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위에 군림하는 러시아 경찰
법 위에 군림하는 러시아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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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토프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그의 가족을 대리하는 변호단과 러시아 법집행 관리들은 그 문제를 두고 법정 안팎에서 논쟁을 벌인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확실한 점은 이렇다. 다음날 아침 페스토프의 아내 이리나가 시내 병원에서 그의 시신을 확인했는데 온 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인권 운동가들은 그가 러시아 경찰에서 널리 자행되는 고문으로 사망한 게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날 저녁 뮤지션 예카테리나 슈체르비나도 페스토프와 함께 차고에 있었다. 현장 목격자인 그녀는 “경찰이 다짜고짜 그를 구타했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경관이 휘두른 주먹에 뒤통수를 맞고 코피가 쏟아졌다.” 슈체르비나에 따르면 경찰은 차고 수색영장을 제시하지 않았고 왜 들이닥쳤는지 설명도 하지 않았다. 또 적어도 경관 1명에게서 술냄새가 진동했다. 다른 목격자는 러시아 반체제 노선의 매체에 “페스토프가 ‘왜 이러느냐? 난 체포에 저항하지도 않는데 왜 나를 죽이려 하느냐?’고 소리쳤다”고 전했다.
페스토프는 자신의 벨트로 두 손이 묶인 채 차에 태워져 인근 경찰서로 가서 심문 받았다. 경찰은 그에게서 10년 넘게 마약을 거래했다는 자백을 받아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가 열람한 경찰 조서에 따르면 차고 수색에서 마리화나 110g과 약간의 암페타민(필로폰)이 발견됐다. 러시아의 엄격한 마약 단속법에 따르면 그 정도 마약을 소지했을 경우 최고 10년 징역형을 받는다.
그 다음이 좀 희한하다. 그런 중대한 혐의에도 경찰은 다음날 새벽 4시께 그를 풀어줬다고 말했다. 그가 몇 시간 뒤 경찰서로 돌아오기로 약속했고 경찰도 동의했다는 얘기였다. 믿기 어려운 설명이다. 만약 그가 실제로 풀려났다고 해도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귀가하지 않았고 친구나 가족에게 연락하지도 않았다. 경찰은 페스토프가 약속대로 오전 10시께 경찰서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곧바로 몸이 이상하다고 하더니 혼수상태에 빠졌으며 병원으로 옮기는 도중 사망했다는 게 경찰의 설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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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토프의 아내 이리나는 경찰이 거짓말을 한다며 그들이 남편을 밤새도록 구타해 사망케 했다고 반박한다. 경찰은 페스토프를 한 번도 구타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공식 검시 보고서는 약 10군데 멍과 병변의 원인이 ‘둔기’였다고 기록하면서도 사인은 급작한 심장마비였다고 결론지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직속인 수사위원회는 경찰이 페스토프를 구타로 사망케 했다는 주장을 검토한 뒤 “근거가 없다”며 관련 경관들의 기소를 거부했다.
재판이 시작되기 전이나 기소되기 전 경찰서에 구류된 상태에서 사망하는 러시아인이 매년 몇 명이나 될까? 러시아 당국이 그런 통계를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정확히 모른다. 지난해 그런 사망 소식이 거의 매일 전해지자 반체제 언론인 마리아 베레지나는 정확한 통계를 내기 위해 웹사이트를 개설했다. 그녀는 최근 반체제권 웹사이트 스펙트르에 “러시아인은 경찰서에 잡혀가면 살아 나오지 못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베레지나는 내무부 보고서와 언론 기사를 바탕으로 지난해 경찰서 구류 중에 사망한 197명을 확인했다. 그러나 경찰의 진상 은폐가 심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확인된 사망자 수는 전체 희생자의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2002년부터 경찰 고문 사건을 다뤄온 인권 변호사 파벨 치코프도 베레지나의 견해에 동의했다. “러시아 경찰 사이에서 폭력이 일상화됐다. 하지만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문제가 너무도 심각하다.” 러시아 내무부는 그 문제와 관련한 뉴스위크의 논평 요청에 답하지 않았다.
베레지나가 확인한 사망 중 104건은 당국이 두리뭉실하게 표현하는 ‘갑작스런 건강 악화’가 원인이었다. 자살도 62건이나 됐다. 고문방지위원회의 세르게이 바비네츠 변호사는 “경찰이 구류된 사람을 구타해 사망케 한 뒤 목매달아 자살한 듯이 조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구타 흔적이 확연한 시신을 넘겨 받았을 때 당국에 이의를 제기할 만한 가족이 없다면 그대로 자살이 공식 사인이 돼 버린다.” 그는 러시아 경찰에 폭력 사용과 관련해 특화된 교육과 훈련이 없고 채용 기준이 낮으며 매달 ‘체포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력이 큰 탓에 폭력이 만연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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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 정권을 비판하는 다니일 콘스탄티노프도 러시아 법집행기관에서 고문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는 2013년 12월 구치소에서 보안기관원의 전기충격기 공격을 받았다. 경찰에선 전기충격기를 ‘푸틴과의 통화’라고 부른다. 그 다음 약 5시간 동안 벤치에 수갑이 채워진 채 고통스런 자세로 견뎌야 했다. 콘스탄티노프는 “그들은 가학적인 성향으로 특별히 선발된 듯한 ‘신속대응팀’이었다”고 돌이켰다. 그는 다음해 러시아에서 탈출한 뒤 현재 리투아니아에 산다.
고문을 폭로한 2건 모두에서 수사위원회는 당국에 대한 형사 기소를 거부했다. 페스토프의 죽음은 옛 소련의 록그룹 일원이라는 특이한 과거 때문에 언론의 주목을 받았지만 아주 드문 경우다. 구류 중 사망과 고문 주장의 대부분은 아무런 반응이 없거나 그냥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이나 유럽과 달리 경찰의 구류자 학대가 공분을 촉발하는 경우가 드물다. 무슬림이 다수인 북캅카스 지역(러시아 보안군이 이슬람주의 무장대원 용의자들을 고문했다고 비난받는다)을 제외하면 경찰의 잔혹행위에 항의하는 시위는 없다.
바비네츠 변호사는 “러시아에서 고문이 자행된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고 말했다. “더구나 러시아에선 고문이 일상사가 됐다. 경찰서에서 누군가 구타당했다는 소식이 들려도 놀라는 사람이 없다. 관심을 끌려면 아주 충격적인 뭔가 필요하다. 사람들은 경찰이 누군가를 구금하면 그에게 죄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구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권 변호사들이 승소한 경우도 있다. 2014년 러시아 현대사에서 가장 주목을 끈 경찰 고문 사건에서 러시아 중부 카잔의 경찰관 3명은 사소한 폭력 혐의로 구금된 세르게이 나자로프를 사망케 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10∼15년 징역형을 선고 받았다.
그런 기소는 러시아 인권 변호사와 운동가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이뤄졌다. 그러나 이제 크렘린이 그들의 엄격한 단속에 나섰다. 올해 초 러시아의 인권단체 아고라가 해체됐다. ‘정치적 활동’으로 비정부기구를 관장하는 새로운 러시아 법을 위반했다는 판결에 따른 조치였다.
고문방지위원회도 갈수록 커지는 압력에 시달린다. 지난해 12월 미확인 공격자들이 그 단체의 체첸 사무실에 불을 질렀다. 지난 3월엔 북캅카스 지역을 답사하던 언론인·운동가들이 복면 괴한에게 구타당했다. 고문방지위원회도 아고라 해체에 사용된 것과 같은 법의 표적이 됐다. 그러나 회원들은 고문방지위원회가 강제 해체당한다고 해도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바비네츠 변호사는 “최악의 경우 개인 변호사로서 계속 사건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 “러시아에서 고문이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 마크 베네츠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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