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가 ‘파나마 페이퍼스’를 폭로했나

서방 정치인들은 해외 조세 피난처를 단속하겠다고 큰소리치지만 실상 그들이 모두 힘을 합쳐 입김을 불어도 기득권층의 아성은커녕 아기 돼지 3형제의 지푸라기 집도 날려버리지 못할 듯하다. 이 문제가 세상에 밝혀지게 된 것은 탐사보도 기자들, 내부고발자들(whistleblowers), 그리고 미디어의 전례 없는 국제적인 협력 덕분이다.
부정금융 조사단체인 국제금융청렴조사위원회(GFI)의 발표에 따르면 자본의 불법적인 해외이전으로 2001~2010년 개도국들이 입은 손실은 6조 달러에 육박했다. 세계 인구의 1%가 부의 절반을 소유하며 그들은 그 재산을 남 모르게 숨겨두려 한다.

그 뒤 HSBC 은행 데이터가 유출되면서 HSBC의 스위스 프라이빗 은행(개인자산 종합관리 서비스)에서 외국 계좌 보유자들의 거액 탈세를 도왔음이 드러났다. 그리고 이번엔 거액의 자금을 묻어두기에 안성맞춤인 파나마 차례가 돌아왔다.
파나마에 대한 조사에선 세계 각국에서 뜻을 같이하는 기자들의 네트워크가 다시 활약했다. 일련의 다국적 협력 취재를 거치면서 하나의 네트워크가 형성됐다. 관련 언론매체로는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영국 BBC TV의 파노라마 프로그램 등이 있다. 이들은 이번 취재의 중심 축인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와 오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자료는 세계 4위의 대형 역외 법무법인인 모색 폰세카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독일 신문 쥐트도이체차이퉁으로 유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때 철통 같던 조세회피 비밀주의 장벽에 균열이 생기면서 부자와 권력자들은 프라이버시가 더는 보장되지 않는 현실을 분명 감지하고 있을 것이다. ‘파나마 페이퍼스’의 1차 발표는 20억 달러에 달하는 자금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연관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러나 앞으로 더 많은 인물들과 관련된 폭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역외 은행계좌를 보유한 부자와 권력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들에 대한 세상의 관심이다. 그들이 갖는 의문은 분명 ‘다음은 어디’와 ‘아직 안전한 피난처는’일 듯하다.파나마 금융 서비스 산업의 어떤 점에 주목해야 할까? 구글에서 ‘Panama offshore(파나마 역외금융)’를 검색하면 파나마 역외 (비밀) 은행계좌를 개설해 준다는 광고가 줄줄이 이어진다.

파나마에서 설립된 역외 기업(그리고 기업주)들에는 법인세·원천과세·소득세·자본소득세·지방세 그리고 증여세를 포함한 유산세가 모두 면제된다.
파나마에 등록된 비밀 국제비즈니스컴퍼니(IBCs, 유령회사)는 35만 개가 넘는다. 홍콩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파나마 금융 서비스 업계는 IBC의 설립과 함께 탈세 목적 재단·신탁, 보험 그리고 선박과 해운 등록에 적극적이다. 또한 파나마에선 금융 비밀주의 원칙을 위반하면 징역형을 받는다.
파나마는 조세정의네트워크(TJN)가 발표한 2015년 금융비밀지수(Financial Secrecy Index)에서 14위에 올라 있다. 그러나 특별 관리가 필요한 지역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파스칼 세인트 아만스 조세정책센터 국장은 최근 파나마의 문제를 가리켜 “평판만 놓고 보자면 사람들이 여전히 돈을 묻어둘 수 있다고 믿는 유일한 나라”라고 요약했다.
TJN에 따르면 “지금까지 파나마는 평판 문제에 거의 신경 쓰지 않으면서 수상쩍은 법률과 구린내 나는 법률회사들로 사기꾼과 범죄자를 끌어들였다. 하지만 갈수록 이목이 집중되면서 파나마가 더는 신원을 보호할 수 없다는 우려가 고객들 사이에서 커지고 있다.”
TJN에 따르면 파나마는 오래 전부터 중남미의 마약거래자금뿐 아니라 미국 등지의 방대한 출처에서 자금을 받아 왔다. 미주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고 잘 알려진 조세 피난처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근년 들어 국제 투명성 프로그램에 협력을 거부하는 강경 입장을 취해 왔다.제프리 로빈슨의 2003년 조세 피난처 조사 보고서 ‘싱크(The Sink: Terror, Crime and Dirty Money in the Offshore World)’에서 미국의 한 세관 당국자 말을 인용했다.

비밀 조세피난처의 실체를 파헤치려 마음먹은 다국적 언론인 네트워크가 부상한 배경에는 탐사보도기자 제럴드 라일이 있다. 일간지 시드니 모닝 헤럴드와 ‘더 에이지’를 중심으로 호주와 아일랜드에서 26년 동안 기자와 편집자로 활동한 베테랑이다. 그는 몇 건의 특종을 터뜨리면서 호주의 최고 언론상인 황금 워클리 등 권위 있는 워클리상을 4회나 수상했다.
라일 기자는 호주의 시드니 모닝 헤럴드에서 근무할 때 한 정보원으로부터 기자생활에서 최대의 특종이 될 수 있는 소포를 받을 것이라는 메시지를 받았다. “소포가 도착한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사무실 당직자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고맙다고 말하고 내 사무실로 돌아왔다. 소포를 뜯어보니 안에 하드 드라이브가 들어 있었다.”
처음에는 상황 파악이 잘 안 됐지만 역외금융 세계에서 나온 엄청난 분량의 상세한 비밀 이메일·문서·파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라일 기자는 마구 뒤엉킨 자료를 살펴본 뒤의 느낌을 이렇게 돌이켰다. “금광일 수도 있다는 감은 잡았지만 이게 뭔지, 얼마나 가치 있는 물건인지 몰랐다.”
라일 기자는 그것이 은밀한 역외 금융계의 진짜 정보임을 알았다. 그리고 어떻게든 유의미한 데이터를 추출해야만 했다. 얼마 뒤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ICIJ로부터 회장직을 맡아 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 작업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할 기회가 찾아온 셈이었다.
ICIJ는 공공청렴센터(CPI)의 감시 저널리즘을 확대하기 위한 프로젝트로 1997년에 설립했다. 다국적 범죄, 부패, 권력자의 책임 등 국경을 뛰어넘는 현안들에 초점을 맞춘다.
라일 기자는 ICIJ의 자원을 활용할 수 있게 되자 정보를 체계화하기 위한 국제적인 준비작업에 착수했다. 세계 각지의 언론인들이 안전한 보안 플랫폼에서 효율적이고 일목요연하게 데이터를 분석해 거물들의 이름과 증거를 확보할 수 있게 하려는 포석이었다.
2013년 4월, 케이맨제도 조세피난처의 세부정보를 공개한 지 24시간도 안 돼 ICIJ와 공동 취재한 기사들이 가디언 신문을 가득 채웠다. 그 밖의 제휴 언론사로는 영국 BBC, 프랑스 르몽드, 독일의 쥐트도이체차이퉁과 노르트도이체 방송, 워싱턴 포스트, 캐나다방송공사(CBC)와 기타 31개 국제 미디어 파트너들이 있다.
ICIJ에 따르면 46개국 언론인 86명이 첨단 데이터 분석기법과 전통적인 취재방식으로 30년치에 육박하는 이메일과 계좌원장을 샅샅이 파헤쳤다. ICIJ가 건져 올린 대어 중 하나는 일함 알리예프 아제르바이잔 대통령에 관한 정보였다. 그와 그의 가족이 최소 4개 역외 기업의 주주로 밝혀졌다. 아제르바이잔 법에서는 권좌에 있을 때는 사업에 관여할 수 없다. 2013년 9월쯤 비밀 역외은행 계좌를 보유했던 유명인사 관련 정보를 190개국의 기자들이 데이터베이스에서 추출했다.지난해 2월에는 45개국의 기자단이 범죄자·밀수업자·탈세자·정치인·유명인이 보유하던 비밀 은행계좌를 일반에 공개했다. 유출된 데이터의 비밀 문서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 대기업 HSBC가 무기거래상과의 사업을 통해 이익을 취했다고 ICIJ는 보도했다. HSBC 산하 스위스 프라이빗 뱅킹 조직의 내부 실상용에 근거한 유출 파일은 1억 달러 이상의 자금을 보유한 계좌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초특급 비밀에 가려진 스위스 금융 시스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 ICIJ가 프랑스 르몽드 신문을 통해 입수한 문서들은 스위스 프라이빗 뱅킹 조직이 불법행위에 가담했던 고객들과 거래했음을 보여줬다.

지난해 말 ICIJ는 사상 최대 규모의 데이터를 입수했다. 세계 각지의 자산가들이 보유한 계좌와 관련된 1100만 건의 문서다. 그 뒤의 이야기는 현재 속속 드러나고 있으며 앞으로 몇 개월 동안, 어쩌면 몇 년에 걸쳐 뉴스 속보란을 채울 것이다. 탐사보도 기자들이 권력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해야 할 필요성을 말해주는 증거다.
- 폴 라슈마
[ 필자는 영국 서식스대학 언론학과 부교수다. 이 기사는 온라인 매체 컨버세이션에 먼저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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