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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러리 vs 트럼프 대결과 한반도의 미래] 양극화·보호무역·동맹체제가 핵심 어젠다

[힐러리 vs 트럼프 대결과 한반도의 미래] 양극화·보호무역·동맹체제가 핵심 어젠다

미국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적으로 달아오르고 있다. 원래 공식적인 대선전은 공화당이 오는 7월18~21일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서, 민주당이 같은 달 25~28일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에서 각각 전당대회를 열고 후보를 최종 선출하면서 시작된다. 하지만 공화당은 지난 5월3일 부동산 사업가인 도널드 트럼프(70)를 후보로 사실상 확정했다.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69) 전 국무장관도 대선 후보로 거의 확정된 상태다. 이미 클린턴과 트럼프는 서로 공격하기 시작했으며, 미국 내 여론조사도 두 사람의 대결을 가정해 진행되고 있다.

미국 대선은 ‘선거가 벌어지는 해의 11월 첫째 월요일 다음의 화요일’에 치러지도록 규정돼 있다. 해마다 다르지만 11월2~8일 사이의 하루에 해당한다. 올해는 11월8일이 투표일이다. 대통령 선거일인 이날 미국 유권자들은 자신의 주에서 대통령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간접 선거 방식으로 투표를 한다. 미국 대선은 대통령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 이뤄지는 간접선거 방식을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미국 대선에서 중요한 것은 주별 인구 비례로 할당된 대통령 선거인단의 숫자다. 독특한 것은 대부분의 주에서는 특정 후보가 더 많이 득표하면 그 주의 선거인단을 득표율에 따라 나누는 것이 아니고 전체를 독식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승자독식제다. 자신들의 주가 가진 표의 힘을 집중하기 위해 할당된 선거인단 전체가 한 후보에게 표를 몰아주게 된 것이다. 메인주와 네브래스카주를 제외한 미국의 모든 주가 이 방식을 택하고 있다.


양극화로 분열된 상황에서 펼쳐지는 새로운 선거:
주목할 점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미국 사회가 어느 때보다 첨예하게 분열돼 있다는 사실이다. 가장 큰 이유는 양극화 때문이다. 인구 3억2000여만 명의 미국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부자 나라다. 국내총생산(GDP)은 2014년 국제통화기금(IMF) 명목 금액 통계 기준 17조 3480억 달러로 세계 1위다. 세계 GDP의 22.45%를 차지한다. 2위인 중국(10조3565억 달러), 3위인 일본(4조6023억 달러), 4위인 독일(3조8744억 달러)을 합친 액수나 인구 5억800만의 유럽연합(EU) 28개국 전체(18조5271억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다. 한마디로 압도적인 세계 1위의 경제다. 금융산업을 떠받히는 뉴욕의 월가가 흔들린다느니, 불경기의 연속이니, 미국 내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이니 해도 세계 경제에서 미국이 차지하는 주도적인 지위는 아직 변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1인당 GDP도 여전히 압도적이다. 2015년 IMF 통계에 따르면 미국의 1인당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5만5805달러로 인구 1000만 이상의 국가 중에서는 세계 1위다.

문제는 이런 미국에 사는 국민의 생각은 계층별로 다르다는 점이다. 상당수 미국 국민은 상위 1%가 부의 99%를 독점하고 있다며 부의 편재 현상에 분노하고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요약하는 용어가 ‘양극화’다. ‘앵그리 버드’는 그 상징이다. 고연봉의 월가는 공격의 대상이다. 문제는 벌어들이는 수입에 대한 만족은 상대적이게 마련이라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상위 1%에 해당하는 부자들의 0.01%의 수퍼리치들이 그 99%의 99%를 차지하는데 대해 또 다시 분노한다. 99%대 1% 간의 갈등은 물론이고 0.99%대 0.01% 사이에도 상호 갈등이 존재하는 앵그리 버드의 증폭 구도다.

2016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이런 양극화 문제가 도마에 올랐다.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며 이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주장이 유권자 사이에서 광범위하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클린턴과 트럼프의 공약에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까지 해온 발언을 살펴보면 두 사람다 이런 유권자들을 상대로 ‘대중추수주의’를 추구하고 있다. 표를 모으기 위해 대중이 하라는 대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보호무역주의가 미국인의 일자리를 뺏고 있다며 중국 때리기, 한국을 비롯한 외국과 맺은 자유무역협정(FTA) 폐기를 공약한 트럼프가 인기를 모은 이유가 되기도 한다. 미국이 중심이 된 환태평양무역동반자협정(TPP)도 공격 대상이다.

이런 양극화는 경제적인 안정을 바탕으로 여유 있고 건전한 사고를 하는 중산층의 축소를 가져오게 마련이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도심 지역 229개소에서 1999년과 2014년의 소득을 비교한 결과 83%의 지역에서 중산층의 가계소득이 줄어들었다. 중산층 비중이 감소한 곳도 87%에 이르렀다. 사회의 허리 역할을 맡으면서 소득 하위계층에게 신분상승의 희망을 줘야 할 중산층이 감소하는 것은 미국 사회의 건전성이 흔들리고 있음을 의미한다. 양극화는 대통령 선거에 임하는 미 국민의 사고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막말과 극단의 정치:
정치인이 막말을 하고 다니면 자신의 품위를 떨어뜨리는 것은 물론, 고위 공직을 맡을 경우 나라 망신까지 시킬 염려가 있다. 이에 따라 막말 정치인은 대중적 인기가 떨어지는 게 상식적일 것이다. 하지만 막말을 일삼는 트럼프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치솟아왔다. 지난해 4월 힐러리가 대선에 출마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트럼프는 “제 남편도 만족을 못 시키면서 미국을 만족시키겠다고?”라는 극단적인 막말을 내뱉었다. 미국 공화당은 대선 경선전에서 이런 트럼프를 떨어뜨리기는커녕 압도적인 지지를 보냈다. 전통과 경륜으로 ‘GOP(Grand Old Party)’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공화당이 트럼프 하나 걸러내지 못한 것이다. 그 이유가 바로 이 같은 국민의 기성 정치인 불신에 있다는 것이 미국 정치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유권자들은 트럼프의 막말을 통해 대리 배설의 쾌감을 만끽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통해 지금까지 미국을 이끌어온 기성 정치인에 대한 실망감과 반감을 표출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대중은 미국 사회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기는커녕 악화를 방치하고 있다고 비난 받는 기성 정치인들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심지어 월가 종사자들을 비롯한 미국 기득권층이 기성 정치인들과 결탁해 양극화를 심화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기성 정치계와 관련이 없는 ‘아웃사이더’인 공화당의 트럼프와 민주당의 버니 샌더스가 거센 돌풍을 일으켜온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중은 반감만 표출하는 게 아니다. 트럼프 같은 아웃사이더에게 일말의 희망을 거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정치 자금과 관련한 미국 유권자들의 태도다. 이들은 정치 자금과 관련한 아웃사이더들의 행동에 열광한다. 트럼프와 샌더스의 공통점은 정치 자금에 있다. 두 사람은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정치 자금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내세운다. 트럼프는 부동산 사업으로 모은 자신의 재산으로, 샌더스는 지지자들이 10달러, 20달러씩 모은 풀뿌리 모금으로 선거 자금을 마련해왔다. 이를 본 상당수 유권자들은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층과의 단절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에게 지지를 보내고 있다.

트럼프가 막말을 늘어놓거나 현실성이 없고 논리에도 맞지 않으며 심지어 현실화될 가능성도 희박한 말을 하고 다녀도 지지율이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현실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하기보다 결탁한 세력으로부터 정치 헌금을 받기에 급급한 기성 정치인에 대한 반감이 이렇게 표출된 것이다. 기득권 세력과 결탁한 기성 정치인보다 차라리 이런 황당한 주장을 펴는 트럼프가 낫다는 것이다.

이와 달리 클린턴의 경우 월가를 비롯한 수퍼팩의 대대적인 지원을 받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과거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특정 후보가 거액의 선거자금을 모았다는 보도는 그 후보가 대세임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유리하게 작용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대세론은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도 있다. 월가를 비롯한 기득권층으로부터 수퍼팩을 많이 받았다는 증거나 다름 없기 때문이다. 클린턴이 선거 자금을 많이 모았다는 것은 기득권층의 지원을 받는 증거로서 오히려 자신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자신이 기득권층이기도 하다. 남편인 빌 클린턴 전 대통령과 함께 한 번 강연에 수십만~수백만 달러를 챙겨왔기 때문이다. 변호사 출신에 영부인에 이어 뉴욕주 연방 상원의원을 지내고 버럭 오바마 정권에서 국무장관으로 세계를 다니며 미국의 국익을 지켰다는 화려한 경력이 오히려 기득권층임을 증명하는 증거로 작용하는 지극히 묘한 상황이 된 것이다.



미국·국제정치의 근간 흔드는 트럼프:
주목할 점 하나는 미국 전반에서 자유무역에 대한 반감이 엿보인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이를 놓치지 않고 오히려 증폭시켰다. 미국 시장을 휩쓸고 있는 중국과 멕시코의 값싼 상품에 대한 관세를 대폭 인상해 문턱을 높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는 미국 유권자를 매료시키는 공약의 하나다. 미국이 과거 산업을 회복시키고 일자리를 대량을 만들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한마디로 현실성이 없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보호무역주의가 경쟁력이 떨어지는 미국의 사양산업을 살릴 수는 없다는 게 한결 같은 평가다. 미국의 경제위기가 보호무역주의를 실시하지 않아 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미국의 힘은 자유무역주의에 의한 경쟁력 상승에서 비롯했다는 것이 경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트럼프의 주장은 미국이 당면한 경제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이 아닌 것이다.

더구나 트럼프가 집권해 자신의 말대로 이런 정책을 실제로 펼칠 경우 중국도 미국을 상대로 이에 상응하는 무역보복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국내 정치상 이런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정권이 위신을 잃고 국민의 지지를 상실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 전체가 무역보복과 보호무역의 강화 속에서 표류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글로벌 불경기 속에서 세계 경제의 잠재 성장률은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경제 규모가 각각 세계 1, 2위에 해당하는 미국과 중국의 경제가 충돌하는 경우 어떤 극단적인 상황이 올지 알 수 없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 갈등이 생기면 자칫 세계적인 공황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런 상황이 벌어지면 트럼프를 지지하는 서민층이 오히려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정보와 자본, 사업 수단이 풍부한 부유층은 오히려 이를 기회로 재산을 더욱 늘릴 수 있지만 서민층은 경제위기 속에서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양극화를 깨겠다는 유권자들의 투표가 오히려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는 결과를 빚을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 트럼프가 미국에 값싼 공산품을 대량으로 공급해왔던 중국이나 멕시코에 대해 고율의 관세를 물리면서 보호무역 만리장성을 쌓을 경우 미국의 서민층도 피해를 입기는 마찬가지다. 물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중국산 소비자 상품이 미국 시장을 잠식하고 경공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도 이를 감수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물가 조절 기능이었다. 이 덕분에 서민들도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트럼프의 공약은 서민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다.



트럼프 대망론의 급소:
그렇다면 트럼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어느 정도일까? 최근 미국 여론조사기관 라스무센의 조사에서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가 일대일 대결에서 처음으로 클린턴에 앞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신뢰가 떨어지는 비과학적인 조사이기 때문에 염두에 두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라스무센은 신뢰성이 떨어지는 ARS(자동응답시스템) 위주로 여론 조사를 하기 때문이다. ARS 조사는 조사 시간에 집에서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사람만 응답할 수 있다. 이는 명백한 한계로 그 결과를 신뢰하기 힘들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우선 집에서 전화를 받는 응답자들은 연령·직업·사회활동 등에서 유권자 전체의 의견을 대표하기 힘들다. 유권자 평균보다 연령이 높고 실업자나 은퇴자일 가능성이 크다. 더구가 ARS의 질문에 응답해 자신의 지지 후보를 공개하는 사람이라면 대체로 지지자에 대한 신념이 강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전화를 끊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주로 대답하는 조사라면 당연히 정당이라면 공화당, 현 상황에서의 양자대결을 묻는 질문에서는 트럼프를 지지하는 사람이 실제보다 많을 수밖에 없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매체가 이 조사 결과를 아예 무시한 이유다. 따라서 아직은 힐러리가 10% 가까이 트럼프를 이기고 있다는 다른 조사를 더 신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클린턴 대망론 아직은 건재:
현재로선 트럼프가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되는 것보다 클린턴이 재입성할 가능성이 더 크다는 주장이 여전히 설득력을 얻고 있다. 미국 선거의 제도적 특성과 각 지역의 투표 성향, 지금까지의 선거 역사를 과학적으로 분석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미국에선 주별로 지지 정당이 분명한 안전주와 지지 정당이 선거 때마다 변하거나 박빙 승부가 펼쳐지는 경합주가 있다. 민주당의 대표적인 안전주는 자유주의 성향이 강한 동북부 뉴잉글랜드 지역과 서부 태평양 연안이다. 버몬트, 매사추세츠, 로드아일랜드, 코네티컷과 대형주인 뉴욕이 동부의 민주당 텃밭이다. 서부에선 대형주인 캘리포니아와 오리건이 민주당 안전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출생지인 하와이와 일리노이주도 민주당의 아성이다. 공화당은 대형주인 텍사스와 미시시피, 앨라배마,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기독교도가 많은 남부주를 지지 기반으로 한다. 와이오밍, 유타, 아이다호, 네브래스카 등 중서부와 로키산맥 지역도 공화당 안전주에 해당한다.

미국에서 2000년 이후 치러졌던 네 차례의 선거에서 한결같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한 공화당 안전주는 50개 주 중에서 13개다. 민주당 후보를 계속 지지한 민주당 안전주는 18개 주에 이른다. 나머지는 경합주다. 미국의 선거운동은 주로 이 경합주에 집중된다. 미국 대선에서 당선하려면 전체 대통령 선거인단의 과반수인 270명을 확보해야 한다. 그런데 공화당 안전주의 대통령 선거인단 숫자를 모두 합치면 100명 정도다. 하지만 민주당 안전주의 대통령 선거인단 숫자는 242명에 이른다. 힐러리는 민주당 안전주를 모두 지키고 경합 지역에서 28명만 확보하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클린턴도 안보 강경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동맹국인 미국의 외교안보 정책이다. 문제는 클린턴의 대북정책이 제재 중심의 강경책으로 흐를 가능성이 관측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북핵 실험이 임박한 것으로 관측되자 힐러리 후보는 이를 강력하게 비난하면서 북핵 위협에 맞서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을 적극 방어하겠다는 성명을 내놨다. 추가 대북 제재의 필요성까지 언급했다. 만일 클린턴이 집권할 경우 펼칠 대북, 대한 반도 정책을 짐작할 있는 부분이다.

클린턴의 대한반도 및 대북 전략은 미국의 세계 전략을 충실하게 뒷받침하는 하부 구조로서 기능한다. 특히 중국을 견제하면서 세계의 헤게모니를 계속 쥐겠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이를 위해 미국은 일본, 호주와 손잡고 거기에 한국을 포함시켜 중국에 대항하는 동북아 동맹 질서를 구축하려고 시도해왔다. 한·일 간의 위안부 문제에서 미국이 한·일 간의 화해를 중시한 것도 이 때문으로 분석된다. 미·일 간의 히로시마 원폭 문제 등에서도 미국이 적극적인 자세를 보이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미국이 지역 내 동맹국들과 손잡고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기본적인 큰 그림인 것이다. 개별적인 한반도 전략은 큰 그림의 종속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클린턴이 집권하면 이런 고전적인 미국의 동북아, 대한반도, 대북 전략의 기조가 계속 유지될 수밖에 없다. 오바마와 같은 민주당 정권의 연속으로서 한반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으로 짐작된다. 미국이 북한에 강경 자세로 일관할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초강경 일색으로 가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은 국무장관 시절부터 “21세기의 역사는 아시아 지역에서 만들게 될 것”이라며 아시아 중시 정책을 강조해왔다. 그 방법으로 “아시아 지역의 안보질서는 다자적 질서와 제도에 기반해서 구축돼야 한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이는 미국이 필요에 따라서는 다자적 질서를 추구하기 위해 북한과 대화를 병행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어떤 방향이든 클린턴의 미국은 동북아 질서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이 어렵고 복잡한 고난도 외교를 펼치면서 평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힘든 시대가 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트럼프, 세계 안보질서는 미국에 부담:
그렇다고 김정은과의 대화를 주장하고 동맹국의 핵 무장을 옹호하는 발언을 해온 트럼프의 집권이 우리에게 이익이 된다는 보장도 없다. 여기에는 기존의 안보질서가 미국에 부담이 된다는 미국 서민층의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사우디 아라비아와 한국이 잘 살면서도 미국에 안보 무임승차를 하고 있다는 주장을 펴왔다. 주한미군 주둔비용의 절반인 9000억원 정도를 한국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부담하고 있지만 트럼프는 “왜 100%는 안 되느냐”는 말로 되받고 있다. 그러면서 집권하면 주둔비용을 다 받아내겠다고 벼른다. 동맹을 통해 힘의 균형을 유지한다는 기본적인 세력 균형론을 무시한 발언이다. 미군의 해외 주둔은 해당 국가를 지켜주는 목적만 있는 게 아니다. 해외 주둔 미군은 미국의 세계 전략의 핵심이기도 하다. 미국의 이상과 힘을 보여주는 바탕이다. 하지만 그 비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다. 결국 트럼프가 주장하는 내용은 미국이 해외 문제에 더 이상 개입하지 않고 고립주의로 가겠다는 뜻이다. 이는 세계 질서에 엄청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만의 하나를 대비해 내키지 않아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동맹국의 핵무장론은 세계의 핵 비확산 체제를 송두리째 무너뜨리고 세계를 핵 군비 경쟁과 핵 위험에 빠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지적에도 요지부동이다. 아예 지적을 무시하는 ‘벽창호’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한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그의 태도가 미국 유권자의 바닥 심리를 고스란히 파악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이 한결 같이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지적해도 이런 황당 발언을 한 트럼트의 인기가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반영한다.

이런 바닥 민심이 선거 과정 내내 드러나면 보호무역과 안보 체제에 대한 클린턴의 신념도 바뀔 수 있다. 선거를 치르고 있는 정치인이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유권자의 표이기 때문이다. 지적이고 고상하게 패배하는 것보다 대중에 아부하고 신념을 굽혀서라도 승리하고 싶어하는 것이 정치인의 생리다.

결국 2016년 미국 대선은 정치와 사회 부문에선 양극화와 국민 분노, 경제에선 보호무역주의 논쟁, 안보에선 동맹체제가 핵심 어젠다가 될 전망이다. 이 중 한국과 관련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우리가 미국 대선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정부는 지켜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미국 대선 기간 내내 다양한 경로로 우리의 주장을 후보 진영에 전달해야 할 것이다.

- 채인택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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