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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영재·김원의 스포츠&비즈 (2)

정영재·김원의 스포츠&비즈 (2)

박병호(30)가 뛰고 있는 미네소타 유니폼에는 구단 로고만 있을 뿐 광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김현수(28)가 뛰는 볼티모어 오리올스 유니폼도, 오승환(34)의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도 마찬가지다.
뉴욕양키스의 강타자 에이로드. 이름도 넣지 않는 유니폼에 광고를 붙일 수는 없다는 게 양키스의 자존심이다. 반면 지난해 넥센의 박병호는 유니폼과 헬멧 등에 10개의 광고를 달고 뛰었다.
넥센 히어로즈의 유니폼은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넥센 유니폼 좌우 소매에 3개, 앞면에 4개, 그리고 뒷면 목덜미 부근에 1개의 광고가 부착돼 있다. 헬멧과 하의 광고를 포함하면 10개나 된다. 지난해 박병호가 홈런을 때리고 그라운드를 도는 동안 팬들은 그의 유니폼에 붙은 광고 10개를 보게 됐다. 그러나 올해 그가 뛰고있는 미네소타 트윈스 유니폼에는 구단 로고만 있을 뿐 광고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2004년 5월 MLB 사무국은 개봉을 앞둔 영화 <스파이더맨 2> 의 광고를 사흘간 15개 구장의 베이스에 부착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뉴욕 양키스 홀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양키스는 1경기에 한해 배팅훈련 시간에만 광고물을 설치한 뒤 경기 시작 직전 모두 철거하겠다고 맞섰다. 선수들이 플레이를 하는 베이스에 상업주의가 침투하는 것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결국 하루 만에 계획이 철회됐다. 야구의 전통과 순수성을 지키겠다는 양키스의 고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양키스의 핀스트라이프(세로 줄무늬) 유니폼에는 선수 이름이 적혀 있지 않다. 2014년『뉴욕 양키스 유니폼에는 왜 선수의 이름이 없을까?』를 쓴 스즈키 도모야는 “일개 선수가 구단보다 먼저일 수 없다는 양키스 구단만의 철학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메이저리그 초창기만 해도 유니폼에는 팀명 밖에 적혀 있지 않았다. 1929년 양키스가 최초로 등번호를 유니폼에 집어 넣었다. 타순을 식별하기 위해서였다.

이후 다른 구단들도 등번호를 새기기 시작했다. 60년대가 되자 등번호와 함께 선수 이름을 넣는 구단이 생겼지만 양키스는 반응하지 않았다. 양키스는 아직도 30개 메이저리그 팀 가운데 유일하게 선수 이름을 적지 않는다. 양키스에게 유니폼은 전통이자 권위다. 이름도 넣지 않는 유니폼에 광고를 붙일 수는 없다는 게 양키스의 자부심이자 자존심이다.

MLB 공식 규약(official rules)을 보면 ‘유니폼에 광고와 관련된 패치나 디자인 부착을 금지한다’고 명시돼 있다. 2000년 이후 4차례 일본 도쿄에서 열린 MLB 개막전에서 유니폼과 헬멧에 광고 부착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예외적인 상황이었다.
 광고 없는 유니폼은 명예·순수성 상징”
양키스타디움
MLB 뿐만 아니라 농구(NBA)·미식축구(NFL)·아이스하키(NHL) 등 미국 4대 프로스포츠에서는 유니폼 광고를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2010년 호라이즌 미디어에 따르면 미국 4대 스포츠 구단들이 유니폼 광고를 하지 않아 연간 3억7000만 달러(약 4440억원)의 수입을 놓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윤 추구를 구단의 목적으로 삼는 미국에서 거액의 유니폼 광고수입을 포기하는 이유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영훈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유니폼과 경기장 광고는 구단의 브랜드 정체성(아이덴티티)을 구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다. MLB 구단들은 광고를 최소화하는 게 팬들의 충성도(로열티)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긴다. 브랜드 충성도가 축적되면 장기적으로 구단의 수익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단기적인 광고 수입보다 장기적인 가치를 더 중시하는 것이다. 이 교수는 또 “자연과 맞닿아 있는 ‘파크(공원)’에서 경기를 한다는 이미지도 중시한다. 각 구단은 야구에만 집중할 수 있는 깔끔한 환경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 야구장 명칭에는 ‘스타디움’보다 ‘파크’를 더 많이 쓴다.

니콜라스 보우만 웨스트 버지니아대 교수는 미국에서만 볼 수 있는 특수성이 있다고 설명한다. 그는 “(광고가 없는) 깨끗한 유니폼에는 미국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명예·순수성·충성도 등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MLB는 지난해 95억 달러(약 11조4000억원)를 벌어들이며 사상 최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MLB에는 수익 공유 제도가 있어 수익을 30개 구단에 동등하게 배분한다. 이는 구단의 규모나 성적에 관계없이 안정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또 대부분 팀들은 입장수입과 중계권료만으로 구단 수입의 90% 가까이를 달성한다. 다양하고 안정적인 매출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있어 당장의 유니폼 광고 수입이 절실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에서도 유니폼 광고에 대한 인식 변화의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NBA는 2009년 유니폼 상의에 광고를 허용하는 방안을 처음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2011년 애덤 실버 커미셔너는 “유니폼 상의에 광고를 판매하면 1년에 1억 달러(약 1200억원) 정도는 간단히 벌 수 있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지난 2월 15일 열린 NBA 올스타전에서는 유니폼 후원사를 제외하고 처음으로 제조업체인 기아자동차의 로고가 유니폼에 부착됐다. NBA 중계방송사인 터너 네트워크가 중계권을 따낸 뒤 2016년과 2017년 올스타전 로고 사용권을 기아자동차에 판매했기 때문이다.

NBA는 지난해 6월 스포츠 브랜드 나이키와 8년 계약을 맺었다. 나이키는 2017-2018시즌부터 8년 동안 NBA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입는 경기용 유니폼과 운동복을 독점 공급하게 된다. 이번 시즌부터 NBA는 왼쪽 가슴에 붙어 있던 NBA 로고를 등 뒤로 옮겼다. NBA는 나이키가 제공할 유니폼부터 나이키 로고를 왼쪽 가슴에 노출할 예정이다. NFL도 최근 팀들의 연습용 상의에 스폰서들의 광고를 넣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MLB만큼은 요지부동이다. 23년간(1992-2015) 장기 집권한 버드 셀릭 전 커미셔너는 유니폼 광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었다. 2015년 부임한 롭 맨프레드 커미셔너도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맨프레드는 부임 이후 경기 시간 단축(스피드업)을 강력하게 추진했다. 지난해 4월 미국의 워싱턴포스트는 ‘MLB 팬의 평균 연령이 53세이며 중계 시청자 중 5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중이 50%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젊은 팬들이 줄어들면서 야구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선수들의 박진감 넘치는 플레이를 관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젊은 팬들을 끌어 모으는 방법이라고 MLB는 믿고 있다.

유럽 축구 클럽들은 메인 스폰서십 기업에게 유니폼 상의 앞면을 내 준다. 팀명 대신 스폰서 기업의 로고를 넣는 것이다. 2015-2016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개팀이 유니폼 광고로 벌어들인 금액은 2억1865만 파운드(약 3734억원)에 달했다. 지난 시즌보다 14%가 증가한 금액이며, 2억 파운드를 돌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독일 분데스리가(18팀)의 1억100만 파운드(약 1725억원)의 2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올 시즌 자동차 기업 쉐보레로부터 연간 4700만 파운드(약 802억원)를 받았다.
 “질 높은 광고 붙어야 축구단 위신도 올라가”
손흥민이 뛰고 있는 토트넘 등 유럽 축구클럽에서 유니폼 광고는 축구클럽 위신의 상징이다.
삼성은 2005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첼시의 유니폼 앞면에 기업 로고를 부착하면서 연평균 300억원을 썼다. 삼성은 첼시가 EPL에서 우승한 2009-2010시즌 영국에서만 1억 달러(약 1200억원·추정치)에 달하는 브랜드 노출 효과를 얻었다. 구단은 유니폼 광고를 통해 막대한 수입을 올리고, 기업은 이에 상응하는 광고 효과를 보는 구조가 정착됐다.

유럽 축구 태동기에는 유니폼 스폰서십에 대한 개념이 잡혀 있지 않았다. 1950년대 들어 유니폼 광고를 유치한 구단들이 생겼고, 70년대 들어서야 구단의 안정적인 수입원으로 자리 잡았다. 리차드 젠센 몽클레어 주립대 교수는 “광고가 부착되기 시작하면서 팬들의 반발이 있었지만, 수십년이 흐른 지금 유럽에서 유니폼 광고는 축구 클럽 위신(prestige)의 상징이 됐다”고 설명했다. 광고를 집행하는 기업의 수준에 따라 구단의 브랜드 가치가 결정된다는 의미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스폰서 기업과 유니폼 후원 업체의 로고 이외에 다른 광고물 부착을 막고 있다. 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점도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부터 첼시(요코하마타이어·4000만 파운드)-아스널(에미리트항공·3000만 파운드)-리버풀(스탠다드차터드은행·2500만 파운드)-맨체스터시티(이티하드항공·2000만 파운드)-토트넘(AIA·1600만 파운드)까지 6개 빅클럽의 스폰서료가 전체의 81%를 차지한다. 올 시즌 프리미어리그로 승격한 본머스와 크리스탈팰리스의 메인 스폰서 수입이 각각 13억원 정도임을 감안하면 양극화가 심한 상황이다.

또 스포츠 베팅 업체가 스폰서로 참여하는 구단이 EPL 20개 중 7개나 된다. 유니폼 광고 시장을 베팅 업체가 야금야금 잡아먹고 있는 형국이다. 베팅 업체 광고는 스포츠의 순수성을 훼손하며 승부조작의 원인이 된다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국내 구단은 여건상 유니폼 광고 불가피
정영재 / 2012~15년 중앙일보 스포츠부장을 역임했고, 스포츠선임기자로 일하고 있다. 한국체대에서 스포츠산업경영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겸임교수와 한국체육정책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유니폼은 광고판 역할을 충실히 한다. 프로야구 10개 구단 가운데 넥센이 유니폼에 가장 많은 광고를 부착한다. 유일하게 모기업이 없는 넥센은 광고·스폰서십 수입에 대한 의존(2014년 기준 매출액 대비 약 50%)이 큰 편이다. 특히 유니폼 광고는 구단 수입 창출의 주요 매체다. 타 구단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단들은 한해 30~50억원을 유니폼 광고를 통해 벌고 있다. 유니폼 광고의 단가는 구단마다 제각각이다. 유니폼 앞면은 5억에서 15억원 사이, 목 뒤는 1억에서 4억5000만원 사이에 단가가 형성돼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한국 프로야구 유니폼은 깨끗한 편이었다. 소매 및 헬멧 광고는 한쪽에만 허용됐고, 기타 용구에는 상업적인 부착물을 붙일 수 없었다. 그러나 2007년 이후 양쪽 모두 광고를 허용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 정금조 한국야구위원회(KBO) 운영육성부장은 “구단의 적자가 누적되는 상황에서 모기업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광고의 영역을 확대하는 것이 불가피했다”고 말했다.

김원 / 중앙일보 스포츠부에서 야구·배구·모터스포츠· 미식축구·뉴스포츠 등을 맡고 있다. 고려대 경제학과를 졸업했으며 통계와 데이터, 경제현상을 바탕으로 스포츠를 조망하는 글을 쓴다.
야구규칙 1.11조 h항에는 ‘유니폼의 어떤 부분에도 상업광고에 관련된 위장이나 도안물을 붙여서는 안 된다. 단, 유니폼의 상의 소매 양쪽에 한해 60㎠ 이내의 광고를 허용한다’는 조항이 있다. 현재 구단들이 광고를 부착하는 유니폼 앞면과 뒷면 배번 위 광고는 규칙 위반이다. 정금조 부장은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고, 사회적으로 용인이 가능한 수준에서 광고를 구단 자율에 맡겼다. 잘 지켜지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KBO도 인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열린 KBO 윈터미팅에서 발언권을 얻은 한 팬은 “아끼는 선수의 유니폼에 지나치게 광고가 많이 달려 있으면 가치가 떨어지는 것 같다. 야구를 보는 몰입도도 떨어진다”고 말했다. KBO의 고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당초 KBO는 윈터미팅에서 현재 유니폼과 경기장 광고의 문제점을 공론화 시키려고 했다. 공감대가 형성되면 자연스럽게 단장 회의 등을 통해 개선 방향을 모색하려고 했다. 하지만 구단의 수익과 직결되는 문제라 쉽게 결정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영훈 교수는 “국내 야구단의 경우 모기업 마케팅이 주요 목표 중 하나라 유니폼 광고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한국 프로야구 구단간 지배구조가 다른 점도 고려해야 한다. 모기업의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구단들은 현실적으로 유니폼 광고를 막기 어렵다. 이런 점들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적정 광고수를 신축적으로 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정영재 선임기자·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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