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서 이기면 모든 게 만사형통
축구에서 이기면 모든 게 만사형통
리우 올림픽에서의 우승이 탄핵·경제난·부패 스캔들로 점철된 브라질의 국가위기 끝낼 수 있을까 1994년 브라질의 상황은 너무도 암울했다. 뭔가 신나는 일이 절실했다. 그전 몇 년 동안 대통령이 부패로 탄핵됐고, 인플레이션이 2500%를 넘어섰으며, 교도소와 교회 바깥에선 무고한 사람들이 집단으로 끔찍하게 학살됐다. 국민 사이에서 ‘브라질은 무엇 하나 제대로 할 수 없는 나라’라는 좌절감이 팽배했다. 그러다가 6월이 다가왔다. 그 달에 브라질엔 전혀 관계 없어 보이던 두 가지 큰 일이 예정돼 있었다. 새로운 통화 도입과 월드컵 축구대회였다. 그것들 역시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운명으로 느껴졌다.
축구 강국을 자부하던 브라질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펠레의 주도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한 뒤로 24년 동안이나 월드컵을 차지하지 못했다. 브라질 대표팀의 전적이 너무 오랫동안 저조하자 마술 같은 브라질 축구를 가리키는 ‘조구 보니투(jogo bonito,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뜻)’가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새 통화 도입도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브라질은 이전에도 경제를 ‘재설정’하기 위해 5차례나 화폐개혁을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르리라고 믿을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그해 미국에서 월드컵 토너먼트가 진행되면서 브라질은 카메룬과 러시아 같은 만만찮은 팀을 쉽게 물리치며 승승장구했다. 브라질의 정치인들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직감했다. 그때까지 무명의 사회학자로 통화 개혁 계획을 세운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는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국가적인 어려움도 어느 정도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언론인을 초대해 월드컵에서 브라질 팀을 응원하는 자신의 사진을 찍게 했다. 월드컵 본선이 시작되는 7월 1일에 맞춰 브라질에 새로 도입되는 통화 헤알에도 그 희열이 전파되기를 고대했다.
카르도수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런 나의 언행이 정치 무대에서 과장된 연기였을까? 물론 그렇다. ‘아름다운 플레이’가 마술처럼 인플레이션을 종식시켜 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분명히 새 통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그의 계산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처음엔 고전했지만 홈팀인 미국을 1-0으로 물리쳤다. 그 경기를 지켜본 군중에는 브라질과 미국을 다 조국이라고 부르며 갈등했던 펠레도 있었다. 그 다음 브라질은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격파했다. 마침내 7월 17일 열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다. 브라질은 연장전까지 0-0으로 승리를 가리지 못했지만 승부차기에서 3-2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브라질 역사의 새로운 장: 국가 자긍심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감동을 전했다. 다른 언론인은 ‘축구에서 우승하면 불행·고통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연이든 아니든 새로 도입한 통화 헤알이 의도한 대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그달의 인플레이션은 단 2%에 그쳤다. 그해 10월 카르도수는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재선에도 성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임기를 마쳤으며, 헤알은 브라질의 통화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리우 올림픽의 마지막 토요일인 지난 8월 20일 브라질의 축구와 정치가 또 다시 만났다. 누구든 1994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은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독일과 120분 동안 1-1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브라질이 올림픽 축구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수년 만에 가장 기쁜 순간을 제공했다. 그 우승으로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하면서 짓밟힌 자존감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우연이든 아니든’ 2014년 월드컵 홈그라운드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는 브라질이 장장 2년 동안의 치욕과 스캔들, 경기침체로 빠져든 시점과 일치했다.반면 이번 올림픽 축구에서 브라질의 우승은 리우 올림픽이 숱한 어려움을 딛고 그런대로 잘 치러졌다는 국민의 믿음을 굳건히 다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다른 한편으로 리우에서 살지 않거나 올림픽의 다른 종목을 좋아하지 않는 브라질인 대다수에겐 축구 우승이 무엇보다 국가의 사기를 크게 올렸다고 생각한다.
시사 논평가들은 올림픽 축구 우승을 브라질의 운명과 결부시켰다. 인기 있는 TV 시사 해설가 구가 차크라는 올림픽 축구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자 “브라질 상공에서 맴돌던 먹구름이 사라진다”며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그런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브라질을 끔찍한 불황으로 이끌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탄핵 결정으로 물러났다. 브라질 경제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조짐도 있다. 최악의 시기는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물론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는 브라질 외에도 많다. 그러나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국(5회)인 브라질이 어느 나라보다 축구에 더 집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국가적인 스포츠와 그처럼 밀착되는 것이 과연 건전할까? 혹시 냉소적인 정치인이 국민 정서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브라질의 진정한 문제점을 뒤덮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아닐까? 언론인과 선수들 모두 이 문제를 두고 오래 고민해왔다.
펠레는 회고록을 통해 1966년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브라질에 새로 들어선 군사정부로부터 ‘사회의 균열을 땜질하기 위해’ 3회 연속 우승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그해 브라질은 우승을 놓쳤지만 그 다음 월드컵이 열린 1970년 영광의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브라질의 반체제 인사들은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살해됐다(좌익 게릴라였던 호세프 전 대통령도 투옥됐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 덕분에 브라질의 군사정권은 독재에 대한 반발이 심한 국민을 국기 아래 하나로 단합시킬 수 있었다.축구와 정치의 밀착은 1950년에도 있었다. 브라질이 처음 월드컵을 개최한 해였다. 브라질 월드컵 조직위는 리우에 20만 명 수용이 가능한 세계 최대의 경기장 마라카낭을 지었다. 당시 리우 시장은 자신들이 ‘야만인’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 그처럼 경기장을 웅장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2-1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브라질의 정치인들은 축구를 이용할 기회를 잃었고 동시에 국가의 자존감마저 무너졌다.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알려진 이 경기를 두고 전설적인 작가 넬슨 로드리게스는 ‘브라질의 히로시마’라고 평했다. 월드컵 우승 실패로 원자폭탄을 맞은 것처럼 브라질인의 정서가 황폐화했다는 뜻이었다.
그 직후 브라질은 경제위기와 부패 스캔들, 사랑 받던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고통을 겪었다. 그로부터 66년 뒤인 지난 8월 20일 리우 올림픽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네이마르가 독일을 상대로 마지막 승부차기 슛을 성공시키면서 마라카낭 주경기장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또 다시 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빵을 나눠주고 서커스를 보여주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브라질 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을 수사하는 브라질 검찰의 ‘세차 작전’이 가차없이 시행될 수 있었다(그 수사가 궁극적으로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몰고왔다). 이제 국민의 그 분노의 눈초리를 정치권에서 축구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의회가 검찰의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조치를 통과시키고 기득권 세력의 일부에게 면죄부를 주기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에 오른 후임자 미셰우 테메르(호세프와 거의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다)는 지난 2년 동안의 불행과 고통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애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세계가 브라질을 재발견한다’라는 제목의 한 신문 사설에서 ‘불명예에 시달리던 우리 축구팀이 영광을 회복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앞으로 브라질이 가야 할 길을 열었다’고 치하했다.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나는 브라질이 이제 성숙한 나라로서 이번 위기의 교훈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차 작전’ 과정에서 예고된 사전 형량 조정 같은 ‘기득권 봐주기’ 문제가 대중의 분노에 다시 불을 지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국가가 겪는 고통에는 끝이 있으며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뢰와 국민 정서는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낙관한다면 실제로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긍정적 신념의 마력이다.
더구나 언론인은 늘 국가의 운명에 관한 웅장한 이야기를 찾는다. 나는 브라질이 올림픽을 전반적으로 잘 치렀고 축구에서도 우승했다는 사실이 궁극적으로 브라질 위기의 끝이 시작되는 계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우연이든 아니든 말이다.
- 브라이언 윈터
[ 필자는 아메리카스 쿼털리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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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강국을 자부하던 브라질은 1970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펠레의 주도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한 뒤로 24년 동안이나 월드컵을 차지하지 못했다. 브라질 대표팀의 전적이 너무 오랫동안 저조하자 마술 같은 브라질 축구를 가리키는 ‘조구 보니투(jogo bonito, 포르투갈어로 ‘아름다운 플레이’라는 뜻)’가 영원히 사라진 게 아닌가 우려하는 사람이 많았다. 새 통화 도입도 경제난 극복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브라질은 이전에도 경제를 ‘재설정’하기 위해 5차례나 화폐개혁을 했지만 전부 실패했다. 따라서 이번에는 다르리라고 믿을 이유가 없었다그러나 그해 미국에서 월드컵 토너먼트가 진행되면서 브라질은 카메룬과 러시아 같은 만만찮은 팀을 쉽게 물리치며 승승장구했다. 브라질의 정치인들은 절호의 기회가 왔다고 직감했다. 그때까지 무명의 사회학자로 통화 개혁 계획을 세운 페르난두 엔리케 카르도수는 브라질이 월드컵에서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국가적인 어려움도 어느 정도 극복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언론인을 초대해 월드컵에서 브라질 팀을 응원하는 자신의 사진을 찍게 했다. 월드컵 본선이 시작되는 7월 1일에 맞춰 브라질에 새로 도입되는 통화 헤알에도 그 희열이 전파되기를 고대했다.
카르도수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런 나의 언행이 정치 무대에서 과장된 연기였을까? 물론 그렇다. ‘아름다운 플레이’가 마술처럼 인플레이션을 종식시켜 주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의 분위기가 달라지면서 분명히 새 통화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그의 계산이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처음엔 고전했지만 홈팀인 미국을 1-0으로 물리쳤다. 그 경기를 지켜본 군중에는 브라질과 미국을 다 조국이라고 부르며 갈등했던 펠레도 있었다. 그 다음 브라질은 네덜란드와 스웨덴도 격파했다. 마침내 7월 17일 열린 결승전에서 이탈리아와 맞붙었다. 브라질은 연장전까지 0-0으로 승리를 가리지 못했지만 승부차기에서 3-2로 이탈리아를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브라질 전체가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다. 한 유명한 칼럼니스트는 ‘브라질 역사의 새로운 장: 국가 자긍심의 부활’이라는 제목으로 감동을 전했다. 다른 언론인은 ‘축구에서 우승하면 불행·고통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다’고 외쳤다. 우연이든 아니든 새로 도입한 통화 헤알이 의도한 대로 기능하기 시작하면서 그달의 인플레이션은 단 2%에 그쳤다. 그해 10월 카르도수는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는 재선에도 성공해 좋은 평가를 받고 임기를 마쳤으며, 헤알은 브라질의 통화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리우 올림픽의 마지막 토요일인 지난 8월 20일 브라질의 축구와 정치가 또 다시 만났다. 누구든 1994년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브라질은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 남자축구 결승전에서 독일과 120분 동안 1-1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에서 5-4로 승리했다. 브라질이 올림픽 축구에서 처음으로 금메달을 따면서 실의에 빠진 국민에게 수년 만에 가장 기쁜 순간을 제공했다. 그 우승으로 2014년 자국에서 열린 월드컵 준결승에서 독일에 1-7로 대패하면서 짓밟힌 자존감도 어느 정도 회복됐다. ‘우연이든 아니든’ 2014년 월드컵 홈그라운드에서의 굴욕적인 패배는 브라질이 장장 2년 동안의 치욕과 스캔들, 경기침체로 빠져든 시점과 일치했다.반면 이번 올림픽 축구에서 브라질의 우승은 리우 올림픽이 숱한 어려움을 딛고 그런대로 잘 치러졌다는 국민의 믿음을 굳건히 다지는 효과를 가져왔다. 다른 한편으로 리우에서 살지 않거나 올림픽의 다른 종목을 좋아하지 않는 브라질인 대다수에겐 축구 우승이 무엇보다 국가의 사기를 크게 올렸다고 생각한다.
시사 논평가들은 올림픽 축구 우승을 브라질의 운명과 결부시켰다. 인기 있는 TV 시사 해설가 구가 차크라는 올림픽 축구에서 브라질이 우승하자 “브라질 상공에서 맴돌던 먹구름이 사라진다”며 “우리 모두 본능적으로 그런 사실을 안다”고 말했다. 브라질을 끔찍한 불황으로 이끌었던 지우마 호세프 대통령은 지난 8월 말 탄핵 결정으로 물러났다. 브라질 경제가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는 조짐도 있다. 최악의 시기는 끝났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물론 축구라면 사족을 못 쓰는 나라는 브라질 외에도 많다. 그러나 월드컵 역대 최다 우승국(5회)인 브라질이 어느 나라보다 축구에 더 집착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가 국가적인 스포츠와 그처럼 밀착되는 것이 과연 건전할까? 혹시 냉소적인 정치인이 국민 정서를 마음대로 주무르고 브라질의 진정한 문제점을 뒤덮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건 아닐까? 언론인과 선수들 모두 이 문제를 두고 오래 고민해왔다.
펠레는 회고록을 통해 1966년 월드컵에 출전했을 때 브라질에 새로 들어선 군사정부로부터 ‘사회의 균열을 땜질하기 위해’ 3회 연속 우승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았다고 돌이켰다. 그해 브라질은 우승을 놓쳤지만 그 다음 월드컵이 열린 1970년 영광의 자리를 되찾았다. 당시 브라질의 반체제 인사들은 체포되고 고문당하고 살해됐다(좌익 게릴라였던 호세프 전 대통령도 투옥됐다). 그러나 월드컵 우승 덕분에 브라질의 군사정권은 독재에 대한 반발이 심한 국민을 국기 아래 하나로 단합시킬 수 있었다.축구와 정치의 밀착은 1950년에도 있었다. 브라질이 처음 월드컵을 개최한 해였다. 브라질 월드컵 조직위는 리우에 20만 명 수용이 가능한 세계 최대의 경기장 마라카낭을 지었다. 당시 리우 시장은 자신들이 ‘야만인’이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주기 위해서 그처럼 경기장을 웅장하게 지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승전에서 브라질이 우루과이에 2-1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브라질의 정치인들은 축구를 이용할 기회를 잃었고 동시에 국가의 자존감마저 무너졌다. ‘마라카낭의 비극’으로 알려진 이 경기를 두고 전설적인 작가 넬슨 로드리게스는 ‘브라질의 히로시마’라고 평했다. 월드컵 우승 실패로 원자폭탄을 맞은 것처럼 브라질인의 정서가 황폐화했다는 뜻이었다.
그 직후 브라질은 경제위기와 부패 스캔들, 사랑 받던 대통령의 자살이라는 고통을 겪었다. 그로부터 66년 뒤인 지난 8월 20일 리우 올림픽에서 브라질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끄는 네이마르가 독일을 상대로 마지막 승부차기 슛을 성공시키면서 마라카낭 주경기장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제 또 다시 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무마하기 위해 ‘빵을 나눠주고 서커스를 보여주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난 1년 동안 브라질 국민의 불만이 하늘을 찌르면서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브라스의 부패 스캔들을 수사하는 브라질 검찰의 ‘세차 작전’이 가차없이 시행될 수 있었다(그 수사가 궁극적으로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을 몰고왔다). 이제 국민의 그 분노의 눈초리를 정치권에서 축구 쪽으로 돌릴 수 있다면 의회가 검찰의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조치를 통과시키고 기득권 세력의 일부에게 면죄부를 주기가 훨씬 더 쉬울 것이다.
호세프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대통령에 오른 후임자 미셰우 테메르(호세프와 거의 마찬가지로 인기가 없다)는 지난 2년 동안의 불행과 고통에 종지부를 찍으려고 애쓸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는 ‘세계가 브라질을 재발견한다’라는 제목의 한 신문 사설에서 ‘불명예에 시달리던 우리 축구팀이 영광을 회복하면서 다른 분야에서도 앞으로 브라질이 가야 할 길을 열었다’고 치하했다.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것인가? 나는 브라질이 이제 성숙한 나라로서 이번 위기의 교훈을 쉽게 잊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세차 작전’ 과정에서 예고된 사전 형량 조정 같은 ‘기득권 봐주기’ 문제가 대중의 분노에 다시 불을 지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한 국가가 겪는 고통에는 끝이 있으며 결국은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뢰와 국민 정서는 정치와 경제 모두에서 매우 중요하다. 모두가 낙관한다면 실제로 상황이 나아질 수 있다. 긍정적 신념의 마력이다.
더구나 언론인은 늘 국가의 운명에 관한 웅장한 이야기를 찾는다. 나는 브라질이 올림픽을 전반적으로 잘 치렀고 축구에서도 우승했다는 사실이 궁극적으로 브라질 위기의 끝이 시작되는 계기로 기억될 것이라고 의심치 않는다. 우연이든 아니든 말이다.
- 브라이언 윈터
[ 필자는 아메리카스 쿼털리 편집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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