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가구 만드는 신명산업 김풍호 대표] 중소기업 살 길은 변신 또 변신
[명품 가구 만드는 신명산업 김풍호 대표] 중소기업 살 길은 변신 또 변신
지안프랑코 로띠는 지난해 12월 서울 청담동 명품거리에 문을 연 가죽 전문 브랜드다. 이탈리아 가죽장인 지안프랑코 로띠가 1968년 피렌체에서 설립했다. 열네 살에 피렌체 공방에서 일을 시작한 로띠는 70세가 넘은 지금도 직접 작업에 참여할 정도로 열정적이다. 수작업으로 최고급 가죽을 사용해 고급 여성용 백을 만든다. 개인별 맞춤제작 서비스인 ‘원 피스 온리’ 제품으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이탈리아 명품 가방을 한국에 들여온 파트너는 신명산업이다. 명품 가구를 생산해온 강소기업이다. 김풍호 신명산업 대표가 적극적으로 사업을 진행했다. 그는 이탈리아 가구 업계와 다양한 교류를 해왔다. 글로벌 가구산업 트렌드를 읽고 유명 디자이너에게 가구 디자인을 맡기기 위해서다. 4년 전 피렌체로 출장을 갔을 때 그의 눈에 독특한 디자인을 가진 건물이 들어왔다. 어떤 곳인지 호기심에 들어가 살펴본 곳이 바로 지안프랑코 로띠의 매장이었다. 김 대표는 전시된 제품에 푹 빠졌다. 하나같이 정성이 가득했다. 겉만 화려한 제품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피지 않는 제품 안쪽 구석 마감도 더 없이 촘촘하게 마무리했다. 김 대표는 투철한 장인정신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그는 “누가 만들었는지 궁금해서 곧장 공방을 찾아갔다”며 “처음엔 만나 주지도 않았지만 시간을 가지고 여러 번 찾아가자 결국 지안프랑코 로띠를 만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명산업은 지난해 직원 200명이 매출 700억원을 올린 중소기업이다. 주로 고급 가구를 만들어왔는데 최근 명품 가방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가구는 건설업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그는 늘 사업을 다각화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고급 가구를 판매하며 쌓은 유통 경험도 있다. 김 대표는 “분야는 다르지만 가방과 가구 모두 정성을 다해 만든 제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정성이 담긴 제품이기에 한국에서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2년 간 가구 기업을 이끌어왔다. 첫 직장은 가구 회사였다. 가구를 만들며 일을 배우던 중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1985년 스메트 가구를 설립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경기도 변두리 양계장 터에 자리잡은 회사에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오전 7시까지 혼자서 재무제표를 정리한 다음 아침 먹고 직원 7명과 함께 가구를 만들었다. 오후엔 2.5t 타이탄 트럭에 가구를 싣고 전국을 돌았다.
주력 상품은 대만산 옥돌로 장식한 고급 장롱이었다. 옥돌에 매·난·국·죽 문형을 새겼는데 부잣집에 많이 들어갔다. 1988년엔 아동용 가구를 만들었다. 역시 고급품이었다. 장롱에 88자와 오륜기, 호돌이 모양을 새겨 넣었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영세 가구 업체였지만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고객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막 자리를 잡을 무렵 그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벌어졌다. 품질이 발목을 잡았다. 주문이 늘자 직원이 마감 작업을 못한 제품을 그냥 판매했다. 항의가 들어왔고 실수를 확인한 다음 전량 반품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주의했지만 여전히 빈틈이 있었다”며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보수적인 경영을 하며 품질에 힘을 기울이자 회사는 다시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했다. 가구산업은 경기뿐만 아니라 계절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1~2월엔 학생용 가구, 3월 지나면 혼수용, 가을 이사철엔 탁상과 장롱이 많이 나간다. 중소 가구 기업 대부분이 계절에 맞춰 가구를 준비한다. 신명산업도 같은 패턴으로 가구를 만들었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자칫 시장을 잘못 예측하면 중소기업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는다. 그는 고급화에 집중하며 수요가 늘고 있던 특판사업에 주목했다. 2000년 회사 이름을 신명산업으로 변경했다. 고급 가구 브랜드 ‘나폴디자인가구’ 상표를 등록하고 고급 빌라와 아파트용 빌트인 가구 시장에도 진출했다. 살 길을 찾아 시장을 살피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대기업 납품 길이 열린 것이다.
당시 대형 건설사들은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내놓고 있었다. 브랜드에 걸맞은 고급 빌트인 가구 수요가 늘었다. 어느 날 삼성물산 래미안 관계자가 김 대표를 찾아왔다. 사업 협력을 위해서다. 그는 래미안에 적합한 빌트인 가구 업체를 찾던 중 나폴디자인가구 전시장을 방문했다. 작지만 실력있는 기업이란 평가가 나오자 직접 찾아온 것이다. “삼성과 아무런 연줄도 없었는데 기회가 생겼습니다. 매일 현장에 나가 일했습니다. 공사 마칠 무렵 삼성 현장소장이 대림산업 지인에게 저희를 추천했습니다. 대림산업에도 납품에 길이 열린 거죠.”
2003년 대림산업 빌트인 가구 입찰에 응모한 기업은 60여 곳에 달한다. 20곳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2차 심사에서 6곳이 남았다. 신명산업과 다른 기업 한 곳만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 대림산업에 납품하던 업체 한 곳이 부도나며 새로운 업체가 납품을 시작했다. 수년 후 이곳이 또 탈이 나자 대림산업은 아예 신명산업에게만 빌트인 가구를 주문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선을 다해 요구한 모든 내역을 그대로 지켜온 덕에 10년 넘게 대기업에 납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명산업이 빌트인 가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대림산업·삼호·한신공영·고려개발이 있다.
고급 가구를 제조하며 환경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신명산업은 독일산 친환경 목재를 사용한다. 자원과 에너지를 절약하고 환경오염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ISO 9001 규격에 맞는 가구 제조 공정을 운영하고 있다. 연구·개발(R&D)을 위해 환경 연구소도 차렸다. 2012년 9월 기업부설연구소인 신명융합기술연구소를 설립했다. 연구소에선 목재폐기물 같은 유기성 폐자원을 이용한 고형연료 생산기술을 R&D한다. 2013년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녹색기술연구센터와 공동연구를 시작했다. 인천에 있는 수도권 매립지 내부에 폐자원 재처리 시설도 만들었다. 폐기물에서 에너지로 사용할 수 있는 원료를 추출한 다음, 남은 페기물은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처리하는 방법을 연구한다.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엔 환경보전 분야 대통령 표창, 2015년엔 녹색산업 분야 환경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김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 중이다. 지안프랑코 로띠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도 같다. 경기에 관계없이, 구조조정 없이 기업을 꾸려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변화다. 그는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드리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직과 성실이라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기업을 키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1985년 양계장 터에서 사업 시작
신명산업은 지난해 직원 200명이 매출 700억원을 올린 중소기업이다. 주로 고급 가구를 만들어왔는데 최근 명품 가방으로 사업영역을 넓혔다. 가구는 건설업 경기에 영향을 많이 받는 업종이다. 그는 늘 사업을 다각화 할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 고급 가구를 판매하며 쌓은 유통 경험도 있다. 김 대표는 “분야는 다르지만 가방과 가구 모두 정성을 다해 만든 제품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며 “정성이 담긴 제품이기에 한국에서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32년 간 가구 기업을 이끌어왔다. 첫 직장은 가구 회사였다. 가구를 만들며 일을 배우던 중 더 좋은 제품을 만들고 싶어 1985년 스메트 가구를 설립했다. 환경은 열악했지만 의욕이 넘치던 시절이었다. 경기도 변두리 양계장 터에 자리잡은 회사에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했다. 오전 7시까지 혼자서 재무제표를 정리한 다음 아침 먹고 직원 7명과 함께 가구를 만들었다. 오후엔 2.5t 타이탄 트럭에 가구를 싣고 전국을 돌았다.
주력 상품은 대만산 옥돌로 장식한 고급 장롱이었다. 옥돌에 매·난·국·죽 문형을 새겼는데 부잣집에 많이 들어갔다. 1988년엔 아동용 가구를 만들었다. 역시 고급품이었다. 장롱에 88자와 오륜기, 호돌이 모양을 새겨 넣었는데 큰 인기를 끌었다. “영세 가구 업체였지만 하나를 만들어도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야 고객 앞에서 당당할 수 있고 스스로에게도 부끄럽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사가 막 자리를 잡을 무렵 그의 경영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 벌어졌다. 품질이 발목을 잡았다. 주문이 늘자 직원이 마감 작업을 못한 제품을 그냥 판매했다. 항의가 들어왔고 실수를 확인한 다음 전량 반품했다. 김 대표는 “그렇게 주의했지만 여전히 빈틈이 있었다”며 “몸집을 불리기보다는 내실을 중시하는 쪽으로 사업 방향을 잡는 계기가 됐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보수적인 경영을 하며 품질에 힘을 기울이자 회사는 다시 꾸준히 성장했다. 하지만 김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했다. 가구산업은 경기뿐만 아니라 계절의 영향도 많이 받는다. 1~2월엔 학생용 가구, 3월 지나면 혼수용, 가을 이사철엔 탁상과 장롱이 많이 나간다. 중소 가구 기업 대부분이 계절에 맞춰 가구를 준비한다. 신명산업도 같은 패턴으로 가구를 만들었지만 변화가 필요했다. 자칫 시장을 잘못 예측하면 중소기업으로선 감당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는다. 그는 고급화에 집중하며 수요가 늘고 있던 특판사업에 주목했다. 2000년 회사 이름을 신명산업으로 변경했다. 고급 가구 브랜드 ‘나폴디자인가구’ 상표를 등록하고 고급 빌라와 아파트용 빌트인 가구 시장에도 진출했다. 살 길을 찾아 시장을 살피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대기업 납품 길이 열린 것이다.
당시 대형 건설사들은 고급 아파트 브랜드를 내놓고 있었다. 브랜드에 걸맞은 고급 빌트인 가구 수요가 늘었다. 어느 날 삼성물산 래미안 관계자가 김 대표를 찾아왔다. 사업 협력을 위해서다. 그는 래미안에 적합한 빌트인 가구 업체를 찾던 중 나폴디자인가구 전시장을 방문했다. 작지만 실력있는 기업이란 평가가 나오자 직접 찾아온 것이다. “삼성과 아무런 연줄도 없었는데 기회가 생겼습니다. 매일 현장에 나가 일했습니다. 공사 마칠 무렵 삼성 현장소장이 대림산업 지인에게 저희를 추천했습니다. 대림산업에도 납품에 길이 열린 거죠.”
2003년 대림산업 빌트인 가구 입찰에 응모한 기업은 60여 곳에 달한다. 20곳이 1차 심사를 통과했다. 2차 심사에서 6곳이 남았다. 신명산업과 다른 기업 한 곳만 최종 심사를 통과했다. 대림산업에 납품하던 업체 한 곳이 부도나며 새로운 업체가 납품을 시작했다. 수년 후 이곳이 또 탈이 나자 대림산업은 아예 신명산업에게만 빌트인 가구를 주문하고 있다. 김 대표는 “최선을 다해 요구한 모든 내역을 그대로 지켜온 덕에 10년 넘게 대기업에 납품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명산업이 빌트인 가구를 공급하는 기업으로 대림산업·삼호·한신공영·고려개발이 있다.
친환경 기술 개발에도 매진
김 대표는 여전히 새로운 성장동력을 고민 중이다. 지안프랑코 로띠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 이유도 같다. 경기에 관계없이, 구조조정 없이 기업을 꾸려가기 위해서 꼭 필요한 변화다. 그는 “고객에게 최고의 제품을 드리기 위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다면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직과 성실이라는 경영 철학을 가지고 기업을 키워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 조용탁 기자 yt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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