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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

7월 15일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주식회사가 뉴욕과 일본에서 동시 상장했다. 2016년 이뤄진 IT 기업 상장 중 최대 규모다. 네이버라는 검색툴로 인터넷 시대의 혁신가로 선 이해진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모바일 시대에서도 혁신을 이뤄낸 창업가로 인정받았다. 네이버의 창업부터 라인 상장까지 이 의장이 보여준 혁신가의 모습을 살펴봤다.
지난 7월 15일 강원도 춘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해진 의장은 ‘라인 상장’ 이후를 묻는 질문에 “우리가 지원하는 스타트업에 더 큰 투자를 할 것이고, 해외에 도전할 수 있도록 만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라인 상장 비결에 대해서는 “열심히 절박하게 노력했다”고 강조했다.
지난 7월 14일 오전 10시,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네이버의 자회사 라인(LINE)의 상장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종을 울린 사람은 신중호 라인 최고글로벌책임자(CGO)였다. 한국을 대표하는 ICT 기업이 메신저서비스로 글로벌 시장에서 처음 성공했음을 알리는 축포였다.

잠도 못 이룬 채 방송을 통해 이 장면을 지켜보던 이해진(49) 네이버 이사회 의장은 신 CGO에게 “울지 말라”는 축하의 메시지를 보냈다. 1999년 네이버컴(현 네이버) 창업 후 해외 진출을 꿈꿔왔던 이 의장이 마침내 17년 만에 목표를 이룬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뉴욕과 도쿄 동시 상장으로 라인은 1조5000억원을 조달했다. 2016년 전세계 IT 기업의 IPO 중에서 최대 규모라는 점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또한 한국의 IT 기업 중 뉴욕과 도쿄 증시에서 자회사를 동시 상장 시킨 최초의 사례이기도 하다
 라인 상장으로 1조2000억원 가치 재산가로
라인의 상장으로 이 의장의 재산 가치도 급상승했다. 그는 라인 주식 557만2000주, 네이버 지분 4.64%, NHN 엔터테인먼트 지분 0.78%를 보유하고 있다. 2016년 5월 포브스가 발표한 ‘한국의 50대 부자’에서 이 의장의 순위는 39위(9억3500만 달러, 한화로 1조300억원 정도)에 머물렀다. 하지만 라인 상장 이후 재산 가치가 급상승하면서 8월 14일 포브스는 이 의장의 재산 가치를 11억 2000만 달러(약 1조2370억원)로 추산했다. 올해 한국의 50대 부자 30위를 차지한 이호진 전 태광그룹 회장과 비슷한 수준으로 상승했다.

라인 상장은 인터넷 시대의 혁신가로 인정받던 이 의장이 모바일 시대에서도 혁신의 기치를 이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다. 모바일 시대에 살아남는 것이 어렵다고 말해 온 그이기에 더 의미 깊었을 것이다. 그는 2014년 11월 임원 워크숍에서 “모바일 분야에서 네이버는 아무것도 아니다. 없어질 수도 있다”면서 “네이버가 PC에서 1등이 됐지만, 모바일에서 꼴찌부터 올라가는 싸움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이제는 모바일 혁신을 이뤄야 할 때라고 임직원들에게 상기시킨 것이다.

이 의장이 내놓은 모바일 혁신의 대표 주자가 바로 라인 메신저다. 라인의 시작은 2006년 ‘첫눈’ M&A가 시초다. 첫눈의 핵심 개발자가 바로 신중호 현 CGO다. 글로벌 패권을 쥐고 있는 구글이 함께 하자는 제안을 뿌리치고 네이버에 합류한 인물이다. 이 의장의 꿈인 ‘글로벌 진출’을 함께 하기 위해서였다.

신 CGO는 네이버 검색센터장을 맡으며 해외진출을 준비했고, 첫눈 개발자들과 함께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온갖 실패를 경험한 후 라인으로 성공을 거두게 됐다. 2013년 11월 열린 라인 가입자 3억 명 돌파 간담회에서 이 의장은 “한국에서 다툴 것이 아니라 해외에 나가서 승부를 보려고 ‘첫눈’을 인수했다”면서 “지난 6년(2013년 당시) 정도 계속해서 일본에서 열심히 했다. 나는 매달 (한국과 일본을) 왔다갔다 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라인 메신저 19개 언어로 230개 나라에서 사용
2000년 네이버컴 창업자 이해진(왼쪽)은 1998년 김범수(오른쪽) 의장이 창업한 한게임과 합병해 NHN으로 거듭났다. 당시 이 의장은 ‘검색으로 미래를 삼고, 게임으로 현재를 버틴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라인의 성공은 수많은 실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글로벌 진출 시도는 네이버를 창업하고 1년 후부터 바로 시작됐다. 2000년 11월 자본금 1억 엔으로 네이버재팬을 설립한 것이 시작이다. 2001년 4월 네이버재팬 사이트를 오픈했다. 하지만 일본의 벽은 높았다. 2005년 1월 검색 서비스를 중단했고, 그해 8월에는 네이버재팬 사이트도 폐쇄했다.

새로운 도전을 위해 시도한 것이 ‘첫눈’ 인수였다. 2006년 당시 인수비용이 350억원이나 됐다. 2007년 11월 네이버재팬을 다시 설립했고, 2008년 신중호 CGO와 핵심 개발자들을 일본으로 내보냈다. 2010년 4월에는 일본에서 블로그 서비스를 하던 라이브도어를 인수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했다. 2013년 11월 이 의장은 간담회에서 “계란으로 바위치기 하는 심정이었다. 인터넷 서비스로 다른 나라에서 자리잡기가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이 의장의 해외 도전의 결과물인 라인 메신저는 2011년 3월 일본을 강타한 동일본 대지진 때문에 탄생하게 됐다. 대지진 상황에서 전화는 무용지물이었지만 인터넷 기반의 SNS는 무리없이 작동한 것을 눈여겨봤다. 또한 일본 유저들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보다 가까운 사람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을 선호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 일본 사회 변화의 흐름을 낚아챈 그가 불과 1.5개월 동안 신속하게 준비해 라인 메신저를 출시한 것이다.

라인 메신저 론칭 후 4개월 뒤에 추가된 스티커(이모티콘) 서비스는 라인의 대박 신화를 만들어낸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라인 스티커는 매달 2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효자 상품이다. 라인 스티커가 이렇게 인기를 끈 것은 브라운, 코니, 샐리 같은 귀엽고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힘이다. 네이버는 라인프렌즈(LINE FRIENDS)라는 이름의 캐릭터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 중이다.

라인프렌즈는 2013년 10월 명동에 팝업 스토어 형식으로 첫 선을 보인 후 2014년 4월 정규매장을 오픈했다. 라인프렌즈 스토어의 인기에 힘입어 2015년 3월 캐릭터 사업 부분을 분사해 라인프렌즈 별도 법인을 설립했다. 2016년 7월 현재 라인프렌즈 스토어는 2개의 팝업 매장(홍콩, 중국 상하이)과 21개의 정규 매장(한국 12개, 대만 2개, 일본 3개, 중국 3개, 홍콩 1개)을 운영 중이다.

라인 메신저는 라인 게임(2012년 7월), 라인 만화(2013년 4월), 정액제 배송 서비스 라인 배송(2014년 7월), 라인 페이(2014년 12월), 라인 택시(2015년 1월), 생방송 플랫폼 라인 라이브(2015년 12월) 같은 서비스를 계속 추가하고 있다.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라인 메신저는 현재 19개 언어를 지원하고 있고, 230여 개 나라에서 사용되고 있다. 하루 평균 주고받는 메시지만 170억 건, 스티커의 경우 24억 건이나 된다. 네이버 관계자는 “라인 메신저가 가장 사랑을 받는 국가는 대만으로 메신저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일본과 태국, 인도네시아에서도 라인 메신저의 인기가 높다. 글로벌 MAU(월별 활동 이용자, Monthly Active Users)도 2014년 9월 1억7000만 명이었고, 2016년 6월에는 2억2000만 명으로 늘어났다

이 의장은 라인에서 그치지 않고, ‘제2의 라인’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다. 7월 15일 강원도 춘천 네이버 데이터센터 ‘각’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캠프모바일 스노우나 브이라든지 다음 라인을 꿈꿀 수 있는 사업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면서 “늘 국내 사업보다 해외 사업에 우선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시대 열었던 86학번 창업가들 대표주자
7월 14일(현지시간)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상장을 앞두고 라인 캐릭터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라인의 상장이 가능했던 것은 네이버 창업 이후 인터넷 시대부터 모바일 시대까지 혁신을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의장의 성공 스토리는 인터넷 시대를 미리 내다보며 집중했던 국산 검색 엔진 개발로부터 시작됐다.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 인터넷이 갑자기 확 컸다면 지금은 모바일이란 시기가 왔다.” 2013년 11월, 라인 가입자 3억 명을 돌파했을 때, 이해진 의장이 12년 만에 기자들 앞에 나서면서 했던 이야기다. 그의 말대로 이해진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인터넷 시대를 열었던 대표적 창업자다. 이 의장을 포함해 IT 업계를 대표하는 창업가들은 대부분 86년에 대학에 입학한 86학번들이다. 김범수 카카오 의장, 넥슨 창업자 김정주, ‘리니지의 아버지’로 불리는 송재경 엑스엘게임즈 대표, 다음커뮤니케이션 창업자 이재웅, 곰플레이어로 유명한 그래텍 창업자 배인식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해진 의장과 김정주 넥슨 창업자, 송재경 대표는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고, 김범수 의장은 서울대 산업공학과, 이재웅 창업자는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출신이다. 배인식 창업자는 국민대 금속공학과 출신이다. 메디슨 창업자인 이민화 교수(카이스트)는 『한국벤처산업발전사』라는 책에서 이들을 ‘벤처 3세대’로 구분했다. 이들의 특징은 코스닥 시장의 활성화와 1997년 제정된 벤처기업 특별법 등으로 창업 인프라가 갖춰지던 시대에 창업을 했다는 것. 86학번 창업자들은 ‘20세기 마지막 창업열차에 오른 신예그룹’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이 의장을 포함한 86학번의 무기는 PC와 인터넷이었다. PC의 대중화는 1980년대 초반부터 시작됐다. 1981년 컴덱스에서 IBM PC가 처음 발표됐고 한국에서는 1984년 삼보컴퓨터를 통해 XT가 보급되기 시작했다. 당시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전산실은 유닉스 체제의 컴퓨터가 놓여 있었다. PC는 당시 장난감으로 취급받던 때였다. 1980년대 후반부터 PC 사양이 좋아지면서 PC가 유닉스와 경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P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의 부족은 컴퓨터에 미친 젊은이들이 해결했다. 대학가에 컴퓨터 동아리가 만들어지기 시작했고, 대학 동아리에서 글 1.0, 바른글이라는 워드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정부도 나섰다. 1987년 당시 오명 체신부 차관이 유니코사라는 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에 가입한 대학 동아리에 컴퓨터와 모뎀, 프린터를 설치해주기도 했다. 86학번들은 PC를 무기로 삼았다. 이들은 선배들처럼 해외 유학이 아닌 창업이나 취업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의장은 컴퓨터공학과 학사를 마친 후 카이스트 전산학 석사 과정에 입학했다. 1992년 석사 과정을 마치고 삼성SDS에 입사했다. 김범수 의장도 삼성SDS에 입사했다. 비슷한 시기에 삼성SDS에서 근무를 했던 그래텍 창업자 배인식 씨는 “당시 삼성SDS에서도 인터넷이나 인터넷 비즈니스에 대해서 잘 모르던 시절”이라며 “PC를 잘 다루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던 시기였다”고 설명했다.
 2002년 출시한 ‘지식iN’ 검색 강자로 올라서
이 의장은 1994년 삼성SDS에서 ‘한계도전 프로그램’이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했고, 국산형 검색 엔진 개발에 뛰어들었다. 1997년부터 삼성SDS에서 사내벤처 소사장으로 일하면서 검색 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삼성은 IT 업계의 거물이 나오는 통로 역할을 했다. 1999년 6월 네이버컴(현 네이버)을 창업했고 네이버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 의장은 인터넷 시대를 대비해 일을 스스로 찾아서 했다. 이 의장의 대학 후배인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 이창건 교수는 “이해진 의장을 포함해 86학번 창업가들은 인터넷 시대의 가능성을 보고 창업했고,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를 ‘준비된 창업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2000년에는 네이버컴과 한게임(1998년 김범수 의장이 창업)과 합병해 NHN(2001년 9월 사명 변경)으로 거듭났다. 당시 이 의장은 ‘검색으로 미래를 삼고, 게임으로 현재를 버틴다’는 전략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네이버가 등장했던 때, 한국의 검색 시장은 다음과 야후 같은 서비스가 지배하고 있었다. 2013년 기자간담회에서 이 의장은 한게임과의 합병에 대해서 이야기한 바 있다. 이 의장은 “김범수 사장이란 탁월한 경영자가 있었고, 한게임이 더 먼저 매출을 내면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나와 공동 CEO를 하다가 (김범수 사장이) 단독 CEO가 됐다”면서 “그 당시 네이버가 훨씬 어려운 상황이었다. 나는 네이버 서비스 부문장으로 가서 서비스를 개선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 의장은 한국 시장에서 네이버를 검색시장의 강자로 만드는 데 집중했다. 2002년 10월 론칭한 대화형 검색서비스 ‘지식iN’은 후발주자 네이버를 검색 시장의 강자로 만든 효자 서비스였다. 네티즌의 지식을 검색에 이용한 혁신적인 방법이다. 이후 검색광고 출시, 카페, 블로그, 이메일 등의 서비스를 연이어 출시하면서 후발주자의 약점을 이겨내고 한국의 검색시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네이버는 웹 시장에서 강자였지만, 네이버를 둘러싼 경영환경은 모바일로 급격하게 변했다. 지난 3월 제일기획이 발표한 ‘2015년 국내 총 광고비 내역’을 살펴보면 2014년 8391억원이었던 모바일 광고시장 규모는 1년 만에 1조2800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이에 비해 2014년 1조8670억원이었던 PC(웹 광고) 광고 시장은 지난해 1조7216억원으로 감소했다. 이 의장이 모바일 시장에 대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이유다.

네이버가 모바일 시장에서 강자가 아님을 보여준 것은 국민 메신저 카카오의 등장이다. 한때 동지였던 김범수 의장이 2010년에 출시한 카카오톡은 네이버의 한계를 보여줬다. 모바일 시대의 혁신은 숱한 실패 끝에 나온 라인을 통해 이뤄졌다.

지난해 9월 포브스는 ‘세계 100대 혁신기업’을 발표하면서 네이버를 21위에 올렸다. 한국 기업 중에서 최고 순위다. 창업 후 웹 중심의 인터넷 시대에서 모바일 시대까지 혁신을 이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 최영진 기자 cyj73@joongang.co.kr·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박스기사] 제2의 라인을 찾아라!


네이버는 글로벌 시장에서 라인의 성공을 이을 ‘제2의 라인’ 서비스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적인 서비스로 SNOW(Snap Now), 브이 라이브(V LIVE), 라인 웹툰(LINE WEBTOON)이 꼽힌다.




스노우(SNOW)


캠프모바일이 2015년 9월 시험적으로 선보인 서비스다. 아시아 시장을 공략해보자는 게릴라 성격의 프로젝트였지만, 글로벌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 서비스로 부상했다. 스노우는 ‘일상을 보다 생생하고 재미있게 공유한다’는 컨셉트 아래 동영상을 활용한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기능을 지원한다.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별다른 홍보없이 빠르게 성장한 서비스로 꼽힌다. 8월 초 6000만 다운로드를 돌파했다. 일본 앱스토어 무료앱 순위에서 75일간 1위를 지키는 이례적인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한국과 대만, 홍콩 등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하고 있다. 스냅챗이 상륙하지 못한 중국에서도 빠르게 인기를 얻고 있다. 주요 기능으로는 동영상과 GIF(움짤) 이미지를 이용한 채팅과 24시간 내 메시지 자기 파괴 기능, 아시아권 사용자의 취향에 맞게 300종 이상의 다양한 스티커와 필터를 제공하고 있다.

브이 라이브(V LIVE)


라인의 성공을 이어가는 글로벌 서비스다. 스타의 일상부터 콘서트, 웹예능, 토크쇼 등 다양한 방송을 언제 어디서나 감상할 수 있는 글로벌 동영상 라이브 서비스다. 브이 라이브에서 볼 수 있는 콘텐트는 쇼케이스, 콘서트 같은 대규모 이벤트를 중심으로 이뤄지는 ‘스페셜 라이브(Special Live)’, 요리, 뷰티, 교육, 상담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스타가 만들어가는 콘텐트 ‘앱 라이브(App Live)’, 예고 없이 스타의 진짜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스팟 라이브(Spot Live)’다. 팬들은 스타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적극적으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스타들도 직접 팬들에게 질문을 받거나 실시간으로 팬들의 반응을 확인하며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 EXO, 빅뱅, BTS, 싸이, 소녀시대 등 인기가수와 이종석, 이준기, 주원, 박보영 등의 한류 배우들까지 다양한 분야의 스타 전용 채널이 마련되어 있다.

라인 웹툰


2014년 7월 시작한 라인 웹툰은 네이버 웹툰의 글로벌 서비스 브랜드다. 출시 당시 영어와 중국어로 제공됐고, 현재는 태국어와 인도네이시아어도 추가됐다. 2015년 2월에는 라인 웹툰이 제공하는 언어권 이외 지역의 독자를 위해 ‘참여 번역’을 오픈했다. 2016년 3월 현재 제공 중인 작품 수(완결 포함)는 영어 134개, 중국어 92개, 대만어 140개, 태국어 72개, 인도네시아어 60개다. 현지 작가들이 연재 중인 작품 수도 영어 58개, 중국어 및 대만어 54개, 태국어 26개, 인도네시아어 18개로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중국 광저우에서 열린 국제만화축제에는 약 5만 명이 네이버 웹툰관을 방문했다. 중국에서의 인기를 입증하듯 ‘기기괴괴(오성대)’ 중 ‘성형수’에피소드는 지난해 10월 중국 제작사와 영화 판권 계약을 체결했다. 40여 건의 작품이 2차 저작물 판권 계약이 해외 제작사 등과 체결됐거나 논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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