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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균의 ‘푸드백신’② 감기 예방·치료 식품] 치킨 수프는 ‘유대인의 페니실린’

[박태균의 ‘푸드백신’② 감기 예방·치료 식품] 치킨 수프는 ‘유대인의 페니실린’

대기업 임원인 50대 초반의 L씨. 지난 연말 인사고과 등 신경 쓰이는 일이 많아서인지 한동안 몸이 영 신통치 않았다. 컨디션 회복을 위해 술자리와 모임도 자제해오던 터였다. 역대급 한파가 몰아친 날, 거래처 사장의 모친상만은 빠질 도리가 없었다. 소주 반 병을 마시고 자정쯤 귀가했는데 밤부터 조짐이 나빴다. 역시나. 아침에 일어나자 콧물이 나기 시작하더니 오후 들어선 너무 훌쩍거려 코가 아플 정도였다. 전업주부인 L씨의 아내는 “날씨 추울 때 돌아다니더니 임자 만났네”라며 속을 뒤집어 놓았다.

몸살 기운에 열까지 나는데 콩나물국 대신 잔소리를 들은 L씨는 “감기가 춥다고 걸리냐”며 아내의 ‘무식함’을 살짝 꼬집었다. 심사가 꼬여 “당신도 한 번 고생해봐야지…”라고 잠시 생각한 L씨는 옆에서 잠든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감기는 불결한 문고리 등 콘택(contac)하면 걸리는 거잖아? 전에 ‘콘택 600’이란 약도 있었고….”

감기 환자와 콘택한 아내는 하지만 여전히 쌩쌩하다. 대학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했지만 아직도 독감을 ‘독한 감기’로 오인하는 아내에게 L씨는 “혼자 몰래 감기를 몰아내는 비방이라도 갖고 있는 거야”라고 슬쩍 물었다. “비방은 무슨 비방? 당신 몸이 부실한 거지!”라고 쏘아 붙인 아내는 돌아 서서 혼잣말로 “삼(蔘)이라도 달여야 할 것 같다”고 중얼거렸다.

사실 아내가 아는 비방이 하나 있긴 하다. ‘치킨 수프(chic ken soup)’다. 서양에선 수 세기 동안 감기 치료에 치킨 수프를 사용했다는 말을 우연히 들은 L씨의 아내는 가끔씩 이 비법을 활용하고 있다. 12세기 이집트에 살던 유태인 의사가 치킨 수프 처방을 처음 내렸다는 말이 전해진다. 치킨 수프를 ‘유대인의 페니실린(Jewish penicillin)’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래서다. 수프의 액체가 감기나 독감 바이러스를 내쫓고 염증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수프 속의 어떤 성분이 감기 예방·치료를 돕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서양에선 치킨 수프를 만들 때 고구마·파슬리·당근·마늘·생강·후추·소금 등을 주로 사용한다. 마늘·양파·부추·리크(leeks)·생강 등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없애는 효과가 기대되는 채소다.

 설탕물·꿀물도 감기 완화에 도움
귤 등 비타민 C가 풍부한 식품도 감기 예방·치료에 유용할 수 있다. 감기에 대한 비타민 C의 효과에 대해선 양론이 있다. 비타민 C가 감기를 예방하고 증상의 지속 기간을 단축 시킨다는 것은 노벨상을 두 번 받은 미국의 과학자 라이너스 폴링이 30여 년 전 [비타민 C와 감기]란 저서를 통해 처음 제기했다. 연구논문 21건을 분석한 결과 하루 1∼8g의 비타민 C 복용으로 감기 증상을 평균 23% 낮췄다는 결과도 이를 뒷받침한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한 비타민 C의 하루 섭취 권장량 100㎎보다 10∼80배나 많은 양이다. 감기에 걸리면 스웨덴인은 산딸기·블루베리, 러시아인은 딸기를 즐겨 먹는데 이런 과일엔 비타민 C가 풍부하다. 감기에 걸린 사람이 귤·고추·브로콜리·토마토·키위·딸기 등 비타민 C가 많이 함유된 식품을 즐겨 먹는 것은 절대 손해 볼 일이 아니다. 다만, 의료계엔 비타민 C의 섭취와 감기·독감이 별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는 학자가 더 많다.

유럽에선 감기 증세가 있으면 항생제나 ‘타이레놀’ 대신 ‘가새풀(에키나시아)’이란 허브의 뿌리를 흔히 처방한다. 가새풀은 북미가 원산지인 국화과 식물로, 별명이 ‘자연의 항생제’다. 감기 바이러스를 죽일 순 없지만 우리 몸의 면역력을 높여서 감기 치료를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코네티컷대학 연구진은 14개의 연구결과를 검토한 결과 가새풀이 감기 위험을 58%까지 낮춰주고 감기의 지속기간을 단축시킨다고 2007년 발표했다.

호주에선 감기 치료에 ‘유칼립투스’란 허브를 이용한다. 코알라의 주식인 유칼립투스의 잎에선 톡 쏘는 듯한 향기가 난다. 잎에서 채취한 오일은 감기 환자를 위한 향기요법(아로마테라피)에도 유용하다. 유칼립투스의 잎을 뜨거운 수건으로 감싼 뒤 감기 환자의 윗쪽 가슴을 마사지하면 숨쉬기가 한결 편안해진다. 일본에선 감기 환자의 가슴이나 등에 겨자 찜질팩을 한다. 찜질팩을 하면 혈액이 팩을 올려놓은 부위에 몰리면서 가슴이나 등에서 화끈한 느낌이 퍼진다. 이때 뭉친 혈이 풀리고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면서 감기 증세가 가벼워진다.

설탕물이나 꿀물도 감기 완화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에티오피아인은 벌꿀을 넣은 레몬즙, 홍콩 사람은 흑설탕을 넣은 차를 마셔 당분을 보충한다. 생수나 맹물도 충분히 마시는 것이 좋다. 탈수가 일어나면 호흡기에 감기 바이러스가 증식하기 쉬운 환경이 조성되기 때문이다. 뜨거운 물을 마시는 것도 방법이다. 수증기가 나는 뜨거운 물이 비강·인후 등에 남아 있던 감기 바이러스를 위(胃)로 내려 보낸다.

 한방에서 술은 ‘감기의 적’
감기 치료를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도 있지만 이에 대해서도 찬반양론이 있다. 프랑스에선 감기 환자에게 와인(포도주)을 권한다. 적포도주에 계피·오렌지 등을 넣어서 끓인 뱅쇼(vin chaud)가 감기 완화에 효과적이라고 봐서다. 포르투갈에선 뜨거운 우유·레몬즙·계피를 넣은 브랜디를 감기 환자에게 제공한다. 일본인은 감기 기운이 있으면 뜨겁게 데운 정종에 날 달걀을 푼 ‘계란술’을 마신다. 스코틀랜드인은 위스키에 뜨거운 물, 꿀, 레몬 한 조각을 넣어 마신다. 국내에선 감기 환자가 소주를 마시는 광경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 선조는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콩나물국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셨다.

한방에선 술을 ‘감기의 적’으로 간주한다. 땀을 내서 몸속의 나쁜 기운을 없애는 한법(汗法)이 한방에서 흔히 사용하는 감기 치료법이다. 감기 환자가 소주를 마시거나 사우나에 가서 땀을 내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고 본다. 땀구멍이 열려서 한기가 더 심하게 든다는 이유에서다. 한방에선 또 감기 기운이 있을 때 생선, 육류, 찬 물을 먹는 것도 금기시한다. 섭취하면 몸 안에 열이 더 많아져 증상이 심해지고 몸에 가려움증도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감기 환자에게 추천할 만한 약차는 오미자차·오과차·생강차다. 오미자는 약성이 따뜻하다. 오미자차는 6컵 분량의 물에 오미자 한줌을 넣고 색이 붉게 우러나올 때까지 끓이면 완성된다. 오미자차는 건조해진 폐를 적셔 주고 폐 기운을 북돋아 감기 치료를 돕는다. 오과차에는 은행·대추·밤·생강·호두 등 5가지 식품이 들어간다. 즐겨 마시면 면역력이 강화돼 감기나 추위를 타는 병에 잘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린이의 입맛에도 잘 맞아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다는 것이 장점이다.

생강은 맛이 매워서 몸에 땀이 나게 하고 열을 내려준다. 생강차는 몸을 따뜻하게 해서 감기의 초기 증상을 완화한다. 매운 생강 약 10g을 잘 씻어서 강판에 간 뒤 이를 거즈에 싸서 생강즙을 낸다. 이 생강즙을 따뜻한 물 100㎖에 부으면 1잔의 생강차가 완성된다. 평소 몸이 차거나 겨울에 감기를 달고 사는 사람에겐 생강·인삼·계피차가 추천된다. 이 차는 물 한 사발에 인삼 8g, 생강 4g, 계피 4g을 넣고 끓인 뒤 꿀 한 숟가락을 넣어 만든다.

박태균 - 식품의약칼럼니스트이자 중앙대 의약식품대학원 겸임교수다. 한국 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 회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공중보건학)를 받고 중앙일보에서 식품의약전문기자로 일했다. [먹으면 좋은 식품, 먹어야 사는 식품] [내 몸을 살리는 곡물, 과일 채소] [우리 고기 좀 먹어볼까?] 등 9권의 저서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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