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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오판이 오히려 IT 업계엔 호재?

트럼프의 오판이 오히려 IT 업계엔 호재?

과거로 시곗바늘 되돌리려는 그의 싸움은 더 풍요로운 미래 앞당길 수 있어
기존 산업이 점차 해체되면서 수많은 옛 회사가 무너지지만 진보적인 새 기업도 많이 생겨난다. 사진은 승차공유 서비스업체 우버.
도널드 트럼프는 사회적 경련 현상을 상징한다.

그가 미국의 신임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세계는 그의 내각이 나이 많은 백인 억만장자로 채워지는 것을 지켜봤다(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정부 이후 최다 ‘백인 남성 장관’ 기록을 세웠다). 또 ‘미국의 학살’을 주제로 한 그의 섬뜩한 취임연설도 들었다(그는 지금까지 미국이 국내 산업을 희생하면서 외국의 산업을 번창케 했고, 자국의 군사력을 고갈시키면서 다른 나라의 군대를 지원했다며 “그런 미국에 대한 학살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모든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은 21세기가 펼쳐지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막으려는 세력의 마지막 지도자임이 분명하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어쩌면 자신도 모르게 제2차 세계대전 이래 기술의 발달 측면에서 나타나는 최고의 호재가 될 수도 있다(물론 그 과정에서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키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다시 말해 만약 그가 기술의 발달에 대한 반동을 너무 극단적으로 이끌어 그 운동이 완전히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가 그리는 어떤 암울한 그림보다 훨씬 더 나은 미래가 더 빨리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다. 똘똘 뭉쳐 트럼프에게 저항하던 IT 업계도 완전히 돌변해 그에게 감사를 표할지 모른다.

트럼프는 대통령으로서 취한 초기 행동과 선언(무역협정을 파기하라! 미국이 최우선이다! 경제에 도움이 안 돼도 무조건 일자리를 미국으로 가져와라!)에서 이미 역사의 잘못된 편에 자리매김했다. 그는 미래를 완전히 오판하고 있다. 미국의 전설적 가수 겸 영화배우 프랭크 시내트라가 1957년 로큰롤 음악을 두고 “악랄하고 추악하며 퇴폐적이고 사악한 음악의 표현 형태로 절대 오래 가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했지만 지금 어떻게 됐는지 보라. 그와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의 판단도 완전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날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기술 발달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면 그런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이건 정치적 주장도, 공화당이나 민주당에 관한 문제도 아니며 오로지 불가피성에 관한 문제다. 세계는 급진적으로 새로운 디지털 시대로 진입하는 중이다. 그 과정에서 20세기에 우리가 세운 산업 질서가 무너져 내린다. 공장을 기반으로 하는 경제는 서서히 사라져간다. 종이 신문과 종이 지도가 향수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런 전환을 막는 데 완전히 실패한다면(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가차없이 다가오는 미래를 거부하려고 두팔 걷어붙이고 싸우는 보수파와 포퓰리스트 세력은 파국을 맞을 것이다. 미디어 스타트업 리인벤트의 CEO이자 저술가인 피터 레이든은 “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우익 보수 정치를 한 세대 이상 멀리 치워버릴 운송 수단이 됨으로써 미국과 세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애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을 제31대 미국 대통령 허버트 후버에 견줬다. 후버가 대통령에 선출된 것은 1928년이었다. 당시도 기술이 일상생활과 사업의 모든 측면에서 극적인 변화를 일으키던 시기였다. 1900년대 초 약 30년에 걸쳐 자동차와 비행기, 전화, 전력공급망이 미국 사회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1930년대의 삶은 1800년대 말의 삶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완전히 달라졌다. 상무장관까지 지내며 업계와 긴밀한 관계를 구축한 극단적 보수주의자였던 후버는 이런 급속한 변화에 대한 반발의 거센 물결을 타고 대통령에 선출됐다. 그러나 1929년 주식시장이 폭락하면서 그는 곧바로 실패의 길을 걸었다.

시사주간지 유에스 뉴스 앤 월드 리포트는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 톱10에 관한 기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후버 대통령의 정책상 최대 실수는 보호관세법을 도입한 것이다. 그로 인해 국제 무역전쟁이 촉발됐고 대공황은 더욱 악화됐다.” 트럼프의 행보와 섬뜩할 정도로 비슷하지 않은가? 후버 대통령의 실패로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던 보수파는 1952년까지 정권에서 연거푸 밀려났다.

지금의 기술적 변화도 규모 면에서 후버 대통령 시대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우리 삶은 바로 10년 전인 2007년과 크게 다르다. 그땐 스마트폰, SNS, 클라우드 컴퓨팅이 걸음마를 시작하려는 단계였다. 앞으로 10년만 더 지나면 당시의 삶은 사실상 현대 문명을 거부하며 오지에 사는 부족민의 생활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인공지능(AI) 기술의 발전과 자율주행차의 등장, 드론을 이용한 물품 배달, 국적과 상관없는 비트코인 같은 디지털 통화의 부상, 모든 개인의 건강에 관한 비밀을 풀 수 있는 200달러짜리 유전자 검사의 보편화를 목격하고 있다. 일부 지역에선 태양 에너지가 사상 최초로 탄소를 태워 생산한 에너지보다 더 싸졌다. 석유 지배의 종말을 예고하는 현상이다.

이런 신기술은 우리의 생활방식을 바꾸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글로벌 경제까지 변화시킨다. 기존의 산업이 하나씩 해체되면서 수많은 옛 회사가 무너지지만 대담하고 진보적인 새로운 기업도 많이 생겨난다. 세계에서 가치가 가장 높은 기업체의 순위 목록을 보면 시대가 얼마나 빨리 바뀌는지 한눈에 알 수 있다. 2006년 기업가치 톱4는 엑슨모빌, 제너럴 일렉트릭, 마이크로소프트, 시티그룹이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외엔 전부 한 세기 이상 된 회사들이었다. 그로부터 10년 뒤인 2016년의 톱4는 애플, 알파벳(구글의 모회사), MS, 아마존이었다. 전부 신경제 기업이다.

물론 이런 변화는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소프트웨어가 다양한 작업을 자동화시키면서 많은 일자리가 사라진다. 지금은 대학에 다니지 않은 사람이 가진 단순반복·비숙련 일자리가 그 대상이지만 앞으론 전문직과 창의적인 일자리도 자동화될 전망이다. 2015년 영국에서 열린 창업경진대회 ‘스타트업 배틀필드’의 우승을 차지한 주크덱(Jukedeck)은 AI를 이용한 맞춤형 배경음악 제작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작곡가를 대체할 수 있도록 해준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이트사(Eatsa) 같은 자동화된 무인 식당은 간편하지만 종업원을 고용하지 않아 일자리를 많이 줄인다.
이 회사의 사이트에 등록해 장르, 모드, 시간, 템포 등을 설정하면 몇 십초 되지 않아 ‘나만의 배경 음악’이 작곡돼 연주된다(실제 이 사이트에서 작곡된 음악을 들어본 결과 사람이 작곡한 음악과 구별하기 어려운 정도로 섬세하고 정교했다는 평이 많다). 이런 변화에서 잘못된 쪽에 서 있는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끼며 분노한다. 그들이 구식 경제의 일자리를 되찾아 주겠다고 약속한 지도자를 지지하는 것도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신기술은 언제나 이전보다 더 나은 시대를 약속한다. 역사를 돌아보면 기계를 이용한 작업의 자동화와 무역의 확대는 사람들의 깊은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일자리와 더 큰 번영을 일궈냈다. 그처럼 우리가 AI를 잘 활용하면 앞으로 암을 극복하고, 기후변화의 피해를 줄이며, 도시를 적절히 관리하고, 먼 우주를 탐사할 수 있을 것이다. 유전체학은 질병이 발생하기 전에 예방할 수 있도록 해줌으로써 의료 비용을 더 낮추는 열쇠가 될 것이다. 신기술이라고 좋은 점만 있는 건 아니지만 거의 전부 이전의 기술보단 더 낫다.

그럼에도 반동 작용은 불가피하다. 지금 우리는 베네수엘라 출신 경제학자 카를로타 페레스가 정의한 ‘기술혁명의 전환점’ 한가운데 있다. 그 전환점에선 기술이 우리 사회가 적응하지 못할 정도로 너무 앞서 나가면 정부가 그 변화의 속도를 늦추는 역할을 한다. 변화의 속도가 빠를수록 우리는 반동 운동을 더 강하게 이끄는 지도자를 뽑을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이 트럼프처럼 급진적으로 복고주의적인 인물을 대통령으로 선출했다는 사실은 기술이 미국 사회보다 너무 빨리, 너무 멀리 앞서 나간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지만 반동 작용은 일시적이다. 그건 예외 없는 진실이다. 페레스가 저서 ‘기술혁명과 금융자본(Technological Revolutions and Financial Capital)’에서 지적했듯이 그런 반발은 사회에 이롭게 작용할 수 있다. 기술이 사회에 맞춰 진전 속도를 조절하고, 좀 더 평등하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도 그런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하지만 기술의 진전은 곧 다시 시작된다. 반대 운동은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과거와 함께 쓸려내려가 사라진다.

기술의 부상은 새로움을 원하는 젊은 층의 부상과 종종 일치한다. 지금 미국에선 디지털 시대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가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면서 창업도 시작한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밀레니엄 세대는 미국의 이전 세대에 비해 학력이 높고, 인종적으로 다양하며, 세계화된 사고방식을 갖고 있으며, 돈보다 목적의식을 중시한다. 그런 특성을 가진 그들이 대도시로 대거 몰려든다.

그렇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역사의 어느 쪽에 위치할까? 선거에서 그를 지지한 유권자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여론조사기관 퓨 리서치 센터에 따르면 대졸자는 트럼프보다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9%포인트 차). 대학을 나오지 않은 유권자는 클린턴보다 트럼프 후보를 더 많이 지지했다(8%포인트 차). 1980년 이래 출구조사에서 대학을 졸업한 유권자와 대학을 나오지 않은 유권자 사이의 격차가 가장 큰 선거였다.
젊은 유권자들은 트럼프보다 클린턴 후보를 18%포인트 차로 더 많이 지지한 반면, 65세 이상은 트럼프 후보에게 크게 쏠렸다. 미국 전체 지도에서 표시되는 개표 현황을 지켜본 사람이라면 잘 알 듯이 클린턴 후보는 거의 모든 대도시에서 승리한 반면, 트럼프 후보는 나머지 시골 지역을 휩쓸었다. 따라서 트럼프는 확고하게 과거의 편에 선 듯하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과거가 트럼프에게 확고하게 매달려 있는 것 같다.

리인벤트의 레이든 CEO는 “조만간 트럼프 대통령은 21세기의 성장하는 정치계층 전부를 완전히 돌이킬 수 없도록 소외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럴 경우 이미 40%까지 떨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도는 역대 최저치로 추락할 수 있다.

세계 도처의 극우 운동에서도 같은 패턴이 나타난다. 영국에선 국민투표에서 브렉시트[유럽연합(EU) 탈퇴]에 찬성한 유권자들이 미국에서 트럼프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특성을 그대로 가진 듯하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이 코너에 몰렸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가 대통령에 선출된 것은 사회적인 경련 현상 때문이었을 뿐이다. 아무리 트럼프라고 해도 도도한 추세의 물결을 거스를 순 없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변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성격이다. 어쩌면 그는 갑자기 반(反)진보 포퓰리즘을 버리고 전향적인 정책으로 돌아서서 빛나는 새로운 사회가 꽃피울 수 있도록 도울지 모른다.

아니면 그는 미국 사회를 엄청난 곤경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사회적 경련 현상은 전쟁과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 1900년대 초의 기술 혁명은 세계의 질서를 뒤집고 두 차례의 파멸적인 세계대전으로 이어졌다. 이번 세기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 벌어지면 세계적인 핵전쟁이 문명을 초토화할 것이다. 그럴 경우 우리 사회는 옛날처럼 땅에 막대기로 그어가며 알고리즘을 푸는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다.

우리에게 운이 따른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는 다음 시대로 달려가는 경주에서 잠시 멈춰 숨을 고르며 속도를 조절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자율주행차 대신 핵전쟁으로 파괴된 문명의 잔해 속에서 소달구지를 끄는 신세가 돼선 안 된다.

- 케빈 메이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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