t 정도로 쪼개진다. 크기는 마천루 1000개, 무게는 미국인이 1년에 배출하는 쓰레기 전량에 해당한다.
그 빙산은 3∼5년에 걸쳐 최종 목적지로 이동한다. 처음엔 남하하다가 해류를 타고 그린란드 서남쪽 해안 부근의 배핀만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남하해 뉴펀들랜드에서 ‘빙산 골목’을 만든다.
매년 봄이 되면 3∼600개의 빙산이 ‘빙산 골목’을 통과한다. 4월부터 7월 중순까지 크기가 줄어들다가 여름 늦게 뉴펀들랜드 주도 세인트존스 해안에서 완전히 녹는다. 킨은 그 직전 빙산을 채취한다.
그는 지난해가 ‘풍년’이었다고 말했다. 보통 때보다 훨씬 많은 빙산을 채취했다. 그는 지구온난화가 원인일지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해마다 차이가 심해 순전히 온난화 탓으로 돌리기는 무리라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자신이 하는 일에 더 많은 이목이 집중된다며 지난 몇 년 사이 촬영 기자 30명 이상이 자신의 일을 취재했다고 설명했다.
킨은 뉴펀들랜드주의 빙산 채취 허가증을 받았다. 그는 일꾼 몇 명과 함께 50m 길이의 바지선을 타고 일한다. 한번에 생수 1000ℓ를 얻을 정도의 얼음을 쪼개내는 로봇 집게팔을 사용한다. 연간 채취하는 얼음은 약 1000t으로 생수 100만∼130만ℓ 분량이다. 1억∼2억5000만t 정도인 빙산 하나에 비하면 작은 방울 하나에 불과하다.
뉴펀들랜드 주민에겐 바다가 삶의 터전이다. 그들은 캐나다 대서양 해안 부근의 거대한 바위섬에서 어업으로 살아간다. 그러나 1990년대 초 수백 년 동안 이어오던 대구잡이 산업이 무너지면서 4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그들은 다른 생계수단을 찾아야 했다.
킨도 그중 1명이었다. 그는 “난 늘 빙산 곁에서 살았다”고 말했다. 잡은 대구, 연어, 북극 곤들매기를 냉장하기 위해 빙산 조각을 끌어올리던 시절을 기억한다. 그 산업이 무너진 뒤 킨은 현지 대학 연구자들을 위해 빙산의 이동 경로를 예측하는 데 사용하는 데이터 수집을 도왔다. 그러다가 보드카와 생수회사들이 들어왔다.
킨의 팀은 채취에 적합한 빙산을 찾는 데 몇 주가 걸린다. 신중을 기해야 하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부분이 차량 10∼15대 크기라면 그 아래 100대 크기의 얼음이 있다. 빙산이 뒤집어지면 큰 일이다. 킨은 “작은 보트는 물론 바지선과 심지어 타이태닉호도 침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도 몇 차례 침몰할 뻔한 적이 있다. 빙산과의 싸움은 아주 색다르다.”
킨의 바지선에서 열흘을 보낸 프랑스 사진기자 베로니크 드 비게리는 그런 아슬아슬했던 사건에 관해 들었다. 2013년 빙산 하나가 예상치 않게 뒤집어져 작은 해일이 일면서 배가 잠길 뻔했다는 이야기 등이다. 비게리 기자는 킨의 배에서 선원들이 각 빙하의 안전성을 예측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빙산을 여성 대명사로 부르며 “그녀는 위험해 보여. 그녀는 평온해”라고 말했다.
킨의 팀은 ‘다리’가 달린 빙산을 피하는 법을 안다. 거대한 얼음 촉수처럼 희한하게 사지 모양으로 튀어나온 형태를 가리킨다. 때로는 빙산이 녹으면서 그런 형태가 해수면 위로 드러난다. 그런 빙산은 무게 중심이 불안정해 잘 뒤집힌다.
킨의 팀이 오래된 얼음덩어리를 싣고 뉴펀들랜드 해안을 따라 이동하는 모습을 보면 수만 년 전의 세계를 상상하기 쉽다. 어떻게 보면 빙산 사냥꾼은 고대의 물 분자를 발굴하는 고고학자인 셈이다. 그러나 킨은 그리 감상적이지 않다. “얼어붙은 눈일 뿐이다. 단단히 압착된 눈이다.” 그에겐 그게 일일 뿐이다. 뉴펀들랜드에서 바다를 삶의 터전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는 “게다가 그냥 두면 어차피 녹는다”고 덧붙였다. 바다가 얼음을 줄 때 활용하는 게 낫다.
- 조에 슐랑거 뉴스위크 기자 / 번역 이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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