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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뇌도 병들게 한다

가난은 뇌도 병들게 한다

폭력, 가정 불화, 영양실조, 학대, 부모의 실직 등이 학습성과를 좌우하는 뇌 부위의 발달을 방해한다. 천성과 환경 중 무엇이 더 지능에 영향을 줄까?
말랄라 유사프자이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동영상이 재생됐다. 2012년 15세에 통학버스에서 탈레반의 총에 머리를 맞고도 살아남은 파키스탄 소녀다. “교육을 받고 싶었고,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한 소녀는 탈레반이 사람들의 얼굴에 염산을 붓거나 죽였지만 “나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을 이었다.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USC) 뇌과학및창의력연구소(BCI)에서 노트북으로 유사프자이의 동영상을 보던 15세 소년은 무덤덤했다. 얼굴에는 표정이 없었고, 어깨는 앞으로 굽어져 있었다. 인터뷰 진행자가 소년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냐고 묻자 아이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모르겠어요”라고 말했다. 반응은 그게 다였다. 연구자는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냐고 질문을 이어갔다.

“좋은 사람이요”라고 소년이 답했다.

“대학에 가고 싶니?”

“네.”

“대학을 졸업하면 뭘 할 계획이니?”

“생각 안 해봤는데요.”

“어떤 직업을 갖고 싶니?”

“생각 안 해봤는데요.”

아이는 저소득가정 청소년 67명을 대상으로 문화와 가족관계, 폭력에 대한 노출 및 기타 변수가 인간 뇌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5년간 추적하는 USC 신경과학자 메리 헬렌 임모르디노-양의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모집한 청소년들에게 특정인의 인생 실화가 담긴 40개 동영상을 보여주고 이들의 뇌 반응을 지켜보는 실험이다. 동영상 중에는 유사프자이의 이야기처럼 영감과 감동을 주는 이야기도 있다. 피험자가 동영상을 지켜보는 동안 이들의 뇌반응은 MRI로 촬영하고 기록한다. 2년 후 피험자들은 BCI를 다시 방문한다. 연구소는 학습센터 및 대학 혁신허브다. MRI 촬영 연구소와 회의사무실, 현대예술 및 사진 갤러리, 문학 낭독회와 과학 발표 및 강연, 요요마 등의 예술가가 연주하는 공연 등이 개최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피험자들은 같은 실험을 반복하고 연구진은 2년이 지난 후 반응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살펴본다.
초기 단계에서 나온 결과는 심란하다. 폭력적 환경에서 살아온 아이들은 인터뷰에서 별다른 감정을 보이지 않았고, MRI 촬영 결과 신경연결이 약했다. 의식과 판단, 윤리적 결정 및 감정처리 과정에서 뇌의 각 부분이 원활히 연결되지 않는 모습도 보였다.

임모르디노-양의 연구는 발달 단계에 있는 ‘가난의 뇌신경학’이란 연구분야의 일환으로 진행 중이다. 뇌의 패턴과 환경 간 상관관계밖에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연구진이 알려주는 결론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다. 가난과 연관된 환경 예를 들어 폭력, 지나친 소음, 가정 불화, 오염, 영양실조, 학대, 부모의 실직 등의 요소가 성장 중인 어린 뇌의 신경 상호작용 및 형성·조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이 사안에 대한 공공담화를 활짝 열어젖힌 연구 결과가 2개 발표됐다. 첫 번째 연구에서는 빈곤가정 아이의 경우 기억을 관장하는 해마와 의사결정, 문제해결, 충동조절 및 판단, 사회적 혹은 감정적 행동을 관장하는 전두엽, 언어와 시각 및 청각정보 처리, 자기의식을 관장하는 측두엽 등에서 정보 처리 및 관리행동을 돕는 뇌조직 회백질이 적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지시 이행과 집중, 전반적 학습능력에 필수적이며 학습성과를 좌우하는 뇌 부위가 제대로 발달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정보다.

지난해 미국의학협회지(JAMA)는 4~22세 사이 피험자 389명을 관찰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실험 참여자 4분의 1은 연방빈곤선(올해 기준 4인 가족 연소득 2만4230달러) 하위에 위치한 빈곤가정 출신이었다. 최빈곤층 가정 출신의 청소년은 회백질이 많이 감소해 있었고 표준화 시험에서 점수도 더 낮았다.

두 번째 연구는 지난해 네이처 뉴로사이언스지에 수록됐다. 3~20세 사이 피험자 1099명을 관찰한 실험이다. 그 결과 저소득 가정의 청소년은 연소득 15만 달러 부유층 자녀 대비 뇌 면적이 적다는 결과가 나왔다.

“건강 및 학습결과에서 사회적 계급이 격차를 가져온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하버드대학 아동발달센터 이사장 잭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그러나 신경과학이 발달한 요즘은 환경과 행동, 뇌활동을 연계해서 문해력에만 중점을 둔 기존 조기교육 프로그램을 재설계하는 등 교육 및 사회정책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새로운 접근방식 덕분에 사회 및 감정적 발달에도 초점을 맞출 수 있게 됐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과학 발전으로 환경과의 관계 및 상호작용이 집중력을 통제하는 뇌 부위를 어떻게 발달시키는지 그 과정을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읽기 등의 학습 성적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생물학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그렇게 나온 새로운 연구 결과 덕에 천성과 환경 중 무엇이 인간 지능에 영향을 주는지 이제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됐다.
폭력 동네에서 성장한 아이는 뇌신경 연결이 약하고 판단 및 윤리적 정보처리와 연관된 뇌 부위간 상호작용도 적다.
2013년 베르가라는 임모르디노-양의 연구에 피험자로 참여해 동영상을 보면서 MRI 촬영을 했다(베르가라는 암 말기 진단을 받고 치료를 위해 레모네이드를 팔았던 한 소녀의 이야기를 지금도 기억한다). 실험에 호기심을 느낀 베르가라는 임모르디노-양이 인턴십을 제공한다는 사실을 알고 신청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그리고 인턴이 돼 동네에서 다른 피험자를 모집하는 일을 했다. 주민 중 43%가 연방빈곤선 미만으로 분류된 동네였다.

연구소 근무 전에도 베르가라는 자신의 삶을 부유한 동네 사람들이 어떻게 보는지, 연구팀이 왜 자신과 급우에 관심을 갖는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태의 심각성을 실감한 건 친구들의 MRI 영상을 본 후였다. “우리의 뇌는 다른 동네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베르가라는 우리 몸의 스트레스 반응체계와 뇌 발달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미처 알지 못했다. 가난은 그 자체로 스트레스다. 갱단의 폭력이 급증하며 동네가 ‘열기에 휩싸일 때’를 자매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사는 구역에서는 누가 평생 폭력단에서 일했는지, 초등학교 친구 중 폭력단 새 멤버로 입단한 사람은 누구인지도 알았다. 사람이 총에 맞는 걸 직접 본 적은 없지만 침실 밖에서 총알이 날아다니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다.

누군가 가슴에 총을 맞는 걸 직접 봐야만 폭력의 영향을 받는 건 아니라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 주변이 혼란스러우면 “세상이 무섭다는 걸 몸이 깨우친다”고 그녀는 말했다. “인정사정 없는 위험한 세상이라 어떤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선한 존재라고 믿을 수 없게 된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에서는 뇌 구조가 변한다. 신경 시냅스의 연결이 변화하고 신경은 다른 방향으로 신호를 보낸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과다 분비돼 뇌 전체에 퍼진다.

권총이 자신을 겨누면 싸울 것인지 도망갈 것인지 결정하는 ‘투쟁-도주(fight or flight)’ 반응에 돌입해 코티솔과 에피네프린 등의 호르몬을 분비하고 근육에 에너지와 힘이 모인다. 노르에피네프린과 아드레날린, 도파민 등의 신경전달물질이 편도체로 배출돼 심장과 폐가 빨리 뛰고 호흡이 가빠진다. 감정과 감각이 경계상태에 돌입하고 우리 몸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도망가거나 맞서 싸울 준비를 한다. 런던 킹스칼리지에서 강도 피해자 106명을 상대로 조사를 한 결과, 이들 중 33%가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타인에 대해 지나친 두려움을 느끼게 된 사람도 전체의 80%에 달했다.
감옥처럼 느껴지는 학교는 학생의 불안감을 키워 학습을 거의 불가능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다.
매일 수십 명의 폭력적 범죄자를 만나는 상황을 상상해 보자. 어둠 속에서 언제든 튀어나와 나를 구타하거나 돈을 뺏어가거나 강간하거나 총으로 쏠 수도 있다. 스트레스 호르몬이 항상 분비되다 보니 얼마 후에는 그 양을 줄이기가 힘들어진다. 뇌는 언제나 투쟁-도주 상태에 놓인다. 만성 스트레스는 줄기세포와 뇌세포 연결, 신경의 발달을 저해한다. 임모르디노-양의 연구는 이런 환경에 놓인 피험자의 경우 계획 수립과 목표 설정, 윤리적 결정, 안정적 감정 유지 능력을 온전히 발달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들의 뇌 활동은 제대로 조직되지 못하고 발달 및 체계 또한 미숙하다”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

불안정한 가족과 학대, 방치 또한 비슷한 해를 끼친다. 생물-신경학적 영향은 아동과 10대 청소년뿐 아니라 신생아와 유아에게도 영향을 준다. 위스콘신-매디슨 대학 연구진이 77명의 아동을 연구한 결과 저소득 가정의 자녀는 최소 5개월째부터 부유한 가정의 아기 및 유아와 비교해서 전두엽과 두정엽의 회백질이 감소한 것이 발견됐다. 이는 다른 연구 결과와 함께 가난이 뇌 성장을 지체시킨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뇌 발달은 시작 단계에서 뒤처지면 결코 따라잡지 못할 수 있다.

‘가난이 아동 뇌 발달을 저해한다’ ‘가난은 태어날 때부터 뇌를 축소시킨다’ ‘가난할수록 의사결정을 못하는 이유’ 등 새로운 신경학 연구의 제목을 보면 경악과 우려가 교차한다.

숀코프 박사는 이런 언어 사용이 “위험하며 걷잡을 수 없다”고 말했다. “‘평균적으로 회백질과 표면적이 감소했다’고 말하는 것과 ‘그래서 너의 뇌가 손상됐다’고 결론짓는 건 엄연히 다르다. 이는 부당하게 낙인을 찍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맥락 없이 볼 경우, 가난과 뇌의 상관관계를 연구한 내용은 인종별 지능 격차나 ‘빈곤층은 날 때부터 열등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강화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인종주의를 정당화하는 데도 악용될 수 있다.

“이들 연구 결과가 새로운 우생학적 연료로 쓰일 위험이 있다”고 코네티컷 대학의 사회학 부교수 매튜 휴이가 말했다. “’가난한 사람의 뇌는 달라’라고 손쉽게 내뱉는 말은 너무 간편하고 무섭다. 명백히 잘못된 방향으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다.”

미시건대학 국가빈곤센터 자료를 보면 특정 소수집단의 경우 빈곤율이 미국 평균을 “크게 웃도는 것”이 사실이다. 미 인구조사국 통계에 따라 2014년 평균 14.8%였던 빈곤율을 인종별로 나눠보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26.2%, 라틴 계열은 23.6%, 아시아계는 12%, 백인은 10.1%였다. 빈곤이 각 민족집단에 고루 분포돼 있지 않음을 확실히 보여주는 통계다.

빈곤을 경험할 가능성이 크고, 그 결과 과학이 설명한 대로 인지발달에서 어려움을 겪은 소수민족 청소년은 또 다른 짐을 짊어지게 된다고 루이빌 대학 아프리카 지역학 부교수 W 카슨 바이어드는 말했다. 관련 연구와 제목을 기준 삼아 소수민족 아이는 “백인 아이에 비해 능력이 떨어진다”는 편견이다. 미국에서 가난한 소수민족 아이로 성장했다는 것만으로 뇌 발달이 저해되는 건 결코 아니다. 그러나 빈곤이 모습을 드러내는 방식과 사회가 가난한 소수민족을 대하는 방식은 분명 이들의 발달에 영향을 미친다.

소수민족의 경우 위험하고 낡아빠진 건물에 산다. 거주환경의 차별과 함께 학교에서는 교사가 은연 중에 보내는 인종차별적 편견이 있다. 빈곤 지역에서 예산 부족을 겪는 학교와 영양실조는 정상적 뇌 성장을 방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요소가 모두 합해지면 학습은 거의 불가능해진다. 아프리카계가 백인보다 빈곤의 덫에 갇힐 확률이 왜 더 높은지도 알 수 있다. 뇌가 작아진다는 주장은 “사회적 불평등과 빈곤층에 대한 좁은 시각을 형성할 수 있다”고 바이어드 교수는 말했다. 이는 흑인은 뇌 용적이 작아서 유럽인보다 지능이 열등하다는 과거 엉터리 과학자들의 인종적 편견을 그대로 반복하는 위험한 행동이 된다.
뇌 과학 연구를 진행하는 과학자들은 대중문화나 언론 기사, 심지어 연구 초록에서조차 연구 결과가 지나치게 단순화되는 경향이 있다고 동의했다. “상관관계가 겨우 입증된 내용을 인과관계로 보도한다”고 네이처 뉴로사이언스 연구를 이끈 컬럼비아대학 신경과학자 킴벌리 노블은 말했다. “조사 결과를 그런 식으로 표현하는 건 과학을 잘못 전달하는 것이다. 뇌는 운명이 아니다. 가족 소득을 기준으로 아동의 뇌 크기를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부모의 소득수준은 퍼즐의 한 조각에 불과하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가난한 가정에서 자라도 뇌에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도 많다.” 빈곤은 소득 수준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득이 낮다고 무조건 가정내 폭력이나 학대가 아이의 신경생물학적 발달을 저해시켰다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는 안 된다. 폭력단이 지배하는 슬럼가에서 자랐어도 부모가 이들을 보호하고 역경을 이길 수 있도록 감정적 준비를 시켰다면 얼마든지 안전함을 느끼며 성장할 수 있다.

부모님과 교사, 기타 성인이 아이에게 안정감을 주고 대처기제를 가르쳐 줘 ‘투쟁-도주’ 체계가 끊임없이 발동하지 않았다면 이 아이들은 역경 속에서 자신을 지키고 다시 일어서도록 뇌를 보호하는 완충제를 얻게 된다. “스트레스 수준을 기준선으로 끌어내리고 폭력 혹은 빈곤의 짐을 제대로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구축하게 된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이런 미묘한 작용은 문제를 극복할 해결책을 제시한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빈곤의 스트레스를 이겨내도록 가르칠 필요가 있다. 어린 시절 겪은 어려움 때문에 신경적 토대가 약하더라도 “너무 늦은 때는 없다”고 숀코프 박사는 말했다. “뇌는 계속 발달한다.” 신경회로는 환경적 영향에 따라 만들어진다. 뇌가 자체적으로 구조를 조정하는 신경가소성은 영아 및 초기유아기에 가장 높고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하지만 결코 ‘0’에 도달하는 법은 없다. 15~30세 사이에 뇌는 가소성이 증가하는 제 2의 성장기를 거친다. 다시 말해 사춘기와 성년 초기에도 제대로 가르치고 연습만 한다면 뇌가 재조정과 적응의 과정을 거칠 수 있다.

이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빈곤지역 사회 프로그램과 정책을 재설계하고 범죄 및 오염, 인구과밀과 학대를 줄이는 프로그램에 투자하는 한편, 0~5세 자녀를 둔 부모를 지원하는 데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아동행동학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새로 도입되는 프로그램은 아동뿐 아니라 빈곤 속에 자라서 제대로 된 대응체계를 익히지 못한 어머니, 그래서 자녀에게 이를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던 어머니도 수혜 대상에 포함시킨다.

초등학교에서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사회 및 감정적 학습 내용을 추가할 수도 있다. 아이들이 자신의 감정을 자각하고 관심을 기울이도록 지도하는 내용이다. 특히 외상이나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법에 초점이 맞춰질 것이다. 이들 교과과정을 국어나 수학처럼 필수과목으로 만드는 방안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교육 및 발달지원기관의 우선순위에 대한 대대적 재평가뿐만 아니라 새로운 프로그램이나 도구를 확보하기 위한 예산의 재조정도 필요할 것이다.

이를 현실로 이끌기 위해서는 의회나 지방정부, 학교 이사회, 사법제도의 힘이 필요할 수 있다. 2013년 뉴욕대학 신경과학교육연구소의 클랜시 블레어는 가난과 혼란으로 가득한 가족 속에서 보낸 시간이 스트레스 호르몬 코티솔 분비량 증가와 유의미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과거 담배와 고당분 음료, 정크푸드와 유해성을 연결하고 정책 및 규제를 변화시켰던 상관관계와 동일한 증거 능력을 가지는 연구결과는 더 있다. 블레어의 연구 결과 또한 충분한 공간이 확보되지 않은 주거지역, 감당할 수 없는 주택가격 및 돌보미 센터 부족을 해결하기 위한 법제화를 지원하거나 기념비적 소송을 이끄는데 이용될 수 있다.

열악한 학교와 지역사회 인프라, 치안 불안, 아동학대 방치, 오염된 환경, 의료서비스 및 대중교통과 녹지 부족 등 빈곤의 굴레를 강화하는 시스템 또한 법안 제정과 소송을 통해 해결책을 찾아볼 수 있다.
심각한 스트레스 상황에 놓인 동네에서 자라면 복구 불가능한 수준으로 뇌가 망가져 이를 바로잡기가 지극히 어려워진다. 왼쪽 사진은 최신형 MRI 의료장비.
베르가라가 임모르디노-양 연구팀에서 인턴십을 마친 지도 2년이 지났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학점 평균 3.8로 졸업한 베르가라는 SAT에서도 학급 최고 점수를 받았다. 지금 그녀는 전액 장학금을 받으며 산호세주립대학에서 생명의공학을 전공한다. 그녀를 ‘생존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대학 동기들은 그녀가 성장한 동네 이름을 듣고 “거길 어떻게 빠져 나왔니?”라고 묻기도 했다.

베르가라는 안다. 그녀의 집은 피난처였다. 거리에서 일어나는 일은 부모님도 어쩌지 못했지만 적어도 집안에서는 완벽하게 보호 받는 느낌을 줬다. 베르가라의 집은 블록에서도 가장 수목이 우거진 마당이 있었다. 장미 덤불에서는 분홍색과 복숭아색, 붉은색, 노란색 장미가 자랐다. 거실은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했고, 분홍 장미 색깔로 칠해진 벽은 가족 사진으로 장식돼 있었다. 베르가라의 동생이 15세 생일 때 흰 드레스를 입고 손에 밝은 오렌지색 꽃다발을 든 사진도 있었다. 팬더곰이나 거북이, 새끼를 지키는 어미 사자, 자유의 여신상과 천사상 등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작고 알록달록한 조각상이 TV 스탠드에 진열됐다.

베르가라는 2명의 여동생과 조카 1명과 함께 방을 썼다. 좁지 않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아늑했다. 부모님은 돈 문제로 어려운 때가 있어도 자식 앞에서는 절대 티를 내지 않았다. 돈을 아끼려는 노력은 돼지고기와 감자, 당근 타코처럼 정겨운 집밥의 기억으로 남았다. 부모님은 서로 만났던 공장에서 오래 일하며 찬찬히 승진 단계를 밟았고 마침내 전체 생산라인을 감독하는 관리자 직책에 올랐다. 그리고 올해 드디어 주택담보대출을 전액 상환했다.

베르가라의 부모님은 숙제나 친구들과의 놀이에 엄격한 규칙을 적용해 이를 지키도록 했다. 베르가라는 고등학교에서 축구팀과 배구팀에서 활동하느라 파티를 할 시간도 없었다. 그래도 부모님과는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부모님은 언제나 베르가라와 자매들이 다른 성인 롤모델이나 보호자의 도움을 받도록 했다. 동네에서 활동하는 모든 폭력단원의 얼굴과 이름을 알아야 했지만 위험한 상황에 닥칠 경우 아이스크림 가게 주인이나 달마시안을 키우는 친절한 이웃 등 어떤 어른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할지도 알고 있었다.

베르가라는 USC에서 과학을 전공한 고등학교 배구팀 코치를 통해 생명의공학에 대해 정보를 얻었고 이를 전공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코치는 그녀를 임모르디노-양에게 소개시켜줬고 USC 연구진은 베르가라에게 뇌에 대한 정보를 줬을 뿐 아니라 대학 입학신청서를 쓰는 일도 도와줬다.

베르가라는 자신을 품어준 가족과 멘토가 있었다는 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안다. 함께 자란 친구들은 그런 기회나 지원체계를 얻지 못했다. 그녀는 일부 선생님과 학교 담당자가 학생들을 ‘잠재력 있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로 나누고 차별 대우를 한다는 걸 느끼며 자랐다. 그러나 새로운 과학의 발전으로 표면적 행동이나 학습 문제가 아닌 기저에 있는 문제가 밝혀졌다. 뇌 발달과 관련된 문제는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눈을 뜨게 해줄 수 있다”고 베르가라는 말했다.

과학적 혁명은 이제 시작이라고 임모르디노-양은 말했다. “풍부한 사회적 담화를 이제야 발견한 단계다. 빈곤의 사회적 스트레스가 뇌 발달 및 생물학적 발달을 변형시키고 평생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 우리는 이제야 정보를 밝혀내기 시작했다.”

- 에리카 하야사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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