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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준 태진인터내셔날 회장

전용준 태진인터내셔날 회장

서울 지하철 학동역 인근에 복합예술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가 문을 열었다. 한국형 글로벌 명품 루이까또즈를 운영하는 태진인터내셔날의 전용준 회장이 설립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예술경영에 나선 전용준 회장을 만났다.
강남의 학동역 부근에 개관한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전용준 회장은 “아트센터에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 건물은 마치 서울 청담동에 있는 명품 브랜드의 매장처럼 우뚝 서 있었다. 루이까또즈 핸드백 특유의 길쭉한 마름모꼴 누빔(퀼팅) 무늬를 본따 마치 쇠로 건물을 누벼놓은 듯한 건물 외관이 대형 산부인과 옆에서 생뚱맞게 보일 정도였다. 지난 12일 서울 지하철 학동역 인근에 648.6㎡(약 200평) 규모로 문을 연 복합예술공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다. 루이까또즈를 운영하는 태진인터내셔날의 전용준(63) 회장이 설립했다. 루이까또즈는 성주디앤디의 MCM과 함께 대표적인 ‘한국형 매스티지(mass prestige product, 대중 명품)’ 브랜드로 꼽힌다.

전 회장은 “3년 전 아트센터를 짓기 위해 부지를 매입했다"며 “의외로 문화 시설이 부족한 강남에 젊은 작가, 다양한 작품을 위한 공간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그는 “강북에 클래식 위주로 공연 시설이 몰려있고, 미술관 역시 유명 작품을 중심으로한 ‘블럭버스터’ 전시회 위주”라고 했다. “젊은 예술가들이 전시나 공연을 할 공간이 부족해서 자기 돈을 들여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젊은 현대미술 작가와 인디 음악가의 공연 위주로 운영할 계획이에요.” 운영은 지난해 그가 설립한 태진문화재단(이사장 신정승 전 주중 대사)이 맡고, 태진인터내셔날이 매년 약 30억원의 운영 비용을 지원한다. 개관을 앞두고 전 회장을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사무실에서 만났다.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 개관
전용준 회장은 플랫폼-엘 아트센터에 대해 “우리가 시작은 했지만 내 개인이나 태진인터내셔날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중견 기업이 아트센터를 운영하는 일은 드문데요.


대기업이 하는 미술관처럼 상설전시회를 할만큼 화려한 소장품은 없습니다. 이익을 위한 곳도 아니고요. 프랑스 태생인 루이까또즈는 태양왕 루이14세라는 뜻입니다. 비즈니스 상담을 할 때도 소설이나 음악 얘기로 풀어나갈만큼 다양한 문화를 중시하는 프랑스의 전통에 맞게 문화 마케팅을 많이 해왔습니다. 처음엔 누구나 비싼 명품만 찾지만 세월이 지나면 개인 취향에 따라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세분화됩니다. 사람들의 눈이 높아지면서 문화 소비 역시 획일적인 것이 아니라 작은 공간, 새로운 작가 등 다양성을 추구하게 되지요. 다양한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전 회장은 “프랑스에서는 작은 방 한 칸에 그림을 갖다놓고 전시회를 한다”며 “그동안 이런 공간이 부족했기 때문인지 지하에 설치한 작은 공연장에는 벌써 대관 신청이 쏟아진다”고 했다. 플랫폼 엘은 미술관에 가깝지만 건물 사이 정원 공간을 이용해 영화를 보거나 파티를 열 수 있고, 지하에는 190명이 앉을 수 있는 이동식 좌석과 무대를 설치해 전시회나 공연, 패션쇼 등이 가능한 복합 공간이다.



비용이 상당히 많이 들었을 텐데요.


부지에 건축비까지 약 200억원 들었습니다. 지하에 공연장까지 있는 건물이기 때문에 기초 공사를 단단히 하느라 일반 건축비보다 훨씬 많이 들었어요. 건물은 ‘차세대 세계 10대 건축가’로 선정된 이정훈 건축가의 작품입니다. 사실 우리 기업 예산으로 이 정도 투자하기가 쉽지는 않았습니다.



게다가 루이까또즈는 최근 3년 연속 매출이 하락세잖습니까.


이 센터를 추진할 때만 해도 요즘처럼 어려워질 줄은 몰랐어요. 2012년 매출이 2038억원으로 정점을 찍은 직후였거든요. 매출이 떨어질 줄 알았다면 시작 안했겠지요.(웃음) 사업을 시작한 이래 지금이 최대 위기에요. 외환위기·금융위기 때도 전혀 타격을 입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매출이 꺾였으니까요. 하지만 이런 (사회 공헌) 사업은 이것저것 재면 못합니다. 이미 시작했으니 지르자고 마음 먹었어요. 경기에 따라서 왔다갔다 하다보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어요. 좋은 시절이 있으면 나쁜 시절이 있는 법이지요.



왜 위기가 왔을까요.


시장 패러다임 자체가 바뀌고 있어요. 이 시장에 수많은 경쟁자가 생기면서 우리뿐 아니라 다른 업체들도 점유율이 떨어졌습니다. 게다가 이른바 ‘명품’을 경험해 본 소비자들은 다시 자기만의 개성을 찾아가거든요. 명품 브랜드들이 최근 고전하는 이유지요. 유통 환경도 변했습니다. 백화점에 젊은 사람들이 안 가지 않습니까. 기존 방식으로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고 봐야지요. 이젠 정말 방식 자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왔습니다. 새로운 시장 질서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 변화의 한가운데 있어요.
 고급화 전략으로 성공한 루이까또즈
루이까또즈는 ‘고급화 전략’으로 성공한 브랜드다. 전 회장은 1990년 프랑스 브랜드인 루이까또즈를 국내에 들여와 ‘고급 핸드백’시장을 열었다. 당시 5만~10만원 가격대였던 핸드백 시장에 20만~30만원대 핸드백을 소개해 인기를 모았다.

설립 첫 해 5억원이었던 매출은 20여 년만에 400배를 훌쩍 넘었다. 2006년에는 아예 프랑스 본사를 인수했다. 지금은 한국이 본사고 프랑스 등에 지사가 있는 글로벌 브랜드다. 독일 브랜드였다가 성주인터내셔널이 인수한 MCM과 유사하다. 2009년에는 파리에 국내 패션업체 최초로 단독 매장을 열고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어 2년 만인 2011년엔 2000억원을 넘기는 등 승승장구했다.

전 회장은 “과거를 되돌아보면 최대의 위기가 최고의 기회가 됐었다”며 “시장이 재편되는 지금은 반등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고 했다.

“90년대 후반에 루이비통·샤넬 같은 고가 명품 브랜드가 본격적으로 들어왔어요. 루이까또즈 매장이 백화점 1층에서 2, 3층으로 밀려났죠. 사실 그때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매출이 늘더라고요. 고가 명품 소비가 늘면서 예상과 달리 우리 브랜드 고객도 함께 증가한 겁니다. 덕분에 프랑스 본사를 인수할 정도로 급성장했고요. 시장의 힘과 움직이는 방향은 예측 불허에요. 정말 엉뚱한 방향으로 갈 수 있지요.”



새로운 시장 변화에는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요.


대응 전략을 알려드리면 안되지요.(웃음) 기존 방식에서 포기할 건 포기하곤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다각도로 대책을 세우고 있습니다. 사실 누구도 예측 못하거든요. 확실한 것은 생각만 하면 소용 없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는 겁니다. 또 환경이 변하기 전에 타이밍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올 가을에는 뭔가를 내놓을 겁니다.



디지털 전략인가요.


디지털 쪽도 강화해야 합니다. 다만 깜짝 놀랄만한 혁신은 실패의 가능성도 높습니다. 작은 것부터 하나씩 혁신하면 또 다음 단계가 보입니다. 그렇게 여러 개가 쌓여서 ‘야, 많이 변했구나’하게 되는 겁니다. 중국 쪽은 온라인이 특히 발달돼 있어서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변화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방향을 내놓을 수 있을 겁니다.



중국 시장 공략 방침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십시오.


과거에는 베이징·상하이 같은 대도시의 주요 상권에 큰 매장을 내고 그 매장을 기반으로 확장해 나갔는데 그런 방식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고 투자 비용도 많이 듭니다. 중국의 온라인 시장 발달 속도는 한국보다도 훨씬 빠릅니다. 불과 3~4년 전만 해도 없었던 고급 핸드백 전문 온라인 쇼핑몰도 여럿 생겼습니다. 그런 온라인 전문몰에서 마이클코어스·코치 같은 브랜드와 함께 경쟁하는 거지요.



4월에는 한국에서 20만원대 핸드백 라인 ‘리옹’도 처음 내놓으셨는데요.


젊은 사람들이 돈이 없지 않습니까. 취직은 물론이고 아르바이트·인턴조차 구하기 쉽지 않으니 가격에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지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에 집착하게 됩니다. 루이까또즈도 선뜻 사기는 쉽지 않은 가격대입니다. 젊은 층도 우리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국내에서 수작업으로 만드는 제작 방식은 그대로지만 가방 구조를 단순화하고 소재를 바꿔서 가격을 낮췄습니다.

시장은 루이까또즈의 변화에 빠르게 반응했다. 리옹은 출시 약 보름 만에 루이까또즈 전체 제품 중 판매 1위가 됐고, 기존 인기 제품 판매량의 3배를 기록했다.
 “좋은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의 예술공간”희망


디지털·중국시장·20만원대 제품, 이렇게 세 가지가 미래 전략인가요?


일부일 뿐입니다. 근본적으로 새로운 구조를 짜야합니다. 산업 전체가 새롭게 짜여지는 시기니까요. 무조건 과거 방식이 잘 안 맞는다고 우리는 쇠퇴하겠구나 생각하면 쇠퇴할 수 밖에 없는 거죠. 패러다임에 맞춰 앞질러 나갈 수 있는 모멘텀을 찾을 겁니다.

전용준 회장은 플랫폼-엘 아트센터에 대해 “우리가 시작은 했지만 내 개인이나 태진인터내셔날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플랫폼-엘이 많은 사람들이 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모든 사람의 공간’이 됐으면 합니다. 사립미술관이 기업의 흥망성쇠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데 후원자 그룹을 만들어서 이를 보완하겠습니다.”

플랫폼-엘의 전시회 관람 비용은 대개 5000원. 인터넷 할인을 받으면 4000원 정도 선으로 할 계획이다. 소장품 100여 점은 90년대 이후의 한국 현대미술 작가 위주다. 회화·조각·설치미술·비디오·사진 등 장르도 다양하다. 8월8일까지 개관 기념으로 한국의 설치미술 작가인 배영환(47)씨와 중국의 세계적인 영상·사진작가 양푸동(45)의 전시회를 연다. 중앙 정원 옆 1층에는 카페가 있고, 루이까또즈와 작가들이 협업한 제품을 파는 아트숍도 있다. 4층에는 미술 관련 강연을 들을 수 있는 강의실도 마련했다. 모두 전 회장이 5~6년 전부터 구상했던 공간이다.



꿈을 이루신 건가요?


꿈을 이룬 거지요. 저는 대학에선 영문학을 전공했고, 경영대학원을 나왔지만 아름다운 것들을 보고 만들고 파는 일을 하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센터에 관심을 가지고 사랑해줬으면 좋겠어요.”

전 회장이 “아직 꿈많은 소년이죠”라며 멋쩍게 웃었다. 소년 같은 미소였다.



PROFILE: 1975년 연세대 영문과 졸업 / 1977년 육군 중위(ROTC 13기) 전역 / 1979년 미국 위스콘신대 MBA / 1980년 삼성물산 근무 / 1990년 태진인터내셔날 설립 / 1992년 국제청년회의소(JCI) 부회장 / 2006년 루이까또즈 본사 인수 / 2013년 프랑스 문화예술공로훈장 / 슈발리에 수훈

-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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