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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휘어잡은 우먼파워

할리우드 휘어잡은 우먼파워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지난 2월 28일 제88회 아카데미상 수상작이 모두 발표됐다. 그러나 논란 많은 그 시상식이 열리기 전부터 다양성 결여를 둘러싼 비판이 사방에서 빗발쳤지만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영화의 과반수(‘브루클린’ ‘룸’ 그리고 은근히 페미니스적인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는 예외)가 88년 연속으로 난관을 극복하는 남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올해도 예외가 아니었다. 월스트리트의 투기꾼과 책략가 이야기(‘빅 쇼트’), 정장 차림의 직장인에서 변신한 스파이들(‘스파이 브릿지’), 화성에서의 삶을 모색하는 남자들(‘마션’), 카페인에 찌들고 수면부족에 시달리며 시스템 전반적인 부조리를 파헤치는 (주로 남자) 기자들을 다룬 올해 작품상 수상작 ‘스포트라이트. 또는 황야에서 피투성이의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가 곰에게 공격당하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그래도 곰은 암컷이다).

그렇다고 모든 작품상 수상작에서 여성이 주인공을 맡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옷을 벗지 않은 여성이 주인공을 맡고, 스토리를 이끌거나, 남성 중심적인 줄거리에 양념 치는 역할로 나오지 않는 영화는 극히 드물다. 뉴스위크가 그 숫자를 헤아려봤다. 그것은 디캐프리오가 오랫동안 고대하던 아카데미상을 움켜쥐기 위해 구덩이에서 기어 나오려 애쓰는 모습보다 더 애처로웠다.

그렇다면 역사적으로 여성이 권력을 갖거나 난관을 극복하는 내용을 그린 작품상 수상작 영화가 있을까? 뉴스위크가 조사한 바로는 14편이었다.

 밀리언 달러 베이비(2005)
영화 데이터베이스 사이트 IMDB는 할리우드 베테랑 클린트 이스트우드를 가리켜 ‘마초 영화 스타의 아이콘’으로 칭송했다. 그는 여성을 내세운 고난극복 스토리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미증유의 도약을 이뤘다. 힐러리 스웽크가 프로에 뛰어들려 안간힘을 쓰는 아마추어 복서 매기 피츠제럴드를 연기한다. 노장 트레이너 프랭키 던(이스트우드)에게 자신의 재능을 입증해야 한다. 이는 모든 여성을 대변하는 승리의 스토리이자 남성 중심적인 영화 ‘에비에이터’ ‘레이’ ‘사이드웨이’ ‘네버랜드를 찾아서’를 제치고 그해 작품상을 수상한 보편적인 스토리다.
 시카고(2003
시카고(2003)
섹스·살인·탈옥이 횡행하는 스토리의 2002년작 뮤지컬 ‘시카고’는 다음해 아카데미상을 휩쓸었다. 그러나 실제로 ‘시카고’를 이끌어간 사람들은 여성들이다. 인기에 목마른 댄서 록시와 살인을 하는 나이트클럽 가수 벨마 켈리 역을 각각 맡은 르네 젤위거와 캐서린 제타 존스다. 선정적이고 탁월한 퀸 라티파가 연기한 간수 마마 모턴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이 뮤지컬 각색 영화에서 이들 3명은 활기차게 무대 위를 걷고 노래 부르고 춤추며 복수하고 경의를 표한다. 변호사 역을 맡은 리처드 기어는 이들 3명의 발끝도 따라가지 못한다.
 타이타닉(1998)
타이타닉(1998)
영화 ‘타이타닉’이 미국에서만 개봉 첫 주말 2863만8131달러를 낚아 올리며 미국 영화계를 항해한 지 근 20년이 지난 지금도 잭과 로즈의 슬픈 연가는 살아 있다. 그러나 영화가 지금껏 우리 마음 속에 남아 있는 것은 차분하고 강한 로즈 역을 맡은 케이트 윈슬렛이 보여준 연기의 힘이었다. 로즈는 빠르게 가라앉는 배에서 귀족 대신 노동자 계급의 잭(이번에 마침내 아카데미상을 거머쥔 레오나르도 디캐프리오)과의 사랑을 택한다. 세상의 의지력 강한 여성을 향해 경의를 보낸 이 영화는 ‘LA 컨피덴셜’ ‘굿 윌 헌팅’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풀 몬티’ 같은 영화들을 물리쳤다. 무릎 꿇은 영화들은 놀랍게도 모두 남자들 이야기다.
 양들의 침묵(1992)
양들의 침묵(1992)
‘양들의 침묵’에서 앤서니 홉킨스가 나오는 장면은 17분도 채 안 된다. 그러나 눈 한번 깜짝 않고 인육을 먹는 연쇄 살인범 한니발 렉터의 모습으로 우리를 악몽에 시달리게 한다. 하지만 이 영화를 탄탄하게 만드는 힘은 야심만만한 FBI 수습요원 클라리스 스타링으로 분장한 조디 포스터의 연기다. 두려움·의심·공포를 극복하고 렉터와 기이한 유대감을 형성한다. 포스터의 연기 덕분에 영화는 이론의 여지 없이 사상 가장 탁월한 작품상 수상작 중 하나로 입지를 다졌다. 그해 작품상 후보로 지명된 올리버 스톤 감독 작품 ‘JFK’나 디즈니의 ‘미녀와 야수’ 같은 다른 영화들보다 분명 더 흡인력 있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90)
영화에서 주인공 데이지 워턴(제시카 탠디)은 호크 콜번(모건 프리먼)이라는 흑인이 승용차 기사로 배정되면서 편견을 극복해야 한다. 이 영화는 예상을 뒤엎고 시와 문학에 대한 송가 ‘죽은 시인의 사회’, 아빠를 울게 만든 스포츠 영화 ‘꿈의 구장’을 제치고 작품상을 차지했다.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
아웃 오브 아프리카(1986)
놀랍게도 이 영화에선 여자가 남자의 일회용 연애 상대나 하나의 도구로 동원되지 않는다. 카렌 블릭센의 동명 소설을 각색한 이 영화에서 여자 주인공은 자신이 정한 조건으로 로맨스에 대처한다. 메릴 스트립이 남작부인 카렌 디네센 역을 맡아 바람둥이에 주정뱅이 남편 브로를 무시하고 사냥꾼 데니스(로버트 레드포드)와 가까워진다. 카렌의 스토리를 전면에 내세워 역대 작품상 수상작 리스트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애정의 조건(1984)
애정의 조건(1984)
제임스 L 브룩스의 감독 데뷔작으로 평단의 호평을 받았다. 셜리 매클레인과 데브라 윙거가 병을 극복하기 위해 (서로 상대의 눈알을 뽑아버릴 듯 아웅다웅하면서도) 협력하는 모녀 역할을 맡는다. 온갖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그들의 관계를 절묘하게 묘사한 기지 넘치는 각본을 탄생시킨 브룩스와 래리 맥머피에게 보너스 점수를 줄 만하다.

 사운드 오브 뮤직(1966)
오래도록 사랑 받는 이 뮤지컬 영화는 마리아(빛을 발하는 줄리 앤드류스 분)가 수녀원에서 오스트리아의 언덕으로 파견돼 노래 부르며 뛰어다니는 모습을 좇는다. 폰 트랩 대령의 7남매 가정교사로 일하게 된 그녀는 훌륭한 인품으로 아이들의 경애를 받고 애인도 얻는다. 그뿐만 아니라 나치까지 따돌린다! 그해 대표적으로 ‘닥터 지바고’ 등 다른 작품상 후보들을 물리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마이 페어 레이디(1965)
놀랍게도 이 뮤지컬을 각색한 작품이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그리고 또 다른 고집 센 여성 이야기 ‘메리 포핀스’)를 물리치고 1965년 아카데미 작품상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 인간개조 스토리는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 뒤로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용감한 엘리자와 그녀의 멋들어진 모자에 대한 찬사의 아이콘이 됐다.

 지지(1959)
일견 이 영화는 모리스 슈발리에가 연기하는 파리의 사교계 한량 오노레 라샤이유의 이야기인 듯하다. 그러나 (특히 그 시대에) 여자들을 앞으로 내세웠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태어날 때부터 요조숙녀로 교육 받은 말괄량이 소녀 지지 역을 맡은 레슬리 카론은 뻔뻔하고 당당하다. 그리고 ‘샴페인을 발명한 밤’ 같은 주당들의 노래를 부른다.
 이브의 모든 것(1951)
이브의 모든 것(1951)
무명 배우가 교묘하게 계략을 동원해 1인자 자리에 오르는 과정을 그린 이야기다. 앤 백스터가 브로드웨이 스타 마고 채닝(베티 데이비스)의 환심을 사 결국에는 그녀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배우 지망생 이브 해링턴을 연기한다. 1950년대 여성 테마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이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등장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게다가 경쟁작들이 ‘신부의 아버지’ ‘선셋 대로’ 같은 쟁쟁한 작품들이었기에 작품상 수상은 값진 승리였다.

 미니버 부인(1943)
1943년에는 유성영화가 등장한 지 20년도 채 안 됐지만 무려 10편이나 작품상 후보에 올랐다. 오손 웰즈의 ‘위대한 앰버슨가’와 브로드웨이의 인기작 ‘사랑의 별장’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그해 치열한 경쟁의 승자는 전시의 영화 ‘미니버 부인’이었다. 그리어 가슨이 주인공을 맡은 이 영화는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 ‘가정 전선’의 변화와 씨름하는 내용이다. 다소 구시대적이지만 이 영화가 왜 가정에 남은 관객들 사이에 큰 울림을 줬는지 이해할 만하다. 그들도 전쟁으로 인한 혼란이나 불안과 씨름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이다.
 레베카(1940)
레베카(1940)
알프레드 히치코크 감독의 덜 알려진 히트작 중 하나인 레베카는 고등학교 시절 거의 누구나 읽었던 소설을 각색한 작품이다. 한 예비신부가 결혼할 남자의 요트 사고로 숨진 전처 레베카의 망령에 시달리는 이야기다. 조안 폰테인이 주인공을 맡은 이 심리 드라마는 관객 몰입도가 대단히 높아 남자 주인공 로렌스 올리비에의 존재감까지 희미해진다.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어느 날 밤에 생긴 일(1934)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이 영화는 할리우드에서 여러 가지 특징을 지닌다. 첫째, 1935년 아카데미상의 5개 주요 부문 상을 휩쓸었다. 그리고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 1930년대 유행했던 경쾌한 템포의 희극영화)’ 장르의 탄생에 기여했다. 또한 최초의 여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작품상 수상작이기도 하다. 영화는 아빠의 손아귀를 벗어나 모험을 시작하는 반항적인 상속녀 엘리(클로데트 콜베르)의 뒤를 좇는다. 그녀는 결국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 신문기자 피터 워니(클라크 게이블)를 만난다. 다행히 카프라 감독이 상황을 바로잡는다.

- 폴라 메자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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