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분노 타고 백악관 입성
대중의 분노 타고 백악관 입성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 기성 정치에 진저리가 난 중산층의 대변자로서 승리 거머줘 미국 역사상 최대의 정치 이변으로 불리는 올해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기 이틀 전인 지난 11월 6일. 땅거미가 내릴 때쯤 건설 근로자 조나선 랭퍼드(32)는 거의 1㎞나 늘어선 줄에 서서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그를 포함한 약 1만 명의 펜실베이니아 주민은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유세에 참석하기 위해 무려 4시간을 기다린 끝에 피츠버그 교외의 대형 항공기 격납고에 입장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안에서 또 트럼프가 도착하기까지 거의 2시간을 더 기다렸지만 어느 누구도 불평하지 않았다. 랭퍼드는 “대통령이 될 후보의 유세에 참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건 역사의 일부분이다. 트럼프가 승리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여론조사 결과는 혼전 양상을 보였지만 트럼프의 승리를 확실히 가리키지 않았다. 정치 평론가 대다수도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트럼프 캠프의 지도부에서도 선거 바로 며칠 전까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거 직전 트럼프의 한 참모는 “(클린턴 후보를 따라잡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의와 강한 의지를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 유권자 다수의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그냥 무시된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해 여름 뜬금없는 듯한 대선 출마를 발표하기 위해 트럼프 타워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선 순간부터 그 ‘분노’의 파도에 올라탔다. 나이 일흔의 정치 초년생으로 직설적이며 때론 막말도 서슴지 않는 부동산업자 겸 리얼리티 TV 스타인 트럼프는 랭퍼드가 말한 “연줄 좋은 계층”에 진저리가 난 미국인의 대변자, 아니 그들을 위한 투사가 됐다. 랭퍼드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워싱턴 정가의 주류는 나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출마하기 전엔 우리에겐 목소리도 없었다.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 사회 전체에 아주 크고 똑똑하게 울려퍼졌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신승과 공화당의 상하원 다수당 유지로 공화당은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사에서 아주 특이한 지금의 순간에선 백악관과 의회를 동시에 지배한다는 사실이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기득권층이 패배했다는 뜻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은 소속당 후보인 트럼프의 지지에 미온적이었다. 히스패닉계 판사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을 “인종차별주의의 전형”이라고 비난하며 ‘트럼프’라는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듯했다. 상원의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도 상원 선거에 초점을 맞추며 공화당의 대선후보인 트럼프에 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임원으로 공화당원인 한 인사(아주 희귀한 ‘과’에 속한다)는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트럼프의 승리로 공화당은 길 잃은 집권당이 됐다”고 말했다. 어쩌면 라이언 의장은 다음날 아침 일어나 ‘이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자문했을지 모른다.
라이언 의장은 4년 전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였다(롬니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를 거부했다). 그는 하원의장일 뿐 아니라 공화당 최고의 정책 전문가로 세금과 복지 개혁을 적극 밀어붙였다. 공화당 주류 대다수처럼 그도 자유무역과 국제문제 개입을 선호한다. 그가 이민 문제에서 매파였던 적도 없다.
라이언 의장의 입장은 공화당 주류의 아이디어를 폭넓게 대변했다. 11월 8일 트럼프가 공화당과 백악관을 모두 장악하기 전까지 그랬다. 공화당 내부의 정치적 분열은 이미 시작됐다. 선거 직전 마지막으로 실시된 뉴욕타임스/CBS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응답자의 39%만이 트럼프가 당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당에 해를 끼쳤다는 비율이 41%로 더 높았다.
트럼프는 11월 9일 새벽 3시 직전 선거승리 연설을 하면서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향해 “서로 협력해 위대한 미국을 통합할 수 있도록 지도편달과 도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찍은 5400만 명(대다수는 민주당 지지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은 공화당 주류와 보수 정치 평론가 상당수도 거기에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은 그를 처음부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밀어준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들이다. 그들은 공화당 주류의 세계관 대부분에 (좋게 말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 중 다수는 자유무역에 찬성하지 않으며 불법이민에 강력 반대한다(트럼프 유세에선 기본 구호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라’였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에서 복지 감축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하원 세출위원회의 한 직원은 “트럼프의 그런 태도가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또 트럼프의 지지 기반은 그 자신처럼 미국의 국제적인 개입을 원치 않는다. 트럼프는 외교정책 공약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보다 더 좌익으로 기울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한국·일본 같은 핵심 동맹관계에서 미국이 얻는 이익이 뭔지에 의문을 표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가 공군력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에도 클린턴은 그의 학살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겠다고 말했지만 트럼프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치기 위해 미국도 러시아의 공습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동맹국들과 중국이 벌이는 영유권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문제에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며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 비행기로 18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먼 곳의 일에 관여해야 할지 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메시지는 ‘신고립주의’였다. 이제 대통령에 선출된 그가 공화당 주류의 국제개입주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것인가? 공화당의 한 고위인사는 선거 당일 밤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져가자 뉴스위크에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미국 국방부도 지금 민주당만큼이나 충격에 빠졌다. 트럼프는 곧바로 현실에 압도당할 것이다. 고립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이번 선거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혁명적인 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레이건은 선거인단 확보와 득표율 둘 다에서 압승했다. 반면 트럼프는 선거인단 확보에서 압승해 당선됐지만 전체 득표에선 클린턴보다 뒤졌다(미국 선거는 전체 득표수가 아닌 선거인단 확보수로 당락을 결정하며 해당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면 할당된 선거인단을 싹슬이하는 ‘승자독식제’로 진행된다). 민주당은 선거운동 동안 트럼프가 괴물이라고 확신했다. 무식하며 성차별주의에 빠진 얼간이요 선동가로 핵무기 발사 코드(대통령 고유의 권한을 가리킨다) 근처엔 얼씬도 해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민주당으로선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트럼프 당선자에게 조만간 호의적으로 반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책 측면에선 초당적인 협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국인 다수는 그런 정신을 간절히 원한다. 이번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정치 혐오증의 일부분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초당적인 협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 후보의 충격적인 패배로 민주당에선 이제 좌익이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그중 일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기반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을 원하는 트럼프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다(물론 민주당의 환경보호주의파는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의 좌익은 클린턴에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요했다. 트럼프도 그런 자유무역협정을 원치 않는다.
물론 문제는 ‘트럼포노믹스(Trumponomics)’의 그 양대 측면이 실제로 바람직한 정책인지 여부다. 또 트럼포노믹스의 셋째 측면은 법인세와 소득세 개혁으로 민주당 대다수는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당선은 전후 시대 들어 이어져온 미국 정책의 핵심 신조에 종말을 고했다. 열린 국제무역 시스템을 계속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그것이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서 핵심을 이뤘다. 핵무기만큼이나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어준 요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트럼프 승리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초기 반응은 불길했다. 선거 당일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져가는 동안 다우 선물지수는 7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따라서 정치적·군사적 경험이 없는 사업가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트럼프에게 미국민이 갖는 의문은 이럴 것이다. 선거운동에서 본 바로 그 트럼프가 미국을 통치하는 트럼프가 될 것인가? 중국 상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해 진정으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감수할 것인가? 그로 인해 선거 당일에 나타난 증시 하락은 아이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규모 증시폭락이 촉발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막대한 적자인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확충과 국방비 증액, 복지 지출 유지를 어떻게 약속할 수 있는가?
트럼프에게 보기 좋게 당한 워싱턴 정가의 내부자들은 그가 결코 무리수를 둘 수 없으며 그러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누가 자신을 찍어줬는지 잘 안다. 또 서부 펜실베이니아, 동부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주에 사는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무역과 사회기반시설 확충에서 제시한 공약을 이행하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트럼프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트럼프는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이재호 옮김, 살림 펴냄)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래를 성사시키는 수완과 그런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트럼프를 ‘트럼프답게’ 만들었다. 지금 워싱턴 정가는 충격에 빠졌다. 민주당은 맹렬히 반발하고 공화당의 다수도 회의론을 펼칠 것이다. 따라서 이제 바로 그 수완이 궁극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전의 테스트와는 비교도 안될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이 주장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어보자며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단 내렸다.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번 믿어주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그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수많은 회의론자의 생각을 뒤엎었다. 앞으로 4년 동안 그는 계속 그런 ‘거래의 기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여론조사 결과는 혼전 양상을 보였지만 트럼프의 승리를 확실히 가리키지 않았다. 정치 평론가 대다수도 트럼프가 이길 가능성을 믿지 않았다. 심지어 트럼프 캠프의 지도부에서도 선거 바로 며칠 전까지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선거 직전 트럼프의 한 참모는 “(클린턴 후보를 따라잡을)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론조사는 트럼프 지지자들의 결의와 강한 의지를 반영하지 못했다. 특히 미국 유권자 다수의 마음 속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는 그냥 무시된 듯했다. 도널드 트럼프는 지난해 여름 뜬금없는 듯한 대선 출마를 발표하기 위해 트럼프 타워의 에스컬레이터를 내려선 순간부터 그 ‘분노’의 파도에 올라탔다. 나이 일흔의 정치 초년생으로 직설적이며 때론 막말도 서슴지 않는 부동산업자 겸 리얼리티 TV 스타인 트럼프는 랭퍼드가 말한 “연줄 좋은 계층”에 진저리가 난 미국인의 대변자, 아니 그들을 위한 투사가 됐다. 랭퍼드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워싱턴 정가의 주류는 나 같은 사람은 안중에도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가 출마하기 전엔 우리에겐 목소리도 없었다. 아무도 우리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선거로 그들의 목소리는 미국 사회 전체에 아주 크고 똑똑하게 울려퍼졌다.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의 신승과 공화당의 상하원 다수당 유지로 공화당은 미국 연방정부와 의회를 모두 장악했다. 그러나 미국 정치사에서 아주 특이한 지금의 순간에선 백악관과 의회를 동시에 지배한다는 사실이 이전과 다른 의미를 지닐 수 있다. 트럼프가 승리했다는 것은 민주당과 공화당 모두의 기득권층이 패배했다는 뜻이다. 폴 라이언 하원의장(공화당)은 소속당 후보인 트럼프의 지지에 미온적이었다. 히스패닉계 판사에 대한 트럼프의 비판을 “인종차별주의의 전형”이라고 비난하며 ‘트럼프’라는 이름을 입에 담기조차 꺼리는 듯했다. 상원의 미치 매코넬 공화당 원내대표도 상원 선거에 초점을 맞추며 공화당의 대선후보인 트럼프에 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명확하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임원으로 공화당원인 한 인사(아주 희귀한 ‘과’에 속한다)는 선거 결과가 나온 직후 “트럼프의 승리로 공화당은 길 잃은 집권당이 됐다”고 말했다. 어쩌면 라이언 의장은 다음날 아침 일어나 ‘이제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지?’라고 자문했을지 모른다.
라이언 의장은 4년 전 미트 롬니 공화당 대통령후보의 러닝메이트였다(롬니도 이번 선거에서 트럼프 지지를 거부했다). 그는 하원의장일 뿐 아니라 공화당 최고의 정책 전문가로 세금과 복지 개혁을 적극 밀어붙였다. 공화당 주류 대다수처럼 그도 자유무역과 국제문제 개입을 선호한다. 그가 이민 문제에서 매파였던 적도 없다.
라이언 의장의 입장은 공화당 주류의 아이디어를 폭넓게 대변했다. 11월 8일 트럼프가 공화당과 백악관을 모두 장악하기 전까지 그랬다. 공화당 내부의 정치적 분열은 이미 시작됐다. 선거 직전 마지막으로 실시된 뉴욕타임스/CBS뉴스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응답자의 39%만이 트럼프가 당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가 당에 해를 끼쳤다는 비율이 41%로 더 높았다.
트럼프는 11월 9일 새벽 3시 직전 선거승리 연설을 하면서 자신에게 표를 주지 않았던 유권자들을 향해 “서로 협력해 위대한 미국을 통합할 수 있도록 지도편달과 도움을 청한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통령후보를 찍은 5400만 명(대다수는 민주당 지지자)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지만 그를 지지하지 않은 공화당 주류와 보수 정치 평론가 상당수도 거기에 포함된다.
도널드 트럼프의 핵심 지지 기반은 그를 처음부터 공화당 대통령후보로 밀어준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들이다. 그들은 공화당 주류의 세계관 대부분에 (좋게 말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 중 다수는 자유무역에 찬성하지 않으며 불법이민에 강력 반대한다(트럼프 유세에선 기본 구호가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건설하라’였다). 트럼프는 선거운동에서 복지 감축의 필요성에 관해서도 회의적이었다. 하원 세출위원회의 한 직원은 “트럼프의 그런 태도가 하원의 공화당 의원들을 황당하게 만들었다”고 표현했다.
또 트럼프의 지지 기반은 그 자신처럼 미국의 국제적인 개입을 원치 않는다. 트럼프는 외교정책 공약에서 민주당의 클린턴 후보보다 더 좌익으로 기울었다. 그는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나 한국·일본 같은 핵심 동맹관계에서 미국이 얻는 이익이 뭔지에 의문을 표했다.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가 공군력으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는 상황에도 클린턴은 그의 학살 행위를 중단시키기 위해 비행금지구역을 설정하겠다고 말했지만 트럼프는 급진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물리치기 위해 미국도 러시아의 공습에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트럼프는 남중국해에서 미국의 동맹국들과 중국이 벌이는 영유권 분쟁에 미국이 개입하는 문제에서도 회의적인 견해를 피력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남중국해는 미국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라며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 비행기로 18시간 정도 걸렸는데 그 먼 곳의 일에 관여해야 할지 난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선거운동 메시지는 ‘신고립주의’였다. 이제 대통령에 선출된 그가 공화당 주류의 국제개입주의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그들에게 자신의 뜻을 관철시킬 것인가? 공화당의 한 고위인사는 선거 당일 밤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져가자 뉴스위크에 이런 내용의 이메일을 보내왔다. ‘미국 국방부도 지금 민주당만큼이나 충격에 빠졌다. 트럼프는 곧바로 현실에 압도당할 것이다. 고립주의는 실현될 수 없다.’
이번 선거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1980년 로널드 레이건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혁명적인 선거와는 차원이 다르다. 레이건은 선거인단 확보와 득표율 둘 다에서 압승했다. 반면 트럼프는 선거인단 확보에서 압승해 당선됐지만 전체 득표에선 클린턴보다 뒤졌다(미국 선거는 전체 득표수가 아닌 선거인단 확보수로 당락을 결정하며 해당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으면 할당된 선거인단을 싹슬이하는 ‘승자독식제’로 진행된다). 민주당은 선거운동 동안 트럼프가 괴물이라고 확신했다. 무식하며 성차별주의에 빠진 얼간이요 선동가로 핵무기 발사 코드(대통령 고유의 권한을 가리킨다) 근처엔 얼씬도 해선 안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민주당으로선 함께 일하자고 손을 내미는 트럼프 당선자에게 조만간 호의적으로 반응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책 측면에선 초당적인 협력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미국인 다수는 그런 정신을 간절히 원한다. 이번 선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정치 혐오증의 일부분은 거의 모든 문제에서 초당적인 협력이 전혀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클린턴 후보의 충격적인 패배로 민주당에선 이제 좌익이 부상하고 있다. 따라서 적어도 그중 일부는 일자리 창출을 위해 사회기반시설의 대대적인 확충을 원하는 트럼프의 생각에 동조할 수 있다(물론 민주당의 환경보호주의파는 강하게 반대할 것이다). 더구나 민주당의 좌익은 클린턴에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지지를 철회하도록 강요했다. 트럼프도 그런 자유무역협정을 원치 않는다.
물론 문제는 ‘트럼포노믹스(Trumponomics)’의 그 양대 측면이 실제로 바람직한 정책인지 여부다. 또 트럼포노믹스의 셋째 측면은 법인세와 소득세 개혁으로 민주당 대다수는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의 당선은 전후 시대 들어 이어져온 미국 정책의 핵심 신조에 종말을 고했다. 열린 국제무역 시스템을 계속 확장시키는 것을 말한다. 실제로 그것이 미국의 세계적 영향력에서 핵심을 이뤘다. 핵무기만큼이나 미국을 초강대국으로 만들어준 요인이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트럼프 승리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초기 반응은 불길했다. 선거 당일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져가는 동안 다우 선물지수는 700포인트 이상 급락했다.
따라서 정치적·군사적 경험이 없는 사업가 출신으로선 처음으로 미국 대통령에 선출된 트럼프에게 미국민이 갖는 의문은 이럴 것이다. 선거운동에서 본 바로 그 트럼프가 미국을 통치하는 트럼프가 될 것인가? 중국 상품에 35%의 관세를 부과해 진정으로 중국과 무역전쟁을 감수할 것인가? 그로 인해 선거 당일에 나타난 증시 하락은 아이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대규모 증시폭락이 촉발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미 막대한 적자인 상황을 더 악화시키지 않고 대규모 사회기반시설 확충과 국방비 증액, 복지 지출 유지를 어떻게 약속할 수 있는가?
트럼프에게 보기 좋게 당한 워싱턴 정가의 내부자들은 그가 결코 무리수를 둘 수 없으며 그러지도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트럼프는 누가 자신을 찍어줬는지 잘 안다. 또 서부 펜실베이니아, 동부 오하이오, 미시간, 위스콘신 주에 사는 백인 근로계층 유권자들은 트럼프가 무역과 사회기반시설 확충에서 제시한 공약을 이행하길 바란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은 트럼프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낄 것이다.
트럼프는 베스트셀러 ‘거래의 기술’(이재호 옮김, 살림 펴냄)을 쓴 것으로도 유명하다. 거래를 성사시키는 수완과 그런 능력을 자랑하는 것이 트럼프를 ‘트럼프답게’ 만들었다. 지금 워싱턴 정가는 충격에 빠졌다. 민주당은 맹렬히 반발하고 공화당의 다수도 회의론을 펼칠 것이다. 따라서 이제 바로 그 수완이 궁극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이전의 테스트와는 비교도 안될 것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가 자신이 주장한 바로 ‘그 사람’이라고 믿어보자며 위험을 감수하기로 결단 내렸다. 그가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 수 있다’고 한번 믿어주기로 한 것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에 선출됨으로써 ‘그는 아니야’라고 생각하던 수많은 회의론자의 생각을 뒤엎었다. 앞으로 4년 동안 그는 계속 그런 ‘거래의 기술’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 빌 파월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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