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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퓰리즘의 역습

포퓰리즘의 역습

브렉시트는 이민과 세계화에 대한 유럽 대중영합주의자들의 반란의 시작일 뿐이다
브렉시트 투표에서 18~24세 유권자 중 무려 73%가 EU 잔류를 원했고 45세 이상 유권자 중 과반수가 탈퇴를 지지했다.
영국의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 투표는 신세대에 대한 구세대, 고학력자에 대한 저학력자, 세계주의에 대한 국수주의의 승리였다. 미국 공화당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가 기뻐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그는 지난 6월 24일 투표 결과가 발표될 때 마침 스코틀랜드에 있는 자기 소유의 골프장에 있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브렉시트 투표자와 트럼프의 풀뿌리 지지자 모두 두려움과

환상이 교차하는 비슷한 감정에 이끌렸음을 보여준다. 이민을 통제하고 세계화를 되돌리고 더 넓고 위협적인 세계에서 이탈해 국가의 위용을 되찾으려는 욕구다.

트럼프는 투표 결과를 전해 듣고는 “사람들이 나라를 되찾고 싶어 한다”며 “모든 유럽 국가가 독립과 국경의 원상복구를 원한다”고 말했다.

그 말이 맞다. 브렉시트 투표는 구미 지역의 소외계층을 기성 정치세력에 맞서 단합시키는 포퓰리즘과 이민배척주의의 흐름에서 가장 최근에 가장 뚜렷하게 표출된 현상이다. 소외계층이 토해내는 이 같은 정치적 아우성에 영국이 가장 먼저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브렉시트 투표 이후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지역 유권자들의 유럽 잔류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게 나

타난 뒤 스코틀랜드 독립에 관한 새 국민투표 실시 “가능성이 아주 크다”고 말했다. 스터전 수반은 스코틀랜드가 “타의에 이끌려 EU에서 나가는 것”을 방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마틴 맥기네스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부수반은 아일랜드와의 재결합에 관한 투표를 촉구했다. “EU를 신뢰하고 유럽의 일부로 남고자 하는 우리 모두에겐 그것이 합리적인 다음 수순이다.”유럽인 이민자가 100만 명 이상 거주하며 영국 경제의 심장부인 런던도 반발하고 있다. 사딕 칸 신임 런던 시장은 영국이 유럽과 재협상하는 테이블에 런던의 자리도 마련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투표결과 발표 후 몇 시간도 안 돼 런던시의 독립 선언을 촉구하는 온라인 서명 운동 참가자가 10만 명을 돌파했다.

투표결과 발표 후 런던이 영국으로부터 독립해 EU에 재가입해야 한다는 온라인 서명운동 참가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 사진은 EU 탈퇴에 항의하는 시위자.
열렬한 친 브렉시트인 데일리 메일 신문의 역사가 도미니크 샌드브룩은 “아주 흔하지는 않지만 역사의 현장을 실감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며 “대공이 몰락하고, 장벽이 무너져 내리고, 비행기가 건물에 충돌하는 순간에 땅 밑이 흔들리는 걸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샌드브룩이 흔들린다고 느끼는 건 영국뿐 아니라 유럽 전체의 지각변동이다. EU는 근대사에서 가장 혁신적인 정치실험이었다. 갈라지고 분열된 유럽 대륙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온 실험이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스페인·포르투갈·그리스는 파시스트 독재자나 군사정권의 지배를 받았다. 그리고 1989년까지 동유럽 전체가 사실상 소련의 군사적 지배 아래 있었다. EU는 그런 나라 대다수를 끌어안았으며 아직 울타리 밖에 있는 나라 중 다수가 가입을 원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EU 내부로부터 지속적으로 공격 받는 상황에 처해 있다.유럽 전역의 상당수 유권자들이 EU뿐 아니라 자국에서 떨어져 나가겠다고(스코틀랜드, 스페인 카탈루냐, 벨기에 플랑드르의 경우) 아우성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선 마린 르펜 국민전선 대표가 그 투표를 “자유의 승리”라고 찬양했다. “나는 몇 년 전부터 프랑스를 비롯한 다른 EU 회원국에서도 똑같이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네덜란드의 반이민 정치인 헤이르트 빌더스는 네덜란드가 넥시트(Nexit) 투표를 할 때가 됐다고 말했으며 이탈리아의 마테오 살비니 북부동맹 대표는 트윗에 이런 메시지를 올렸다. “가슴·머리·자부심이 거짓·위협·공갈을 물리쳤다. ‘고마워 영국’. 이젠 우리 차례다.” 이민에 반대하는 스웨덴 민주당 진영은 “스웩시트(Swexit)를 기다린다!”고 선언했으며 유럽 회의론(Eurosceptic) 성향인 ‘독일을 위한 대안’ 당의 베아트릭스 폰 스토르흐는 “EU는 정치연합으로선 실패했다”고 썼다. 유럽 회의론은 폴란드에서도 뿌리 깊다. 보수파인 베아타 시드워 신임 폴란드 총리는 지난해 11월 취임 첫 기자회견장에서 EU 깃발을 치우도록 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틈만 나면 EU를 비판한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 펜 대표(사진)는 “EU를 탈퇴하고 싶은 이유는 프랑스가 영국보다 아마도 1000가지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포퓰리즘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의심스럽다면 다음의 뼈아픈 브렉시트 역설을 살펴보자. 영국은 사실상 대다수 다른 회원국보다 더 탄력적이고 독립적인 관계에 있으면서도 탈퇴를 선택했다. 영국은 유로존(유로화 사용권)에 속하지 않고 자국 통화를 사용한다. 무비자 통행이 가능한 솅겐 조약에도 가입하지 않았으며 국경 통제 권한을 더 많이 갖고 있다. 유로존 경제가 거의 정체됐던 지난해 영국의 경제성장률은 3%에 육박했다.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영국의 청년 실업률은 13%에 불과한 반면 스페인에선 45%, 그리스에선 무려 48%에 달했다. 영국의 번영으로 이민 물결이 쇄도했지만 EU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이민 수용 인원은 오히려 다른 14개 EU 회원국보다 적었다.

프랑스 국민전선의 르펜 대표는 지난 5월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극우 정당 집회에서 “EU를 탈퇴하고 싶은 이유는 프랑스가 영국보다 아마도 1000가지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유로화 그리고 EU 이동의 자유 원칙 때문에 실업률이 높아지고 “밀수범·테러범·경제 이민”을 막지 못한다고 비난했다(르펜 대표는 내년 프랑스 대선에서 선전이 예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은 서방국가로서는 처음으로 포퓰리스트적인 반이민 혁명에 굴복했다. 여러 나라가 그 뒤를 바짝 따르는 듯하다. 1950년대 전 나치(국가사회당) 당원들이 설립한 오스트리아 극우 자유당의 노르베르트 호퍼 후보는 지난 5월 23일 대선에서 불과 3만 표 차로 낙선했다. 호퍼의 메시지는 나이절 패라지 영국독립당(UKIP) 대표가 수년간 내세운 것과 사실상 똑같았다. 이민, 과격파 이슬람, EU와 세계화 세력이 오스트리아와 영국, 그리고 대다수 다른 서방 국가의 미래를 파멸로 이끌려 한다는 주장이다.UKIP의 캠페인 포스터에는 EU 국경에 줄지어 선 난민 수천 명의 사진과 함께 ‘한계에 이르렀다, EU는 우리 모두를 실망시켰다’는 글이 적혀 있었다. 트위터 이용자들은 곧바로 그 이미지가 이민을 내세운 나치 정치선전 화면과 비슷하다고 지적했다. 그뿐 아니라 미국이 무슬림 테러리스트와 멕시코 강간범에 짓밟힌다는 트럼프의 과장된 경계론과도 유사하다고 언급했다. 그런 뻔한 인종차별도 과반수 영국 유권자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다.

차기 총리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도 당초 국민투표 2회 실시 방안을 지지했었다.
브렉시트 결과와 더 광범위한 신 국수주의의 부상은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영국과 유럽이 큰 안정과 번영을 이룬 시기에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화는 교육받은 도시 엘리트에게는 혜택을 줬지만 서방의 전통적인 근로계층은 중산계급이 누린 소득증가와 기회를 공유하지 못했다. 브렉시트와 트럼프 열풍의 공통된 진앙지가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Rust Belt, 사양화된 공업지대)와 영국 북부의 과거 공업 중심지였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들 지역은 제조업 일자리가 해외로 빠져나가고 저임직 일자리, 국가 지원을 받는 교육·보건의료·복지를 두고 이민과 경쟁하면서 큰 타격을 입었다. 프랑스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르펜 대표를 지지할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은 경제적으로 침체된 ‘노르 파 드 칼레 피카르디’와 ‘프로방스 알프스 코트 다쥐르’다. 모두 프랑스 사회당의 옛 거점이다.

유럽과 미국 모두 이런 유권자들은 은행가, 기자와 언론사, 정치인 등의 엘리트 계층에 불신이 깊다(애당초 기자와 정치인 스스로 그런 불신의 상당 부분을 자초한 측면도 있다). 영국을 비롯한 몇몇 다른 나라의 많은 근로계급 유권자들은 좌파 정치인과 언론인에게 특히 냉소적이다. 그들의 자유주의적이고 대도시적 가치가 그들이 한때 대변한다고 주장하던 소외계층과 갈수록 멀어지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데일리 메일의 샌드브룩은 “잉글랜드 전역에 걸쳐 발생한 파동은 아주 오랫동안 근로계급 유권자들의 지지를 당연시했던 정치 엘리트에 대한 대반란이었다”고 주장했다. 은행가 출신인 패라지 대표는 “이것은 보통 사람의 승리”라며 “우리는 다국적 기업, 대형 상업은행, 대형 정당에 맞서 싸웠다”고 큰소리쳤다.

EU 행정부의 비선출직 관료들도 특히 미움을 샀다. 무엇보다도 유럽인의 민주적인 의지를 번번이 묵살했기 때문이다. 덴마크는 1992년 통화통합의 토대를 마련한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2005년 유럽헌법에 반대표를 던졌다. 프랑스도 당시 유럽헌법을 거부했다. 아일랜드 유권자들은 2008년 덩치가 커진 EU 제도를 개정한 리스본 조약의 비준을 거부했다. 그런 난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EU는 통합 구상을 계속 끌고 나갔다.EU 지도자들이 브렉시트로 인한 유로회의론의 확산을 막을 목적으로 개혁을 단행할 수도 있다. 예컨대 노동 법과 망명에 대해 개별국가에 더 많은 권한을 돌려주는 식이다. 그러나 브렉시트 투표에 대한 브뤼셀 정부의 당초 반응은 겸손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영국에 서둘러 EU를 떠나라고 시사했다. 유럽 이사회·집행위원회·의회 의장들은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그 과정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가능한 한 빨리” 떠나라고 영국에 촉구했다(유럽 대륙의 많은 정치인들은 오래 전부터 완고하고 미온적인 태도의 영국 정치인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EU 지도자들은 영국을 밀어내려 노력하는 한편 영국이 경제적으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함으로써 다른 나라들의 이탈을 막으려 애썼다. 마틴 슐츠 유럽의회 의장은 “영국은 세계 최대 시장과 관계를 단절했다”고 경고했다. “후폭풍이 몰려올 것이다. 다른 나라들이 그런 위험한 길을 따르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요즘 유로회의론자들이 도처에서 예상하는 연쇄반응은 일어나지 않는다.”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는 신세대에 대한 구세대, 고학력자에 대한 저학력자, 세계주의에 대한 국수주의의 승리였다.
정치적 혼란이 더 악화될 가능성도 있다. EU 잔류 투표율이 65세 이상 그룹의 불과 39%에 비해 무려 75%에 달한 24세 이하 그룹을 중심으로 한 상당수 영국인은 2차 국민투표를 추진한다. 영국 정부 공식 사이트에서의 온라인 서명운동에 3일 사이 350만 명 이상이 참가했다. 의회가 적어도 그 방안을 검토해봐야 한다는 의미다. 투표 직후 트위터에선 #Bregret(브렉시트를 후회한다)가 인기 주제어로 떠올랐다. 엄밀히 말해 국민투표 결과는 EU 탈퇴 최종 합의를 비준해야 하는 의회에 구속력이 없다. 그리고 의회 멤버 중 압도적 과반수가 잔류 캠페인을 지지했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사임 연설에서 리스본 조약 50조 규정에 따라 2년 간의 공식 탈퇴 절차를 시작하는 일은 후임자의 몫이라고 밝혔다(후임 총리는 오는 10월 집권 보수당에서 선출된다). 국민투표 전과 크게 달라진 태도다. 그리고 차기 보수당 지도자에게 독배를 넘겨주는 셈이다. 차기 총리는 브렉시트 절차를 밟는다고 욕을 얻어먹을 뿐 아니라 영국의 분열을 초래할 것으로 거의 확실시되는 일련의 사건들에 시동을 걸었다고 손가락질당할 것이다. 그에 따라 유권자들이 브렉시트의 최면에서 깨어나 그래 봤자 캐머런 정부가 도입한 긴축 정책이나 이민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언제가 됐든 마음을 돌려 다시 EU에 남기로 할 여지도 충분히 남아 있다. 차기 총리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보리스 존슨 전 런던 시장도 당초 국민투표 2회 실시 방안을 지지했다. 현재 내부적으로 당권 싸움을 벌이고 있는 야당 노동당도 궁극적으로 반 브렉시트 입장을 중심으로 뭉칠 가능성이 있다.

EU의 정책입안 과정에서 영국이 발언권을 상실했다는 점 외에는 EU와의 어떤 합의든 모두 과거와 상당히 흡사할 가능성이 크다. 영국은 스위스와 노르웨이 등 관련 비회원국들과 마찬가지로 유럽 단일시장에 접근하는 대가로 EU 시민 이동의 자유원칙을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브렉시트 지도자들은 영국과 유럽의 통상·정치 관계의 이성적인 재설정을 거론한다. 잔류 캠페인을 이끈 대니얼 해넌 유럽 의회 의원은 ‘EU의 영국 파트너들은 우리가 아주 떠나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는 트윗을 띄웠다. “영국 법의 통제권을 돌려받는다고 해서 우방에 등을 돌리는 것은 아니다. 앞으로의 과제는 국민 통합을 이뤄 탈퇴파와 잔류파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위치로 신중하고 단계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단히 낙관적 견해다. 사실상 브렉시트는 영국 정치보다 훨씬 더 크고 막강한 파괴력을 지닌 정치적 흐름의 한 현상이다. 영국 투표는 유럽뿐 아니라 세계화된 미래에 관한 문제였다. 세계 각지에서 세계화의 루저들이 거부하는 미래다. 다음번 투쟁은 훨씬 더 치열할 전망이며 유럽 국수주의의 가장 어두운 곳에 도사리고 있던 일부 세력이 날뛸 가능성이 크다. 다음 타자 마린 르펜 대표를 기대하시라. 오는 11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공화당 후보도 대기 중이다.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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