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밍웨이·스타인벡이 자주 드나들던 뉴욕의 100년 전통 술집 ‘첨리스’, 새 운영자 맞아 어떻게 변했을까 보수공사 후 새로 문을 연 첨리스는 예전보다 더 세련된 분위기로 젊은 손님이 더 많아졌다.미국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 있는 레스토랑 겸 바 ‘첨리스(Chumley’s)’는 금주령 시대인 1922년 문을 열었다. 베드포드 거리의 연립주택 사이에 자리 잡은 이곳은 어니스트 헤밍웨이, 존 스타인벡, 윌라 캐더, 윌리엄 포크너 등 유명 작가들의 단골집이었다. 2000년대 초 첨리스를 처음 찾았을 때 그곳은 파크 슬로프나 이스트 빌리지의 자칭 문학 카페(또는 바)들보다 훨씬 더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당시 첨리스는 문인들의 술집이라고 내세우기에는 너무 오래되고 규모가 작았다. 유명한 작가 손님들의 책 커버들이 벽면을 장식하긴 했지만 동네 소방관 등 뉴욕이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낸 보통사람들의 술집으로 변해 있었다.
이 술집엔 배로우 거리 쪽으로 비밀 입구가 하나 있었다. 친구들을 이끌고 신성하리만치 고요한 파멜라 코트를 지나 맥주 냄새가 진동하는 아늑한 동굴 안으로 들어가노라면 그리니치 빌리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 듯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곳에서 잉글리시 머핀 안에 끼워 내놓는 버거는 일미였다.
하지만 2007년 첨리스의 한쪽 벽이 허물어졌다. 첨리스의 오랜 역사를 생각하면 놀랍지 않았지만 그곳을 아끼던 사람들에겐 충격적인 일이었다. 첨리스는 그 이듬해 보수 공사를 마치고 다시 문을 열려고 했지만 허가 문제와 이웃과의 마찰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뉴욕에는 첨리스처럼 지역 개발과 치솟는 부동산 임대료로 곤란을 겪는 유서 깊은 술집이 많다. 2006년엔 그리니치 빌리지의 ‘시더 태번(Cedar Tavern)’이 아파트 건설에 밀려 문을 닫았다. 잭슨 폴록과 마크 로스코 등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위대한 미술가들의 단골집으로 알려졌던 곳이다. 또한 1963년부터 배우와 문인들이 자주 찾았고 톰 울프의 소설 ‘허영의 불꽃’에도 등장했던 바 ‘일레인스(Elaine’s)’는 그곳을 운영하던 일레인 카우프만이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2011년 문을 닫았다.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 겸 바로 알려졌던 ‘브리지 카페(The Bridge Cafe)’는 2012년 초대형 태풍 샌디로 심각하게 파손된 뒤 4년이 넘도록 문이 닫혀 있다. P&G, ‘올 스테이트(All State)’ 같은 어퍼 웨스트 사이드의 대중적인 레스토랑 겸 바들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첨리스 역시 다시 문을 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해 여름 뉴욕타임스는 첨리스의 소유주 밀러가 알레산드로 보르고니온과 계약을 맺어 그에게 재개업과 운영을 맡기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보르고니온은 최근 초밥집 ‘스시 나카자와(Sushi Nakazawa)’를 열어 유명해졌다. 그곳의 저녁 식사비는 150달러로 1961년 밥 딜런이 웨스트 4번가에서 살았을 때 낸 월세의 3배에 가깝다.
난 보르고니온이 첨리스의 리모델링과 운영을 맡았다는 소식에 실망했다. 그는 뉴욕에서 한몫 잡아 보려는 뜨내기 장사꾼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예전의 첨리스에 한번도 가보지 않았다고 말하는 걸 듣고 뉴욕의 진정한 면모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또 새로 문 여는 첨리스는 ‘스테로이드제를 투여한 것처럼 강력해질 것’이라는 그의 말은 무슨 의미인지 헷갈릴 뿐 아니라 걱정스럽기도 했다. 스테로이드제는 햄버거나 사람 모두 피해야 할 약물 아닌가? 난 그 인터뷰 기사를 트위터에 올리고 이런 댓글을 달았다. “첨리스의 운영을 이런 사기꾼에게 맡기느니 차라리 문을 다시 열지 않는 게 낫겠다.” 예전의 단골 손님이었던 작가들의 사진과 책 커버들이 첨리스의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하지만 첨리스는 지난해 가을 다시 문을 열었다. 난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12월의 어느날 밤 뉴스위크 동료 조시 사울과 그곳을 찾았다. 사울도 나처럼 타블로이드 언론 출신이며 예전의 첨리스에 드나들던 고객이었다.
새 첨리스의 첫 인상은 예전과 사뭇 달랐다. 젊고 매력적인 종업원들이 그들과 같은 부류로 보이는 손님들을 접대했다. 식당 안이 전보다 더 작고 어두웠다. 하지만 벽면에 걸린 책 커버들과 소방관들의 사진은 여전했다.
“예전보다 작아졌군.” 목재 테이블에 앉으며 내가 말했다.
“아니야. 전과 똑같은데.” 사울이 되받았다.
내가 맞았다. 경제 전문 잡지 블룸버그 퍼수츠의 케이트 크레이더는 “벽의 붕괴로 큰 손상을 입은 첨리스 내부는 높이와 너비가 적어도 10% 줄었다”고 보도했다. 내 계산에 따르면 손님들은 예전보다 34% 더 젊고 57% 더 매력적이었다. 또 칵테일은 75% 더 혁신적이고 음식은 184% 더 비싸졌으며 파멜라 코트를 통과하는 ‘비밀’ 입구는 100% 접근이 불가능해졌다. 칠을 하지 않고 표면에 손님들의 이름이 새겨진 예전의 테이블 중 하나는 화장실 안 유리 진열장 속에 고대 유물처럼 전시됐다.
음식은 뭘 먹었느냐고? 물론 버거다. 존 로켓은 남성 잡지 GQ에 “이 버거는 깜짝 스타가 될 것”이라고 썼다. 마치 신인 농구 스타 이야기를 하듯이 말이다. 골수를 듬뿍 발라 구운 패티 두 장과 아삭아삭한 샬롯(미니 양파)이 들어간 이 버거는 25달러다.
테이블 간격이 좁아 간혹 옆자리 손님들의 이야기가 들리기도 한다. 우리 옆 테이블의 옷을 잘 차려 입은 여자 손님 2명은 우리가 뭘 먹을까 의논하는 소리를 듣고는 “이 집 버거는 뉴 욕에서 최고”라고 추천해줬다. 또 다른 테이블에서는 젊은 청년과 그의 아버지가 식사를 하고 있었다. 콧수염을 기른 아버지는 극작가이고 청년은 사진가로 최근에 잡지 뉴요커의 레스토랑 비평에 실린 첨리스의 사진을 찍었다. 그 청년 역시 첨리스의 버거를 칭찬했다. 내가 근처 ‘코너 비스트로(Corner Bistro)’의 버거가 여전히 뉴욕 최고 아니냐고 말했더니 그 젊은이는 무슨 시대에 뒤진 소리냐고 펄쩍 뛰었다.
어쩌다 보니 술집으로 잘 알려진 첨리스에 관한 기사를 술이 아니라 음식 이야기로 시작했다. 예전의 첨리스에서 증류주를 팔았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난 그곳에서 맥주 이외의 다른 술은 안 마셨던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식당 한가운데 칵테일 코너가 있다. 맨해튼의 다른 술집들처럼 맛이 매우 좋고 비싸다. ‘리틀 드링크(Little Drink)’(데메레라 럼, 앰버 아그리콜 럼, 포모, 앙고스투라, 오렌지 비터스, 압생트가 들어간 칵테일)는 추운 날씨에 밖에서 기다리느라 꽁꽁 언 몸을 녹이는 데 그만이었다. 가격은 한 잔에 16달러로 메뉴에 있는 다른 독특한 칵테일들과 동일했다. 레드 와인은 한 병에 400달러나 했다.
나와 사울이 첨리스에 갔던 날 프로퍼블리카(미국의 비영리 온라인 신문)는 ‘뉴욕의 부동산 임대 안정화 체제가 서서히 무너져간다’는 기사를 보도했다. 이런 현상은 1994년 ‘빈집 임대료 규제 철폐(vacancy decontrol)’에 대한 시의회의 표결로 시작됐다. 최근 맨해튼의 부동산 임대료 중간값이 4000달러에 이르면서 부동산 업계가 승리하고 중산층이 패했다(1994년에는 월 400달러면 스튜디오를 빌릴 수 있었다). 상용 건물 임대료도 치솟았다. 다시 말해 예전의 첨리스와 새로운 첨리스 중 어느 쪽이 더 좋으냐를 따지기보다는 새 첨리스와 치폴레(멕시칸 패스트푸드점)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예전의 첨리스 고객 중 일부는 새 첨리스에 마음을 붙인 듯하다. 나처럼 말이다. 보르고니온은 “고객 중에는 예전에 거의 매일 밤 첨리스를 찾았던 단골들이 있다”며 “그들 모두 지금의 첨리스를 만족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골수를 듬뿍 발라 구운 패티 두 장이 들어가는 첨리스의 버거는 뉴욕 최고로 꼽힌다.사울은 예전 첨리스의 단골 고객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어쨌든 지금의 첨리스를 만족스럽게 여겼다. 첨리스에 다녀온 지 며칠 후 사울은 내게 이런 메일을 보냈다. “첨리스는 성장했다. 예전의 첨리스는 11년 전 내가 가난한 대학생이었을 때 첫 데이트 장소였다. 붉은색 벨벳 커튼을 젖히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메뉴에서 값싼 셰퍼드 파이를 발견하고 얼마나 다행이었던지. 새 첨리스는 예전보다 더 반짝거리고 더 비싸다. 하지만 예전처럼 특유의 빛과 대화로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 준다. 헤밍웨이와 스타인벡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첨리스는 성장했다. 투지를 조금 내려놓고 재킷을 걸쳤다. 뉴욕의 다른 많은 곳처럼. 그리고 나처럼.”
잘된 일인 것 같다. 과거 뉴욕타임스 기사를 잠깐만 훑어봐도 예전의 첨리스가 번성했던 ‘투지의 도시’ 뉴욕에 관한 낭만적인 환상은 금세 깨진다. 1960년엔 한 작가가 첨리스에서 체스 시합을 하던 중 분노한 선원에게 살해됐다. 4년 뒤엔 한 조각가가 첨리스에서 술을 한잔하고 길을 나서다가 강도의 총에 맞았다. 1974년엔 메이시 백화점의 카피라이터를 살해한 헤로인 중독자가 첨리스의 보일러실에 숨어 있다가 발견됐다. 1986년 한 신문에서는 “에이즈 확산으로 웨스트 스트리트의 클럽 여러 곳이 문을 닫았으며 세인트 베로니카 교회엔 호스피스가 문을 열었다”고 보도했다.
우리가 성장하듯 우리가 살고 또 살았던 도시들도 성장한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고급주택화(gentrification)라고 부른다. 하지만 그것은 부자와 빈자를 막론하고 세월이 흐르면서 똑같이 일어나는 변화에 대한 값싼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미혼 때는 새벽 4시까지 밖으로 돌아다니던 사람들이 지금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가 유치원에 다니는 자녀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첨리스는 오랫동안 우리 곁에 있었고 잠시 사라졌다가 이제 새로워져서 다시 나타났다. 예전과 같으면서 또한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시간은 앞으로만 움직인다. 그러니 맥주와 버거를 즐기면서 이 순간을 만끽하자.
- 알렉산더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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