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13)] 사막의 소녀는 지금도 울고 있다
- [조원경의 ‘노벨경제학자의 은밀한 향기’(13)] 사막의 소녀는 지금도 울고 있다

소말리아 사막에서 유목민의 딸로 태어난 그녀는 다섯 살이 되던 해에 자신이 살던 부족의 다른 여자아이처럼 음핵을 제거하는 여성 할례를 당했다. 그녀가 14살이 되던 해에 아버지는 그녀를 낙타 다섯 마리와 바꾸는 조건으로 60대 남자에게 시집 보내려고 했다. 소말리아 외교관이었던 이모부의 도움으로 미친 듯이 도망친 그녀는 영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패션 잡지의 표지모델로 활동하며 국제적인 명성을 얻는다. 뉴욕으로 이주한 후 세계적 화장품 회사 레블론, 로레알과 계약하며 승승장구 했다.
절대빈곤층 수는 절대 감소했지만…
인도와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 덕분이기는 하지만 극도의 빈곤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수는 1990년에 19억 명에서 2015년에 약 8억3600만 명으로 감소했다. 세계은행은 하루 1.2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며 주거·음식·의복과 같은 기본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절대빈곤층으로 분류하고 있다. 절대빈곤층 수를 반 이상 감소시킨 것은 분명 대단한 업적이다. 와리스 디리의 활약으로 세계가 여성 할례의 끔찍함을 알게 되고 유니세프 등은 여성 할례 근절을 위해 노력 중이다. 유엔 역시 2012년 여성 할례를 금지하기로 결의하고 2030년까지 이 관습을 근절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세계 빈곤과 기아를 반으로 줄이자는 것이 MDG의 목표였다면, 2016년에서 2030년까지 실시될 SDG는 ‘아무도 소외되지 않고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표방하면서 빈곤과 기아를 완전히 없애자는 야심을 내걸었다. 경제 성장과 함께 사회·환경 분야의 균형적 발전까지도 아우르는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목표를 제시했다.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사회 인프라 투자로 가난을 퇴치하고 성장을 도모한다. 사회적 포용 면에서는 성 평등을 지향하고 소수 민족에 대한 불평등을 없애고 사회 불균형을 줄이는 문제에 관심을 갖는다. 환경의 지속성을 위해서 석탄·천연가스·석유 같은 화석 연료에서 지구온난화를 유발하지 않는 깨끗한 연료로 옮겨가자는 생각을 담고 있다. 유엔이 인류의 상생과 발전을 위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담은 총 17개의 목표를 어떻게 이끌고 갈지 지켜보자.
개발과 관련해 경제학계의 ‘선한 사마리아인’ 아마르티아 센의 철학을 살펴보자. 센은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이다. ‘센지수’라고 불리는 지표를 통해 빈곤을 측정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그는 굶주림과 빈곤은 생산 부족보다 잘못된 분배 탓이라고 주장한 경제학자다. 기근 문제 해결에 있어서 개인은 수동적으로 성장의 혜택을 받기만 하는 수혜자가 아니다. 그는 능동적이고 자유로운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에게서 진정한 발전이란 자유의 증진을 말한다. 발전을 논할 때 소득이나 부의 증대가 아닌 자유의 증대를 궁극적인 목적으로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자유야말로 곧 역량(capacity)이다. 그래서 그는 국가가 인간이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제도를 제대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믿는다. 한 인간이 어떤 사업을 하고 싶을 때 그 사회가 그걸 하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해줄 수 있다면 좀 더 자유로운 국가로 본 것이다. 사업이 성공해서 이윤으로 더 많은 사람에게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주는 발전이야말로 지속가능한 발전으로 의미가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런 것이 가능하려면 당연히 시장의 자율성과 민주주의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센이 개발 문제에서 이런 생각을 갖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방글라데시의 기근 문제 목도하고 빈곤 문제 연구

하긴 한 나라의 소득이 높아도 일부 국민은 기대수명이 낮고 기근에 시달릴 수 있다. 어떤 나라의 소득이 다른 나라보다 낮더라도 기대수명이 높고 상대적으로 기근에 덜 시달릴 수도 있다. 이것이 우리가 기근에 대해 논할 때 좀 더 포괄적인 시각으로 현미경을 통해 정밀진단을 해보아야 하는 이유다. 그는 처참한 기근이 식량 공급 부족 탓일 수도 있으나 공급된 것을 제대로 나누지 못해 야기됐다고 분석했다. 그 결과 그는 시장을 누구보다 중시하는 경제학자지만 경제가 성장해도 빈곤이 줄어들지 않을 수 있고, 분배를 바로 잡으려면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고 믿게 된다. 경제라고 하면 윤리나 양심과는 거리가 멀고 피도 눈물도 없다고 여기는 사람이 있는데, 그에게서 ‘시장의 효율과 가슴 따뜻한 동양의 향기’가 물씬 난다.
센에 따르면 자유는 우리의 궁극적인 목표다. 사회의 각 부분에 충분한 자유를 보장해야 우리는 더 높은 수준의 자유에 도달할 수 있다. 그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시장 메커니즘을 존중하고 애덤 스미스를 사랑한다. 다만 시장 메커니즘 자체만으로 경제적인 자유가 보장되는 건 아니다. 각 참여자가 평등하고 그들에게 충분한 자유가 보장된다는 조건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그의 신념을 새겨보자. “소득이나 부를 키울 수 있는 데까지 키우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짚었듯이 이런 것은 ‘단지 쓸모이고 연장’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이유로 경제 성장을 경제학의 지고지순한 목적으로 다룰 수 없다고 봅니다. 경제 발전이란 우리 삶과 우리가 누리는 자유를 키우는 것으로 이어져야만 합니다. 자유란 우리 삶을 더욱 넉넉하고 너그럽게 만들어 장애를 줄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품은 뜻을 이루게 하고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을 생각하게 해주는 힘입니다.”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힘 있는 자유’
다른 시각은 [세계의 절반 구하기]를 저술한 윌리엄 이스털리가 대변하는 해외 원조에 대한 비판적 이론이다. 그는 원조를 통해 빈곤을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에 반기를 든다. 그는 원조를 받는 국가는 부패하고 자치 기반이 약화되기에 빈곤 문제는 해당 국가가 자유시장 시스템을 도입해 스스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개발협력 정책은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신장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도너들이 내민 유토피아적인 청사진을 폐기하고 원조를 조건으로 내세워 원조를 받는 국가를 훈계하려 들지 말라고 충고한다. 원조가 빈곤을 종말시킬 것이라는 환상은 금물이다. 개인들의 역동성과 기업가 정신에 토대를 둔 개발만이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시장경제원리를 적용해 인도적 지원의 수요자들이 공급자(구호단체)나 공급 상품(활동프로그램)을 구매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는 접근법을 중시한다. 공급자 중심의 구호활동보다는 수요자에게 바우처를 제공하고 액수에 맞게 수요자들이 구호기관과 활동을 선택하도록 하자는 방식도 제시하고 있다.
센은 이 두 시각 중 어느 쪽에 있을까? 그는 원조의 양도 중시하고 원조를 받는 국가의 자유도 중시할 것 같다. 물론 후자에 더 큰 비중을 두겠지만. 그에게 자유는 단순히 구속받지 않는 것과 달리 실제로 사람들이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는 ‘힘 있는 자유’를 뜻한다. 그는 경제 발전의 목적은 자유로워지는데 있으며 사람이 다양한 삶을 살아갈 힘을 갖출 때 비로소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여긴다.
센은 1970년대 중반부터 실생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빈곤과 삶의 질을 재는 빈곤지수를 개발했다. 센은 기존 빈곤율만으로는 빈곤을 제대로 알기도 어렵고 얼마나 가난한지도 알 수 없다고 보았다. 이를 풀려고 빈곤 인구뿐만 아니라 빈곤인들 사이의 소득불평등 정도를 포함해서 ‘센 빈곤지수(Sen Index)’를 고안했다. 수학 지식과 통계 방법을 동원해 주류 경제학에서 외면해온 빈곤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친 센은 빈곤계층에게 실제로 도움을 주려 했다. 유엔에서 1990년부터 발표하는 인간개발지수(Human Developemnt Index)도 센의 견해를 반영해 고안한 개념이다. 이 지수는 국민소득에다 조기 사망율, 기대수명, 문맹, 의료혜택, 교육 등에 가중치를 붙여 작성했다. 흔히 진보주의 경제학자가 분배를 위한 정부의 역할에 치우친 면이 있는데 그는 정부보다 시장경제가 우월하다고 보면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이다. 다시 와리스 디리를 생각하며 센의 철학을 들어보자.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 자체가 보상입니다. 가족의 의사결정에서 여성의 입장을 반영하지 않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는 것이 사회 변화를 가져오는 주요한 동인이 됩니다. 방글라데시에서 여성 운동의 놀라운 성공을 보는 것은 기쁨이었습니다. 여성들이 지역 금융시장에서 차별을 받아 겪는 불이익을 없애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인도가 중국 추격에 집착하는 건 멍청한 짓”
센은 인도 관료들의 경제성장률 집착에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경제성장률의 그늘에 가려진 빈곤과 불평등 같은 사회적 문제를 같이 보는 거시적 안목이 필요하다고 이야기 한다. 인도가 중국의 경제성장률을 따라잡는 데 집착하는 것은 매우 멍청한 짓이라고 비판했다. 두 나라의 경제를 비교하는 것은 인도를 위험할 정도로 잘못된 길로 이끌 수 있다면서 인도의 지도자들이 경제성장률을 추구하기보다는 인도 국민의 만성적인 영양부족 문제를 해결하는 데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센은 정책을 결정할 위치에 있는 인도의 엘리트들에게 더 높은 경제성장률은 사회 정의, 빈곤의 개선, 보건과 교육에 대한 예산 투입을 비롯해 사회적인 맥락에서 볼 때에만 긍정적이라고 환기시켰다.
그의 철학을 되새기며 개발협력의 진정한 철학을 생각해 보자. 문득 그가 고(故) 이태석 신부님을 닮았다고 생각된다. “수단의 작은 마을 톤즈에 살고 계시는 여러분, ‘보이지 않는다고 사랑은 잊히는 것이 아니다’는 고 이태석 신부님의 사랑을 끝까지 기억해 주십시오, 그분이 만든 노래를 브라스 밴드가 연주하는 모습에 많은 한국인이 울어 버렸습니다. 하늘에서 ‘울지마 톤즈’라고 보듬어 주시는 그분의 환한 미소가 여러분과 영원히 함께할 것입니다.”
아마르티아 센(Amartya Sen, 1933년 11월~):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인도 출신의 학자다. 빈곤을 측정하는 수리 모형을 개발했다. 개인의 자유가 경제 발전을 이끌어낸다는 주장으로 유명하며, 불평등과 빈곤 연구의 대가로, 경제학의 테레사 수녀로 통한다. ‘아마르티아’는 ‘불멸’이란 뜻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인도 시인 타고르가 지어준 이름이다. 아마르티아 센은 타고르가 세운 학교에 다니면서 인권존중 사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1970년대 초반부터 후생경제학, 경제윤리, 소득분배론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수리 모형인 빈곤지수(센 지수)로 빈곤을 측정하는 연구를 했다.
조원경 - 연세대(경제학과)와 미국 미시간주립대(파이낸스 석사)를 졸업했다. 행시(재경직) 34회 출신으로 재무부·재정경제원·재정경제부·기획재정부에서 관세, 물가, 복지, 소비자, 국제금융, 통상, 대외경제 분야에서 일했다. 미주개발은행 이사실에서 한국 대표로 근무했다. 현재 기획재정부 대외경제협력관(국장급)으로 근무하고 있다. 저서로는 [명작의 경제] [법정에 선 경제학자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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