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와 운동 무엇이 다른가
스포츠와 운동 무엇이 다른가
야구·농구·축구는 스포츠이고 수영·골프·육상은 운동이다. 과연 그럴까? 경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한 논쟁의 승자는 누구일까 지난 5월 말 미국 인디애나 주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제 100회 ‘인디 500’ 자동차 경주의 관람석은 완전 매진됐다. 행사 초유의 일이었다. 현장에서 약 35만 명이 신예 레이서 알렉산더 로시가 우승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자. 스피드웨이는 주민이 1만50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따라서 도로는 자동차 수만 대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승용차, 트럭, RV가 경기장 밖에 다닥다닥 붙어 4㎞나 길게 늘어섰다. 어디까지가 관람객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과정이고 어디부터가 레이서들의 스포츠인지 불분명했다.
‘올림픽의 세계역사(The Games: A Global History of the Olympics)’를 쓴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는 “자동차 경주가 과연 스포츠인가?”라고 반문했다. “왜 우린 자동차에 우리 정체성을 그토록 많이 부여하나? 진짜 말도 안 된다.”
물론 골드블라트의 언급은 ‘인디 500’이 아니라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경주가 스포츠로서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보다 오는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자칭 ‘스포츠의 세계 리더’라는 미국 케이블 방송 ESPN은 매년 그랬듯이 지난 5월에도 ‘인디 500’과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영어 철자 맞추기 대회)’를 중계했다. 6월엔 프로농구(NBA) 결승전과 프로야구(MLB) 경기, 오는 7월엔 ‘포커 월드시리즈’와 ‘네이선스 핫도그 먹기 대회’를 방영한다. 과연 ‘전통’ 스포츠로 불리는 농구와 야구가 철자 맞추기나 포커보다 스포츠로 더 적합할까?
ESPN의 심야 프로 ‘스포츠센터’를 진행하는 스콧 반 펠트는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즐기고 점수로 우열을 가리면 스포츠로선 충분치 않은가?”
2년 전 ESPN3은 인기 비디오게임 ‘도타 2’ 세계 챔피언십 대회를 중계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키아레나에서 1만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였다. 그해 9월 존 스키퍼 ESPN 대표는 “비디오게임 대회는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겨루기”라고 평했다. “체스도, 체커스도 그냥 겨루기다. 난 그보다 진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의 견해는 세대차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몇 달 전 미국 정부는 프로 게이머에게 프로 운동선수와 같은 P-1A 입국 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ESPN 대표가 어떻게 생각하든 미국 정부는 e스포츠도 스포츠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골드블라트도 스키퍼 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비디오게임이 스포츠라고? e스포츠는 엄지만 잘 사용하면 된다. 그게 스포츠로서 무슨 재미가 있는가?”
통치즈 굴리기, 장대 높이뛰기, 아내 업고 달리기, 피겨 스케이팅, 컵 쌓아올리기, 봅슬레이, 페럿 레깅(족제비과 동물 페럿을 바지에 넣고 오래 버티기), 골프 등등… 그중 절반은 올림픽 종목에 속한다. 하지만 성난 페럿을 바지속에 넣고 2분을 버티는 것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점프에 성공하는 것이 가치가 더 클까? 리우 올림픽에선 42개 종목에 30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중 과연 몇 종목이나 진정한 스포츠로 부를 수 있을까? 골드블라트는 “체조 종목이 요즘 생겨났다면 줌바댄스(다이어트용 운동)의 특화된 형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종목이 진짜 스포츠에 속하는지는 개인의 선입견과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기자를 지냈고 현재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팀 크로더스 교수는 “체스는 가장 순수한 스포츠”라고 밝혔다. “승패를 다른 사람의 판정에 맡기지 않아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형편없는 스포츠는 피겨 스케이팅이다. 선수가 보여주는 기교를 두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심판이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크로더스 교수는 체스가 스포츠라고 고집한다. 반면 여자 장애물 경주 선수로 이름을 떨쳤던 아멜리아 분은 그 주장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치어리딩 시합은 어떨까? “그건 당연히 스포츠”라고 분은 말했다.
스포츠 기자로서 베스트셀러를 쓴 제프 펄먼은 “고등학교 때 ‘치어리딩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칼럼을 썼다가 혼쭐났다”고 돌이켰다. “다음날 구내 식당에서 성난 치어리더들이 나를 에워쌌다. 내 생애 가장 큰 일이었다.”
또 펄먼은 골프가 무슨 스포츠냐고 말한다. 그러나 ESPN의 반 펠트는 골프도 당연히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을 똑바로 치는 것 외에도 한나절에 6.86㎞를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다리가 아파 공을 제대로 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스포츠에 속한다. 하지만 단어 철자 맞추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우선 그건 구식 기술이다. 요즘은 철자를 잘못 치면 컴퓨터 화면에서 단어 아래 붉은 줄이 바로 생긴다.” 골드블라트도 “철자 맞추기가 어떻게 스포츠가 될 수 있나?”라며 “(루게릭 병으로 전신마비에 시달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그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안젤라 글리슨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스포츠의 역사’라는 세미나를 진행한다. 매 학기 그녀는 이런 발언으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우리가 다루는 내용은 내 개인의 견해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예외다. 나스카(NASCAR, 개조 자동차 경주대회)는 스포츠가 절대 아니다. 그건 내 견해일 뿐 아니라 확신이다.” 조지 코스탄자: “그 녀석이 몸부림치는 것을 보면서 뭔가 호흡을 막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서 있는 곳에서 그 거대한 물고기의 눈을 똑바로 볼 수 있었다.”
제리 사인펠드: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동물이다.”
코스탄자: “그게 뭐든 말이다.”
1990년대 미국 인기 시트콤 ‘사인펠드’에 나온 대사다. 코스탄자는 크레이머가 파도 속으로 친 골프공이 고래의 숨구멍을 막아 자신이 빼준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스포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거기엔 좀 더 철학적인 차원이 있다.
고래를 한번 생각해 보자. 바다에서 살며 헤엄치며 지느러미가 있는 수중 동물이다. 우리 대다수는 고래가 포유류란 사실을 안다. 고래기 포유류로 분류된 것은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현대 분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가 동식물 각 종을 기본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래는 온혈 동물이며, 새끼를 먹이기 위한 젖샘이 있고, 심장이 심방 2개와 심실 2개로 나뉘어져 있다. 린네는 그런 점을 포유류의 기본적인 공통 특성으로 파악했다.
소설 ‘백경’의 고래와 영화 ‘조스’의 상어는 공통점이 많다. 거대하고, 몸이 희다. 그러나 분류학적으로 말하자면 에이햅 선장의 고래가 킹콩과 같은 포유류로서 공통점이 더 많다. 아무도 그 전제에 반박하지 않는다. 린네의 분류 시스템이 과학계에서 공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계에선 야구의 ‘스트라이크’가 뭔지조차 합의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매사추세츠 주 채텀의 한 술집에 갔을 때 나보다 몸집이 훨씬 큰 두 남자가 골프를 스포츠로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내가 스포츠 전문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중 더 험악한 남자가 내게 말했다. “좋아, 그럼 당신이 저 친구에게 골프가 스포츠라고 말해주지.”
난 몸싸움에서 질 게 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골프는 스포츠가 아니죠.”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또 내가 얻어맞아 코뼈가 어떻게 부러졌는지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그보다 우선 스포츠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또 특정 종목이 스포츠인지 아닌지에 관해 우리 모두 확신을 갖고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자. 예를 들어 먹기 대회는 어떨까? “절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분이 말했다. 반 펠트 진행자도 “승인된 폭식은 가장 미국다운 면이지만 그렇다고 스포츠는 아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다수가 특정 활동을 스포츠인지 아닌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무의식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하자. 애플의 법률고문으로 일하는 분은 “포르노에 관한 재판이 생각난다”며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알 듯이 무엇이 스포츠인지도 그냥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담이지만 포르노는 아직 스포츠가 아니다. 과거 ESPN 잡지를 편집했고 ‘스포츠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orts)’라는 책의 공동 저자인 게리 벨스키는 “스포츠는 변수가 너무 많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소재 사회스포츠연구센터의 댄 르보위츠 사무총장은 “굳이 정의하자면 스포츠란 ‘승리를 목표로 하고 운동을 바탕으로 삼는 양자간의 겨루기”라고 말했다. 겨루기와 운동, 점수가 필수적 요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체스와 피겨 스케이팅(점수를 심판이 매겨선 안 된다고 믿는다면 말이다)은 둘 다 스포츠에서 제외된다.
그렇다고 3가지 척도에만 머물 필요도 없다. 분은 “스포츠란 건강과 관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체적 웰빙을 위해 하는 활동이어야 마땅하다.” 골드블라트는 “팔 다리 하나 이상이 동시에 가속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아울러 재미도 있어야 한다.” 글리슨 교수는 “내가 신봉하는 스포츠 정의가 하나 있다”며 “신체적인 뛰어남을 달성하거나 목격하기 위한 최상의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적인 뛰어남은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따라서 스포츠는 우리가 인간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요점은 우리 모두 뛰어난 신체의 진가를 인정한다
는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보자. 두 자녀의 아버지인 크로더스 교수는 “여름날 여덟 살짜리들이 아무 할 일 없이 앉아 있다고 가정해보자”고 말했다. “결국 아이들은 겨루기를 생각하게 된다. 인류의 시초부터 그랬을 것이다.”
분은 과거 시카고의 법률회사에서 일할 때 매일 아침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으며 시간을 쟀다. 그녀는 “길 반대편에서 나와 함께 걷는 사람들은 나와 경주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경쟁심이 아주 없는 사람이 있다. 때론 그들이 부럽다.”
펄먼은 아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낱개로 포장된 각설탕으로 더 높이 쌓는 겨루기를 한다. “승리 그 자체를 위해 승리하고 싶어 하는 동물은 없다. 경마대회에서 기수가 있는 이유는 말들이 서로 쳐다보며 ‘우리 경주하자!’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유류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성적인 우세함을 과시하기 위해 겨룬다. 글리슨 교수는 인간 외 다른 포유류는 손이 없어서 점수를 매기지 못하지만 숫양 두 마리가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뿔을 맞대고 다투는 것이나 영화 ‘그리스’에서 여자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위험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전설적인 농구선수로 득점왕이었던 윌트 체임벌린(전 LA 레이커스 센터)의 여성 편력 기록을 반세기가 지나도 아무도 깨지 못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운동 기량은 성적인 기량이나 기회와 밀접하며, 인류 초기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리슨 교수는 “누가 최고인지는 스포츠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난 교수들이 스포츠를 싫어하는 이유가 늘 궁금했다. 우리 교수 동료 중 다수가 스포츠라면 질색한다. 그들은 미술사의 영역을 바꿔놓을 책은 쓸 수 있지만 농구를 하면서 자유투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쟁과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은 흥분과 재미를 선사한다. 분은 “우리 모두 서스펜스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크로더스 교수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게임이든 어떤 스포츠에서든 마지막 순간까지 승패가 결정나지 않는다면 아주 재미있다”고 말했다.
우승이 유력한 팀이 무난히 우승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재미 없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스펜스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서스펜스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제공한다. 첫째는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 또는 두 팀의 막상막하 겨루기다. 둘째는 참가자가 좋든 나쁘든 전례 없는 무엇인가를 할 때다. 예를 들어 1973년 벨몬트 경마대회에서 경주마 세크리태리엇이 승리해 3대 경마대회를 휩쓴 쾌거와 골퍼 장 방 드 벨드가 1999년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 홀에서 3타 차로 앞섰다가 잇따른 실수로 우승을 놓친 사건이 대표적이다.
보스턴 글로브 신문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댄 쇼네시는 올봄 코네티컷대학 여자 농구팀 허스키의 경기를 볼 가치가 없다고 트위터에 올려 소동을 일으켰다. 허스키는 75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쇼네시는 괴팍한 노인이며 여성혐오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었다. 거의 매번 50점 차로 승리하는 허스키는 농구의 기교라는 예술적인 관점에서만 볼 만할 뿐, 스포츠의 관점에선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림 그리는 모습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최종 작품은 서스펜스 가득한 걸작이었다. 1896년 프랑스의 피에르 드 쿠베르탱 남작은 고대 그리스 올림픽을 4년마다 열리는 국제 스포츠 행사로 부활시켰다. 그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이 열리기 전에 미술·문학·음악 대회도 함께 개최해 메달을 주자고 스웨덴 관리들을 설득하려 했다.
주최 측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쿠베르탱은 그들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대회를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시 대회에선 ‘스포츠 찬가’가 금메달을 받았다.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오 스포츠여, 신들의 즐거움이자 삶의 정수
너는 잿빛 가운데서 갑자기 떠올라 현대 삶의 고달픔을 말끔히 씻어내는구나.
― 게오르게스 호로드, 마르틴 에슈바흐
눈치챘겠지만 호로드와 에슈바흐는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 아니라 사실은 쿠베르탱의 필명이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가 진정한 경쟁 없이 자신에게 금메달을 수여한 것이다. 골드블라트는 “시합으로서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만능 선수였던 미국인 짐 소프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쿠베르탱보다 금메달을 하나 더 땄을 뿐이다. 쿠베르탱은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린네는 차별화되는 기본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동식물을 분류했다. 온혈 동물과 냉혈 동물, 새끼를 낳는 동물과 알을 낳는 동물. 깃털이 있는 동물과 털만 있는 동물. 그렇다면 스포츠를 기본 특성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까?
우선 체스와 아내 업고 달리기 등 모든 종목을 포함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어떤 스포츠는 경기 참여자가 방어를 해야 한다. 어떤 스포츠는 신체적 운동이 필요하다. 어떤 스포츠는 심판이 점수를 매긴다. 또 어떤 스포츠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골드블라트는 “무엇이 스포츠이고 아닌지를 우리의 집단의식이 결정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옳은 얘기다. 약 2000년 전 사람들은 조정(노젓기)을 노예 노동으로 생각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노를 젓는다면 함께 족쇄를 차고 로마 군용선을 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똑같은 재능이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열정이다. 스포츠는 열정의 저장소다. 따라서 특정 인기 스포츠가 단지 운동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그 스포츠의 열성팬이 거세게 항의한다. 그러나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자동차 경주가 스포츠라면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것도 스포츠가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 골드블라트는 “진공청소기를 미는 것은 관중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스포츠로선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가 있다면? 한 가지 활동이 단지 겨루기를 바탕으로 하며, 수많은 관중을 끌어들이고 시청률을 올린다고 해서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ESPN의 ‘스포츠센터’가 언제부터 2016 미국 대선을 중계하기 시작할까? 반 펠트 진행자는 “이번 대선은 스포츠 경기처럼 포장됐다”고 말했다. “미국 지도가 득점판이다. 팀 색깔은 붉은색(공화당)과 푸른색(민주당)이다. 양극화는 스포츠 팬들에겐 아주 익숙하다. 이처럼 정치는 스포츠의 요소가 많다.”
정확한 비유다. 그러나 스포츠엔 사랑과 전쟁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요소도 있다. 프로레슬링이 그 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런 수수께끼에 이른다. 모든 겨루기가 스포츠라면 스포츠라는 용어의 가치를 낮추는 게 아닐까? 분은 “포커가 스포츠든 아니든 난 그 때문에 밤잠을 못 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 다르다. 지난여름 술집에서 건장한 남자에게 입바른 말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확신이 있다. 스포츠가 되려면 4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겨루기여야 한다(따라서 프로레슬링과 민주당 예비선거는 스포츠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확정된 규칙이 필요하다. 셋째, 운동이라는 확고한 요소와 마지막으로 공격과 방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스포츠엔 공격과 방어가 필수적이다. 야구·농구·축구·하키·테니스·수구·럭비·종합격투기는 전부 스포츠다. 수영·골프·마라톤·100m 달리기, 심지어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는 전부 운동, 즉 체육 활동이다. 스포츠는 체육이지만 모든 체육이 스포츠는 아니다.
그러나 반 펠트 진행자는 “그런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올여름 올림픽 남자 100m 달리기 결승전에서 우사인 볼트가 출발 신호총 소리를 들을 때 가장 흥미진진한 9.5초가 펼쳐질 것이다.”
옳은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분류 철학에 따르면 체육 활동보다 스포츠를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없다. 다만 상대방이 직접 육체적으로 당신의 진전을 가로막는 겨루기와 그런 요소가 없는 겨루기 사이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저술가 벨스키는 “궁극적으로 스포츠는 영토 획득이나 침입을 위해 서로 겨루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런 주장도 타당하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측면도 있다. ESPN이 중계하면 그건 무조건 스포츠다.”
나는 매사추세츠 주 채텀의 술집에서 그 우람한 남자에게 이런 비유를 제시했다. “사격장에서 두 선수를 나란히 세워 경기를 하면 그건 겨루기지만 서로 마주 보고 사격하게 하면 그건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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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달리 생각해 보자. 스피드웨이는 주민이 1만5000명도 채 안 되는 작은 마을이다. 따라서 도로는 자동차 수만 대를 감당할 능력이 없었다. 승용차, 트럭, RV가 경기장 밖에 다닥다닥 붙어 4㎞나 길게 늘어섰다. 어디까지가 관람객이 자동차로 이동하는 과정이고 어디부터가 레이서들의 스포츠인지 불분명했다.
‘올림픽의 세계역사(The Games: A Global History of the Olympics)’를 쓴 데이비드 골드블라트는 “자동차 경주가 과연 스포츠인가?”라고 반문했다. “왜 우린 자동차에 우리 정체성을 그토록 많이 부여하나? 진짜 말도 안 된다.”
물론 골드블라트의 언급은 ‘인디 500’이 아니라 국제 자동차 경주대회 ‘포뮬러 원’을 두고 한 말이었다. 그러나 자동차 경주가 스포츠로서 가치가 없다고 폄훼하려는 의도는 절대 아니다. 그보다 오는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을 앞두고 ‘스포츠란 무엇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해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서다.
자칭 ‘스포츠의 세계 리더’라는 미국 케이블 방송 ESPN은 매년 그랬듯이 지난 5월에도 ‘인디 500’과 ‘스크립스 내셔널 스펠링 비(영어 철자 맞추기 대회)’를 중계했다. 6월엔 프로농구(NBA) 결승전과 프로야구(MLB) 경기, 오는 7월엔 ‘포커 월드시리즈’와 ‘네이선스 핫도그 먹기 대회’를 방영한다. 과연 ‘전통’ 스포츠로 불리는 농구와 야구가 철자 맞추기나 포커보다 스포츠로 더 적합할까?
ESPN의 심야 프로 ‘스포츠센터’를 진행하는 스콧 반 펠트는 “그런 걸 따질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이 즐기고 점수로 우열을 가리면 스포츠로선 충분치 않은가?”
2년 전 ESPN3은 인기 비디오게임 ‘도타 2’ 세계 챔피언십 대회를 중계했다. 미국 워싱턴 주 시애틀의 키아레나에서 1만7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였다. 그해 9월 존 스키퍼 ESPN 대표는 “비디오게임 대회는 스포츠가 아니라 일종의 겨루기”라고 평했다. “체스도, 체커스도 그냥 겨루기다. 난 그보다 진짜 스포츠를 좋아한다.”
그의 견해는 세대차에서 비롯된 것일지 모른다. 몇 달 전 미국 정부는 프로 게이머에게 프로 운동선수와 같은 P-1A 입국 비자를 발급하기로 결정했다. ESPN 대표가 어떻게 생각하든 미국 정부는 e스포츠도 스포츠로 인정한다는 뜻이다. 골드블라트도 스키퍼 대표와 같은 생각이다. “비디오게임이 스포츠라고? e스포츠는 엄지만 잘 사용하면 된다. 그게 스포츠로서 무슨 재미가 있는가?”
통치즈 굴리기, 장대 높이뛰기, 아내 업고 달리기, 피겨 스케이팅, 컵 쌓아올리기, 봅슬레이, 페럿 레깅(족제비과 동물 페럿을 바지에 넣고 오래 버티기), 골프 등등… 그중 절반은 올림픽 종목에 속한다. 하지만 성난 페럿을 바지속에 넣고 2분을 버티는 것보다 피겨 스케이팅에서 트리플 점프에 성공하는 것이 가치가 더 클까? 리우 올림픽에선 42개 종목에 306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하지만 그중 과연 몇 종목이나 진정한 스포츠로 부를 수 있을까? 골드블라트는 “체조 종목이 요즘 생겨났다면 줌바댄스(다이어트용 운동)의 특화된 형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어떤 종목이 진짜 스포츠에 속하는지는 개인의 선입견과 취향에 따라 달라진다. 잡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기자를 지냈고 현재 노스캐롤라이나대학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팀 크로더스 교수는 “체스는 가장 순수한 스포츠”라고 밝혔다. “승패를 다른 사람의 판정에 맡기지 않아서다. 그런 측면에서 가장 형편없는 스포츠는 피겨 스케이팅이다. 선수가 보여주는 기교를 두고 신뢰성이 떨어지는 심판이 점수를 매기기 때문이다.”
크로더스 교수는 체스가 스포츠라고 고집한다. 반면 여자 장애물 경주 선수로 이름을 떨쳤던 아멜리아 분은 그 주장에 반대한다. 그렇다면 치어리딩 시합은 어떨까? “그건 당연히 스포츠”라고 분은 말했다.
스포츠 기자로서 베스트셀러를 쓴 제프 펄먼은 “고등학교 때 ‘치어리딩은 스포츠가 아니다’라는 칼럼을 썼다가 혼쭐났다”고 돌이켰다. “다음날 구내 식당에서 성난 치어리더들이 나를 에워쌌다. 내 생애 가장 큰 일이었다.”
또 펄먼은 골프가 무슨 스포츠냐고 말한다. 그러나 ESPN의 반 펠트는 골프도 당연히 스포츠라고 주장했다. 그는 “공을 똑바로 치는 것 외에도 한나절에 6.86㎞를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나면 다음날 다리가 아파 공을 제대로 치기도 어려울 정도다. 그래서 스포츠에 속한다. 하지만 단어 철자 맞추기는 스포츠가 아니다. 우선 그건 구식 기술이다. 요즘은 철자를 잘못 치면 컴퓨터 화면에서 단어 아래 붉은 줄이 바로 생긴다.” 골드블라트도 “철자 맞추기가 어떻게 스포츠가 될 수 있나?”라며 “(루게릭 병으로 전신마비에 시달리는) 스티븐 호킹 박사도 그런 대회에서 우승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안젤라 글리슨 교수는 예일대학에서 ‘스포츠의 역사’라는 세미나를 진행한다. 매 학기 그녀는 이런 발언으로 세미나를 시작한다. “우리가 다루는 내용은 내 개인의 견해인지 아닌지 여러분이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예외다. 나스카(NASCAR, 개조 자동차 경주대회)는 스포츠가 절대 아니다. 그건 내 견해일 뿐 아니라 확신이다.”
무엇이 스포츠인지는 보면 안다
제리 사인펠드: “물고기가 아니라 포유동물이다.”
코스탄자: “그게 뭐든 말이다.”
1990년대 미국 인기 시트콤 ‘사인펠드’에 나온 대사다. 코스탄자는 크레이머가 파도 속으로 친 골프공이 고래의 숨구멍을 막아 자신이 빼준 이야기를 한다. 이 장면은 스포츠를 표면적으로 내세우지만 거기엔 좀 더 철학적인 차원이 있다.
고래를 한번 생각해 보자. 바다에서 살며 헤엄치며 지느러미가 있는 수중 동물이다. 우리 대다수는 고래가 포유류란 사실을 안다. 고래기 포유류로 분류된 것은 18세기 스웨덴의 식물학자 칼 린네(‘현대 분류학의 아버지’로 불린다)가 동식물 각 종을 기본 특성에 따라 분류하는 시스템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고래는 온혈 동물이며, 새끼를 먹이기 위한 젖샘이 있고, 심장이 심방 2개와 심실 2개로 나뉘어져 있다. 린네는 그런 점을 포유류의 기본적인 공통 특성으로 파악했다.
소설 ‘백경’의 고래와 영화 ‘조스’의 상어는 공통점이 많다. 거대하고, 몸이 희다. 그러나 분류학적으로 말하자면 에이햅 선장의 고래가 킹콩과 같은 포유류로서 공통점이 더 많다. 아무도 그 전제에 반박하지 않는다. 린네의 분류 시스템이 과학계에서 공인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포츠계에선 야구의 ‘스트라이크’가 뭔지조차 합의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매사추세츠 주 채텀의 한 술집에 갔을 때 나보다 몸집이 훨씬 큰 두 남자가 골프를 스포츠로 불러야 하는지를 두고 말다툼을 벌였다. 내가 스포츠 전문 기자라는 사실을 알고 그중 더 험악한 남자가 내게 말했다. “좋아, 그럼 당신이 저 친구에게 골프가 스포츠라고 말해주지.”
난 몸싸움에서 질 게 뻔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골프는 스포츠가 아니죠.”
내가 왜 그렇게 말했는지, 또 내가 얻어맞아 코뼈가 어떻게 부러졌는지는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그보다 우선 스포츠를 간단명료하게 정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또 특정 종목이 스포츠인지 아닌지에 관해 우리 모두 확신을 갖고 견해를 피력할 수 있다는 사실도 인정하자. 예를 들어 먹기 대회는 어떨까? “절대 스포츠가 아니다”라고 분이 말했다. 반 펠트 진행자도 “승인된 폭식은 가장 미국다운 면이지만 그렇다고 스포츠는 아니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우리 대다수가 특정 활동을 스포츠인지 아닌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면 무의식적으로든 본능적으로든 알고 있다는 뜻이라고 이해하자. 애플의 법률고문으로 일하는 분은 “포르노에 관한 재판이 생각난다”며 “포르노가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순 없지만 보면 알 듯이 무엇이 스포츠인지도 그냥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여담이지만 포르노는 아직 스포츠가 아니다. 과거 ESPN 잡지를 편집했고 ‘스포츠의 기원에 관하여(On the Origin of Sports)’라는 책의 공동 저자인 게리 벨스키는 “스포츠는 변수가 너무 많아 굳이 정의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반드시 정의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 소재 사회스포츠연구센터의 댄 르보위츠 사무총장은 “굳이 정의하자면 스포츠란 ‘승리를 목표로 하고 운동을 바탕으로 삼는 양자간의 겨루기”라고 말했다. 겨루기와 운동, 점수가 필수적 요인이라는 뜻이다. 그런 기준으로 보면 체스와 피겨 스케이팅(점수를 심판이 매겨선 안 된다고 믿는다면 말이다)은 둘 다 스포츠에서 제외된다.
그렇다고 3가지 척도에만 머물 필요도 없다. 분은 “스포츠란 건강과 관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신체적 웰빙을 위해 하는 활동이어야 마땅하다.” 골드블라트는 “팔 다리 하나 이상이 동시에 가속돼야 한다”고 거들었다. “아울러 재미도 있어야 한다.” 글리슨 교수는 “내가 신봉하는 스포츠 정의가 하나 있다”며 “신체적인 뛰어남을 달성하거나 목격하기 위한 최상의 표현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신체적인 뛰어남은 아름다움과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한다. 따라서 스포츠는 우리가 인간이란 사실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해 준다고 생각한다. 요점은 우리 모두 뛰어난 신체의 진가를 인정한다
는 것이다.”
운동 기량은 성적인 우세함과 연결된다
분은 과거 시카고의 법률회사에서 일할 때 매일 아침 집에서 사무실까지 걸으며 시간을 쟀다. 그녀는 “길 반대편에서 나와 함께 걷는 사람들은 나와 경주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선천적으로 경쟁심이 아주 없는 사람이 있다. 때론 그들이 부럽다.”
펄먼은 아들과 함께 식당에 가면 낱개로 포장된 각설탕으로 더 높이 쌓는 겨루기를 한다. “승리 그 자체를 위해 승리하고 싶어 하는 동물은 없다. 경마대회에서 기수가 있는 이유는 말들이 서로 쳐다보며 ‘우리 경주하자!’라고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포유류는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성적인 우세함을 과시하기 위해 겨룬다. 글리슨 교수는 인간 외 다른 포유류는 손이 없어서 점수를 매기지 못하지만 숫양 두 마리가 암컷을 서로 차지하려고 뿔을 맞대고 다투는 것이나 영화 ‘그리스’에서 여자 친구의 마음을 얻기 위해 위험한 자동차 경주를 벌이는 것은 큰 차이가 없다. 전설적인 농구선수로 득점왕이었던 윌트 체임벌린(전 LA 레이커스 센터)의 여성 편력 기록을 반세기가 지나도 아무도 깨지 못한 것도 이 문제와 관련 있을지 모른다.
아무튼 운동 기량은 성적인 기량이나 기회와 밀접하며, 인류 초기의 가장 원초적인 욕구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리슨 교수는 “누가 최고인지는 스포츠가 결정한다”고 말했다. “난 교수들이 스포츠를 싫어하는 이유가 늘 궁금했다. 우리 교수 동료 중 다수가 스포츠라면 질색한다. 그들은 미술사의 영역을 바꿔놓을 책은 쓸 수 있지만 농구를 하면서 자유투를 성공시킬 수 없다는 것이 자신에게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경쟁과 거기서 생기는 긴장감은 흥분과 재미를 선사한다. 분은 “우리 모두 서스펜스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크로더스 교수는 “언제 어디서든 어떤 게임이든 어떤 스포츠에서든 마지막 순간까지 승패가 결정나지 않는다면 아주 재미있다”고 말했다.
우승이 유력한 팀이 무난히 우승하는 과정을 그린 영화는 재미 없다.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유는 서스펜스를 갈구하기 때문이다. 서스펜스는 두 가지 중 하나가 제공한다. 첫째는 실력이 비슷한 두 사람 또는 두 팀의 막상막하 겨루기다. 둘째는 참가자가 좋든 나쁘든 전례 없는 무엇인가를 할 때다. 예를 들어 1973년 벨몬트 경마대회에서 경주마 세크리태리엇이 승리해 3대 경마대회를 휩쓴 쾌거와 골퍼 장 방 드 벨드가 1999년 브리티시 오픈 마지막 홀에서 3타 차로 앞섰다가 잇따른 실수로 우승을 놓친 사건이 대표적이다.
보스턴 글로브 신문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댄 쇼네시는 올봄 코네티컷대학 여자 농구팀 허스키의 경기를 볼 가치가 없다고 트위터에 올려 소동을 일으켰다. 허스키는 75연승을 달리고 있었다. 쇼네시는 괴팍한 노인이며 여성혐오자라는 소리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의 지적에도 일리가 있었다. 거의 매번 50점 차로 승리하는 허스키는 농구의 기교라는 예술적인 관점에서만 볼 만할 뿐, 스포츠의 관점에선 그렇지 않다. 예를 들면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가 그림 그리는 모습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지만 그의 최종 작품은 서스펜스 가득한 걸작이었다.
정치도 스포츠인가?
주최 측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쿠베르탱은 그들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그 대회를 심사하겠다고 발표했다. 시 대회에선 ‘스포츠 찬가’가 금메달을 받았다. 시는 이렇게 시작했다.
오 스포츠여, 신들의 즐거움이자 삶의 정수
너는 잿빛 가운데서 갑자기 떠올라 현대 삶의 고달픔을 말끔히 씻어내는구나.
― 게오르게스 호로드, 마르틴 에슈바흐
눈치챘겠지만 호로드와 에슈바흐는 당대의 뛰어난 시인이 아니라 사실은 쿠베르탱의 필명이었다. ‘근대 올림픽의 아버지’가 진정한 경쟁 없이 자신에게 금메달을 수여한 것이다. 골드블라트는 “시합으로서 시를 창작한다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밝혔다. “만능 선수였던 미국인 짐 소프도 스톡홀름 올림픽에서 쿠베르탱보다 금메달을 하나 더 땄을 뿐이다. 쿠베르탱은 ‘이 어리석은 사람들아’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하다.”
린네는 차별화되는 기본적인 특성을 기준으로 동식물을 분류했다. 온혈 동물과 냉혈 동물, 새끼를 낳는 동물과 알을 낳는 동물. 깃털이 있는 동물과 털만 있는 동물. 그렇다면 스포츠를 기본 특성으로 분류할 수는 없을까?
우선 체스와 아내 업고 달리기 등 모든 종목을 포함하는 것으로 시작해 보자. 어떤 스포츠는 경기 참여자가 방어를 해야 한다. 어떤 스포츠는 신체적 운동이 필요하다. 어떤 스포츠는 심판이 점수를 매긴다. 또 어떤 스포츠는 시간의 제약을 받는다.
골드블라트는 “무엇이 스포츠이고 아닌지를 우리의 집단의식이 결정한다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옳은 얘기다. 약 2000년 전 사람들은 조정(노젓기)을 노예 노동으로 생각했다. 여러 명이 동시에 노를 젓는다면 함께 족쇄를 차고 로마 군용선을 타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그러나 지금은 그와 똑같은 재능이라면 금메달을 딸 수 있다.
또 다른 문제는 열정이다. 스포츠는 열정의 저장소다. 따라서 특정 인기 스포츠가 단지 운동에 불과하다고 말하면 그 스포츠의 열성팬이 거세게 항의한다. 그러나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할까? 자동차 경주가 스포츠라면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는 것도 스포츠가 아니라는 법이 있을까? 골드블라트는 “진공청소기를 미는 것은 관중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스포츠로선 미래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미래가 있다면? 한 가지 활동이 단지 겨루기를 바탕으로 하며, 수많은 관중을 끌어들이고 시청률을 올린다고 해서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ESPN의 ‘스포츠센터’가 언제부터 2016 미국 대선을 중계하기 시작할까? 반 펠트 진행자는 “이번 대선은 스포츠 경기처럼 포장됐다”고 말했다. “미국 지도가 득점판이다. 팀 색깔은 붉은색(공화당)과 푸른색(민주당)이다. 양극화는 스포츠 팬들에겐 아주 익숙하다. 이처럼 정치는 스포츠의 요소가 많다.”
정확한 비유다. 그러나 스포츠엔 사랑과 전쟁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요소도 있다. 프로레슬링이 그 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우리는 이런 수수께끼에 이른다. 모든 겨루기가 스포츠라면 스포츠라는 용어의 가치를 낮추는 게 아닐까? 분은 “포커가 스포츠든 아니든 난 그 때문에 밤잠을 못 자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난 다르다. 지난여름 술집에서 건장한 남자에게 입바른 말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나는 확신이 있다. 스포츠가 되려면 4가지 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결과가 확정되지 않은 겨루기여야 한다(따라서 프로레슬링과 민주당 예비선거는 스포츠에 포함되지 않는다). 둘째, 확정된 규칙이 필요하다. 셋째, 운동이라는 확고한 요소와 마지막으로 공격과 방어가 있어야 한다.
그렇다. 스포츠엔 공격과 방어가 필수적이다. 야구·농구·축구·하키·테니스·수구·럭비·종합격투기는 전부 스포츠다. 수영·골프·마라톤·100m 달리기, 심지어 투르 드 프랑스 사이클 대회는 전부 운동, 즉 체육 활동이다. 스포츠는 체육이지만 모든 체육이 스포츠는 아니다.
그러나 반 펠트 진행자는 “그런 전제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올여름 올림픽 남자 100m 달리기 결승전에서 우사인 볼트가 출발 신호총 소리를 들을 때 가장 흥미진진한 9.5초가 펼쳐질 것이다.”
옳은 얘기일지 모른다. 그러나 나의 분류 철학에 따르면 체육 활동보다 스포츠를 더 높은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것은 없다. 다만 상대방이 직접 육체적으로 당신의 진전을 가로막는 겨루기와 그런 요소가 없는 겨루기 사이엔 기본적인 차이가 있다.
저술가 벨스키는 “궁극적으로 스포츠는 영토 획득이나 침입을 위해 서로 겨루는 게임”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런 측면에서 보면 그런 주장도 타당하다. 하지만 다른 중요한 측면도 있다. ESPN이 중계하면 그건 무조건 스포츠다.”
나는 매사추세츠 주 채텀의 술집에서 그 우람한 남자에게 이런 비유를 제시했다. “사격장에서 두 선수를 나란히 세워 경기를 하면 그건 겨루기지만 서로 마주 보고 사격하게 하면 그건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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