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비스가 닉슨을 만났을 때
엘비스가 닉슨을 만났을 때
헤어스타일과 옷차림만 보면 엘비스 프레슬리가 분명하다. 하지만 그는 엘비스보다 키가 크고 말랐으며 생김새가 딴판이다. 영화 ‘엘비스 앤 닉슨(Elvis & Nixon)’의 엘비스 역을 맡기로 했을 때 마이클 섀넌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광팬은 아니었다”. 연극(‘버그’)과 TV 드라마(‘보드워크 엠파이어’), 영화(‘레볼루셔너리 로드’)에서 소름 끼치도록 실감 나는 연기로 유명한 섀넌은 누군가를 흉내 내는 데는 별로 소질이 없다고 말한다. 솔직히 섀넌은 엘비스의 의상을 제작했던 업체에서 만든 옷을 입고 똑같은 헤어스타일의 가발을 써도 그와 별로 닮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엘비스의 절친이었던 제리 실링(그는 1970년 엘비스가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와 동행했다)은 섀넌이 엘비스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외모만 보면 섀넌은 그동안 엘비스 역을 맡았던 배우 중에서 가장 닮지 않았다”고 실링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엘비스의 내면을 잘 포착했다. 내 친구를 제대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엘비스 역을 맡았던 배우 중 최고인 듯하다.”
영화 ‘엘비스 앤 닉슨’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시작된다. 케빈 스페이시는 찡그린 표정과 억양, 몸짓으로 닉슨의 ‘고약한’ 성격을 과장 없이 표현한다. 그 다음엔 무료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엘비스로 초점이 옮겨진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명예요원 배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그는 그 비밀 임무에 실링(알렉스 페티퍼)을 끌어 들인다.
닉슨과 엘비스는 오랫동안 TV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 소재였다.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에 따르면 닉슨 관련 작품은 90편, 프레슬리 관련 작품은 250편에 이른다. 사실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1997년 미국 케이블 방송 쇼타임이 TV 영화 ‘엘비스 미츠 닉슨(Elvis Meets Nixon)’에서 먼저 다뤘다. 하지만 당시 실링은 “대본이 우스꽝스럽고 작품이 형편없어 자신의 캐릭터 이름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가 유명한 실존 인물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연극 ‘프로스트 vs 닉슨’ 미국 순회공연에서 닉슨을 연기한 스테이시 키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닉슨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게 첫 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능력 있는 배우라면 누구나 닉슨을 흉내 낼 수 있지만 불안감과 사회성 부족 등 성격을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촌극은 개괄적인 묘사로 충분하지만 영화는 다르다”고 스페이시는 말했다. 그는 섀넌과 달리 흉내 내기에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 크리스토퍼 월큰부터 캐서린 헵번과 빌 클린턴까지 다양한 유명인사를 흉내 낼 수 있다. “닉슨도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맥 빠진 영화가 된다.”‘영화 속의 닉슨(Nixon at the Movies)’의 저자 마크 피니는 “닉슨을 제대로 연기한 배우는 몇 안 되며 역할의 비중이 클수록 실감 나게 묘사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댄 에이크로이드는 닉슨의 목소리와 몸짓을 완벽하게 묘사했고 1979년 미니 시리즈 ‘블라인드 앰비션(Blind Ambition)’에서 립 톤의 연기도 탄탄했다.”
하지만 피니는 닉슨 역을 맡았던 배우 대다수의 연기에 독창성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TV 영화 ‘키신저와 닉슨’(Kissinger and Nixon, 1995)’의 보 브리지스와 TV 다큐 드라마 ‘감춰진 적(Concealed Enemies, 1984)’의 피터 리거트가 그랬고 ‘엘비스 미츠 닉슨’의 밥 건튼은 더 형편없었다고 설명했다. 닉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1995)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피니는 웨일즈 출신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닉슨의 억양이 어색했다고 말한다.
키치는 영화에서 실존 유명인사를 묘사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한다. 배우들이 이전에 비해 보철기구에 덜 의존한다. “보철기구 이용은 구식이다”고 키치는 말했다. “요즘 배우들은 똑같은 외모보다 그 인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섀넌도 같은 생각이다. “(똑같이 보이게 하려는) 분장은 오히려 방해된다. 진짜 엘비스를 보고 싶다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 된다.”
피니는 워터게이트 사건 풍자 영화 ‘딕’(1999)에서 댄 헤다야가 연기한 닉슨을 가장 좋아한다. “영화 줄거리가 허구라서 헤다야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훌륭한 배우인 그는 닉슨에게 진정한 인간성을 부여했다.”
TV 드라마 ‘치어스’, 영화 ‘분노의 저격자’와 ‘유주얼 서스펙트’로 유명한 헤다야는 ‘딕’의 앤드루 플레밍 감독이 닉슨 역을 제안했을 때 잘해 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난 플레밍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봐요. 난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이에요. (닉슨 연기는) 불가능해요.’”
“플레밍은 내 발음을 지도할 코치를 고용했고 그는 이중모음 발성법에 관한 책을 들고 왔다”고 헤다야는 돌이켰다. “그때 난 닉슨의 특징을 과장해 우스꽝스럽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 am not a crook)’라는 말로 유명한 닉슨의 연설 비디오를 보고 나서부터 닉슨에 빙의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08년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제작 당시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던 스페이시는 ‘엘비스 앤 닉슨’이 ‘워터게이트와 상관없이’ 닉슨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이 영화에 끌렸다고 밝혔다. 스페이시는 닉슨의 사진과 뉴스 영상에서 그의 어색한 몸짓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통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면서 사적인 자리에서의 말투와 목소리를 익혔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하고도 스페이시는 촬영 첫날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또 다시 대통령 역할을 맡아 보는 이들이 프랭크 언더우드(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그가 연기한 대통령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도록 하는 게 문제였다.”
그동안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한 많은 배우에게도 고충이 따랐다. “어떤 배우를 써도 엘비스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존슨 감독이 말했다. “잘생긴 외모가 절정에 달했던 1955년의 엘비스처럼 보이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시절이라도 외모의 차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실링은 “TV 영화 ‘엘비스와 나’(1988)의 데일 미드키프와 영화 ‘하트브레이크 호텔’(1988)의 데이비드 키스는 너무 밋밋했던 반면 영화 ‘엘비스’(1979)의 커트 러셀은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실링은 엘비스 프레슬리 엔터프라이즈에서 10년 동안 엘비스와 관련된 모든 음반과 영화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1990년에는 ABC 방송의 엘비스 전기 드라마 시리즈 ‘엘비스’의 주인공을 마지막에 자신이 원하는 배우(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마이클 세인트 제라드)로 교체시켰다. 또 2005년에는 CBS 미니 시리즈 ‘엘비스’의 주인공으로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를 캐스팅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실링은 또 ‘엘비스 앤 닉슨’의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엘비스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 영화는 엘비스가 명성에 따른 특권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보여준다. 그에겐 어떤 규칙도 통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게 ‘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하지만 엘비스는 자신이 고립됐다는 걸 잘 알았다. 작가들은 엘비스가 실링에게 대외용 이미지를 위한 헤어스프레이와 검정 모발 염색제, 얼굴 크림에 관해 말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섀넌은 엘비스의 의상과 몸치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치장 속에서) 난 마치 사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엘비스는 금과 보석, 돈과 카메라 플래시, 무대 분장과 팬들의 환호 속에 묻혔다.”
존슨 감독은 섀넌이 엘비스의 웃음소리와 불안감을 잘 표현했으며 그처럼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말했다. 실링 역을 맡은 페티퍼는 1970년대 실링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해 그를 놀라게 했다. 어느날 실링의 집에 들른 페티퍼는 면도칼을 달라고 해서 턱수염을 면도한 뒤 커다란 구레나룻을 달고 나타났다. “구레나룻이 너무 큰 것 같아 그 시절에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갖고 나왔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보니 당시 내 구레나룻이 정말 그렇게 컸다.”
섀넌은 실링이 없었다면 엘비스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을 듯하다. 실링은 섀넌을 그레이스랜드(엘비스가 살았던 저택), 엘비스와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로 데려가 구경시켜줬다. 또 실링이 준 엘비스의 대화 녹음 테이프가 섀넌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헤드폰을 끼고 그 테이프를 들었다”고 섀넌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목소리 연기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 테이프에 실린 목소리를 기준으로 연기했다. 엘비스가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목소리를 흉내 내고 싶진 않았다.”
섀넌은 엘비스라는 캐릭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그를 사랑하게 됐다. “엘비스는 늘 뭔가를 찾아 헤매던 깊이 있는 남자”라고 섀넌은 말했다. “엘비스가 애독하던 책 중 하나가 ‘시타르타’였다. 상상도 못했던 책이다.”
- 스튜어트 밀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하지만 엘비스의 절친이었던 제리 실링(그는 1970년 엘비스가 리처드 닉슨 당시 미 대통령을 만났을 때 그와 동행했다)은 섀넌이 엘비스로 변신하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외모만 보면 섀넌은 그동안 엘비스 역을 맡았던 배우 중에서 가장 닮지 않았다”고 실링은 말했다. “하지만 그는 엘비스의 내면을 잘 포착했다. 내 친구를 제대로 표현했다. 지금까지 엘비스 역을 맡았던 배우 중 최고인 듯하다.”
영화 ‘엘비스 앤 닉슨’은 백악관 대통령 집무실에서 시작된다. 케빈 스페이시는 찡그린 표정과 억양, 몸짓으로 닉슨의 ‘고약한’ 성격을 과장 없이 표현한다. 그 다음엔 무료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엘비스로 초점이 옮겨진다. 미 연방수사국(FBI)의 명예요원 배지를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던 그는 그 비밀 임무에 실링(알렉스 페티퍼)을 끌어 들인다.
닉슨과 엘비스는 오랫동안 TV 드라마와 영화의 인기 소재였다. 영화 데이터베이스 IMDb에 따르면 닉슨 관련 작품은 90편, 프레슬리 관련 작품은 250편에 이른다. 사실 엘비스와 닉슨의 만남이라는 주제는 1997년 미국 케이블 방송 쇼타임이 TV 영화 ‘엘비스 미츠 닉슨(Elvis Meets Nixon)’에서 먼저 다뤘다. 하지만 당시 실링은 “대본이 우스꽝스럽고 작품이 형편없어 자신의 캐릭터 이름을 바꿔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말했다.
코미디언이 아닌 배우가 유명한 실존 인물을 묘사하기는 쉽지 않다. 연극 ‘프로스트 vs 닉슨’ 미국 순회공연에서 닉슨을 연기한 스테이시 키치는 “관객으로 하여금 내가 닉슨이라고 믿도록 만드는 게 첫 번째 임무”라고 말했다. “능력 있는 배우라면 누구나 닉슨을 흉내 낼 수 있지만 불안감과 사회성 부족 등 성격을 표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촌극은 개괄적인 묘사로 충분하지만 영화는 다르다”고 스페이시는 말했다. 그는 섀넌과 달리 흉내 내기에 특별한 재능을 지녔다. 크리스토퍼 월큰부터 캐서린 헵번과 빌 클린턴까지 다양한 유명인사를 흉내 낼 수 있다. “닉슨도 그런 식으로 묘사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면 맥 빠진 영화가 된다.”‘영화 속의 닉슨(Nixon at the Movies)’의 저자 마크 피니는 “닉슨을 제대로 연기한 배우는 몇 안 되며 역할의 비중이 클수록 실감 나게 묘사하기가 더 어렵다”고 말했다. “‘새터데이 나이트 라이브’의 댄 에이크로이드는 닉슨의 목소리와 몸짓을 완벽하게 묘사했고 1979년 미니 시리즈 ‘블라인드 앰비션(Blind Ambition)’에서 립 톤의 연기도 탄탄했다.”
하지만 피니는 닉슨 역을 맡았던 배우 대다수의 연기에 독창성이 부족했다고 말했다. TV 영화 ‘키신저와 닉슨’(Kissinger and Nixon, 1995)’의 보 브리지스와 TV 다큐 드라마 ‘감춰진 적(Concealed Enemies, 1984)’의 피터 리거트가 그랬고 ‘엘비스 미츠 닉슨’의 밥 건튼은 더 형편없었다고 설명했다. 닉슨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는 올리버 스톤 감독의 ‘닉슨’(1995)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피니는 웨일즈 출신 배우 앤서니 홉킨스가 연기한 닉슨의 억양이 어색했다고 말한다.
키치는 영화에서 실존 유명인사를 묘사하는 방식이 과거와 달라졌다고 말한다. 배우들이 이전에 비해 보철기구에 덜 의존한다. “보철기구 이용은 구식이다”고 키치는 말했다. “요즘 배우들은 똑같은 외모보다 그 인물의 본질을 포착하는 데 주력한다.” 섀넌도 같은 생각이다. “(똑같이 보이게 하려는) 분장은 오히려 방해된다. 진짜 엘비스를 보고 싶다면 그가 출연한 영화를 보면 된다.”
피니는 워터게이트 사건 풍자 영화 ‘딕’(1999)에서 댄 헤다야가 연기한 닉슨을 가장 좋아한다. “영화 줄거리가 허구라서 헤다야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훌륭한 배우인 그는 닉슨에게 진정한 인간성을 부여했다.”
TV 드라마 ‘치어스’, 영화 ‘분노의 저격자’와 ‘유주얼 서스펙트’로 유명한 헤다야는 ‘딕’의 앤드루 플레밍 감독이 닉슨 역을 제안했을 때 잘해 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난 플레밍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 목소리를 들어봐요. 난 브루클린 출신의 유대인이에요. (닉슨 연기는) 불가능해요.’”
“플레밍은 내 발음을 지도할 코치를 고용했고 그는 이중모음 발성법에 관한 책을 들고 왔다”고 헤다야는 돌이켰다. “그때 난 닉슨의 특징을 과장해 우스꽝스럽지 않게 조심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나는 사기꾼이 아닙니다(I am not a crook)’라는 말로 유명한 닉슨의 연설 비디오를 보고 나서부터 닉슨에 빙의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2008년 영화 ‘프로스트 vs 닉슨’ 제작 당시 스크린 테스트를 받았던 스페이시는 ‘엘비스 앤 닉슨’이 ‘워터게이트와 상관없이’ 닉슨을 연기할 수 있는 기회라고 여겨 이 영화에 끌렸다고 밝혔다. 스페이시는 닉슨의 사진과 뉴스 영상에서 그의 어색한 몸짓을 눈여겨봤다. 그리고 통화 내용을 녹음한 테이프를 들으면서 사적인 자리에서의 말투와 목소리를 익혔다. 하지만 그렇게 준비하고도 스페이시는 촬영 첫날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또 다시 대통령 역할을 맡아 보는 이들이 프랭크 언더우드(드라마 ‘하우스 오브 카드’에서 그가 연기한 대통령 캐릭터)를 떠올리지 않도록 하는 게 문제였다.”
그동안 엘비스 프레슬리를 연기한 많은 배우에게도 고충이 따랐다. “어떤 배우를 써도 엘비스처럼 보이지 않는다”고 존슨 감독이 말했다. “잘생긴 외모가 절정에 달했던 1955년의 엘비스처럼 보이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어떤 시절이라도 외모의 차이를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실링은 “TV 영화 ‘엘비스와 나’(1988)의 데일 미드키프와 영화 ‘하트브레이크 호텔’(1988)의 데이비드 키스는 너무 밋밋했던 반면 영화 ‘엘비스’(1979)의 커트 러셀은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실링은 엘비스 프레슬리 엔터프라이즈에서 10년 동안 엘비스와 관련된 모든 음반과 영화 프로젝트를 감독했다. 1990년에는 ABC 방송의 엘비스 전기 드라마 시리즈 ‘엘비스’의 주인공을 마지막에 자신이 원하는 배우(뮤지컬 영화 ‘헤어스프레이’의 마이클 세인트 제라드)로 교체시켰다. 또 2005년에는 CBS 미니 시리즈 ‘엘비스’의 주인공으로 조너선 리스 마이어스를 캐스팅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실링은 또 ‘엘비스 앤 닉슨’의 시나리오 작가들에게 엘비스의 인간적인 측면을 부각시켜달라고 요청했다. 이 영화는 엘비스가 명성에 따른 특권을 얼마나 즐겼는지를 보여준다. 그에겐 어떤 규칙도 통하지 않았고 누구도 그에게 ‘노’라고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대통령까지도. 하지만 엘비스는 자신이 고립됐다는 걸 잘 알았다. 작가들은 엘비스가 실링에게 대외용 이미지를 위한 헤어스프레이와 검정 모발 염색제, 얼굴 크림에 관해 말하는 장면을 추가했다.
섀넌은 엘비스의 의상과 몸치장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모든 치장 속에서) 난 마치 사물이 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엘비스는 금과 보석, 돈과 카메라 플래시, 무대 분장과 팬들의 환호 속에 묻혔다.”
존슨 감독은 섀넌이 엘비스의 웃음소리와 불안감을 잘 표현했으며 그처럼 매혹적인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말했다. 실링 역을 맡은 페티퍼는 1970년대 실링의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해 그를 놀라게 했다. 어느날 실링의 집에 들른 페티퍼는 면도칼을 달라고 해서 턱수염을 면도한 뒤 커다란 구레나룻을 달고 나타났다. “구레나룻이 너무 큰 것 같아 그 시절에 찍은 사진을 그에게 보여주려고 갖고 나왔다. 그런데 막상 사진을 보니 당시 내 구레나룻이 정말 그렇게 컸다.”
섀넌은 실링이 없었다면 엘비스를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을 듯하다. 실링은 섀넌을 그레이스랜드(엘비스가 살았던 저택), 엘비스와 자신이 어린 시절 살았던 동네로 데려가 구경시켜줬다. 또 실링이 준 엘비스의 대화 녹음 테이프가 섀넌에게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촬영이 없을 때는 헤드폰을 끼고 그 테이프를 들었다”고 섀넌은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 목소리 연기가 부족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난 그 테이프에 실린 목소리를 기준으로 연기했다. 엘비스가 공적인 자리에서 말하는 목소리를 흉내 내고 싶진 않았다.”
섀넌은 엘비스라는 캐릭터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자마자 그를 사랑하게 됐다. “엘비스는 늘 뭔가를 찾아 헤매던 깊이 있는 남자”라고 섀넌은 말했다. “엘비스가 애독하던 책 중 하나가 ‘시타르타’였다. 상상도 못했던 책이다.”
- 스튜어트 밀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많이 본 뉴스
1평행선 그리는 ‘의정갈등’...고래가 싸우자, 새우는 울었다
2‘검은 반도체’ 김 수출 역대 최고기록 달성…10억달러 수출 청신호
3이복현 "상법 개정보다 자본시장법 개정이 합리적"
4롯데, 해외 부실면세점 철수 검토…케미칼, 자산매각 추진
511월 기록적 폭설에 車사고 60% 급증…보험료 인상 조짐
6대한항공-아시아나 합병 4년만에 승인…통합 LCC도 출범
7이재명 “‘국장’ 떠나는 현실...PER 개선하면 ‘코스피 4000’ 무난”
8롯데바이오로직스 설립 2년 만 수장 교체…신임 대표는 아직
9상법 개정 되지 않는다면 “국장 탈출·내수 침체 악순환 반복될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