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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출’ 없이도 고객 눈길 사로잡는다

‘노출’ 없이도 고객 눈길 사로잡는다

무슬림 여성들에게 부르키니는 자유와 해방을 의미하기도 한다.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리니 시원한 수영장 생각이 간절하다. 수영장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요즘 부르키니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부르키니는 부르카(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이슬람 여성의 전통 의복)와 비키니(1946년 파리 몰리토르 수영장에서 처음 선보인 투피스 수영복)의 합성어다.

부르키니는 비키니처럼 여성을 위한 투피스 수영복이다. 하지만 처음 나왔을 당시 맨살을 너무 많이 드러낸다는 이유로 비난을 샀던 비키니와 대조적으로 부르키니는 긴 소매 윗도리와 긴 바지로 손발과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감싼다(부르키니를 입을 때 수녀의 머릿수건처럼 생긴 두건을 함께 쓸 수도 있다).

비키니와 부르키니의 신체 노출 정도는 판이하지만 양쪽 다 여성 스스로 수영장이나 해변에서 자신의 몸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지 결정하도록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비록 시차는 있지만 두 수영복 다 처음 소개됐을 때 분노와 조롱, 국제적 착용 금지 등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부르키니는 비키니가 그랬듯이 여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무슬림뿐 아니라 다른 종교를 가진 여성들도 관심을 보인다. 단순히 햇볕에 타거나 지나가는 남자들이 힐끔거리는 게 싫어서 부르키니를 찾는 여성도 있다.

올해 2가지 색상(푸른색과 검정색)의 부르키니를 출시한 영국의 패션 브랜드 ‘막스 앤 스펜서(M&S)’는 상품이 품절됐다고 뉴스위크에 말했다. “영국에서 부르키니를 내놓은 건 이번이 처음인데 매진됐다”고 에밀리 디먹 대변인이 말했다. “현재 M&S는 중동, 중국, 홍콩을 비롯해 여러 나라(지점을 갖고 있는 58개국 중 대다수)에서 부르키니를 판매한다.”

하지만 부르키니의 인기가 상승해도 반대 의견을 잠재우진 못한다. 개인의 자유 침해부터 사회적 무책임, 위생상의 우려까지 이유가 다양하다. 지난 7월 초 오스트리아 하인펠트 시는 공공수영장에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 하인펠트 시의원이자 이민과 무슬림에 반대하는 오스트리아 자유당 당원인 페터 테르제는 이 금지 조치에 ‘전적으로 동의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부르키니는 허용 가능한 수영복의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며 ‘비위생적’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6월에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노이트라우블링에서도 위생상의 이유로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했다. ‘일반 수영복을 입어야만 공공수영장 이용이 가능하다’는 안내문까지 세웠다.

이 두 도시의 시장들은 다른 수영객의 불만과 부르키니가 수영장 물을 오염시킬 위험성을 들어 이 금지 조치를 옹호했다. 노이트라우블링의 하인츠 카이에클레 시장(기독사회당)은 “부르키니를 왜 입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르키니는 프랑스와 이탈리아, 모로코 일부 지역에서도 금지돼 이를 어기는 사람은 수백 달러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미국 시카고의 아메리칸 이슬람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는 무슬림 샤바나 미르 교수는 부르키니의 위생을 문제 삼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말한다. 부르키니는 일반 수영복과 같은 원단으로 만들고 신체의 대부분을 가리기 때문에 (수영장) 물이나 다른 수영객들과의 접촉을 오히려 더 줄인다는 설명이다. 미르 교수는 온라인 게시글에 “비키니나 원피스 수영복은 몸을 너무 노출시켜 (무슬림) 여성에게 그런 복장을 입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고 성차별적이다”고 썼다.

부르키니는 비키니의 아픈 과거를 반복하고 있다. 비키니는 초창기에 프랑스 해변과 이탈리아, 벨기에, 스페인, 포르투갈, 호주, 미국 일부 지역에서 착용이 금지됐다. 그리고 1950년대 제1회 ‘미스 월드’ 우승자가 비키니를 입고 왕관을 썼을 때 비오 12세 교황은 ‘죄악’이라고 비난했다.

최근 프랑스 여성인권가족부 장관 로랑스 로시뇰은 M&S, 뉴욕의 DKNY, 이탈리아의 돌체&가바나 등이 부르키니와 머리에서 발끝까지 감싸는 이슬람 오트 쿠튀르를 판매한다고 비난했다. 로시뇰은 “이런 의류는 사회적으로 무책임하며 여성의 몸을 가두는 경향을 부채질한다”고 말했다.

자발적으로 몸을 가리는 여성도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로시뇰 장관은 “물론 선택하는 건 여성 자신”이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녀는 부르키니를 입은 무슬림 여성을 ‘노예제도를 지지한 미국 검둥이(negro)’에 비유했다. 로시뇰 장관의 발언은 일련의 시위를 촉발했다. 시위대는 그녀의 사임을 요구했고 글로벌 인터넷 청원 운동 사이트 Change.org에서는 공개적인 문책을 요구하는 서명운동이 벌어졌다. 로시뇰 장관은 나중에 ‘검둥이’라는 말을 사용한 데 대해 사과했지만 입장을 바꾸지는 않았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이 같은 정치적 발언이 큰 효과를 낼 가능성은 희박하다. 요즘 이슬람 패션은 오트 쿠튀르 업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틈새시장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적 정보 제공회사 톰슨 로이터스와 조사업체 다이나스탠다드에 따르면 무슬림이 옷과 신발에 지출하는 비용은 2013~2019년 82% 증가해 48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미르 교수는 부르키니를 입지 않지만(그녀는 여성용 서핑복에 가까운 복장을 선호한다)는 ‘부르키니를 입는 무슬림이 수녀복을 입는 수녀나 하이힐을 신는 여성들과는 다르다’는 생각에 이의를 제기한다. 자신의 의지에 반해 이슬람 복장을 강요당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부르키니를 입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선택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부르키니는 여성들 사이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종교를 떠나 단순히 햇볕에 타거나 지나가는 남자들이 힐끔거리는 게 싫어서 부르키니를 찾는 여성도 있다.
“난 이 불편한 옷을 입고 직장에 가야 하지만 그게 미국 문화”라고 미르는 말했다. 그녀는 성장기에 부르카를 입었지만 지금은 다른 많은 미국인과 마찬가지로 비즈니스 정장을 입고 출근한다고 설명했다. “하이힐을 신는 사람은 불편하고 고통스럽고 값이 비싸지만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것을 선택한다. 하이힐은 억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그래도 그것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류학자인 나는 이 현상이 ‘인간은 누구나 제한을 받는 동시에 자유롭다’는 사실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부르키니가 여성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말한다면 ‘자유는 다른 무엇보다 먼저 선택’이라는 사실을 잊은 것이다.”

부르키니가 과연 ‘자유의 상실’을 상징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뉴스위크는 그 답을 얻으려고 부르키니를 만든 아헤다 자네티(48)를 인터뷰했다. 레바논 출신의 무슬림인 그녀는 현재 호주 시드니 근처의 뱅크스타운에 산다. 그녀는 열한 살짜리 여자 조카가 운동할 때 긴 히잡이나 머릿수건을 쓰고 불편해 하는 걸 보고 부르키니 디자인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애는 그 거추장스런 복장을 입고 운동하느라 얼굴이 토마토처럼 벌겋게 달아올랐다”고 그녀는 돌이켰다.

자네티는 인터넷에서 무슬림 수영복과 운동복을 검색해 봤지만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자라던 시절 수영이나 다른 운동을 한 적이 없었다. 원치 않아서가 아니라 적당한 옷이 없어서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그래서 우리는 여름을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호주의 자연과 기후에 안성맞춤인 스포츠 중심의 생활방식을 누리지 못했다.”

자네티는 12년 전 부르키니 회사 ‘아히다 부르키니 스윔웨어’를 창업했다. “부르키니는 대성공이었다. 곧바로 주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그녀는 돌이켰다. “반응이 정말 대단했다.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요즘 우리는 전 세계에 부르키니를 판매한다. 어디선가 부르키니 착용을 금지하면 내겐 더 좋은 일이다. 사람들이 부르키니를 더 사기 때문이다.”

결혼해 3자녀를 둔 자네티는 자신과 10대인 두 딸이 모두 부르키니를 입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신의 고객 중 35~45%는 무슬림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자외선을 피하고 몸을 더 가리고 싶어 하는 많은 여성이 부르키니를 찾는다”고 그녀는 말했다. “모든 사람이 몸을 드러내는 걸 좋아하진 않는다. 무슬림은 편안하고 신축성 있는 옷을 입는 게 익숙하지 않다. 요즘은 수영과 마라톤 등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무슬림 여성이 늘고 있는데 그들은 예전보다 자신감이 훨씬 더 커졌다.”

하지만 그녀를 원망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탈리아 남자가 내게 편지를 보내 ‘난 비키니 입은 여자들을 보는 걸 즐기는데 대체 왜 이런 짓을 하는 거냐?’고 따졌다. 그래서 난 이렇게 답장을 보냈다. ‘상상력을 발휘하세요!’”

- 레아 맥그래스 굿맨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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