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우홍장 장위와인 총경리
저우홍장 장위와인 총경리
124년 역사의 장위와인은 중국 최초이자 최대 규모의 와인 기업이다. 저우홍장 장위와인 총경리는 10%가 안되는 해외 고객을 30%까지 늘릴 계획이다. ‘품중예천(品重醴泉·품질이 좋고 샘물처럼 감미롭다).’ 중국 산둥(山東)성 옌타이(煙臺)시에 위치한 장위와인박물관 서예실에는 쑨원(孫文)이 친필로 쓴 ‘품중예천’ 작품이 전시돼 있다. 지난 28년간 장위에 몸담아온 저우홍장(周洪江·52) 총경리가 가슴에 새겨온 신조이기도 하다. 저우 총경리는 “쑨원이 기업에 써준 유일한 글자”라고 말했다. 1912년 8월 20일 옌타이를 방문한 쑨원은 장위(장위양주공사)에 들러 포도주와 브랜디를 맛보게 된다. 그리곤 중국 최초의 포도주·브랜디 제조업체가 ‘국익의 발전을 위해 번창하기를 바란다’는 격려의 마음을 담아 이 휘호를 썼다.
인천공항에서 옌타이는 비행기로 50분 거리. 지난 6월 25일 옌타이의 ‘장위와인박물관’에서 국내 언론 최초로 저우홍장 총경리를 만났다. 저우 총경리는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택한 와인이 바로 장위”라고 소개했다. 와인이 중국의 공식 연회에 사용된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연회에 쓰인 와인은 프랑스산이었다. 2000년 중국 국가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는 비싼 프랑스 와인 대신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찾기 위해 세계 유명 와인 11종의 품평회가 열렸다. 장위와인이 전체 평가에서는 2위를, 가격 대비 맛과 향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2003년부터 국가 행사 때 장위와인을 사용하고 있다. “100년 넘는 역사를 이끌어 가려면 끊임없이 품질 혁신을 해야 한다”고 저우 총경리는 강조하며 장위와인의 역사와 그 창업주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남양(南洋) 중국인 중 최고 부자로 손꼽히며 ‘동양의 록펠러’로 불린 장비스(張弼士·1841~1916). 그가 1892년 산둥성 옌타이에 자신의 성을 딴 ‘장위양주공사(張裕釀酒公司)’를 세울 때 목표는 분명했다. ‘가장 뛰어난 포도주를 생산해 나라를 빛내자.’
장비스는 2차 아편전쟁 직후 혼란기인 1858년 17살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그는 각국의 명주들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포도주와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1871년 자카르타의 프랑스 영사관이 개최한 파티에서 처음 마셔본 프랑스 포도주는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파티에서 프랑스 영사는 중국 대륙의 옌타이에 가면 산 전체에 야생포도가 지천이고, 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의 맛이 특별나다고 했다. 장비사는 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부동산과 무역으로 부를 쌓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38개의 방과 220개의 창문이 딸린 집에 살았지만 장비스는 조국이 그리웠다. 기회가 왔다. 1891년 장비스는 옌타이에서 철도 건설에 관한 업무를 논의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프랑스 영사에게 들은 말을 잊지 않고 지역을 꼼꼼히 살폈다.
옌타이는 바다에 붙어 있는데다 뒤에는 산이 있었다. 겨울에는 춥지 않았고, 여름엔 덥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표적 포도 산지인 보르도 지역과 유사한 기후였다. 그는 이곳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생산하는 포도의 품종이 알이 크지 못해 알코올 함량이 낮았다. ‘원료는 우수한 것을 써야 한다’는 원칙으로 장비스는 해외에서 새로운 품종을 수입했다. 거금을 들여 독일로부터 40만 그루의 포도 묘목을 수입했다. 그렇지만 배가 인도양을 지날 때 포도 묘목은 고온에 견디지 못해 모두 말라 죽었다. 그 일로 인해 큰 손실을 봤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자금을 조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50만 그루의 포도 묘목을 수입했다.
운도 따랐다. 서태후는 ”중국도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애국적인 실업가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은화 300만 냥(현재 가치 770억원)을 내렸다. 돈과 원료(포도)가 있었지만, 와인을 만들어 본 사람이 없었다. 영국· 오스트리아·네덜란드에서 양조기술자를 불러왔다. 거한 지하 포도주 저장고를 설치했다. 묘목을 심은지 4년이 지난 1896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빈티지 와인(특정 연도에 만들어 숙성시킨 와인)’이 태어났다.
장비스가 세운 장위는 12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현재 중국 내 소비량의 20% 이상을 점유하며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저우 총경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인정한다. 안으로는 중국 지하수 오염 등 품질 문제에 직면해 있고 밖으로는 해외 우수한 품종의 와인과 경쟁해야 한다. 창청(長城), 왕차오(王朝) 등 메이저 현지 경쟁업체가 장위의 대표 브랜드 ‘제바이나’ 상표권 사용을 놓고 법정분쟁을 벌이며 자국산 와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도 했다.
특히 식품 안전성 문제는 중국산 음료에는 늘 따라붙는 꼬리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후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식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이때 “장위와인에서 발암물질인 발색제와 방부제 역할을 하는 아질산나트륨이 검출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조·판매 과정에서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자료를 냈지만 당시 장위의 주가는 10% 이상 폭락했다. 28년 동안 장위에서 몸담아온 저우 총경리는 “품질은 타협할 수 없는 요소”라고 못박는다. 그는 선양 건축대에서 공학을 공부하고, 중국과학원 선양자동화연구소에서 공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1988년 장위와인에 입사했다. 94년 영업 담당자로 승진한 뒤 2001년부터 총경리로 장위와인을 이끌고 있다. 저우 총경리는 “장위는 중국 최초의 근대식 포도주 공장”이라고 덧붙였다. 중국 주류 연합회 회장인 왕연재(王延才)는 “장위의 시설과 기술력은 유럽의 고급 와인업체와 견줘도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고 평가한다.
저우 총경리와 함께 호흡을 맞춰 27년 동안 장위에서 근무한 순지안 총경리 대리는 “1989~92년에는 더 상황이 안좋았다”고 회상했다. “재고가 산만큼이나 쌓여있었지만 2~3명에 불과한 영업 사원들은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다. 새로운 고객을 찾지 않고 남은 재고만 팔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중국 기업이 그랬다.”
80년대 계획경제 당시, 장위는 중국 내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 하나였지만 시장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100% 옌타이 시정부가 주식을 소유한 국유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장위는 진정한 의미의 기업이라기 보다는 와인을 제조해 판매하는 생산업체였다. 이후 중국 국유기업 개혁을 거치며 민영화한 장위와인은 1997년 선전 B주(현재 정부 소유 지분 7.12%)에, 2000년에 선전 A주(5.44%)에 상장했다. 이익을 좀 더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 기업의 수출·무역권도 따냈다.
저우 총경리는 2~3명이던 영업사원을 1996년 400명까지 늘리며 적극적으로 국내 고객을 찾아나섰다. 96년~99년 사이 레드 와인이 인기를 끌자 주력 제품이었던 브랜디보다 와인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3700명의 영업사원과 6200명의 판촉 전문가가 활동한다. 매입한 국제 브랜드는 베테랑 영업사원이 맡고 있다. OEM같이 대리생산하는 외국 브랜드는 판촉 전문가들을 비롯한 마케팅팀이 담당한다. 이렇게 국내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 지난해 국내 영업이익은 44억8160만 위안(7734억원)을 기록했다. 장위와인 전체 영업이익의 96.38%가 국내에서 나온다.
중국 내 와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국제포도주기구(OIV)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와인 소비량은 전년대비 3% 증가한 1600만 헥토리터(와인을 측량하는 표준단위: 1헥토리터=100ℓ)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와인 수입량은 전년대비 44% 급증한 550만 헥토리터에 이른다. 중국양주협회 포도주분회 비서장 왕쭈밍(王祖明)은 “고급 와인이 위축되고 중저가의 대중적 와인이 기반을 넓히고 있다”면서 “동부 연안 주요 도시에서 와인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와인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그는 1200만 유로(154억원)을 들여 프랑스 블라이 꼬뜨 드 부르 지역의 유명 와이너리 샤또 페렌(Chateau Perenne)과 샤또 게리(Chateau Guerry)를 인수했다. 프랑스 명품 그룹인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도 중국 남서부 윈난성에 29만9470㎡, 북부 닝샤 자치구에 65만9640㎡의 포도원을 세워 급성장하는 중국 와인 산업에 뛰어들었다.
“마윈 회장까지 와인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게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경쟁은 끊임없는 품질 혁신을 가져오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라고 저우 총경리는 낙관했다. 장위 제품 90%는 내수 판매로 이뤄진다. 해외 진출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장위는 지난해 12월 스페인의 5대 와인 생산업체 마르케스 델 아트리오(Marqu’s del Atrio)의 주식 75%를 인수했다. 올해 3월부터 스페인에서 판매하는 와인은 카베르네 게르니쉬트(장위가 개발한 중국 품종)와 카베르네 쇼비뇽(프랑스 원산지의 포도 품종)을 섞은 제품이다. 저우 총경리는 “앞으로 해외 비중을 30%로 끌어 올릴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장위그룹의 자회사인 얀코가 만드는 백주인 ‘연태고량주’가 더 유명하다. 장위의 2015년 품목별 수익을 살펴보면 78.70%가 와인에 집중돼있다. 브랜디가 19%, 연태고량주 등 기타 품목은 2.3%에 불과하다. 2002년 초부터 한국시장에 진출한 연태고량주는 현재 한국 수입 백주시장의 50%를 차지한다.
장위와인의 부총경리 장융성은 조만간 소주와 비슷한 21도 연태고량주를 한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30명이 넘는 한국 판매상들을 만나 시음회를 열었다. 한국식으로 맥주를 섞는 폭탄주 등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봤다. 반응은 좋았다.”
장위와인은 2012년부터 옌타이 외곽에 ‘와인 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오크통 모양을 본 딴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400만㎡ 땅에 포도농장과 와인 생산·유통 시설, 와인 테마파크까지 들어선다. 공정이 기계화되면 매일 출고할 수 있는 와인은 420만 병에 이른다.
옌타이시청언론홍보실 주임 왕홍청은 “옌타이는 OIV가 정한 아시아 유일의 국제 포도주 도시”라며 장위와인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기업이지만 지금은 1차 산업(농수축산업), 2차 산업(제조업), 3차 산업(서비스·문화·관광업 등)을 연계해 오히려 지방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 옌타이(중국)=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사진 최승식 기자 100여 년 전 중국의 와인산업은 민족공업을 발전시켜 외환보유액을 늘리려는 목적으로 시작됐다. 1892년 국유기업으로 탄생한 장위의 발전을 위해 역대 지도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장위와인은 1915년 파나마 국제박람회의 와인 품질대회 부문에서 금상을 받았다. 저우언라이(周恩來)는 총리 시절 중국에서 개최되는 각종 국제회의에 장위와인을 내놓으며 각국 대표들에게 금상 수상 사실을 알렸다. 1914년 위안스카이(袁世凱)는‘영주옥례(瀛洲玉醴·신선이 사는 산의 옥처럼 귀한 단술)’라는 글을 썼고, 94년 장쩌민(江澤民)은 ‘푸른 물에 시의 맛 담으려 술로 빚으니 비로소 향기 풍기네(滄浪欲有詩味,醞釀才能芬芳)’라는 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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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옌타이는 비행기로 50분 거리. 지난 6월 25일 옌타이의 ‘장위와인박물관’에서 국내 언론 최초로 저우홍장 총경리를 만났다. 저우 총경리는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택한 와인이 바로 장위”라고 소개했다. 와인이 중국의 공식 연회에 사용된 것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랫동안 연회에 쓰인 와인은 프랑스산이었다. 2000년 중국 국가 영빈관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는 비싼 프랑스 와인 대신 합리적인 가격에 질 좋은 와인을 찾기 위해 세계 유명 와인 11종의 품평회가 열렸다. 장위와인이 전체 평가에서는 2위를, 가격 대비 맛과 향에서는 1위를 차지했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2003년부터 국가 행사 때 장위와인을 사용하고 있다.
“와인 만들라” 서태후가 은화 300만 냥 하사
남양(南洋) 중국인 중 최고 부자로 손꼽히며 ‘동양의 록펠러’로 불린 장비스(張弼士·1841~1916). 그가 1892년 산둥성 옌타이에 자신의 성을 딴 ‘장위양주공사(張裕釀酒公司)’를 세울 때 목표는 분명했다. ‘가장 뛰어난 포도주를 생산해 나라를 빛내자.’
장비스는 2차 아편전쟁 직후 혼란기인 1858년 17살 때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로 이주했다. 그는 각국의 명주들을 수입해 파는 사업을 시작했다. 중국 포도주와는 운명적으로 만났다. 1871년 자카르타의 프랑스 영사관이 개최한 파티에서 처음 마셔본 프랑스 포도주는 그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파티에서 프랑스 영사는 중국 대륙의 옌타이에 가면 산 전체에 야생포도가 지천이고, 이 포도로 만든 포도주의 맛이 특별나다고 했다. 장비사는 이 말을 마음속 깊이 새겨두었다.
부동산과 무역으로 부를 쌓아 말레이시아 페낭에서 38개의 방과 220개의 창문이 딸린 집에 살았지만 장비스는 조국이 그리웠다. 기회가 왔다. 1891년 장비스는 옌타이에서 철도 건설에 관한 업무를 논의할 기회가 생겼다. 그는 프랑스 영사에게 들은 말을 잊지 않고 지역을 꼼꼼히 살폈다.
옌타이는 바다에 붙어 있는데다 뒤에는 산이 있었다. 겨울에는 춥지 않았고, 여름엔 덥지 않았다. 프랑스의 대표적 포도 산지인 보르도 지역과 유사한 기후였다. 그는 이곳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생산하는 포도의 품종이 알이 크지 못해 알코올 함량이 낮았다. ‘원료는 우수한 것을 써야 한다’는 원칙으로 장비스는 해외에서 새로운 품종을 수입했다. 거금을 들여 독일로부터 40만 그루의 포도 묘목을 수입했다. 그렇지만 배가 인도양을 지날 때 포도 묘목은 고온에 견디지 못해 모두 말라 죽었다. 그 일로 인해 큰 손실을 봤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다시 자금을 조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로부터 50만 그루의 포도 묘목을 수입했다.
운도 따랐다. 서태후는 ”중국도 와인을 만들어야 한다“면서 “애국적인 실업가에게 주는 선물”이라며 은화 300만 냥(현재 가치 770억원)을 내렸다. 돈과 원료(포도)가 있었지만, 와인을 만들어 본 사람이 없었다. 영국· 오스트리아·네덜란드에서 양조기술자를 불러왔다. 거한 지하 포도주 저장고를 설치했다. 묘목을 심은지 4년이 지난 1896년 중국에서 처음으로 서양식 ‘빈티지 와인(특정 연도에 만들어 숙성시킨 와인)’이 태어났다.
장비스가 세운 장위는 120년 넘게 사랑받고 있다. 현재 중국 내 소비량의 20% 이상을 점유하며 국민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저우 총경리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인정한다. 안으로는 중국 지하수 오염 등 품질 문제에 직면해 있고 밖으로는 해외 우수한 품종의 와인과 경쟁해야 한다. 창청(長城), 왕차오(王朝) 등 메이저 현지 경쟁업체가 장위의 대표 브랜드 ‘제바이나’ 상표권 사용을 놓고 법정분쟁을 벌이며 자국산 와인의 이미지를 실추시키기도 했다.
특히 식품 안전성 문제는 중국산 음료에는 늘 따라붙는 꼬리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후 멜라민 파동으로 중국식품에 대한 안전성 논란이 일었다. 이때 “장위와인에서 발암물질인 발색제와 방부제 역할을 하는 아질산나트륨이 검출됐다”는 소문이 퍼졌다. “제조·판매 과정에서 아질산나트륨이 들어갔을 가능성이 없다”고 반박자료를 냈지만 당시 장위의 주가는 10% 이상 폭락했다.
28년 동안 장위와인에서 잔뼈굵은 베테랑
저우 총경리와 함께 호흡을 맞춰 27년 동안 장위에서 근무한 순지안 총경리 대리는 “1989~92년에는 더 상황이 안좋았다”고 회상했다. “재고가 산만큼이나 쌓여있었지만 2~3명에 불과한 영업 사원들은 사무실에만 앉아 있었다. 새로운 고객을 찾지 않고 남은 재고만 팔리기를 바랄 뿐이었다. 그 당시에는 많은 중국 기업이 그랬다.”
80년대 계획경제 당시, 장위는 중국 내 가장 오래된 브랜드 중 하나였지만 시장에서는 큰 소리를 내지 못했다. 100% 옌타이 시정부가 주식을 소유한 국유기업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장위는 진정한 의미의 기업이라기 보다는 와인을 제조해 판매하는 생산업체였다. 이후 중국 국유기업 개혁을 거치며 민영화한 장위와인은 1997년 선전 B주(현재 정부 소유 지분 7.12%)에, 2000년에 선전 A주(5.44%)에 상장했다. 이익을 좀 더 효율적으로 높이기 위해 기업의 수출·무역권도 따냈다.
저우 총경리는 2~3명이던 영업사원을 1996년 400명까지 늘리며 적극적으로 국내 고객을 찾아나섰다. 96년~99년 사이 레드 와인이 인기를 끌자 주력 제품이었던 브랜디보다 와인이 더 많이 팔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3700명의 영업사원과 6200명의 판촉 전문가가 활동한다. 매입한 국제 브랜드는 베테랑 영업사원이 맡고 있다. OEM같이 대리생산하는 외국 브랜드는 판촉 전문가들을 비롯한 마케팅팀이 담당한다. 이렇게 국내 마케팅을 강화한 결과 지난해 국내 영업이익은 44억8160만 위안(7734억원)을 기록했다. 장위와인 전체 영업이익의 96.38%가 국내에서 나온다.
중국 내 와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국제포도주기구(OIV)에 따르면 2015년 중국의 와인 소비량은 전년대비 3% 증가한 1600만 헥토리터(와인을 측량하는 표준단위: 1헥토리터=100ℓ)로 세계 5위를 차지했다. 와인 수입량은 전년대비 44% 급증한 550만 헥토리터에 이른다. 중국양주협회 포도주분회 비서장 왕쭈밍(王祖明)은 “고급 와인이 위축되고 중저가의 대중적 와인이 기반을 넓히고 있다”면서 “동부 연안 주요 도시에서 와인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 내 경쟁도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이 와인업계의 큰손으로 떠올랐다. 그는 1200만 유로(154억원)을 들여 프랑스 블라이 꼬뜨 드 부르 지역의 유명 와이너리 샤또 페렌(Chateau Perenne)과 샤또 게리(Chateau Guerry)를 인수했다. 프랑스 명품 그룹인 루이뷔통 모에헤네시(LVMH)도 중국 남서부 윈난성에 29만9470㎡, 북부 닝샤 자치구에 65만9640㎡의 포도원을 세워 급성장하는 중국 와인 산업에 뛰어들었다.
“마윈 회장까지 와인 시장에 뛰어들었다는 게 처음엔 충격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경쟁은 끊임없는 품질 혁신을 가져오는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라고 저우 총경리는 낙관했다. 장위 제품 90%는 내수 판매로 이뤄진다. 해외 진출에 적극적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장위는 지난해 12월 스페인의 5대 와인 생산업체 마르케스 델 아트리오(Marqu’s del Atrio)의 주식 75%를 인수했다. 올해 3월부터 스페인에서 판매하는 와인은 카베르네 게르니쉬트(장위가 개발한 중국 품종)와 카베르네 쇼비뇽(프랑스 원산지의 포도 품종)을 섞은 제품이다. 저우 총경리는 “앞으로 해외 비중을 30%로 끌어 올릴 것”이라는 포부를 드러냈다.
21도 ‘연태 고량주’로 한국시장 노려
장위와인의 부총경리 장융성은 조만간 소주와 비슷한 21도 연태고량주를 한국 시장에 선보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 30명이 넘는 한국 판매상들을 만나 시음회를 열었다. 한국식으로 맥주를 섞는 폭탄주 등 다양한 방법을 실험해봤다. 반응은 좋았다.”
장위와인은 2012년부터 옌타이 외곽에 ‘와인 시티’를 건설하고 있다. 오크통 모양을 본 딴 건물의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400만㎡ 땅에 포도농장과 와인 생산·유통 시설, 와인 테마파크까지 들어선다. 공정이 기계화되면 매일 출고할 수 있는 와인은 420만 병에 이른다.
옌타이시청언론홍보실 주임 왕홍청은 “옌타이는 OIV가 정한 아시아 유일의 국제 포도주 도시”라며 장위와인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아 성장한 기업이지만 지금은 1차 산업(농수축산업), 2차 산업(제조업), 3차 산업(서비스·문화·관광업 등)을 연계해 오히려 지방 경제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됐다”
- 옌타이(중국)=임채연 기자 yamfler@joongang.co.kr·사진 최승식 기자
[박스기사] 국빈들이 즐긴 명품 ‘장위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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