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릴 것 하나 없는 고베 비프
버릴 것 하나 없는 고베 비프
맛의 비결은 천연 마블링…일본에서 팔리는 국내산 와규 스테이크는 조각마다 ID 번호 있어 서양에서 스테이크는 더없이 남성적인 음식으로 통한다. 숯불에 까맣게 그을고 피가 뚝뚝 흐르는 고기를 우적우적 씹어먹어야 하기 때문에 터프 가이의 메뉴로 여겨진다. 하지만 일본의 ‘고베 비프(Kobe beef, 효고 현에서 생산되는 일본의 브랜드 소고기 중 하나)’는 정반대다. 입에서 사르르 녹을 듯 연한 고베 비프는 육류계의 고급 스시(초밥)라고 할 수 있다. 고베 스테이크는 고기를 약 0.6㎝의 두께로 (크기는 젓가락으로 집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썰어 식탁에 놓인 그릴 위에서 40초 동안 구워 먹는다.
강한 불에 재빨리 구운 그 작은 스테이크 조각은 살코기와 지방, 불의 절묘한 균형을 자랑한다. 고급 사시미(생선회)를 런던의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신문지에 싸주는 대구 튀김과 비교할 수 없듯이 고베 스테이크는 뉴욕의 스테이크하우스에서 파는 T본 스테이크와는 전혀 다르다. 최근 일본으로 미식 여행을 갔을 때 날 사로잡은 건 스시나 사시미가 아니라 고베 비프였다.
사실 일본인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의 부유층도 1860년대 이전에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고베 비프는 요즘도 대다수 일본인에게 어쩌다 한번 맛볼 수 있는 매우 귀한 음식이다. 하지만 지난 150년 동안 일본인은 소고기 요리를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완벽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집중하는 능력은 광기나 천재성에서 나온다. 이는 도쿄 사람들, 아니 일본인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요리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본 전문가 스테파니 리의 말이다. 일본인은 이국적인 음식을 들여와 본고장보다 더 나은 맛을 내는 재주가 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세계 수준의 맥주와 위스키가 좋은 예다.
고베 비프 맛의 비결은 천연 마블링이다. 살코기 사이에 거미줄처럼 퍼진 지방이 고온에서 녹으면서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이 난다(최고급 부위는 아주 연해서 날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이외 지역에서 진짜 고베 비프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와규’라고 불리는 일본 토종 소는 미국의 대초원에서 자라는 거대한 소와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 논밭에서 쟁기를 끌던 튼튼하고 몸집이 작은 황소와 더 흡사하다. 다지마규(일본 흑소)는 와규 중에서도 고기가 가장 부드러운 종류로 알려졌다.
일본 내에서 ‘고베 와규’는 법의 보호를 받는 브랜드명으로 효고 현에서 자란 다지마규의 고기에만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고베’나 ‘와규’가 상표가 아닌 일본 토종 혈통을 이어받은 소를 의미하는 말로 인식돼 진짜 일본산과 똑같은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된다. 미국과 호주에서 대량 사육되는 와규와 앵거스(영국 스코틀랜드 원산의 육우)의 잡종도 포함된다. 게다가 2010년 일본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몇 년 동안 수출이 금지돼 미국과 유럽의 소수 전문점을 제외하곤 외국에서 진짜 일본산 고베 비프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최상품 고베 소고기 등심은 정육점 판매가가 1㎏에 150달러를 웃돌기 때문에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등급 제도가 마련돼 있다. 등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블링이다. 일본과 호주, 미국의 품질 등급 표시가 각기 다르지만 애호가들은 일본 육류등급협회 기준으로 A5를 최상품으로 본다. 소고기 마블링 규격 12점 만점의 12점짜리다. 최상품 와규 소고기는 매우 드물고 귀해 일본에서 팔리는 국내산 와규 스테이크는 조각마다 열 자릿수 ID 번호가 붙어 있다. 소의 원산지와 이력을 증명하는 사후 패스포트인 셈이다.고베의 다지마규는 생후 2~3년 동안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맥주를 마시거나 마사지를 받지는 않는다. 이 소들은 볏짚과 건초, 콩·보리·밀기울로 만든 특별 사료를 먹고 자란다. 미국이나 유럽의 육우들과 달리 생풀은 먹지 않는다. 일본에는 높은 산과 해변이 많아 목초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는 동안 (식욕 증진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는 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다.
일본을 좋아하는 소설가 로렌스 오스본은 “미국과 유럽에서 이름뿐인 ‘고베 비프’를 먹다가 일본에 가서 진짜를 먹어 보고 깨달은 게 있다”고 말했다. “모든 동물이 똑같은 방식으로 대우받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소고기는 내가 먹어본 중 최고였지만 육식을 하지 않는 생활방식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암울한 환경에서 자라고 도축되는 동물의 고기는 먹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베 비프는 가격이 매우 비싸 일본인은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혓바닥(피클이나 바비큐)부터 괄약근까지. 괄약근은 질기지만 꼬치에 끼워 구우면 맛이 기막히다.
고베 소고기의 대표적인 요리법은 ‘야키니쿠’다. 식탁 위의 소형 바비큐 그릴에 얇게 저민 소고기를 한 점씩 구워서 핑크 솔트(분홍 소금)에 찍어 구운 마늘과 함께 먹는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날달걀과 함께 지져 먹는 ‘스키야기’와 식탁 위에 놓인 냄비의 끓는 물 속에 담가 익혀 먹는 ‘샤브샤브’도 있다. 아니면 두꺼운 스테이크에 양파 소스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어느 부위를 어떤 방식으로 먹든 진짜 일본산 와규 소고기를 처음 먹어보는 순간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고기는 맞지만 맛의 차원이 다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야만적인 서양의 스테이크와는 거리가 멀다.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사스마 우시 노 구라: 미나토구 아카사카 7-9-1 지하 1층. 격식을 차리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손님이 각자 고기를 구워 먹는다.
가구라자카-신센 : 신주쿠구 가구라자카 5-32 야시노 빌딩 1층. 개인실에서 격식을 차린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쿠로: 주오구 니혼바시 3-8-2 신-니혼바시 빌딩 지하 1층. 샤브샤브 전문점.
닌교초 이마한: 주오구 니혼바시-닌교초 2-9-12. 정육점 겸 소고기 전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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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불에 재빨리 구운 그 작은 스테이크 조각은 살코기와 지방, 불의 절묘한 균형을 자랑한다. 고급 사시미(생선회)를 런던의 피시 앤 칩스 가게에서 신문지에 싸주는 대구 튀김과 비교할 수 없듯이 고베 스테이크는 뉴욕의 스테이크하우스에서 파는 T본 스테이크와는 전혀 다르다. 최근 일본으로 미식 여행을 갔을 때 날 사로잡은 건 스시나 사시미가 아니라 고베 비프였다.
사실 일본인이 소고기를 먹기 시작한 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일본의 부유층도 1860년대 이전에는 소고기를 먹지 않았다. 또 고베 비프는 요즘도 대다수 일본인에게 어쩌다 한번 맛볼 수 있는 매우 귀한 음식이다. 하지만 지난 150년 동안 일본인은 소고기 요리를 다른 어떤 나라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어떤 일을 시작했을 때 완벽한 경지에 이를 때까지 집중하는 능력은 광기나 천재성에서 나온다. 이는 도쿄 사람들, 아니 일본인에 관해 많은 것을 말해준다.” 캐나다 밴쿠버에서 요리 관련 블로그를 운영하는 일본 전문가 스테파니 리의 말이다. 일본인은 이국적인 음식을 들여와 본고장보다 더 나은 맛을 내는 재주가 있다. 일본에서 생산되는 세계 수준의 맥주와 위스키가 좋은 예다.
고베 비프 맛의 비결은 천연 마블링이다. 살코기 사이에 거미줄처럼 퍼진 지방이 고온에서 녹으면서 놀랄 정도로 부드러운 맛이 난다(최고급 부위는 아주 연해서 날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 이외 지역에서 진짜 고베 비프를 찾기는 매우 어렵다. ‘와규’라고 불리는 일본 토종 소는 미국의 대초원에서 자라는 거대한 소와는 사뭇 다르다. 예전에 논밭에서 쟁기를 끌던 튼튼하고 몸집이 작은 황소와 더 흡사하다. 다지마규(일본 흑소)는 와규 중에서도 고기가 가장 부드러운 종류로 알려졌다.
일본 내에서 ‘고베 와규’는 법의 보호를 받는 브랜드명으로 효고 현에서 자란 다지마규의 고기에만 붙일 수 있다. 하지만 외국에서는 ‘고베’나 ‘와규’가 상표가 아닌 일본 토종 혈통을 이어받은 소를 의미하는 말로 인식돼 진짜 일본산과 똑같은 이름으로 시중에 유통된다. 미국과 호주에서 대량 사육되는 와규와 앵거스(영국 스코틀랜드 원산의 육우)의 잡종도 포함된다. 게다가 2010년 일본에서 구제역이 발생한 이후 몇 년 동안 수출이 금지돼 미국과 유럽의 소수 전문점을 제외하곤 외국에서 진짜 일본산 고베 비프를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다.
최상품 고베 소고기 등심은 정육점 판매가가 1㎏에 150달러를 웃돌기 때문에 소비자가 믿고 살 수 있도록 구체적인 등급 제도가 마련돼 있다. 등급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블링이다. 일본과 호주, 미국의 품질 등급 표시가 각기 다르지만 애호가들은 일본 육류등급협회 기준으로 A5를 최상품으로 본다. 소고기 마블링 규격 12점 만점의 12점짜리다. 최상품 와규 소고기는 매우 드물고 귀해 일본에서 팔리는 국내산 와규 스테이크는 조각마다 열 자릿수 ID 번호가 붙어 있다. 소의 원산지와 이력을 증명하는 사후 패스포트인 셈이다.고베의 다지마규는 생후 2~3년 동안 극진한 보살핌을 받으며 산다. 하지만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맥주를 마시거나 마사지를 받지는 않는다. 이 소들은 볏짚과 건초, 콩·보리·밀기울로 만든 특별 사료를 먹고 자란다. 미국이나 유럽의 육우들과 달리 생풀은 먹지 않는다. 일본에는 높은 산과 해변이 많아 목초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먹이를 먹는 동안 (식욕 증진을 위해) 음악을 틀어주는 건 사람들이 알고 있는 대로다.
일본을 좋아하는 소설가 로렌스 오스본은 “미국과 유럽에서 이름뿐인 ‘고베 비프’를 먹다가 일본에 가서 진짜를 먹어 보고 깨달은 게 있다”고 말했다. “모든 동물이 똑같은 방식으로 대우받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 소고기는 내가 먹어본 중 최고였지만 육식을 하지 않는 생활방식의 의미를 새삼 되새기게 만들었다. 암울한 환경에서 자라고 도축되는 동물의 고기는 먹지 않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어떻게 먹어야 할까? 고베 비프는 가격이 매우 비싸 일본인은 소의 거의 모든 부위를 사용한다. 혓바닥(피클이나 바비큐)부터 괄약근까지. 괄약근은 질기지만 꼬치에 끼워 구우면 맛이 기막히다.
고베 소고기의 대표적인 요리법은 ‘야키니쿠’다. 식탁 위의 소형 바비큐 그릴에 얇게 저민 소고기를 한 점씩 구워서 핑크 솔트(분홍 소금)에 찍어 구운 마늘과 함께 먹는다. 얇게 저민 소고기를 날달걀과 함께 지져 먹는 ‘스키야기’와 식탁 위에 놓인 냄비의 끓는 물 속에 담가 익혀 먹는 ‘샤브샤브’도 있다. 아니면 두꺼운 스테이크에 양파 소스를 곁들여 먹어도 좋다.
어느 부위를 어떤 방식으로 먹든 진짜 일본산 와규 소고기를 처음 먹어보는 순간 신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고기는 맞지만 맛의 차원이 다르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야만적인 서양의 스테이크와는 거리가 멀다.
- 오웬 매튜스 뉴스위크 기자
[박스기사] 도쿄에서 고베 비프를 먹을 수 있는 곳
사스마 우시 노 구라: 미나토구 아카사카 7-9-1 지하 1층. 격식을 차리지 않는 편안한 분위기. 손님이 각자 고기를 구워 먹는다.
가구라자카-신센 : 신주쿠구 가구라자카 5-32 야시노 빌딩 1층. 개인실에서 격식을 차린 서비스를 제공한다.
자쿠로: 주오구 니혼바시 3-8-2 신-니혼바시 빌딩 지하 1층. 샤브샤브 전문점.
닌교초 이마한: 주오구 니혼바시-닌교초 2-9-12. 정육점 겸 소고기 전문 레스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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