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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채식주의자'의 ‘카니발리제이션’

[문학으로 읽는 경제원리] '채식주의자'의 ‘카니발리제이션’

‘잘 먹고 잘 사는법’. 이만큼 현대인의 소비욕망을 잘 응축한 문장이 있을까. 맛집 정보가 넘쳐난다. 어딜 가면 더 맛난 것을 먹을까, 무엇을 먹으면 몸에 좋을까. 저마다 스마트폰을 켜고 ‘맛집’이란 단어를 쳐본다. 덜 맛난 곳이면 패배자라도 되는 마냥 경쟁하듯 식탐의 세계로 뛰어든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는 그런 식탐을 버린, 그래서 식물이 되고 싶어했던 한 여인, 영혜의 이야기다. [채식주의자]는 3명의 시각을 담는다. 1부 ‘채식주의자’는 영예 남편의 시각이다. ‘나’는 조그만 회사의 과장이다. 결혼 5년차, 아주 평범했던 아내 영혜가 변했다. 끔직한 꿈 때문에 앞으로는 육식을 하지 않겠단다. 나는 처가에 도움을 요청한다. 처형 인혜의 집들이. 가족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장인은 아내의 입에 강제로 고기를 쑤셔 넣으려 하지만 아내는 완강히 저항한다. 마침내 아내는 자신의 팔목을 칼로 긋는다.
 파격적 작품 만들면 가정이 깨질지도…
2부 ‘몽고반점’은 영혜의 형부이자 인혜의 남편의 시각이다. ‘나’는 비디오아티스트다. 처제가 손목에 칼을 그은 지 2년이 지났다. 그녀는 이제 이혼했다. 나는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들었다. 불현듯 남녀의 몸에 꽃그림을 그리고, 두 사람이 교합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는다. 처제는 기꺼이 나의 작품활동에 응하지만 아내에게 그 장면을 들킨다.

영혜는 왜 육식을 거부하게 됐을까. 하나는 개 잡는 날의 모습. 또 하나는 아버지의 손찌검. 유년시절 그녀의 뇌리에 잠재적으로 숨어들었던 두 폭력적인 모습은 꿈을 계기로 되살아나 그녀의 식탐을 앗아간다. 이런 영혜에 대해 예술가인 형부는 관심을 갖는다. 작품활동에 흥미를 잃어버려 1년 간이나 마땅한 작품을 내지 못하던 그는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다는 얘기에 예술적 영감이 되살아난다. 문제는 그 영감이 너무 파격적이라는 점이다. 처제의 알몸에 그림을 그리고, 처제가 누군가와 섹스를 나눠야 한다는 구상은 이 시대 도덕적 용량을 한참 뛰어넘는다. 그는 고민에 빠진다. 백 번 양보해 촬영을 해내더라도 과연 그것을 전시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자신이 음란물을 제작한 자로 낙인찍힐 수 있다는 생각은 해보지도 못한 사람이다. 잘못하면 자신의 선택으로 인해 모든 것을, 가정마저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감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삶은 나쁘지 않다. 아내는 인내심이 많고, 자신에 헌신적이다. 대학가에서 화장품 가게를 하며 많은 돈을 벌어준 덕에 자신이 가정경제를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 육아도 아내 몫이다. 새 작품을 위해서는 이 같은 자신의 보장된 세계를 깨야 한다. 제살의 일부가 떨어져 나갈 수도 있지만, 자칫하면 다 깎여 나갈 수도 있다. 심장 떨리는 ‘제살깎기’다.

시장에서도 ‘제살깎기’를 의미하는 용어가 있다. 카니발리제이션(cannibalization)이다. 카니발리제이션이란 식인종들이 자신의 식구를 잡아먹는 카니발리즘(cannibalism)에서 비롯된 용어다. 시장에서는 ‘자기 잠식’ 또는 ‘자기 시장 잠식’이라는 의미로 쓰인다.

시장 지배적인 기업이 낸 신제품이 기존 자사 주력 제품의 시장을 잠식할 경우가 있다. 코카콜라가 다이어트 콜라를 내면 기존 콜라시장이 축소된다. 전기차를 생산하면 기존 휘발류 차량 시장이 축소된다. 시장지배적 기업들은 ‘카니발리제이션’을 우려해 신제품 출시를 미루는 경향이 있다. 힘들게 기존 시장을 장악했는데 자신이 나서서 그 판을 깰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존 시장이 ‘현금’이라면 새 시장은 ‘어음’이다. 새 시장에 진출한다고 지금처럼 시장을 장악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2009년 애플이 북미시장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람을 일으켰지만 삼성전자 등 국내 휴대폰 회사들은 스마트폰 출시를 미뤘다. 당시 국내 휴대폰 회사들은 2G시장에서 점유율 1, 2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들마저 스마트폰을 만들 경우 2G시장이 붕괴되고 재빨리 3G로 재편될 우려가 있었다.
 온라인 카니발리제이션은 중소기업의 경계 대상
온라인 시장 확대도 소상공인들에게는 ‘카니발리제이션’이 될 수 있다. 모바일과 홈쇼핑, 온라인쇼핑 확대는 소상공인의 가게와 길거리 상권을 위축시킬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경기개발연구원에 따르면 모바일쇼핑은 전통시장 이용을 30%나 축소시킨다. 소상공인들이 중소기업 홈쇼핑, 소셜커머스 등에 적극적으로 진출한다고 해도 수익이 늘어날 것이라 자신하기 어렵다. 기존 고객을 대치하는 효과가 큰데다 수수료와 광고비, 늘어난 대금회수 기간 등이 부담스럽다. 중소기업연구원은 지난해 이 같은 ‘온라인 카니발리제이션’을 중소기업이 경계해야 할 5대 이슈 중 하나로 꼽았다.

카니발리제이션은 같은 시장에 혁신적인 상품이 출시될 때 곧잘 벌어진다. 보완재가 아닌 대체재여서 그렇다. 카니발리제이션이 현 시장지배적 기업에게는 부담스럽기는 하지만, 무시할 수도 없다. 시대적 흐름이기 때문이다. ‘필름거인’ 코닥은 디지털 카메라를 가장 먼저 개발했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확산되면 필름시장이 위축될 것을 우려해 투자를 기피했다. 그 사이 후지필름 등 후발주자와 삼성전자 등 신흥 가전제품 기업들이 디지털 카메라 시장을 급격히 잠식하면서 120년 전통의 코닥은 결국 시장에서 퇴출됐다.

고민하던 그는 결국 금기를 넘기로 했다. 자신의 평온한 삶이 깎여져 나가겠지만, 멈추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 것이다. 세상의 모든 전시와 영화, 공연이 시시하게 느껴지고, 그것이 아니면 어떤 작업도 하고 싶지 않은 상태였다. 그는 생각했을 것이다. 도덕적 리스크는 크지만, 극복만 된다면 레벨이 다른 예술가로 위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것을.

3부 ‘나무불꽃’은 영혜의 언니, 인혜의 눈이다. 인혜는 대학가 주변에서 화장품점을 한다. 또 다시 2년쯤 지났다. 남편은 사라졌고, 동생 영혜는 정신병원에 감금됐다. 모든 것이 엉망이 됐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영혜에게 강제로 음식을 주입하려 하지만 실패한다. 영혜는 스스로 식물이 되어간다고 믿는다. 하지만 죽어가는 건지 알 수 없다. 아니면 미친 건지도. 인혜는 남편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접었다. 동시에 그녀의 삶도 반토막이 났다. 인혜는 남편이 시도한 ‘카니발리제이션’의 최대 피해자가 됐다.

영국인들은 이 기묘한 작품에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수여했다. 아시아인으로서는 처음이다. 맨부커상은 노벨문학상, 프랑스 콩쿠르문학상과 함께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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