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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분사 그 후] 흩어지면 산다? 비(非) 조선 부문 생존이 관건

[현대중공업 분사 그 후] 흩어지면 산다? 비(非) 조선 부문 생존이 관건

그룹 6개로 쪼개 각자도생 전략 … 노동조합 반대도 넘어야 할 산
최악의 수주절벽 앞에서 생존이 화두가 된 ‘공룡’ 현대중공업이 위기 타계 전략으로 분사 카드를 내놓았다. 거대한 몸집을 6개로 나눠 각자도생하는 전략이다. 조선 부문과 비조선 사업 부문을 분리해 각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 목표다. 이 같은 결정은 현대중공업 그룹 지배구조의 대대적인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11월 15일 현대중공업을 조선ㆍ해양ㆍ엔진(존속법인 현대중공업), 전기전자(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 건설장비(현대건설기계), 로봇(현대로보틱스) 등 4개의 사업부를 수평적 형태의 회사로 인적분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태양광 발전사업(그린에너지) 부문과 선박사후관리부분(서비스)은 각각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과 신설법인 중 하나인 현대로보틱스의 자회사가 된다. 분사를 위해선 내년 2월 27일 예정된 주주총회를 거쳐야 한다. 이어 내년 4월 1일 최종 분할될 예정이다. 존속법인인 현대중공업은 내년 5월 10일 재상장되고 3개의 신설 법인들은 같은 날 상장된다.
 내년 4월 최종 분할
전격적인 분사 결정은 조선업계나 증권가에서 예상한 것보다도 많이 앞당겨진 것이다. 앞서 증권가 등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사업 재편과 구조조정과 함께 지배구조 개편, 지주회사 전환 등을 전망하는 분석이 자주 나왔다. 현대중공업은 ”현재 사업 본부로 나뉘어져 있는 부문을 별도의 회사로 만들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도록 경영 체제를 확립해 나가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그동안 조선업 구조개편 국면에서 업계가 취한 행보가 비주력 업체 정리에 그쳤다면, 독립회사로 인적분할되는 이번 결정은 보다 공격적인 조치라는 게 현대중공업 측 설명이다.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현대종합상사·현대기업금융·현대기술투자·현대자원개발의 계열 분리를 진행해 왔다. 현대아반시스를 매각했고, 호텔사업 독립경영 체제를 만들었다. 이밖에 현대커민스, 독일 야케법인, 중국 태안법인을 청산해 비주력 사업 정리도 마치며 다양한 방식의 ‘군살 빼기’ 작업을 진행해왔다.

그러나 세계 조선업계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수주 실적도 미흡해 추가 조치가 진행됐다. 지난 11월 말까지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의 수주 실적을 모두 합해 27억 달러에 그쳤다. 이는 애초 목표한 수주액(197억 달러)의 13.7%에 불과하다.

비조선 사업 부문의 분사는 앞서 현대중공업이 채권단에 제출한 자구 계획의 마지막 단계, 즉 가장 최악의 상황에서 취할 조치였다. 회사로써는 선제 조치를 취하면서 대외신인도를 높이고 미래 경쟁력을 확보할 의지를 보였다는 설명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회사가 당장 내년에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데 함께 공멸의 길을 겪을 수도 있다는 판단에 분사 시기를 앞당기게 됐다”고 말했다

분사 발표 이후 후속 조치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중공업은 분사 발표 꼭 한 달 만인 12월 15일 그룹의 기술경영 콘트롤타워 역할을 맡을 조직 신설을 발표했다. 이와 함께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기술 중심의 경영혁신을 추진하는 내용을 담은 혁신안도 공개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기술 혁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혁신안에는 현대중공업 기획실 내에 그룹의 기술경영 콘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기술·ICT기획팀’을 신설 등을 담았다. 기술·ICT 팀은 제조업 혁신의 핵심키워드로 부상한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한 제품 및 서비스의 스마트화를 추진한다. 현대중공업을 제조 중심에서 ICT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조치다.
 현대중 “다같이 공멸의 길 갈 수 없다”
또 경기도 성남시 백현지구 일대에 ‘현대중공업그룹 통합R&D센터(가칭)’도 만들어진다. 통합 센터는 각 사업부문이 분리된 뒤 지금까지 축적된 기술력 분산을 막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통합R&D센터는 그룹의 제품 개발 관련 기초연구를 하고 미래 신사업을 창출하는 신기술 확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성남시와 통합R&D센터 설립 업무협약(MOU)를 체결하고 사업부지가 확정되면 설계와 건설 등을 거쳐 이르면 오는 2020년 준공할 예정이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급변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해 모든 기업이 기술 혁신을 통한 변화를 서두르고 있다”며 “기술과 인력 등 그룹 R&D 자원의 효과적인 운영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위상을 새롭게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분사 뒤 과연 비조선 분야의 신설 법인이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관론도 있다. 올 들어 9월까지 현대중공업 매출액에서 주력 부문인 조선·해양·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58%)을 넘는다. 전기전자·건설장비·그린에너지 등의 매출을 다 합해도 전체의 11.8% 정도다. 로봇은 그동안 엔진사업부의 일부였고, 서비스는 이제 막 출범한 부문으로 실적이 없다.

특히 현대건설기계의 주력 사업부문이 될 건설장비 부문은 현재 국내외 상황이 좋지 않아 앞으로 갈 길이 험난하다. 현대중공업 건설장비 부문은 지난해 내내 적자를 봤다. 선박 사후 관리나 그린에너지도 부문도 당장 수익을 기대하긴 어려운 실정이다. 현대중공업 측은 분사 뒤 독립적 경영체제를 확립하면 상황이 달라질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그동안 성격이 다른 사업들을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함께 운영해 왔지만 조선 위주의 사업 체계 때문에 비효율이 많았다”고 말했다. 매출 비중이 적은 사업체가 주력에서 소외돼 독자적인 경쟁력 확보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의 극심한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분사 발표 직후부터 “분사를 통한 구조조정을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는 “회사의 분사는 노조 힘을 약화하고 분사 뒤 지분 매각 등을 염두에 둔 것”이라며 부분 파업 등을 벌이고 있다. 노사의 의견차를 좁히기가 어려워 현재로는 임단협 연내 타결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업계에선 앞으로 현대중공업이 현대로보틱스를 지주회사로 두는 형태로 전환할 것으로 보고 있다. 현대로보틱스에 현대오일뱅크의 지분과 차입금 2조원, 현대중공업 자사주 13.4%가 편입돼 지주회사가 되기 위한 준비는 완료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현재 현대중공업그룹 지배구조는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실질적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의 주주 구성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10.2%), 현대미포조선(8%), 아산복지재단 및 나눔 재단(3.2%), KCC(7%), 국민연금(5.3%), 자사주(13.4%) 등으로 분포돼 있다. 즉, 대주주 지분율이 낮다. 더군다나 민주당이 발의한 대기업의 순환출자 고리를 금지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형태로는 대주주의 지배력이 더욱 약화된다. 3세 승계까지 염두에 둔다면 어떤 형태로든 대책이 필요하던 차에 분사가 결정된 것이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현대중공업은 지배구조 변환을 사업부문의 구조조정과 연계시키면서 명분과 실리를 얻으려고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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