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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맞는 유경준 통계청장] “국민계정 작성 통계청이 맡아야”

[취임 1주년 맞는 유경준 통계청장] “국민계정 작성 통계청이 맡아야”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국민계정 통계, 이젠 통계청에서 만드는 게 옳다.” 취임 1주년을 앞둔 유경준(55) 통계청장을 5월 11일 대전정부청사에서 만났다. 유 청장은 주마등 같이 1년을 보냈다면서도 ‘앞으로 더해야 할 일’을 얘기했다. 국내총생산(GDP)으로 대표되는 국민계정 집계다. 국민계정은 한국 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일종의 국가판 ‘재무제표’다. 개인과 기업, 정부가 얼마를 벌고 썼는지 규모와 흐름을 보여준다. 소득과 생산, 자본·금융에 국외 거래까지 담긴다. 이 방대한 작업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 이후 60년 넘게 한국은행이 도맡아왔다.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몇 퍼센트를 기록했고 국민소득이 몇만 달러를 돌파했다는 발표 모두 한은을 통해 이뤄졌다. 이 ‘국가 재무제표’를 작성하는 일을 앞으로 통계청에서 해야 한다고 유 청장이 밝혔다.



국민계정 작성은 한은에서 하고 있는 일 아닌가.


“통계청이 없던 시절 미 군정이 중앙은행에서 하라고 해서 시작하게 된 일이다. 한은은 통화정책을 하는 곳이다. 다양한 통계 자료와 지표를 가지고 정확한 판단을 하는, 부가가치가 높은 일을 해야 한다. 한은의 통화정책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서라도 업무 분장에 대해 고려할 시기가 됐다.”



국민계정 통계를 어떻게 바꿔야 한다는 건가.


“양(量)을 나타내는 지표만으로는 부족하다. 삶의 질을 반영할 수 있는 지표를 만들어야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만든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 유럽연합(EU)의 ‘비욘드(Beyond) GDP’나 여러 나라에서 시도되고 있는 ‘GDP+’ 같은 개념이다. 현 정부의 공약에도 삶의 지표를 개발한다는 게 있었다. 이를 만들려면 통합된 지표가 필요하다. 국민소득만 해도 과거 통계 생산 방식을 써온 탓에 반영이 안 되는 부분이 상당히 많다. 우버 같은 공유 경제, 기술 발전에 따른 정보 가치 등이 누락돼있다. 국민계정을 바탕으로 환경경제계정, 국민이전계정, 사회계정 통계도 발달시켜야 한다. 삶의 질 지표를 체계적으로 생산하고 국민계정을 보완하려면 통계청에서 그 일을 해야 한다.”



한은에서 동의할지 의문이다.


“지금 와서 (국민계정 업무를) 내놓으라고 한다면 밥그릇 싸움으로 비춰지긴 하겠지만 국민계정 보완과 삶의 질 지표를 체계적으로 개발하는 일은 통계청에서 하는 게 더 효율적이다. 중앙은행에선 통화신용정책과 관련한 부가가치가 높은 쪽의 일에 집중하는 게 바람직하다. 한은과 협의를 하겠다.”



올해 경제총조사를 실시한다.


“경제총조사는 경제 부문의 유일한 전수 조사(표본을 추출해 조사하지 않고 전체를 조사)다. 한국 전체의 산업구조를 5년 마다 파악해 경제지도를 다시 그리는 작업이다. 약 450만 개 사업체를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조사한다. 읍면동 소지역 단위까지 세부 통계를 작성해 제공할 예정이다. 경제총조사에서 달라져야 할 것도 많다. 통계 모집단의 정확한 파악과 시의성에 맞는 통계 생산, 비용 절감 등이다. 자영업자와 중소·영세기업 통계가 아직 부실하다. 사실 한국은 경제 수준이 비슷한 다른 나라에 비해 자영업자가 많다. 생계형으로 자영업에 뛰어드는 인구가 많다. 50대 초반 은퇴를 하고도 80세를 넘어 살아야 하는 고령화가 진행되는데 사회안전망은 미비하기 때문이다. 주변 환경조사가 미흡하고 준비 기간도 짧기 때문에 자영업자가 식당, 치킨집, 프랜차이즈 업체, 커피숍에 쏠린다. 그런데 10곳 중 절반 이상이 1~2년 내 문을 닫는 실정이다. 이런 현실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도록 부실한 자영업과 기업 통계를 보완해 나가겠다.”



어떤 방법으로 해나갈 계획인가.


“기업등록부(BR, Business Register)를 만들겠다. 기업판 주민등록부다. 한국은 주민등록을 통해 인구동향 통계를 작성해서 국제사회에서 우수 사례로 인정받았다. 기업에도 등록번호를 부여해 빈틈없는 경제지도를 작성할 계획이다. 기업등록부를 만들면 조사 효율성이 높아지고 예산도 절감할 수 있다. 자영업 통계 같은 신규 통계 작성의 기반도 마련할 수 있다. 현장 조사를 통해서만 파악할 수 있는 미등록 사업체, 무점포 업체, 가구 내 경제활동 등 모든 자료를 적기에 반영할 계획이다.”



국세청에서 하고 있는 사업자 등록과 중복된다.


“국세청에 등록된 사업자 수와 통계청이 파악한 사업장 수가 불일치하는 문제가 있다. 기업등록부를 제대로 구축·관리하려면 사업체 식별, 업종 분류 등 기초 정보를 제대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 등록 관리 체계화를 위해 국세청과 통계청이 서로 협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두 기관의 협업이 곤란하다면 프랑스 사례처럼 별도의 등록센터를 설립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지난해 인구주택총조사를 진행했다.


“올 7월에 100세 이상 고령자 조사 결과를, 9월에 전수조사 결과를 공표한다. 12월부터는 표본조사 결과를 주제별로 발표할 계획이다. 공표 자료엔 인구·가구·주택의 기본 현황과 함께 100세 이상 고령자 실태, 성씨와 본관 분포, 다문화 실태와 종교 현황 등 흥미로운 자료가 포함될 예정이다. 기본 조사는 행정자료를 기반으로 했고 나머지 20%는 현장 설문을 통해 진행했다. 거기서 핵심적인 것이 고령화 저출산 관련이었다. 그런데 ‘아이 언제 처음 낳았냐’ ‘자녀를 더 낳을 계획이 있느냐’처럼 개인의 사생활과 관련된 질문이 있다 보니 불응률(조사에 응하지 않는 사람의 비율)이 올라갔다. 2011년 인구총조사 때는 0.2%였던 불응률이 이번 조사에서 1.1%로 크게 늘었다.”



대책은 있나.


“과거 경제총조사 과정에서 정당한 이유없이 조사에 불응한 외국 기업 한두 곳에 과태료를 부과한 사례는 있다. 그러나 인구 주택총조사를 하면서 개인에게 과태료를 부과한 적은 없다. 가능하면 설득을 통해서 해결해 나가겠지만 조사원에 위협을 가하거나 정당한 사유 없이 불응하는 경우에 대한 과태료 부과도 신중히 검토할 계획이다.”



기업 구조조정으로 인한 대량 실업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데 4월 실업률은 3.9%다. 현실과 괴리가 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고용통계는 국제 기준에 부합해야 한다. 취업 의사가 있고 구직 활동을 하고 있고 취업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을 만족해야 실업자로 집계된다. ‘왜 현실과 안 맞느냐’는 지적이 나오는데, 한국의 특징이 있다.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고용보험 사각지대가 굉장히 많다. 한국 전체 근로자 가운데 3분의 1이 고용보험 미가입자다. 고용보험에 가입이 안 된 사람은 실업 상태를 밝힐 필요가 없기 때문에 실업률이 낮게 나온다.”



통계청장 이전에 노동경제학자다. 어떤 대응책이 필요할까.


“당장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더라도 고용보험에 가입할 유인을 만들어야 한다. 저임금 근로자의 사회보험료를 지원해주는 현행 ‘두루누리 사업’ 등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근본적으로는 사회안전망 강화에 신경을 써야 한다. 저성장 시대가 되고 실업이 구조적 요인이 돼 가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서도 비경제활동인구 부가조사를 8월 처음으로 실시하겠다. 그동안 경제활동인구 내 취업자와 실업자에만 초점을 맞춰 통계를 집계해왔는데 비경제활동인구 중 구직 가능성이 있는 인구와 아닌 인구를 분류해보겠다.”

- 대전=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유경준 - 서울에서 태어났다. 부산 해동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했고 코넬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한국개발연구원 수석이코노미스트, 한국기술교육대 테크노인력전문대학원 교수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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