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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대륙의 눈물

남극대륙의 눈물

미지의 세계로 모험을 떠나면 어느 순간 극복하기 힘든 두려움과 맞서야 한다. 지구상 가장 기이한 곳인 남극으로 가는 길목에선 드레이크 해협이 바로 그런 곳이다. 남미대륙의 남단과 남극대륙 사이에서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바닷길이다. 대륙이나 섬의 방해를 받지 않아 해류가 거센 드레이크 해협은 16세기 영국 해군 탐험가 프랜시스 드레이크가 처음 발견했다. 그 이래 드레이크 해협은 빙하와 모험의 유혹에 끌린 선박 1000여 척과 수많은 선원을 집어 삼켰다.

1914년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은 영국 런던의 한 신문에 ‘남극대륙 횡단 탐험’이라는 광고를 냈다. ‘험난한 여행에 참여할 대원을 모집함. 급여는 적으며, 매우 춥고, 몇 달 동안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하며, 늘 위험이 따르는 조건임. 안전 귀환을 보장할 수 없음. 성공하면 명예를 얻고 공로를 인정 받을 수 있음.’ 섀클턴은 신청자 약 5000명 중 28명을 선발해 탐험에 나섰다. 그들은 범선 인듀어런스에 썰매 끄는 개들을 태우고 영국 플리머스에서 출항했다. 최초로 남극대륙을 걸어서 횡단하는 것이 목표였다.

모험은 곧바로 재앙으로 변했다. 인듀어런스호는 드레이크 해협을 무사히 건넜지만 남극대륙 부근의 얼음 덩어리가 떠다니는 해역에서 일이 크게 틀어졌다. 범선은 남극대륙 해안에서 130㎞ 떨어진 곳까지 접근했지만 유빙에 갇혀 꼼짝할 수 없었다. 1915년 2월 범선은 거대한 유빙에 부딪혀 산산조각 났다.

섀클턴과 대원들은 유빙 위에 텐트를 치고 순록 가죽을 덮고 자며 16개월을 보냈다. 눈 녹은 물을 마시고 매일 소량으로 배급되는 돼지기름과 육포, 때로는 물개나 펭귄 고기로 버텼다. 그중 4개월은 겨울이라 해가 뜨지도 않았다. 남극의 여름이 오자 그들이 올라 있던 거대한 유빙 아랫부분이 약해져 쪼개졌다. 1916년 4월 그들은 캠프를 포기하고 작은 구명보트 몇 대에 나눠 타고 갖은 고생을 하며 7일 동안 노를 저은 끝에 작은 육지인 엘리펀트섬에 도달했다.

1914년 탐험가 어니스트 섀클턴(왼쪽)은 세계 최초로 남극대륙을 걸어서 횡단하는 탐험을 떠났지만 유빙에 좌초해 얼음 위에서 16개월을 버티다 겨우 탈출했다.
신속히 이동하지 않으면 몰살한다고 판단한 섀클턴은 대원 5명을 이끌고 마지막 구조 요청에 나섰다. 그들은 항해 장비가 거의 없이 구명보트를 타고 2주의 사투 끝에 그 무시무시한 드레이크 해협을 다시 건너 남대서양 아르헨티나 부근의 영국령 사우스조지아섬에 닿았다. 곧이어 36시간 숨가쁜 등반으로 산맥을 넘어 마침내 고래잡이 기지에 당도했다. 그 문명의 전초기지에 도착했을 때 그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오랫동안 물개 기름을 태운 연기로 얼굴은 새카맣고 머리카락과 수염은 가슴까지 길어 그곳의 아이들이 놀라 달아났다. 몇 달 뒤 섀클턴은 부빙을 뚫고 엘리펀트섬까지 항해할 수 있는 튼튼한 배를 구해 나머지 대원들을 구조했다.

요즘은 관광객이 유람선을 타고 남극권 안으로 들어가 고무보트에서 펭귄 서식지를 돌아볼 수 있다.
‘남극 탐험 영웅시대’의 마지막 원정이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상업과 제국이라는 미명 아래 최후의 미탐사 지역인 남극대륙으로 몰려갔다. 볼 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보고 가질 수 있는 것을 가장 먼저 취하기 위해서였다. 요즘 남극대륙 탐사가 다시 붐이다. 그러나 지금의 탐험가들은 예전과 다른 부류다. 자원이 아니라 인류가 직면한 가장 절박한 문제 중 하나의 해결책을 찾으려는 과학자들이다.

지구의 역사는 남극대륙에서 얼어붙었다. 우리가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남극대륙은 생명체가 거의 없는 온통 푸르고 흰 넓은 지역으로 지구 역사의 일부에 불과하다. 수㎞ 높이로 쌓인 얼음에는 1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대기의 일부를 간직한 기포가 들어 있다. 화석 기록은 그곳이 과거 생명체 가득한 녹지로 호주와 인도 아대륙에서 떨어져 나가 남쪽으로 이동하기 전 초거대 대륙 ‘판게아’의 일부였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그 후 남극대륙은 차가운 바다에 둘러싸여 지구의 냉장고가 됐다. 세계 육지의 10%에 해당하는 남극대륙은 세계 얼음의 90%와 담수의 70%를 품고 있다.

그러나 그 어마어마한 양의 얼음이 전례 없는 속도로 녹아내린다. 전부 다 녹으면 해수면이 약 60m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진 않겠지만 남극대륙의 온난화 진행 속도는 지구의 어느 지역보다 5배 정도 빠르다. 과학자들의 추정에 따르면 남극대륙의 얼음이 부분적으로만 녹아도 해발 90㎝ 위에 사는 세계 인구 1억5000만 명(미국의 뉴욕과 마이애미, 인도의 뭄바이 일부 지역 등)이 정든 집을 떠나 더 높은 곳으로 이동해야 할 정도로 해수면이 상승할 수 있다. 그럴 경우 항만과 항구가 잠기고 습지와 세계의 수원 생태계가 파괴되는 환경 재앙이 발생한다.

남극 대륙의 얼음에 저장된 지구 역사를 발굴하면 얼음의 손실량과 해수면 상승 시기를 예측할 수 있다. 세계 각지의 과학자들이 그곳에 끌리는 이유다. 특히 러시아·미국·중국은 다른 지역에선 관계가 그리 좋지 않지만 남극대륙에선 서로 긴밀히 협력한다. 남극조약에 따라 당사국들은 남극대륙을 미개척지로 남겨 두기로 합의했다. 일부 국가는 궁극적으로 담수와 수산물 같은 자원을 통제하고 활용하기를 원하겠지만 남극환경보호의정서는 1998년 발효돼 2048년까지 유효하다. 따라서 현재 남극대륙은 거대한 지구과학 실험실이다.
 남극대륙에 얼어붙은 지구의 역사
남극대륙 해안에서 약간 떨어진 커버빌섬은 젠투 펭귄의 서식지다. 남극해를 둘러보는 관광객들(아래).
뉴질랜드에서 출발하는 수송기를 탈 수 있는 과학자가 아니라면 남극대륙으로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배를 타고 드레이크 해협을 건너는 것이다. 여름철이면 특수하게 휜 강철 뱃머리와 강력한 엔진·프로펠러를 장착한 여객선 31대와 전세 요트 20대가 그 해역을 운항한다. 매년 약 3만5000명이 그 선박을 이용해 남극대륙을 관광한다.

‘위대한 극탐험 시대’ 이래 현대 기술이 남극 여행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다. 그러나 길들일 수 없는 드레이크 해협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과거나 지금이나 똑같다. 우리 일행이 그곳을 건널 때 수많은 탐험에서 말라리아와 허리 골절, 뇌수종 등을 겪고도 살아난 노련한 탐험가 찰리 위트맥조차도 멀미로 고생했다. 그런 그가 드레이크 해협에서 무너진다면 나는 아예 가망조차 없어 보였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24시간 동안 10m 높이의 출렁이는 파도를 타고 1분에 서너 차례 롤러코스터처럼 위로 솟구쳤다가 곤두박질치면서 난 거의 까무러쳤다.

남미 아르헨티나에서 출발한 후 두 번째 아침이 되자 바다가 잠잠해지면서 남극반도 북부의 섬들이 보였다. 우리는 방한복과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튼튼한 고무 모터보트에 올랐다. 보트는 차가운 바닷물에서 깨진 얼음을 만질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만약 바다에 빠지면 길어야 4분 정도 생존할 수 있다고 한다. 우리는 혹등고래와 펭귄 가까이 다가가 구경할 수 있었지만 멀리 높이 솟은 멋진 빙하엔 접근할 수 없었다. 빙하는 고요히 푸르게 빛나며 유혹하지만 사실 매우 불안정하다. 곧잘 경고 없이 무너져 거대한 조각이 바다로 쏟아져 내린다.

우리가 탄 배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플로러호였다. 스웨덴 여행가 라스-에릭 린드블라드의 아들 스벤 린드블라드가 운영하는 모험여행사 린드블라드 익시피디션에 소속된 여객선이다. 그 배에서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참석한 북극 정상회담도 개최된 적이 있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이끄는 기후변화 단체도 그 여객선을 대여해 남극대륙에서 회의를 개최했다. 요금은 최하 1만2970달러로 상당히 비싸다.

나는 이집트를 여행한 초기 탐험가에 관한 책을 쓴 덕에 그 여객선을 공짜로 탔다. 우리는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최남단 도시 우수아이아로 가서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플로러호에 올랐다. 우리가 탄 배는 비글 해협(찰스 다윈의 탐사선 이름을 땄다)을 따라 케이프혼을 지났다. 승객은 중년의 여행가들과 반백의 부유한 은퇴자들이었다. 한 여성은 산소 마스크를 차고 휠체어에 앉아 지냈다. 일부는 너무 고령이라 흔들리는 배에선 물론 육지에서도 걷기가 힘들 정도였다. 심지어 세 살짜리 여자아이도 함께 탔다.

얼마 전까지 안전 귀환이 보장되지 않았던 곳을 지금은 이처럼 유아와 병약자도 항해할 수 있다. 요즘의 남극 여행은 온수 샤워, 체육관, 사우나, 햇볕이 잘 드는 라운지와 수십 개의 평면 TV를 즐길 수 있다. 와이파이도 갖춰 펭귄이나 빙산 사진을 실시간으로 SNS에 올릴 수 있다. 음식도 매일 호화판으로 제공된다.

그러나 가장 큰 매력은 역설이지만 남극 대륙이 갈수록 연약해진다는 사실에 있다. 초겨울 뉴욕을 떠날 때 날씨는 이상 고온이었다. 평소와 달리 높은 수온의 태평양 해수로 인해 강해진 엔니뇨 현상 때문이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당사국총회(COP21)가 개막됐고 우리가 탄 배에서도 기후변화에 관한 강연이 열렸다. 우리 탐험대의 대장 리자 켈리는 “기후변화가 늘 뉴스에 나오면서 많은 사람이 극지방을 찾는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극지방이 사라지기 전에 그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한다.”
 누가 펭귄 고기 맛을 아는가
필자는 노르웨이 페리를 개조한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플로러호를 타고 남극을 방문했다.
우리의 탐사활동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도록 철저한 감시를 받았다. 아르헨티나에서 항해를 시작하면서 우리는 진공청소기로 먼지를 완전히 제거한 옷과 살균한 부츠 외에는 아무 것도 남극 대륙의 땅에 가져가지 않겠다는 서약서에 서명했다. 간식이나 껌도 금지됐다. 펭귄과 아기 물개에 손을 댈 수도 없었다.

우리는 고무 모터보트를 타고 먼저 하프문섬에 상륙했다. 반사된 햇빛으로 눈 뜨기 힘들었고 새우 껍질이 버려진 뒷골목 같은 펭귄 냄새가 진동했다. 남극에서 처음 보는 펭귄이었다.

과거 좌초한 탐험가들은 펭귄 고기를 먹고 굶주림을 피하고 괴혈병을 예방했다(펭귄 고기에는 비타민C가 많다). 그러나 요즘은 펭귄 고기 맛이 어떤지 아는 사람이 없는 듯하다. 펭귄 고기를 먹었다는 기록은 1960년대 과학탐사에 마지막으로 남아 있다. 20세기 초의 한 작가는 대구 간유, 피로 조리한 오리와 쇠고기 맛과 비슷하다고 묘사했다.

지침에 따르면 펭귄에게 5m 이내로 다가가선 안 된다. 물론 펭귄이 스스로 다가오는 것은 우리 잘못이 아니다. 또 표시된 길로만 다녀야 했다. 길을 벗어나면 눈에 무릎 깊이의 발자국이 남아 펭귄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 그런 세세한 지침은 역설적이기도 하다. 사실 19세기 초 이곳은 물개 사냥터였고 인근 바다에선 1960년대까지 러시아와 일본 포경선이 대형 고래를 22분에 1마리씩 잡았다. 게다가 우리의 발전소와 자동차만이 아니라 빙하와 펭귄 사진을 찍으려 이곳에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태운 제트 연료로 남극대륙의 지구상 최대 빙붕이 녹아가는 상황이다. 그런 건 차치하고 눈에 찍힌 깊은 발자국 구덩이처럼 아주 작은 행동이 환경범죄로 규정되는 것이 불합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미 최남단 케이프혼을 지난 지 사흘 째 우리는 위도 66도 아래(남극권)로 내려갔다. 매일 아침 갈수록 이상해지는 풍경을 만났다. 지구에 속하지만 외계인 듯했다. 노벨상을 받은 미국 생물학자 에드워드 O 윌슨은 저서 ‘생명체의 미래(The Future of Life)’에서 “남극 대륙의 맥머도 드라이 밸리는 돌무더기 가득한 화성의 평원과 흡사하다”고 묘사했다. 남극대륙은 화성처럼 사람이 아예 살 수 없는 곳은 아니지만 거의 비슷하다. 발전기와 난방 시설이 없으면 실제로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다. 식품과 보급품은 여름철에 공급받아 겨울까지 버텨야 한다. 겨울이 되면 그곳에 나갈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남극대륙은 곧잘 우리 눈을 속인다. 새하얀 평야가 끝없이 펼쳐지고 흰 눈과 산봉우리의 흰 구름이 뒤섞여 방향과 거리 감각을 잃기 쉽다. 바다로 나가면 안개 속에서 빙하가 고딕 성이나 스핑크스처럼 갑자기 높다랗게 모습을 드러낸다. 카리브해의 바다색 같은 남극 빙하의 푸른색은 형언할 수 없을 정도로 색조가 너무도 다양하다.

이런 극한 상태의 기이한 영역에서 탐험가들은 희한한 경험을 한다. 섀클턴 일행은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늘 곁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고 기록했다. 그들의 그런 경험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다. 온통 하얀 눈으로 덮인 세상에서 육체적·심리적 곤경이 겹치면 아무리 강한 사람도 헛것을 보게 된다.

2012년 영국의 극지방 탐험가 펠리시티 애스턴은 여성 최초로 홀로 스키를 타고 남극 대륙을 횡단했다. 63일 동안 혼자 지내는 동안 그녀는 태양과 대화했다. 저서 ‘세상의 끝에 혼자 서다(Call of the White)’에서 그녀는 ‘내 마음과 내 감각에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이 가장 두려웠다’고 썼다. 나중에 그녀는 스포츠 심리학자에게 정신이상이 아닌가 물었지만 무엇이 실제이고 실제가 아닌지 안다면 괜찮다는 답을 들었다. 기후과학자이기도 한 애스턴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자아지각에는 여러 층이 있다. 뇌가 얼마나 복잡한지 깨달았다.”
 사라지는 펭귄 서식처
내셔널 지오그래픽 익스플로러호의 승객들은 남극대륙 부근의 섬에서 눈 위를 걷는 체험을 했다.
요즘은 레이더, 음파탐지기, 위성사진 같은 과학기술 덕분에 선장과 선원은 얼음의 이동을 예측할 수 있다. 따라서 소위 남극으로 ‘탐험’을 떠난 관광객은 예전의 탐험가들이 직면했던 어려움을 거의 겪지 않는다.

물론 지금도 저돌적이고 무모한 사람들이 남극대륙을 찾는다. 예를 들어 세계 7대륙의 최고봉 전부를 정복하려는 등반가들이 있다. 그들은 남극대륙에서 가장 높은 빈슨 매시프(4892m)에 오르는 허가를 받으려고 수 년을 기다린다. 그 기슭에 가는 비행기 요금만 2만8000달러다.

그러나 섀클턴 원정대의 정신을 가장 철저히 따르는 현대의 남극대륙 탐험가들은 과학자들이다. 미국 국립과학재단은 남극대륙에 미국 기지 3곳을 운영한다. 다른 30개국도 70여 곳의 연구기지를 운영한다. 여름철엔 남극 연구기지에서 약 4000명이 일한다. 그중 1000명은 그곳에서 겨울을 난다. 4개월 동안 거의 깜깜한 가운데 발전기를 돌리며 거센 바람과 눈폭풍을 견뎌낸다. 오지의 현장 캠프에서 일하는 과학자는 어느 계절이든 위태로운 상황에 처한다. 보급품을 실은 비행기가 폭풍을 만나 착륙하지 못하거나 눈에 덮여 보이지 않는 크레바스에 빠질 수도 있다. 그처럼 감춰진 깊은 구덩이 때문에 걸어다니기조차 위험하다.

새로운 생명체를 찾으려고 카메라를 들고 매일 차가운 바다 속으로 뛰어드는 해양학자도 있다. 미국 오리건주 출신 앨리사 애들러(26)는 “바다 속에서 나는 사람이 아니라 이물질 속으로 들어가는 물건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최대 잠수 시간 45분이 넘거나 견디기 힘들 때 배로 올라가면 손이 얼어 뻣뻣해지고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다리가 차가운 나무토막처럼 느껴진다.”

남극해 속에서 살아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2003년 바다표범이 기지 근처 바다에서 얼음을 연구하던 과학자를 73m 아래로 끌고 갔다가 동료들 앞에서 먹으려고 시신을 수면으로 물고 올라왔다. 그처럼 이곳에선 늘 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

남극에 국기를 꽂으려고 경쟁하는 탐험가처럼 요즘 남극대륙으로 가는 과학자도 경쟁심이 강하다. 그러나 그들의 목표는 사뭇 다르다. 남극연구과학위원회(SCAR)는 최근 기후변화를 최우선 연구 과제로 선정했다. 그들은 인간의 화석연료 소비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산업혁명 당시 연간 2억t에서 현재 270억t으로 늘어난 데 따른 얼음의 행동을 이해하고 예측하려 애쓴다.

지구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려는 가장 인상적인 노력 중 하나는 얼음 코어링(ice coring, 구멍을 뚫어 빙핵을 채취해 분석하는 방법) 프로젝트다. 과학자들은 빙하 정상 중 하나인 돔C에서 3.2㎞ 깊이로 구멍을 뚫어 80만 년 전의 대기 샘플이 든 기포를 채취했다. 이런 고대 기포를 분석해 그 위의 모든 얼음에서 나온 대기 샘플과 비교한 결과 지금처럼 지구 대기에 탄소가 많은 적은 없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지금이 전례 없는 지구온난화와 기후패턴 변화의 시기라는 뜻이다.

이런 기후변화는 세계 어느 곳보다 남극대륙에 더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이곳에서 며칠 지낸다고 지구온난화가 진행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긴 어렵다. 우리 일행 중 한 남자는 기후변화가 헛소리라고 주장하는 미국 극우 방송인 러시 림보에게 “남극대륙은 여전히 매우 춥다”고 알리겠다는 농담을 했다. 그러나 이곳의 동물 행동이 이미 달라지고 있다. 일부 동물은 더 차가운 바닷물을 찾아 과거보다 훨씬 남쪽으로 이동했다. 일부 펭귄 서식처는 사라졌다. 또 지난해 가을 과학자들은 남극대륙 서부의 얼음이 완전히 녹으면 해수면이 몇 세기 안에 약 3m 상승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남극대륙의 98%는 빙하에 덮여 있다. 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수㎞ 두께의 얼음이 방대한 지역을 뒤덮고 있다. 지구에는 빙상이 두 개다. 하나는 남극대륙, 다른 하나는 그린란드에 있다. 그린란드의 빙상은 매년 여름 80%가 녹고 있지만 남극대륙의 빙상은 그처럼 눈에 띄게 빨리 녹지 않는다.

지난해 11월 과학자들은 그린란드 동북부의 자카리 빙하가 녹으면서 서부 야콥스하븐 빙하에 이어 두 번째 ‘수문’이 열릴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제 남극대륙이 그 다음 차례가 될 듯하다. 과학자들은 남극대륙 서부 해안에서 취약한 부분을 발견했다. 지구온난화로 수온이 높아진 그 지역의 해수가 빙하 아래를 서서히 녹이고 있다.

오랜 세월 쌓인 얼음의 무게로 남극대륙의 땅은 해수면 아래로 내려 앉았다. 현재 대륙붕 하나가 거대한 스웨이트 빙하를 떠받치고 있다. 남극대륙 빙상 서부의 ‘가장 취약한 부분’으로 불리는 빙하다.

스웨이트 빙하가 녹으면서 대륙붕에서 서서히 이탈하기 시작했다. 컴퓨터 모델에 따르면 빙하가 대륙붕 뒤로 밀려나면 평소보다 따뜻한 해수가 그 아래와 주변으로 흘러들어 빙하를 안쪽부터 녹인다. 그럴 경우 스웨이트 빙하와 어쩌면 그 뒤에 있는 남극대륙 빙상의 서부 전체가 바다 속으로 미끄러져 들어갈 수 있다.과학자들은 그런 일이 반드시 일어난다고 본다. 다만 그 시기를 모를 뿐이다. 남극대륙에서 가장 시급한 일은 이런 재앙적인 빙하 용해가 오랜 시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될지 아니면 그 시기가 몇 십 년 내로 단축될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 결과는 지구상의 모든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특히 해안 지역에 거주하는 수억 명에겐 너무도 시급한 문제다. 해수면 상승과 해안지역 홍수로 기반시설과 산업이 입는 피해가 2100년이 되면 연간 100조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19∼20세기에 황제펭귄 사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지만 1969년 포획금지령으로 다시 개체수가 불어났다.
전문가가 아닌 우리들에겐 드레이크 해협에서 바닷물 외에는 거의 볼 게 없다. 한번은 우리 배에 탄 박물학자가 머리 위에 나는 거대한 새를 가리켰다. 앨버트로스(신천옹)였다. 펼친 날개 길이가 3.6m인 앨버트로스는 날개짓 없이 하루 1000㎞를 활공할 수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즉시 떠오른 생각이 ‘자신의 목에 걸쳐 있는 죽은 앨버트로스(an albatross around his neck)’란 표현이었다. 지은 죄 때문에 평생 짊어져야 할 짐이라는 뜻이다. 영국 시인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1798년 쓴 시 ‘늙은 선원의 노래(The Rime of the Ancient Mariner)’에서 따온 표현이다.

그 시에서 늙은 선원은 결혼식 하객인 한 젊은이에게 기이하고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 놓는다. 그는 항해하면서 배가 항로를 벗어나 얼음의 땅 가까이로 표류했다고 말한다. 바로 남극대륙이다. 머리 위에 앨버트로스가 날자 그 선원은 그냥 재미 삼아 석궁으로 그 새를 쏘아 떨어뜨린다. 즉시 배에 불행이 닥친다. 식수가 떨어지고 배가 오도가도 못한다. 동료 선원들은 앨버트로스를 죽여 불운이 닥쳤다고 그를 탓한다.

동료들은 죽은 앨버트로스를 그 선원의 목에 매단다. 숨길 수 없는 죄를 지었다는 표시다. 시인 콜리지는 남극대륙이 탐험되지 않은 시기에 그 시를 썼다. 그러나 그때 이미 인류는 문명의 이름 아래 남극 부근의 천연자원을 활용하기 시작했다. 포경과 물개 사냥으로 남극 지방의 바다 포유류가 거의 멸종하는 과정이 그때부터 시작됐다.

콜리지의 시에서 저승사자는 선원들의 영혼을 가져가기 위해 주사위를 던진다. 매번 저승사자가 이기지만 한 번은 예외다. 동료들은 모두 죽지만 늙은 선원은 배에 홀로 남아 끈적끈적하고 혐오스런 바다 동물에 둘러싸여 ‘삶 속의 죽음’을 형벌로 받는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는 그 징그러운 동물을 아름답게 보고 좋아하게 된다. 정신적·육체적으로 구원 받은 그 선원은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는 깨달음으로 세계를 다니며 지구와 지구상의 모든 동식물을 돌봐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200여 년이 지난 지금 남극대륙을 방문한 사람들은 같은 메시지를 갖고 고국으로 돌아간다. 미생물학자로 SCAR 회장인 제니 베즈만은 “무엇보다 남극대륙 체험은 삶을 보는 시각을 바꿔놓는다”고 말했다. “남극대륙에서 연구하면서 과학이 실험실에서 하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런 연구를 더 사랑하고 뭔가를 되돌려주고 사람들에게 내게 배운 것을 전하고 싶어졌다.”

나는 남극대륙의 장관을 보며 초현실적인 꿈의 여행이라고 느꼈다. 어느 날 오후 우리는 연구기지에서 멀지 않은 한 만(灣)까지 걸어 갔다. 작고 큰 빙산이 떠 있는 잔잔한 검은 바다 위에 사방으로 하얀 크림에 덮인 수많은 봉우리가 비쳤다. 그러나 무엇보다 녹아가는 장대한 남극대륙은 아무 말이 없는 가운데 ‘늙은 선원의 노래’ 마지막 부분처럼 중대한 절박성을 증언했다.



사람도 새도 짐승도 전부 사랑하는 사람

그가 기도를 잘하는 사람이다.

큰 것이나 작은 것이나 모든 것을

가장 잘 사랑하는 사람,

그가 기도도 잘한다.

우리를 사랑하는 신은

만물을 창조하셨고, 만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 니나 벌리 뉴스위크 객원 기자
 [박스기사] 고지가 바로 저긴데… - 단신으로 남극대륙 횡단에 도전한 영국인 헨리 워슬리, 탈진과 복막염으로 숨져
워슬리가 홀로 남극대륙 횡단 중 SNS에 올린 사진.
남극대륙 1600㎞ 최초 솔로 트레킹에 나섰던 영국인 탐험가 헨리 워슬리(55)가 목표지점을 약 50㎞ 앞두고 탈진 상태로 후송됐지만 결국 지난 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영국 육군 장교 출신인 워슬리는 어니스트 섀클턴의 남극대륙 횡단 시도 100주년 기념으로 어떤 지원도 없이 무동력으로 단독 원정에 착수했다. 그는 구조를 요청했을 때 체력 고갈과 탈수증으로 완전히 탈진 상태였다. 지난 23일 남극의 항공과 운송을 담당하는 업체 ALE에 의해 구조된 그는 칠레 푼타 아레나스의 병원으로 후송됐다. 복부 내부의 조직 감염증인 세균성 복막염 진단을 받고 수술 받았지만 다음날 사망했다.

그의 웹사이트 ‘섀클턴 솔로’에 게재된 성명서는 ‘헨리 워슬리가 칠레 푼타 아레나스의 병원에서 2016년 1월 24일 사망했다’고 공식 확인했다.

워슬리가 남극대륙에서 마지막으로 웹사이트에 올린 글엔 트렉 포기에 대한 좌절감이 깊게 배어 있다. “나 홀로 71일 동안 1500㎞ 넘게 이동했다. 점차 줄어들던 지구력이 오늘 마침내 한계에 도달했다. 매우 슬프지만 목표를 코앞에 둔 지점에서 탐험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많은 산악인이 정상을 앞두고 실패한다. 내 정상도 내 힘이 미치지 않는 곳에 있다.”

워슬리는 지난해 11월 13일 남극대륙 북서쪽 끝인 버크너섬에서 트렉을 시작했다. 섀클턴은 1914년 남극 탐험을 떠났지만 다음해 배가 얼음에 좌초하면서 그와 선원들은 유빙 위에서 16개월 동안 지내야 했다.

워슬리는 섀클턴에 깊은 감명을 받아 그에 대한 책을 쓰기도 했다. 또 그는 이번 도전을 계기로 퇴역 상이군인을 위한 기금 11만4000파운드를 모금했다.

워슬리의 ‘섀클턴 솔로 원정’ 후원자인 윌리엄 왕세손은 “해리 왕자와 나는 워슬리의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며 “위대한 용기와 투지를 보여준 그와 인연을 맺었다는 사실이 매우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극 여행 중 워슬리를 만난 적이 있다는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도 “워슬리를 잃은 슬픔을 표현할 길이 없다”며 페이스북에 애도의 글을 남겼다. 섀클턴의 손녀 알렉산드라도 “매우 슬픈 날이며 탐험계의 큰 손실”이라며 워슬리를 추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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