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공화국의 대통령
커피 공화국의 대통령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Howard Schultz)는 백악관의 주인자리를 노리지 않는다. 그러나 스타벅스가 최근 기록하고 있는 놀라운 성과에 고무된 이 억만장자(포브스 부자순위 595위)는 커피 사업을 바탕으로 쌓아 올린 위상을 이용해 미국의 담론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려 한다.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 하워드 슐츠의 호주머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그 안에는 두 개의 열쇠가 눈에 띈다. 이 중 하나는 전세계에서 최고로 호화로운 스타벅스 매장인, 1만5000평방피트(약 1400㎡) 규모의 로스터리(Roastery)의 문을 여는 열쇠다. 시애틀의 캐피톨 힐 주변에 자리한 이 로스터리는 경탄 어린 눈길로 바라보는 고객들 앞으로 윙윙 소리를 내며 방금 로스팅한 커피를 실어나르는 컨베이어 벨트를 고급 카페의 콘셉트와 결합시킨 것이다. 나이키에 나이키타운이 있듯이, 하워드 슐츠는 찰리의 초콜릿 공장에 나오는 윌리웡카 스타일의 커피 천국을 만들어냈다. 또 다른 열쇠는 보다 심오한 세계로 들어가는 문을 연다. 스타벅스가 처음 시작된 시애틀 강가 주변에 허름하고 작은 스타벅스 매장을 여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모든 것이 1971년에 멈춰 있다. 베트남 전쟁 당시 스타벅스 브랜드를 정의했던 빛 바랜 커피 용기와 카운터가 그대로 있다. 그때 이후 이 매장을 현대화하기 위한 작업은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때때로 저는 새벽 4시 15분에 홀로 이곳을 찾습니다.” 62세가 된 하워드 슐츠의 말이다. “무언가 중심을 잡아야 할 일이 있을 때면 언제나 찾게 되는 가장 좋은 장소이지요.”
중심을 잡는다? 지난번 확인했을 때, 억만장자 최고 경영자인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의 중심을 다시 잡겠다는 의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워드 슐츠이다. 언제나 힘없는 약자이고, 언제나 수익 추구를 개인사와 연결하는 것이다. 1980년대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직을 맡게 된 이후로, 하워드 슐츠는 로컬 커피점 브랜드였던 스타벅스를 전세계적인 탑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2015년 스타벅스의 매출은 190억 달러를 상회했는데, 이는 친구들끼리 만나고 학생들이 숙제를 하며 연인들이 로맨스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커피와 음식을 함께 제공하는 전략에 힘입은 바가 컸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른바 “인류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하워드 슐츠는 30억 달러에 가까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대화를 하면, 하워드 슐츠는 언제나 자신이 무명이었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는 한다. “저는 여전히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던 브룩클린 출신의 꼬마입니다.” 하워드 슐츠의 말이다. “저는 아이비리그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상기시킨다. “저는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억울해 하기보다 소중한 기억으로 생각한다. 하워드 슐츠는 미국, 그리고 사실 전세계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나시(Canarsie)의 암울한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타 경영진 멤버들로부터 시작해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흑인 및 라틴 아메리카계의 젊은이들까지 모든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록 제가 피부색은 다를지라도, 저도 결국 이처럼 불우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워드 슐츠의 이야기는 고전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하워드 슐츠는 지난해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루머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워드 슐츠 자신은 이번 대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슐츠 자신이 이미 커피사업을 기반으로 미국의 담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연단을 무기로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벅스가 재무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하워드 슐츠는 이러한 무기를 쓸 수 있는 가히 막강한 권위까지 손에 넣었다. 무엇보다 하워드 슐츠는 미국이라는 기업의 최고 조정자(conciliator)가 되고자 한다. 하워드 슐츠는 불만에 찬 정치계와 일상의 담론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하나의 국가로서 미국이 “양심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지난해 영감의 원천을 찾아 참전군인 병원에서 인도 힌두교 암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소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믿음에 대해 말해줄 것을 청했다. 이제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사람들이 선거에 대해 다시 기대감을 가질 수 있는 곳, 총기휴대 및 인종과 같은 어려운 이슈에 대해 서로 존중하며 토론할 수 있는 곳, 그리고 “시민권과 인류를 고양할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하워드 슐츠가 시작한 성전은 지난 3월 뼈아픈 수모를 겪었다. 2014년 말, 하워드 슐츠는 미주리 주 퍼거슨 지역에서 무기를 소지하지 않고 있던 한 흑인 10대 청소년에게 총격을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백인 경찰관이 무죄로 방면된 이후 발생한 사태에 충격을 받았다. 스타벅스의 직원들 역시 충격을 받기는 마찬가지였다. 바리스타와 매장 매니저들은 이들이 목도한 추악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터뜨렸다. 서로 포옹을 나누었고, 모든 이들은 미국이 과거를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이에 크나큰 감명을 받은 하워드 슐츠는 7천 여개의 스타벅스 매장에서 이러한 대화를 다시 시작하기로 결정했다. 바리스타들에게 수백 만개에 달하는 고객들의 커피잔에 “레이스 투게더(Race Together)”라는 문구를 적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바리스타들과 달리 바쁜 아침 시간 커피를 사기 위해 기다리는, 서로에게 타인일 뿐인 고객들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일주일 후 스타벅스의 “레이스 투게더” 캠페인은 종료되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애틀에서 탄생한 커피제국 스타벅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야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하워드 슐츠는 사형제도의 부당성, 만성적인 실업률, 참전군인 이슈 그리고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의 대학교육에 대한 열망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인종 이슈를 문제로 삼은 캠페인이 실패로 끝난 이후 하워드 슐츠가 펼치고 있는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마치 카니발에서 칼을 삼키는 곡예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켜보는 이를 기대감으로 부풀게 하면서도 한 순간 끔찍한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두려운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몇 주 전 나는 하워드 슐츠와 종이컵에 담긴 스타벅스 에이지드 수마트라를 홀짝홀짝 마시며 브루클린 음악원의 텅 빈 무대로 들어섰다. 하워드 슐츠는 무대에 오르기 전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몇 분 후 무대에 오르면 무엇이 미국 사회에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타벅스가 선함을 이끌어내는 힘이 될 수 있을지 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300명 직원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리였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원대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열망과 망설임이 함께 섞인 목소리로 슐츠가 이야기한다. “한 조각의 찰흙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아직 모습이 빚어지지 않은 찰흙이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무대로 올라선 하워드 슐츠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군인들에 대한 사망보험금, 총기 안전 그리고 2016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자신에 우려하는 사안들을 짚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단지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슐츠가 외쳤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가 가진 힘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후 90분 동안 매장 매니저 및 바리스타 34명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그러하듯, 지역 학교에서 자신들이 한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한 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은 정책 이론보다는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암울한 현실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게에 노숙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더 안전을 강구할 수 있을까요?...바리스타를 위한 교육을 더욱 많이 제공할 수 있을까요?...아동보육에 대한 옵션이 가능할까요?... “정말 좋은 아이디어입니다.” 슐츠는 질문을 던진 몇몇 직원들에게 이야기했다.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슐츠는 직원들을 안심시키는 답변을 내놓았다. 한 비정규직 직원이 유급휴가 시간이 많지 않은 이유에 대해 알고 싶어하자, 슐츠는 이렇게 선언했다. “자, 보세요. 스타벅스에서 16년째 일하셨지요. 당신은 마땅히 휴가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휴가를 드리지요.” 강연장에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슐츠는 질문을 던진 바리스타에게 다가가 포옹을 했고, 누군가 이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군중을 다루는 슐츠의 모습을 보면, 왜 그가 타고난 정치인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때 하워드 슐츠를 사로잡았던 정치적 열망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 온 하워드 슐츠는 더 이상 자신이 가장 우려하는 사안들에 대한 해답을 정부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슐츠는 2008년도 바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후로 대통령에 대한 정치헌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워드 슐츠는 병든 미국을 고치겠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스타벅스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구소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스타벅스는 군부대 근처에 19개의 매장을 세워 퇴역군인과 현역군인의 배우자들이 이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고용했다. 또한,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피닉스, 시카고 및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 대규모 직업박람회를 열어 실직 상태의 젊은이들이 면접을 볼 수 있도록 초청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바리스타를 비롯한 스타벅스 직원들이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온라인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사회적 대의를 추구하는 데 너무나 심취해 있다면 이는 주주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스타벅스에서 3%가 채 되지 않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하워드 슐츠 역시 투자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너럴 일렉트릭과 JP 모건체이스의 냉정한 기업문화에 수년간 몸담고 있다 2011년 스타벅스에 합류한 최고재무담당자 스콧 모(Scott Maw)는 스타벅스가 특수한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모의 의견에 따르면, 기관차나 대출상품이 아닌 라테를 판매하는 기업이라면, 3달러45센트짜리 그란데 사이즈의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즐거운 경험과 윤리적으로 건전한 실천방식”을 향한 티켓이 된다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의 성전은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제품의 일부로 녹아들어, 스타벅스를 지구상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워드 슐츠는 언제나 카페인을 판매하는 것보다 더 원대한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2009년 스타벅스에 관한 책인 『Everything but the Coffee』를 쓴 템플 대학의 역사학 교수 브라이언트 사이몬의 말이다. 슐츠가 주창하는 캠페인의 대부분이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신기루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사이몬 교수는 주위를 계속 맴도는 잔소리꾼인 셈이다. 스타벅스가 소유한 자체 생수 브랜드인 에소스(Ethos)를 예로 들어보자. 고객들은 구매액의 5센트가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도록 쓰인다는 사실에 대해 열광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생수 한 병당 원가가 1달러80센트인데 반해, 스타벅스는 구매가격의 97%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심지어 무상대학교육 프로그램조차 사이몬 교수에게는 불만스럽다. 이는 고객들로 하여금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들이 장래가 없는 직업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끔 하기 위한 홍보용 곡예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는 학위를 취득하는 바리스타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군요.” 사이몬 교수의 말이다.
하워드 슐츠 역시 궁금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아리조나 주립대학과 함께 시작한 무상대학교육 프로그램은 2년 전 시작되었고, 5000명의 직원들이 이미 등록했다. 오늘날까지 44명의 직원이 학위를 취득했다. 이 밖에 100명 이상의 직원들이 이번 봄에 졸업이 예정되어 있다. 예전에 받은 커뮤니티 칼리지의 학점을 아리조나 주립대학의 시스템으로 이전하고, 전공을 결정하고, 등록 및 학기말 리포트 등의 마감기한을 지키는 것 모두 바리스타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이 프로그램을 공개한 이후, 스타벅스와 아리조나 주립대학 모두 학생 로그인 코드를 건네주고 그저 좋은 결과를 있기를 바라기보다, 학사 과정 전체를 통틀어 온라인 수강생인 바리스타에게 도움을 주고자 발벗고 나서고 있다. 프로그램의 성과가 명확하게 드러날 때까지는 3~4년의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실제로 스타벅스를 창업한 이들은 고든 보커, 제브 시글 그리고 제리 볼드윈으로 1971년 스타벅스를 시작했다. 슐츠가 스타벅스에 합류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워낙 슐츠가 스타벅스의 경영을 맡은 지가 오래되어 그 자신도 마치 자신이 창업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워드 슐츠는 매일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기상해 전날의 매출 보고서를 검토한다. 스타벅스의 브루마스터들이 매년 가을에 나오는 리저브 홀리데이 블렌드(Reserve Holiday Blend)에 에이지드 수마트라를 좀 더 넣도록 하는데, 이는 에이지드 수마트라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이고 그 맛이 대단히 좋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속 깊이 진심으로 각각의 매장을 마치 자신의 가게처럼 생각하기에, 하워드 슐츠는 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열린 직원 회의에서 직원들이 스포티파이와 체결한 새로운 음악 파트너십을 홍보하는 엽서 크기의 카드를 보여주었을 때, 하워드 슐츠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이건 음악에 대한 파트너십입니다. 뭔가 활기찬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칙칙한 검정 대신 녹색으로 할 수 있을까요?”) 하지만 만약 최고경영자가 모든 사안에 대해 승인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의사결정의 속도는 달팽이 걸음만큼이나 느려질 것이다. 이를 잘 알고 있는 하워드 슐츠는 최근 외부에서 검증된 다양한 분야의 리더들을 영입해 스타벅스의 경영진을 강화했다. 여기에는 마이크로소프트 출신의 최고운영책임자 케빈 존슨, 그리고 디즈니에서 잔뼈가 굵은 최고전략가인 매트 라이언이 포함된다. 이러한 노력의 성과는? 바로 결코 멈출 줄 모르는 성장 가도를 달리는 스타벅스이다. 스타벅스의 주가는 2015년 48%나 상승했으며, 올해 시가총액은 860억 달러에 육박하고 있다. 커피를 지속적인 주력상품으로 하는 가운데 식품사업이 계속 확장하며 지난 5년간 두 배가 넘는 매출 신장을 기록하고 있다. (카푸치노와 고대 곡물 플랫브레드로 만든 치킨 아티초크 샌드위치를 곁들이는 것은 어떤가?) 스타벅스 모바일 결제 앱에 가입한 고객의 수가 1600만 명이 넘어서면서 고객들이 줄 서서 기다리는 시간이 짧아졌다. 잔돈을 거슬러 받느라 기다리는 고객들의 수가 줄어들고 시간당 매출이 증가하며 이에 따라 수익이 상승한다. 스타벅스의 이자와 법인세를 차감하기 전 이익은 19.7%를 기록하고 있으며, 이는 치폴레나 파네라와 같은 기업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이다. 적어도 2018년까지는 연간 1% 정도 스타벅스의 마진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으로 예상하는 월스트리트의 애널리스트들은 앞으로가 더욱 흥미진진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크리스마스와 관련된 아무런 문구도 넣지 않은 빨간색 종이컵을 내놓으면서 지난 11월 발생한 소동에서 볼 수 있듯이 심지어 논란을 불러일으키는 것조차도 결국 사업에 도움이 된다. 스타벅스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면서 매출이 사상 최고의 기록을 경신하는 데 일조했다.
때로는 성공적인 아이디어가 하워드 슐츠의 찬성보다는 반대를 이겨내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2008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녹은 치즈로 만든 아침용 샌드위치의 판매를 중단할 것을 화를 내며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구운 체더 치즈가 갓 내린 커피의 부드러운 아로마를 압도하는 향을 낸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녹은 치즈로 만든 메뉴는 재기에 성공했다. 대신 산미가 높은 큰 덩어리의 체더 대신 중간 정도의 산미를 지닌 보다 잘게 썬 체더 치즈를 화씨 1100도가 아닌 500도에서 구웠다. “하워드를 설득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스타벅스의 제품 개발을 총괄하는 루이지 보니니의 말이다.
최근 들어 하워드 슐츠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도전하는 약자라는 자신의 마인드와 잘 들어맞는 동시에 스타벅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최신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중국 시장을 겨냥한 사업으로 스타벅스가 큰 야심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내륙 도시들을 비롯하여 베이징과 상하이를 분기별로 방문하고 있다. 현재 이들 매장에서는 대부분 오후 시간에 차, 프라푸치노 그리고 월병을 판매한다. 하워드 슐츠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머지 않아 중국 역시 커피를 “아침에 마시는 습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스타벅스는 중국에 2000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4배 신장한 수치이다. 상하이(432)는 서울과 뉴욕을 제치고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로 등극했다. 하워드 슐츠는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중국의 중산층이 어찌됐건 스타벅스에 수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중국 사업이 확실히 미국보다 더욱 큰 규모가 될 것입니다.” 하워드 슐츠가 지난 1월 애널리스트들에게 한 말이다. 슐츠가 펼치는 또 다른 대규모 프로젝트는 침착한 자세로 고급 커피 시장을 방어하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는 소규모 양조장이나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초콜릿 제조사들이 스스로를 미각의 진정한 수호자로 포지셔닝하면서 버드와이저나 허쉬와 같은 대중시장 브랜드가 매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하워드 슐츠는 이처럼 그 누구도 스타벅스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사실 오늘날 커피업계에서는 필즈(Philz), 블루보틀(Blue Bottle),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그리고 스텀프타운(Stumptown)과 같은 야심찬 신진기업들이 최고급 원두와 서빙 스타일을 내세우며 각광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 신생 브랜드는 예를 들어 12온스 들이 쓰리 아프리칸(에티오피아와 콩고산 원두의 블렌딩) 원두를 15달러75센트에 판매하면서 시장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하워드 슐츠는 걱정하지 않는다. 대신 스타벅스 리저브(Starbucks Reseve)라는 독특한 포장백에 담긴, 양은 적으면서도 값은 오히려 더 비싼 원두 제품을 들고 경쟁사에 대항하고 있다. 8.8온스 들이 100% 에티오피아 예가체프 첼바 원두제품의 가격이 17달러50센트로, 이 제품은 “이국적인, 희귀한, 아름다운”과 같은 기교를 부린 마케팅 문구와 함께 보통 스타벅스 매장에 마련된 전용 진열장에 여타 고급 커피원두 제품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최고급 커피는 극도의 우아함을 자랑하는 시애틀의 로스터리에 아름답게 진열되어 있다. 하워드 슐츠는 자신의 아이폰으로 낮이건 밤이 건 계속 작업 중인 로스터리의 사진을 찍어 이사회 임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내고 있다. “하워드는 광신자에요.” 스타벅스의 이사인 홉슨의 말이다.
스타벅스 이사의 정년은 75세이고, 슐츠에게는 정년까지 13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하워드 슐츠는 2000년과 2007년 사이에 한 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장직만 맡으며 시애틀 슈퍼소닉스 농구팀을 소유한다던지 하는 것처럼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린 적이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하워드 슐츠는 이 사회의 쿠데타로 최고경영자직에 복귀했다. 그의 말로는 더욱 많이 경청하고 타인에 대해 더욱 많은 인내심을 보이며 이번에는 스스로의 페이스를 더욱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소요되는 에너지, 정력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측면에서 젊은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좀 더 스타벅스에 남아있을 계획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임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하워드 슐츠의 일정을 자세히 검토하면, 하워드 슐츠가 자신이 선을 위한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얼마나 자주 자신을 타인의 문제에 대해 염려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지 놀라게 된다. 수퍼소닉스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빈 베이커(Vin Baker)가 파산한 후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슐츠는 베이커가 스타벅스의 경영 프로그램을 통해 매장 관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사형수 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쓴 책 『Just Mercy』를 출간하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이 책을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하워드 슐츠는 스티븐슨의 사무실을 방문해 하루는 아침 시간을 알라바마의 교도소에서 거의 30년의 시간을 보낸 후 자유가 된 앤소니 레이 힌튼과 보내기도 했다. “힌튼은 30년 동안 포크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었다. 힌튼을 만난 경험은 내 삶을 바꾸었다.” 하워드 슐츠의 말이다.
알라바마의 변호사 스티븐슨이 쓴 책은 몇 달 동안 스타벅스 매장에 진열되었으며 <뉴욕 타임스> 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강렬한 경험을 하고 난 이후, 사무실 구석에 앉아 거액의 돈을 지출하는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은 “성취감을 주지 못한다”라고 하워드 슐츠가 말한다. 태풍 카트리나를 기억하는가? 이로부터 3년 후 스타벅스 직원들은 카트리나로 타격을 입은 뉴 올리언스 지역의 재건을 돕기 위해 단체로 봉사활동에 나섰고, 슐츠는 주택 재건축 프로젝트에 나가게 되었다. 현장에서 사다리와 페인트통을 본 슐츠는 아픈 허리를 감싸쥐고 페인트 칠을 도왔다.
하워드 슐츠를 자극하는 원동력은 사회 생활 초년생 당시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위기사태에 대해 갖고 있는 우울한 기억이다. 1980년대 중반 하워드 슐츠는 원두 공급업체를 검사하기 위해 과테말라로 처음 출장을 가게 되었다. 재배업자들은 회사가 지불하는 금액 중 아주 일부만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고 귓속말을 했다. 과테말라의 지급 시스템은 뇌물과 비공개 ‘커미션’으로 얼룩져 있었다. 슐츠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조치를 취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신출내기이고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아무런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까지 슐츠에게 족쇄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슐츠는 1억 달러의 자본을 바탕으로 자신과 아내 쉐리(Sheri)가 관장하는 슐츠가족재단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슐츠는 향후 훨씬 더 많은 자산이 재단으로 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 GEORGE ANDERS 포브스 기자
위 기사의 원문은 http://forbes.co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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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돈키호테처럼 비현실적인, 비실용적인, 시대를 앞선… 수식어를 나열하자면 끊임없다. 그러나 최종 결과는 한결같이 동일하다. 억만장자들조차도 공상적인 박애주의를 바탕으로 내세운 대의가 계획한대로 풀리지 않는 경우가 있다. 실패로 끝난 하워드 슐츠의 ‘레이스 투게더’와 같은 프로그램을 벌이고도 회사를 유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억만장자들의 사례를 아래와 같이 살펴보자.
빌 게이츠
공립고등학교의 규모가 작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믿음은 빌 게이츠로 하여금 20억 달러의 재단자본금을 들여 미국 전역에 더 작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했다. 2009년 공개된 재단 명의의 서한에서, 빌 게이츠는 “우리가 투자한 학교의 대다수에서 학생들의 성취도가 개선되지 않았다”라고 인정했다.
마크 주커버그
2010년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오랜 동안 실패를 거듭해온 뉴저지주 뉴어크의 학교 시스템을 되살리고자 1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주커버그에게는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교사들은 계획에 동조하지 않았고, 컨설턴트들이 난무했으며 학생들은 자금이 바닥난 이후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피터 루이스
작고한 프로그레시브 인슈런스의 피터 루이스 회장은 마리화나 합법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데 4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피터 루이스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마리화나 소지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2012년 피터 루이스가 사망하기 전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에서만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조지 소로스
1980년대부터 헤지펀드계의 거인, 조지 소로스는 더욱 개방된 사회를 도모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유럽 지역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나의 원대한 계획은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 것 같다.” 조지 소로스는 1991년 내놓은 저서『민주주의의 보증(Underwriting Democracy)』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며 실패를 인정했다.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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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심을 잡는다? 지난번 확인했을 때, 억만장자 최고 경영자인 하워드 슐츠가 스타벅스의 중심을 다시 잡겠다는 의지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하워드 슐츠이다. 언제나 힘없는 약자이고, 언제나 수익 추구를 개인사와 연결하는 것이다. 1980년대 스타벅스의 최고경영자직을 맡게 된 이후로, 하워드 슐츠는 로컬 커피점 브랜드였던 스타벅스를 전세계적인 탑 브랜드로 탈바꿈시켰다. 2015년 스타벅스의 매출은 190억 달러를 상회했는데, 이는 친구들끼리 만나고 학생들이 숙제를 하며 연인들이 로맨스를 즐길 수 있는 분위기 있는 장소에서 커피와 음식을 함께 제공하는 전략에 힘입은 바가 컸다.
본인의 말을 빌리자면 이른바 “인류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성과”를 창출함으로써, 하워드 슐츠는 30억 달러에 가까운 자산을 축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을 두고 대화를 하면, 하워드 슐츠는 언제나 자신이 무명이었을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고는 한다. “저는 여전히 살 길을 찾아 고군분투하던 브룩클린 출신의 꼬마입니다.” 하워드 슐츠의 말이다. “저는 아이비리그 학교에 다니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슐츠가 상기시킨다. “저는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았습니다.” 하워드 슐츠는 어린 시절 누리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억울해 하기보다 소중한 기억으로 생각한다. 하워드 슐츠는 미국, 그리고 사실 전세계가 역경을 딛고 성공한 이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카나시(Canarsie)의 암울한 환경에서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모습은 여타 경영진 멤버들로부터 시작해 첫 직장을 구하기 위해 애쓰는 흑인 및 라틴 아메리카계의 젊은이들까지 모든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비록 제가 피부색은 다를지라도, 저도 결국 이처럼 불우했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습니다.”
하워드 슐츠의 이야기는 고전적인 아메리칸 드림의 이야기다. 그렇기에 하워드 슐츠는 지난해 그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루머를 불식시키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그러나 하워드 슐츠 자신은 이번 대선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슐츠 자신이 이미 커피사업을 기반으로 미국의 담론을 이끌어 나갈 수 있는 강력한 연단을 무기로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타벅스가 재무적으로 엄청난 성과를 거두면서 하워드 슐츠는 이러한 무기를 쓸 수 있는 가히 막강한 권위까지 손에 넣었다. 무엇보다 하워드 슐츠는 미국이라는 기업의 최고 조정자(conciliator)가 되고자 한다. 하워드 슐츠는 불만에 찬 정치계와 일상의 담론에 대해 우려하고 있으며, 하나의 국가로서 미국이 “양심을 잃었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에 지난해 영감의 원천을 찾아 참전군인 병원에서 인도 힌두교 암자에 이르기까지 온갖 장소를 돌아다니며 사람들에게 이들의 이야기 그리고 믿음에 대해 말해줄 것을 청했다.
미국이라는 기업의 최고 조정자를 노린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시애틀에서 탄생한 커피제국 스타벅스는 그 어느 때보다도 큰 야심을 드러내고 있으며, 하워드 슐츠는 사형제도의 부당성, 만성적인 실업률, 참전군인 이슈 그리고 스타벅스 바리스타들의 대학교육에 대한 열망 등을 주제로 삼고 있다. 인종 이슈를 문제로 삼은 캠페인이 실패로 끝난 이후 하워드 슐츠가 펼치고 있는 행보를 지켜보는 것은 마치 카니발에서 칼을 삼키는 곡예사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지켜보는 이를 기대감으로 부풀게 하면서도 한 순간 끔찍한 실패로 끝날 수 있다는 두려운 느낌을 내포하고 있다.
몇 주 전 나는 하워드 슐츠와 종이컵에 담긴 스타벅스 에이지드 수마트라를 홀짝홀짝 마시며 브루클린 음악원의 텅 빈 무대로 들어섰다. 하워드 슐츠는 무대에 오르기 전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었다. 몇 분 후 무대에 오르면 무엇이 미국 사회에서 잘못 돌아가고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스타벅스가 선함을 이끌어내는 힘이 될 수 있을지 라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주제에 대해 300명 직원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자리였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원대한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열망과 망설임이 함께 섞인 목소리로 슐츠가 이야기한다. “한 조각의 찰흙을 가진 것과 같습니다. 아직 모습이 빚어지지 않은 찰흙이지요. 저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무대로 올라선 하워드 슐츠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에서 사망한 군인들에 대한 사망보험금, 총기 안전 그리고 2016년 대선에 이르기까지 자신에 우려하는 사안들을 짚어나가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리는 단지 주가를 올리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슐츠가 외쳤다. “보다 나은 사회를 만드는 데 우리가 가진 힘을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이후 90분 동안 매장 매니저 및 바리스타 34명이 마이크를 잡고 자신의 아이디어와 걱정거리에 대해 이야기했다. 대부분의 유권자가 그러하듯, 지역 학교에서 자신들이 한 봉사활동에 대해 이야기한 소수를 제외하면 이들은 정책 이론보다는 자신이 일상 생활에서 마주치는 암울한 현실에 훨씬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가게에 노숙자들이 너무나 많습니다…더 안전을 강구할 수 있을까요?...바리스타를 위한 교육을 더욱 많이 제공할 수 있을까요?...아동보육에 대한 옵션이 가능할까요?...
대중을 다루는 타고난 정치인 자질
군중을 다루는 슐츠의 모습을 보면, 왜 그가 타고난 정치인인지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때 하워드 슐츠를 사로잡았던 정치적 열망은 이제 사그라들었다. 평생 민주당을 지지해 온 하워드 슐츠는 더 이상 자신이 가장 우려하는 사안들에 대한 해답을 정부가 쥐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다. 슐츠는 2008년도 바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던 이후로 대통령에 대한 정치헌금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하워드 슐츠는 병든 미국을 고치겠다는 자신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적어도 스타벅스를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한 연구소로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작년 스타벅스는 군부대 근처에 19개의 매장을 세워 퇴역군인과 현역군인의 배우자들이 이곳에서 일할 수 있도록 고용했다. 또한, 대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어 피닉스, 시카고 및 로스앤젤레스와 같은 도시에서 대규모 직업박람회를 열어 실직 상태의 젊은이들이 면접을 볼 수 있도록 초청하고 있다. 2014년부터는 바리스타를 비롯한 스타벅스 직원들이 애리조나 주립대학에서 온라인으로 학위를 취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학비를 전액 부담하고 있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최고경영자가 사회적 대의를 추구하는 데 너무나 심취해 있다면 이는 주주들의 반발을 일으킬 수 있다. 스타벅스에서 3%가 채 되지 않는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하워드 슐츠 역시 투자자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제너럴 일렉트릭과 JP 모건체이스의 냉정한 기업문화에 수년간 몸담고 있다 2011년 스타벅스에 합류한 최고재무담당자 스콧 모(Scott Maw)는 스타벅스가 특수한 사례라고 이야기한다. 모의 의견에 따르면, 기관차나 대출상품이 아닌 라테를 판매하는 기업이라면, 3달러45센트짜리 그란데 사이즈의 커피 한 잔은 단순한 음료가 아닌, “즐거운 경험과 윤리적으로 건전한 실천방식”을 향한 티켓이 된다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의 성전은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제품의 일부로 녹아들어, 스타벅스를 지구상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하워드 슐츠는 언제나 카페인을 판매하는 것보다 더 원대한 무언가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2009년 스타벅스에 관한 책인 『Everything but the Coffee』를 쓴 템플 대학의 역사학 교수 브라이언트 사이몬의 말이다. 슐츠가 주창하는 캠페인의 대부분이 휘황찬란하게 치장된 신기루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사이몬 교수는 주위를 계속 맴도는 잔소리꾼인 셈이다. 스타벅스가 소유한 자체 생수 브랜드인 에소스(Ethos)를 예로 들어보자. 고객들은 구매액의 5센트가 사람들이 깨끗한 식수를 마실 수 있도록 쓰인다는 사실에 대해 열광할지 모른다. 하지만, 사실 생수 한 병당 원가가 1달러80센트인데 반해, 스타벅스는 구매가격의 97%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심지어 무상대학교육 프로그램조차 사이몬 교수에게는 불만스럽다. 이는 고객들로 하여금 스타벅스의 바리스타들이 장래가 없는 직업의 덫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고 믿게끔 하기 위한 홍보용 곡예와도 같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저는 학위를 취득하는 바리스타들의 수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군요.” 사이몬 교수의 말이다.
지구상 최대 규모의 사회적 기업으로 탈바꿈
실제로 스타벅스를 창업한 이들은 고든 보커, 제브 시글 그리고 제리 볼드윈으로 1971년 스타벅스를 시작했다. 슐츠가 스타벅스에 합류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이다. 그러나 워낙 슐츠가 스타벅스의 경영을 맡은 지가 오래되어 그 자신도 마치 자신이 창업자인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워드 슐츠는 매일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각에 기상해 전날의 매출 보고서를 검토한다. 스타벅스의 브루마스터들이 매년 가을에 나오는 리저브 홀리데이 블렌드(Reserve Holiday Blend)에 에이지드 수마트라를 좀 더 넣도록 하는데, 이는 에이지드 수마트라가 자신이 좋아하는 커피이고 그 맛이 대단히 좋다는 것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속 깊이 진심으로 각각의 매장을 마치 자신의 가게처럼 생각하기에, 하워드 슐츠는 제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걱정을 금할 수 없다. 최근 열린 직원 회의에서 직원들이 스포티파이와 체결한 새로운 음악 파트너십을 홍보하는 엽서 크기의 카드를 보여주었을 때, 하워드 슐츠는 잠자코 있을 수 없었다. (“이건 음악에 대한 파트너십입니다. 뭔가 활기찬 느낌이 있어야 합니다. 칙칙한 검정 대신 녹색으로 할 수 있을까요?”)
지난 5년간 두 배가 넘는 매출 신장
때로는 성공적인 아이디어가 하워드 슐츠의 찬성보다는 반대를 이겨내고 나오는 경우가 있다. 2008년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가 녹은 치즈로 만든 아침용 샌드위치의 판매를 중단할 것을 화를 내며 주장했는데, 그 이유는 구운 체더 치즈가 갓 내린 커피의 부드러운 아로마를 압도하는 향을 낸다는 것이었다. 결과는 어떠했을까? 녹은 치즈로 만든 메뉴는 재기에 성공했다. 대신 산미가 높은 큰 덩어리의 체더 대신 중간 정도의 산미를 지닌 보다 잘게 썬 체더 치즈를 화씨 1100도가 아닌 500도에서 구웠다. “하워드를 설득하는 것은 언제나 가능합니다.” 스타벅스의 제품 개발을 총괄하는 루이지 보니니의 말이다.
최근 들어 하워드 슐츠는 모든 것을 다 하려고 노력하는 대신, 도전하는 약자라는 자신의 마인드와 잘 들어맞는 동시에 스타벅스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최신 프로젝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로 중국 시장을 겨냥한 사업으로 스타벅스가 큰 야심을 펼치고 있는 수많은 내륙 도시들을 비롯하여 베이징과 상하이를 분기별로 방문하고 있다. 현재 이들 매장에서는 대부분 오후 시간에 차, 프라푸치노 그리고 월병을 판매한다. 하워드 슐츠는 만면에 웃음을 띄우며 머지 않아 중국 역시 커피를 “아침에 마시는 습관”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현재 스타벅스는 중국에 2000개의 매장을 거느리고 있는데, 이는 5년 전과 비교해 4배 신장한 수치이다. 상하이(432)는 서울과 뉴욕을 제치고 스타벅스 매장이 가장 많은 도시로 등극했다. 하워드 슐츠는 파죽지세로 성장하는 중국의 중산층이 어찌됐건 스타벅스에 수혜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중국 사업이 확실히 미국보다 더욱 큰 규모가 될 것입니다.” 하워드 슐츠가 지난 1월 애널리스트들에게 한 말이다. 슐츠가 펼치는 또 다른 대규모 프로젝트는 침착한 자세로 고급 커피 시장을 방어하는 것이다. 하워드 슐츠는 소규모 양조장이나 장인정신을 발휘하는 초콜릿 제조사들이 스스로를 미각의 진정한 수호자로 포지셔닝하면서 버드와이저나 허쉬와 같은 대중시장 브랜드가 매력을 잃어가는 모습을 목도했다. 하워드 슐츠는 이처럼 그 누구도 스타벅스를 가로막지 못할 것이라 단언한다. 사실 오늘날 커피업계에서는 필즈(Philz), 블루보틀(Blue Bottle), 인텔리젠시아(Intelligentsia) 그리고 스텀프타운(Stumptown)과 같은 야심찬 신진기업들이 최고급 원두와 서빙 스타일을 내세우며 각광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 신생 브랜드는 예를 들어 12온스 들이 쓰리 아프리칸(에티오피아와 콩고산 원두의 블렌딩) 원두를 15달러75센트에 판매하면서 시장의 고급화를 꾀하고 있다.
중국에 2000개 매장 열어 중산층 겨냥
스타벅스 이사의 정년은 75세이고, 슐츠에게는 정년까지 13년의 시간이 남아 있다. 하워드 슐츠는 2000년과 2007년 사이에 한 번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회장직만 맡으며 시애틀 슈퍼소닉스 농구팀을 소유한다던지 하는 것처럼 다른 쪽으로 관심을 돌린 적이 있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실적이 저조해지면서 하워드 슐츠는 이 사회의 쿠데타로 최고경영자직에 복귀했다. 그의 말로는 더욱 많이 경청하고 타인에 대해 더욱 많은 인내심을 보이며 이번에는 스스로의 페이스를 더욱 잘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거대한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소요되는 에너지, 정력 그리고 호기심이라는 측면에서 젊은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스스로 인정한다. 그렇다 해도 좀 더 스타벅스에 남아있을 계획이라고 이야기한다. 아직 임무를 완전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하워드 슐츠의 일정을 자세히 검토하면, 하워드 슐츠가 자신이 선을 위한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얼마나 자주 자신을 타인의 문제에 대해 염려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 몰아넣는지 놀라게 된다. 수퍼소닉스의 스타 플레이어였던 빈 베이커(Vin Baker)가 파산한 후 알코올 중독의 늪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슐츠는 베이커가 스타벅스의 경영 프로그램을 통해 매장 관리를 배울 수 있도록 도왔다. 사형수 변호사인 브라이언 스티븐슨이 부당하게 유죄판결을 받은 이들이 자유의 몸이 될 수 있도록 도우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해 쓴 책 『Just Mercy』를 출간하자, 하워드 슐츠는 스타벅스 매장에서 이 책을 판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을 읽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는지 하워드 슐츠는 스티븐슨의 사무실을 방문해 하루는 아침 시간을 알라바마의 교도소에서 거의 30년의 시간을 보낸 후 자유가 된 앤소니 레이 힌튼과 보내기도 했다. “힌튼은 30년 동안 포크를 손에 쥐어 본 적이 없었다. 힌튼을 만난 경험은 내 삶을 바꾸었다.” 하워드 슐츠의 말이다.
알라바마의 변호사 스티븐슨이 쓴 책은 몇 달 동안 스타벅스 매장에 진열되었으며 <뉴욕 타임스> 의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처럼 강렬한 경험을 하고 난 이후, 사무실 구석에 앉아 거액의 돈을 지출하는 자선 활동을 벌이는 것은 “성취감을 주지 못한다”라고 하워드 슐츠가 말한다. 태풍 카트리나를 기억하는가? 이로부터 3년 후 스타벅스 직원들은 카트리나로 타격을 입은 뉴 올리언스 지역의 재건을 돕기 위해 단체로 봉사활동에 나섰고, 슐츠는 주택 재건축 프로젝트에 나가게 되었다. 현장에서 사다리와 페인트통을 본 슐츠는 아픈 허리를 감싸쥐고 페인트 칠을 도왔다.
하워드 슐츠를 자극하는 원동력은 사회 생활 초년생 당시 자신이 해결하지 못한 위기사태에 대해 갖고 있는 우울한 기억이다. 1980년대 중반 하워드 슐츠는 원두 공급업체를 검사하기 위해 과테말라로 처음 출장을 가게 되었다. 재배업자들은 회사가 지불하는 금액 중 아주 일부만이 자신들에게 돌아온다고 귓속말을 했다. 과테말라의 지급 시스템은 뇌물과 비공개 ‘커미션’으로 얼룩져 있었다. 슐츠는 이에 대해 그 어떤 조치를 취하기에는 자신이 너무나 신출내기이고 무력하다고 생각했다. 이때 아무런 행동에도 나서지 않았던 것이 오늘날까지 슐츠에게 족쇄가 되고 있는지 모른다.
오늘날 슐츠는 1억 달러의 자본을 바탕으로 자신과 아내 쉐리(Sheri)가 관장하는 슐츠가족재단을 통해 점점 더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슐츠는 향후 훨씬 더 많은 자산이 재단으로 투자될 것이라고 말했다.
- GEORGE ANDERS 포브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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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점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박스기사] 의도는 좋았던 실패
빌 게이츠
공립고등학교의 규모가 작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러한 믿음은 빌 게이츠로 하여금 20억 달러의 재단자본금을 들여 미국 전역에 더 작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 나서게 했다. 2009년 공개된 재단 명의의 서한에서, 빌 게이츠는 “우리가 투자한 학교의 대다수에서 학생들의 성취도가 개선되지 않았다”라고 인정했다.
마크 주커버그
2010년 페이스북의 최고경영자 마크 주커버그는 오랜 동안 실패를 거듭해온 뉴저지주 뉴어크의 학교 시스템을 되살리고자 1억 달러의 자금을 투입했다. 주커버그에게는 참으로 안 된 일이지만, 교사들은 계획에 동조하지 않았고, 컨설턴트들이 난무했으며 학생들은 자금이 바닥난 이후 계속 어려움을 겪었다.
피터 루이스
작고한 프로그레시브 인슈런스의 피터 루이스 회장은 마리화나 합법을 위한 다양한 캠페인을 벌이는 데 4천만 달러 이상을 지출했다. 피터 루이스 회장은 이에 그치지 않고 뉴질랜드에서 마리화나 소지죄로 체포되기도 했다. 2012년 피터 루이스가 사망하기 전 콜로라도와 워싱턴 주에서만 마리화나가 합법화되었다.
조지 소로스
1980년대부터 헤지펀드계의 거인, 조지 소로스는 더욱 개방된 사회를 도모할 수 있기를 바라며 동유럽 지역에 돈을 쏟아 붓기 시작했다. “나의 원대한 계획은 간발의 차이로 실패한 것 같다.” 조지 소로스는 1991년 내놓은 저서『민주주의의 보증(Underwriting Democracy)』을 통해 유감을 표명하며 실패를 인정했다.뉴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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