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져 가는 디젤게이트의 기억
잊혀져 가는 디젤게이트의 기억
배출가스 조작 스캔들 이후 1년도 안 됐지만 폴크스바겐의 판매와 주가 살아난다 지난해 말 ‘디젤게이트’ 스캔들이 한창일 때 폴크스바겐은 독일 볼프스부르크에 있는 상징적인 1930년대 공장 전면에 흰색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거기에 독일어로 적힌 호소문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투명성·에너지·용기, 하지만 무엇보다도 당신이 중요합니다”는 내용이었다.
어느 정도 항복의 백기처럼 보였던 플래카드는 폴크스바겐 근로자와 회사 탄생지를 찾는 수십 명의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폴크스바겐이 부정한 방법으로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차량의 디젤 엔진에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달아 검사 때만 가동시키고 도로 주행 중에는 법정 한도를 몇 배나 뛰어넘는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스캔들은 곧 미국 내 56만7000대, 세계적으로 1200만 대 가까운 차량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자동차 역사상 최대의 조작사건이었다.
당시 폴크스바겐의 최고경영자 마틴 빈터콘은 EPA의 발표 직후 사임했지만 미국 사법부는 형사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빈터콘의 후임자 마티아스 뮐러는 올봄까지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지난해 말 약속했다.
요즘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흰색 플래카드가 내려진 것처럼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약속도 그와 함께 잊혀진 듯하다. 뮐러 CEO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최근 스캔들로 인한 비용 충당금으로 180억 달러를 배정해 놓은 폴크스바겐이 디젤게이트가 누구 책임인지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갈수록 커진다. 지난 4월 후반 폴크스바겐은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의 잠정적인 결과는 나와 있지만 그것을 발표할 경우 미국 국무부와 최종 합의 과정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위험이 제기되고 입지가 약화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입장을 밝혔다.
폴크스바겐 대변인 마이클 브렌델은 뉴스위크에 보낸 이메일 답장에서 사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책임 소재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의 발표 계획이 아직도 유효한지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법무부가 형사사건 수사를 종결하면서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술서’의 결론을 따를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미국 법무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상당수 폴크스바겐 운전자들은 여전히 조작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회사 측의 침묵에 황당해 하고 있지만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그래도 폴크스바겐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스캔들이 터진 뒤 아직 1년도 안 지났는데 폴크스바겐의 판매와 주가가 살아나고 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한 뒤 납작 엎드리는 어처구니없는 폴스크바겐의 수법이 먹혀들지 모른다는 의미다.
매사추세츠 주 버나드스톤 주민 제프리 켈리허는 그것을 가리켜 고객의 충성도라기보다 소비자의 냉소주의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지난해 여름 켈리허가 처음으로 폴크스바겐의 터보디젤 파사트를 구입한 직후 배출가스 조작이 발각됐다. 그는 “아내가 ‘그런 거짓말쟁이 회사 차는 다시 사지 않을 거지?’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겠다. 폴크스바겐 차를 처음 구입했는데 성능이 맘에 든다. 사람들이 빈자의 아우디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로버트 즈필라도 같은 생각이다. “1년 가까이 지났는데 폴스크바겐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 설명도 없는 데 울화가 치민다”면서도 자신의 터보디젤 VW 제타 스포츠웨건의 연비와 토크(회전력)는 흡족하다고 시인한다. 지난해 초여름 뉴햄프셔 맨체스터에서 구입한 차다. 즈필라와 켈리허 모두 다시는 디젤차량을 사지 않겠다면서도 이번 스캔들로 폴크스바겐에 등을 돌린 건 아니다.
이제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두 가지다. 어떤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폴크스바겐이 해명할까? 그리고 미국 법무부·규제당국과의 합의로 자신들의 차에 관해 어떤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까?
미국 법무부와 폴크스바겐 간의 합의조건에 따라 VW 차량 소유주들은 차를 회사에 되팔거나 차량을 미국 배기가스 기준에 맞게 개조하는 방안 중 택일할 수 있다. 올여름 늦게나 최종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합의안은 2ℓ 엔진 차량 소유주들에게만 적용되며 3ℓ 차량에 대한 합의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소유주들은 또한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협상을 총괄하는 연방 지방재판소 판사는 말한다.
즈필라와 켈리허는 차는 정말 마음에 들지만 폴크스바겐에 되팔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즈필라는 “연비와 성능이 뛰어난 차를 개조하면 필경 그런 이점이 사라진다”며 “그런 점에서 차를 손보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켈리허도 같은 생각이다. “수리 후 차가 예전같이 달리지 못할 게 분명하다. 출력과 토크가 떨어지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폴스크바겐의 대주주들에게 정말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회사의 투명성 결여다. 런던의 대형 펀드 에르메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브뤼셀의 투자자문사 데미노르, 독일 투자그룹 DSW는 폴크스바겐의 경영·감독이사회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두 위원회 모두 폴크스바겐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말 투자자들은 감사를 통해 폴크스바겐 고위 경영진의 ‘잠재적인 의무 불이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주단은 또한 폴스크바겐이 회사에 대한 조사를 맡긴 미국 법무법인 존스 데이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존스 데이의 조사 대상이 VW의 경영이사회로만 한정되고 감사이사회는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주주단은 오는 6월 22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더 광범위한 조사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존스 데이는 논평을 거부했다).
다른 주주들은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5월 노르웨이 국부 펀드 노르웨이 중앙은행(Norges Bank) 투자운용사업부는 투자자 약 280명의 독일 집단소송에 동참할 계획이라고 통지했다. 그들은 모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로 인한 VW의 주가급락에 불만을 표시하며 약 36억70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지만 폴스크바겐은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지난 해 가을 이후 폴크스바겐 주가가 많이 회복됐다. 지난 5월 말까지 30달러 선을 맴돌며 스캔들 이전의 주당 40~50달러 수준으로 다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매출도 상승한다. 지난 1분기에는 최대 라이벌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탈환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폴크스바겐으로선 존스 데이 보고서를 공개할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흰색 플래카드는 항복의 백기가 아니라 허세였던 듯하다.
- 레아 맥그래스 굿맨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어느 정도 항복의 백기처럼 보였던 플래카드는 폴크스바겐 근로자와 회사 탄생지를 찾는 수십 명의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해 9월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독일 자동차 제조업체 폴크스바겐이 부정한 방법으로 배출가스 검사를 통과했다고 발표했다. 차량의 디젤 엔진에 배출가스 저감 장치를 달아 검사 때만 가동시키고 도로 주행 중에는 법정 한도를 몇 배나 뛰어넘는 오염물질을 배출할 수 있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스캔들은 곧 미국 내 56만7000대, 세계적으로 1200만 대 가까운 차량으로 범위가 확대됐다. 자동차 역사상 최대의 조작사건이었다.
당시 폴크스바겐의 최고경영자 마틴 빈터콘은 EPA의 발표 직후 사임했지만 미국 사법부는 형사사건 수사에 착수했다. 빈터콘의 후임자 마티아스 뮐러는 올봄까지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 결과를 발표하겠다고 지난해 말 약속했다.
요즘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흰색 플래카드가 내려진 것처럼 조사결과를 발표하겠다는 약속도 그와 함께 잊혀진 듯하다. 뮐러 CEO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최근 스캔들로 인한 비용 충당금으로 180억 달러를 배정해 놓은 폴크스바겐이 디젤게이트가 누구 책임인지 공개하지 않을 가능성이 갈수록 커진다. 지난 4월 후반 폴크스바겐은 스캔들에 대한 독립적인 조사의 잠정적인 결과는 나와 있지만 그것을 발표할 경우 미국 국무부와 최종 합의 과정에서 “받아들이기 힘든 위험이 제기되고 입지가 약화되리라”는 결론에 이르렀다고 입장을 밝혔다.
폴크스바겐 대변인 마이클 브렌델은 뉴스위크에 보낸 이메일 답장에서 사기의 원인이 무엇이고 책임 소재에 관한 종합적인 보고서의 발표 계획이 아직도 유효한지 “답할 수 없다”고 밝혔다. 미국 법무부가 형사사건 수사를 종결하면서 발표할 것으로 예상되는 ‘진술서’의 결론을 따를지 모른다고 설명했다. 미국 법무부는 논평을 거부했다.
상당수 폴크스바겐 운전자들은 여전히 조작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회사 측의 침묵에 황당해 하고 있지만 뉴스위크와 인터뷰에서 그래도 폴크스바겐을 구입하겠다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스캔들이 터진 뒤 아직 1년도 안 지났는데 폴크스바겐의 판매와 주가가 살아나고 있다. 이는 부정행위를 한 뒤 납작 엎드리는 어처구니없는 폴스크바겐의 수법이 먹혀들지 모른다는 의미다.
매사추세츠 주 버나드스톤 주민 제프리 켈리허는 그것을 가리켜 고객의 충성도라기보다 소비자의 냉소주의에 더 가깝다고 말한다. 지난해 여름 켈리허가 처음으로 폴크스바겐의 터보디젤 파사트를 구입한 직후 배출가스 조작이 발각됐다. 그는 “아내가 ‘그런 거짓말쟁이 회사 차는 다시 사지 않을 거지?’라고 물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그 가능성을 배제하지는 않겠다. 폴크스바겐 차를 처음 구입했는데 성능이 맘에 든다. 사람들이 빈자의 아우디라고 부르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로버트 즈필라도 같은 생각이다. “1년 가까이 지났는데 폴스크바겐이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고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 설명도 없는 데 울화가 치민다”면서도 자신의 터보디젤 VW 제타 스포츠웨건의 연비와 토크(회전력)는 흡족하다고 시인한다. 지난해 초여름 뉴햄프셔 맨체스터에서 구입한 차다. 즈필라와 켈리허 모두 다시는 디젤차량을 사지 않겠다면서도 이번 스캔들로 폴크스바겐에 등을 돌린 건 아니다.
이제 그들의 주된 관심사는 두 가지다. 어떤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폴크스바겐이 해명할까? 그리고 미국 법무부·규제당국과의 합의로 자신들의 차에 관해 어떤 어려운 선택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올까?
미국 법무부와 폴크스바겐 간의 합의조건에 따라 VW 차량 소유주들은 차를 회사에 되팔거나 차량을 미국 배기가스 기준에 맞게 개조하는 방안 중 택일할 수 있다. 올여름 늦게나 최종 타결될 것으로 예상되는 합의안은 2ℓ 엔진 차량 소유주들에게만 적용되며 3ℓ 차량에 대한 합의안은 아직 계류 중이다. 소유주들은 또한 “상당한 보상을 받게 된다”고 협상을 총괄하는 연방 지방재판소 판사는 말한다.
즈필라와 켈리허는 차는 정말 마음에 들지만 폴크스바겐에 되팔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즈필라는 “연비와 성능이 뛰어난 차를 개조하면 필경 그런 이점이 사라진다”며 “그런 점에서 차를 손보면 더 나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켈리허도 같은 생각이다. “수리 후 차가 예전같이 달리지 못할 게 분명하다. 출력과 토크가 떨어지면 정말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
폴스크바겐의 대주주들에게 정말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회사의 투명성 결여다. 런던의 대형 펀드 에르메스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브뤼셀의 투자자문사 데미노르, 독일 투자그룹 DSW는 폴크스바겐의 경영·감독이사회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두 위원회 모두 폴크스바겐에 대한 중간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 5월 말 투자자들은 감사를 통해 폴크스바겐 고위 경영진의 ‘잠재적인 의무 불이행’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주단은 또한 폴스크바겐이 회사에 대한 조사를 맡긴 미국 법무법인 존스 데이의 독립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존스 데이의 조사 대상이 VW의 경영이사회로만 한정되고 감사이사회는 제외됐다고 지적했다. 주주단은 오는 6월 22일 독일 하노버에서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더 광범위한 조사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존스 데이는 논평을 거부했다).
다른 주주들은 보상에 초점을 맞춘다. 지난 5월 노르웨이 국부 펀드 노르웨이 중앙은행(Norges Bank) 투자운용사업부는 투자자 약 280명의 독일 집단소송에 동참할 계획이라고 통지했다. 그들은 모두 배기가스 조작 스캔들로 인한 VW의 주가급락에 불만을 표시하며 약 36억7000만 달러의 손해배상을 요구한다.
투자자들은 큰 손실을 입었지만 폴스크바겐은 빠르게 살아나고 있다. 지난 해 가을 이후 폴크스바겐 주가가 많이 회복됐다. 지난 5월 말까지 30달러 선을 맴돌며 스캔들 이전의 주당 40~50달러 수준으로 다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폴크스바겐의 매출도 상승한다. 지난 1분기에는 최대 라이벌 도요타를 제치고 세계 1위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탈환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되면 폴크스바겐으로선 존스 데이 보고서를 공개할 이유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흰색 플래카드는 항복의 백기가 아니라 허세였던 듯하다.
- 레아 맥그래스 굿맨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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