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투자 동향
미술품 투자 동향
“갤러리를 찾은 사람들이 금세 피로감을 느끼는 것은 무지해서가 아니다. 끌리는 그림이 없어서다.” 미국의 소설가 트레이시 슈발리에는 “음식을 기호에 따라 선택하듯 미술품도 자신이 끌리는 것이 최고”라고 말한다. 거리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줍는 여인들> 이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 의 모작(模作)을 가짜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모작이라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만족하면 그만이다. 좋은 미술품의 정의는 불분명하며, 해석의 잣대도 시대와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프랑스 미술의 혁명가 마르셀 뒤샹 이후 미술은 심미적 가치를 채우는 도구에서 이념 표현의 장으로 영역이 넓어졌다. “신을 본 적이 없어 신을 그릴 수 없다”는 구스타프 쿠르베의 외침은 근대 신성(神聖) 붕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미술은 시대를 투영하는 도구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돈을 표현하는 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미술의 상업화를 꼭 불편하게만 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최근 ‘미술 한류’라는 말이 등장했다. 2011년 구겐하임 뉴욕의 ‘이우환 영혼의 창조전’, 2014년 프랑스 베르사유궁전 특별전 이후 세계적으로 ‘단색화’가 주목받으면서 미술 애호가들 사이에서 한국 미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고유한 언어와 철학을 가진 제3세계 미술로 인정받으며, 단색화는 물론 고미술·근현대화까지 수집가들의 소장품 목록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국내 미술경매 시장 규모는 1720억원.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위작 논란으로 지난해 (1880억원)보다는 다소 줄었다. 그러나 역대 최다인 1만9841점의 작품이 출품돼 1만3705점이 낙찰됐다. 한국 미술이 연일 화제에 오르며 대중적 저변 역시 넓어졌다. 재테크를 위해 경매장을 찾는 사람도 적지 않게 늘었다.
미술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단연 단색화다. 한국 미술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상화 화백이 1983년 갤러리 현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벽지 같은 그림을 누가 돈 주고 사겠느냐?”며 관람객의 반응은 냉랭했다. 1974년 작고한 김환기 화백은 1964년 첫 개인전에서 뉴욕타임스 미술 기자 스튜어트 프레스턴으로부터 “갑갑한 느낌에 풍경들은 안료의 반죽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 같다”는 혹평을 들었다. 무미건조한 색채와 도형의 불규칙성이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이제는 자기성찰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평가로 바뀌었다.
단색화는 밑그림을 그리는 듯 마는듯하고 채색 역시 단조롭다. 그러나 단조로움과 무규칙 속에서 자기 성찰과 수행의 철학을 드러낸다. 복잡한 삶을 사는 현대인의 성찰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는 한편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생각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무념무상과 삶의 단조로움, 욕망 절제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1950~60년대 유럽의 ‘모노크롬(단색을 사용한 미술 사조)’에서 파생된 사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노크롬은 규칙성이 있는 데 비해 단색화는 규칙이 없다. 삼라만상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물 간, 사람 간 관계를 독특한 패턴으로 표현한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비교되기도 한다. 모노하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데 비해 단색화는 단조로움을 지향한다. 캔버스에 한지나 물감을 칠했다가 긁어 없애는 과정이 결국 ‘공(空)’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복잡 오묘함 때문에 단색화라는 일차원적인 명명(命名)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현재 김환기·정상화를 비롯해 박서보·이우환·하종현·윤형근·김기린 등이 단색화의 대표 화가들이다. 지난해 국내 미술경매의 작가별 낙찰액(화가 기준) 순위 1~4위를 단색화 화가가 휩쓸었다. 낙찰가도 100호(160.2×130.3㎝)를 기준으로 2~3년 전 3000만~4000만원에서 최근에는 수억원대로 치솟았다. 그중에서도 김환기 화백이 정점에 서 있다. ‘과연 누가 단색화를 살까’라는 대중의 의구심을 2015년 10월 서울옥션 홍콩 경매에서 전면 점화 <19-Ⅶ-71 #209>로 일소시켰다. 47억2100만원에 낙찰돼 박수근의 <빨래터> (낙찰액 45억2000만원)를 누르며 경매가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지난해 4월과 5월에는 <무제(untitled)> , <무제 3-v-71 #203> 이 각각 48억6750만원, 45억6240만원에 팔렸고, 6월에도 <무제 27-vii-72 #228> 가 54억원에 낙찰됐다. 10월에는 홍콩 경매에 출품된 <12-V-70 #172>가 63억 2626만원에 낙찰되며 최고가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 밖에 정상화 화백의 <무제 05-3-25> 도 지난해 11억 4200만원에 팔렸고,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no.780217> 는 5억7085만원에 낙찰됐다. 박서보·이우환 등 한국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은 400여 점이나 팔리며 단색화 열풍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박서보 화백의 경우 영국 최대 화랑인 런던 화이트 큐브갤러리에서 한국인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당시 출품한 단색화 16점이 모두 개막전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뜨거운 관심의 이면에는 단색화가 10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평가를 누리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단색화의 역사가 짧고 이론적 기반이 약하며, 아직까지 미학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 ‘캔버스에 물감만 묻혀도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2000년대 중반과 비슷한 상황이란 평가도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강남 쏠림’ 현상처럼 풍부한 자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일종의 대세론이 맞물려 단색화 열풍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국내 경매사들이 만든 일종의 ‘기획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단색화가 좋은 그림이며,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라는 의문은 든다. 미술 시장에서는 작품의 미적 가치와 투자 가치는 다르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 가치는 세속적 영역으로 해석되며 환산 기준은 돈일 수밖에 없다. 좋은 작품이 반드시 비싼 것만은 아니며, 최고가의 작품이 꼭 명작은 아니라는 얘기다. 미술경매는 그동안 자본의 논리에 의해 움직여왔다. 한국에서 미술 경매가 꽃을 피운 것은 외환위기로 재정난에 빠진 기업들이 소장하던 그림을 현금화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은 데에서 비롯됐다. 순수 미술이 장악하던 1979년에는 신세계 미술관 첫 경매 낙찰률이 30%에도 못 미쳤다. 단색화를 둘러싼 여러 논쟁이 있지만 현 시점에서는 투자 가치가 가장 높은 미술품이라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권력은 모두가 있다고 생각하는 곳에 있다’는 말이 있듯 그림도 많은 사람이 ‘가치가 있다’고 판단하는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미 대세로 자리잡은 단색화는 현재 미술계로부터 미적 가치를 재평가 받는 중이다.
단색화와 더불어 최근 한국 미술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흐름은 ‘양극화’다. 돈이 돈을 벌고, 어느 한쪽으로 심한 쏠림이 나타나는 양극화는 경제·교육·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의 관심이 가격을 만들어가는 미술 시장에서 대중의 관심이 단색화로 쏠리며 신진 작가와 야수파·입체파 등의 현대미술은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 최병식 경희대 미대 교수는 “서울·홍콩 경매에서 단색화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위 0.01%의 얘기일 뿐, 한국 미술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애호가들이 실종됐다. 작가층이 얇아지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최근 고미술과 근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키우고 있다. 태어난 지 오래된 미술품은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작고 가치가 높은 작품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단색화가 주식시장의 블루칩 종목처럼 천정부지 가격이 뛰고 있는 데 비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면, 고미술은 은행 예금처럼 가격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이다. 완만하지만 가격도 꾸준히 오른다. 지난해 9월 진행됐던 서울 옥션에서 141회 미술품 경매에서도 1100만원에 시작한 오윤 화백의 <할머니> 가 4300만원에 낙찰됐고, 시초가가 1억4500만원이었던 단원 김홍도의 <서호방학도> 는 5억3000만원에 팔렸다. 작자 미상의 <백자청화거북형 연적> 도 1800만원에서 6800만원으로 약 4배 비싼 값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날 단색화인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 1~81> 이 9억5000만원에서 경매를 시작해 18.9%(1억8000만원)의 웃돈이 붙은 11억3000만원에 낙찰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가격 상승률이다. 그만큼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미술경매에서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신작보다는 구작이, 생존 작가보다는 타계한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술 경매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다수의 고미술 특별 기획전이 열리는 등 단색화에 몰렸던 관심이 여러 작품으로 넓어지고 있다”며 “단색화의 값이 많이 올라 애호가들의 접근이 어려워졌고, 젊은 애호가들이 늘어난 점이 가장 특징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또 경매는 어디까지나 중고 시장이다. 대부분 제품이 사람들의 손을 많이 타면 가격이 떨어지는 것과는 반대로 미술품은 많은 수집가를 거칠수록 가격이 오른다. 그만큼 가치가 높다고 평가받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인·기업가·연예인 등 유명인사가 소장했던 그림이거나 드라마 같은 스토리가 있다면 가격은 더욱 치솟는다. 또 소장 이력은 작품의 진위여부를 가를 수 있는 유일한 객관적 자료라는 점이 가장 중요하다. 잘 그린 위작(僞作)은 원작자도 진짜 자기 작품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실제 네덜란드의 거장 카럴 아펄은 경매에 출품된 자신의 위작을 진품이라고 판단해 줬다가 망신을 당하기도 했다. 지난해 천경자 화백의 <미인도> 와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no.780217> 가 위작 논란에 휩싸이면서 소장 이력이 미술품을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으로 재조명 받고 있다.
특히 소장보다는 투자를 위한 작품 구입이라면 갤러리보다는 경매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갤러리와 달리 경매장은 한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품 가격은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성보다도 환금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다. 미술 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얻기란 복권에 당첨되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미술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명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사이즈가 작더라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는 게 좋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굳이 경매장을 찾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다. 출품작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에서 큐레이터로부터 작품 정보를 상세히 들을 수도 있다. 참여의 창구는 열렸으며, 지식과 정보를 얻기에도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손이천 K옥션 경매사는 “경매 전에 작품을 여러 번 봐야 유리하고, 작품에 대한 반응과 사람들의 평가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전시장을 찾아 실물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년부터 세법이 바뀌어 6000만원 이상의 미술품을 거래할 때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저금리로 갈 곳 잃은 자금이 미술 분야로 몰리는 것은 한국이나 해외나 마찬가지다. 유럽순수미술재단에 따르면 예술품 시장 규모는 510억 유로(약 61조6564억 원, 2014년 기준)로 커졌다. 거래 건수는 4000만 건에 달한다. 폴 고갱의 <언제 결혼하니(nafea faa ipoipo?)> (3억 달러)와 피카소의 <알제의 여인들(les femmes d’alger) 연작> (1억7936만 달러) 등 명작들의 가치도 계속 오르고 있다. 한국과 차이가 있다면 현대화와 근대화·추상화와 고미술이 골고루 인기를 얻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세계 최대의 경매회사인 소더비에서 가장 고가에 낙찰된 작품은 7053만 달러(약 802억원)를 받은 추상주의 미국 화가 사이 트웜블리의 <칠판> 이었다.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클로드 모네의 <지베르니 석양의 건초더미> 가 8140만 달러(약 926억원)의 최고가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미술경매의 때아닌 호황을 두고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탈세와 돈세탁의 온상이 된 고가 미술품 시장”이라는 비판을 내놓기도 했다. 특히 중국과 중동의 신흥부호들이 미술경매의 큰 손으로 뛰어든 점도 시장 확대에 영향을 줬다. 박가영 한국투자증권 투자정보부 연구원은 “수퍼 콜렉터의 등장과 문화육성정책, 아시아 현대미술 성장 등이 미술 시장 성장을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올해는 미술경매가 한층 더 뜨거울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며 미술품 수요도 더욱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소더비의 태드 스미스 회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선 당선 직후 뉴욕 소더비 옥션 이브닝세일 매출이 예상보다 13%나 많았다”며 “불확실성 확대로 출품을 미루던 콜렉터들도 적극적으로 출품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해 온라인 낙찰 비중이 전체의 20%에 달하는 등 허들이 낮아지고 접근 채널이 다양해진 점도 시장에는 긍정적이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지베르니> 칠판> 알제의> 언제> 점으로부터> 미인도> 묘법> 백자청화거북형> 서호방학도> 할머니> 점으로부터> 무제> 무제> 무제> 무제(untitled)> 빨래터> 미인도> 모나리자>이삭줍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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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장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은 단연 단색화다. 한국 미술의 위상을 한 단계 올려놨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상화 화백이 1983년 갤러리 현대에서 첫 개인전을 가졌을 때 “벽지 같은 그림을 누가 돈 주고 사겠느냐?”며 관람객의 반응은 냉랭했다. 1974년 작고한 김환기 화백은 1964년 첫 개인전에서 뉴욕타임스 미술 기자 스튜어트 프레스턴으로부터 “갑갑한 느낌에 풍경들은 안료의 반죽 속에서 옴짝달싹 못하는 것 같다”는 혹평을 들었다. 무미건조한 색채와 도형의 불규칙성이 어떤 예술적 가치가 있느냐는 지적이 이제는 자기성찰의 철학을 담고 있다는 평가로 바뀌었다.
단색화는 밑그림을 그리는 듯 마는듯하고 채색 역시 단조롭다. 그러나 단조로움과 무규칙 속에서 자기 성찰과 수행의 철학을 드러낸다. 복잡한 삶을 사는 현대인의 성찰에 대한 욕망을 일깨우는 한편 인간의 복잡한 감정과 혼란스러운 생각을 묘사한다고 볼 수 있다. 이를 한 가지 색으로 표현하는 것은 인간의 무념무상과 삶의 단조로움, 욕망 절제의 철학을 담고 있다고 여겨진다. 1950~60년대 유럽의 ‘모노크롬(단색을 사용한 미술 사조)’에서 파생된 사조로 해석되기도 한다. 하지만 모노크롬은 규칙성이 있는 데 비해 단색화는 규칙이 없다. 삼라만상과 인간 군상의 모습을 드러낸다. 사물 간, 사람 간 관계를 독특한 패턴으로 표현한 일본의 ‘모노하(物派)’와 비교되기도 한다. 모노하는 화려함을 추구하는 데 비해 단색화는 단조로움을 지향한다. 캔버스에 한지나 물감을 칠했다가 긁어 없애는 과정이 결국 ‘공(空)’의 상태를 표현한다고 보기도 한다. 이런 복잡 오묘함 때문에 단색화라는 일차원적인 명명(命名)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제 제기도 있다.
무규칙성과 단조로움, 자기성찰의 미학
이 밖에 정상화 화백의 <무제 05-3-25> 도 지난해 11억 4200만원에 팔렸고, 이우환의 <점으로부터 no.780217> 는 5억7085만원에 낙찰됐다. 박서보·이우환 등 한국 단색화 화가들의 작품은 400여 점이나 팔리며 단색화 열풍이 3년째 이어지고 있다. 박서보 화백의 경우 영국 최대 화랑인 런던 화이트 큐브갤러리에서 한국인 첫 개인전을 열었는데, 당시 출품한 단색화 16점이 모두 개막전에 팔리기도 했다.
그러나 뜨거운 관심의 이면에는 단색화가 10년이 지나도 지금과 같은 평가를 누리겠느냐는 회의론도 나온다. 단색화의 역사가 짧고 이론적 기반이 약하며, 아직까지 미학적 가치를 제대로 평가 받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시중에 자금이 넘쳐나 ‘캔버스에 물감만 묻혀도 팔린다’는 이야기까지 나오던 2000년대 중반과 비슷한 상황이란 평가도 있다. 부동산시장에서 나타나는 ‘강남 쏠림’ 현상처럼 풍부한 자금과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일종의 대세론이 맞물려 단색화 열풍을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심지어 국내 경매사들이 만든 일종의 ‘기획물’이라는 시각도 있다.
“미학적 평가·검증 없어 거품 꺼질 것” 회의론도
단색화와 더불어 최근 한국 미술계를 표현하는 중요한 흐름은 ‘양극화’다. 돈이 돈을 벌고, 어느 한쪽으로 심한 쏠림이 나타나는 양극화는 경제·교육·사회 등 분야를 막론하고 사회 전반에 나타나고 있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대중의 관심이 가격을 만들어가는 미술 시장에서 대중의 관심이 단색화로 쏠리며 신진 작가와 야수파·입체파 등의 현대미술은 철저하게 외면 받고 있다. 최병식 경희대 미대 교수는 “서울·홍콩 경매에서 단색화가 열풍을 일으키고 있지만, 어디까지나 상위 0.01%의 얘기일 뿐, 한국 미술의 전반적인 분위기와는 맞지 않는다”며 “장기적 안목을 갖고 다양한 장르를 즐기는 애호가들이 실종됐다. 작가층이 얇아지고 있는 이유”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최근 고미술과 근대미술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키우고 있다. 태어난 지 오래된 미술품은 가격이 떨어질 가능성이 작고 가치가 높은 작품은 수익을 낼 수 있는 기회도 얼마든지 있다. 단색화가 주식시장의 블루칩 종목처럼 천정부지 가격이 뛰고 있는 데 비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감을 안고 있다면, 고미술은 은행 예금처럼 가격 변동성이 작고 안정적이다. 완만하지만 가격도 꾸준히 오른다. 지난해 9월 진행됐던 서울 옥션에서 141회 미술품 경매에서도 1100만원에 시작한 오윤 화백의 <할머니> 가 4300만원에 낙찰됐고, 시초가가 1억4500만원이었던 단원 김홍도의 <서호방학도> 는 5억3000만원에 팔렸다. 작자 미상의 <백자청화거북형 연적> 도 1800만원에서 6800만원으로 약 4배 비싼 값에 새 주인을 찾았다. 이날 단색화인 박서보 화백의 <묘법 no. 1~81> 이 9억5000만원에서 경매를 시작해 18.9%(1억8000만원)의 웃돈이 붙은 11억3000만원에 낙찰된 것과 비교하면 상당히 높은 가격 상승률이다. 그만큼 사려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미술경매에서도 안정을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신작보다는 구작이, 생존 작가보다는 타계한 작가의 작품이 더 많은 관심을 받는다.
미술 경매사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다수의 고미술 특별 기획전이 열리는 등 단색화에 몰렸던 관심이 여러 작품으로 넓어지고 있다”며 “단색화의 값이 많이 올라 애호가들의 접근이 어려워졌고, 젊은 애호가들이 늘어난 점이 가장 특징적인 변화”라고 설명했다.
양극화 심화로 고미술·근대미술 블루칩 부상
특히 소장보다는 투자를 위한 작품 구입이라면 갤러리보다는 경매를 이용하는 편이 좋다. 갤러리와 달리 경매장은 한 작품에 대한 대중의 평가를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미술품 가격은 정찰제가 아니기 때문에 합리적인 가격에 작품을 구입할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하다. 물론 작품성보다도 환금성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좋다. 미술 투자를 통해 일확천금을 얻기란 복권에 당첨되기보다 어렵다는 것이 미술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무명 작가를 발굴하기보다는 사이즈가 작더라도 유명 작가의 작품을 사들이는 게 좋다. 최근에는 온라인을 통해 굳이 경매장을 찾지 않더라도 참여할 수 있다. 출품작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전시회에서 큐레이터로부터 작품 정보를 상세히 들을 수도 있다. 참여의 창구는 열렸으며, 지식과 정보를 얻기에도 좋은 환경이 조성된 셈이다. 손이천 K옥션 경매사는 “경매 전에 작품을 여러 번 봐야 유리하고, 작품에 대한 반응과 사람들의 평가 등의 정보를 얻기 위해 전시장을 찾아 실물을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2013년부터 세법이 바뀌어 6000만원 이상의 미술품을 거래할 때 차익의 20%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점도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신흥 부호 가세로 글로벌 시장 성장일로
올해는 미술경매가 한층 더 뜨거울 전망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당선 이후 경기 회복 기대감이 커지며 미술품 수요도 더욱 늘어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소더비의 태드 스미스 회장은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의 대선 당선 직후 뉴욕 소더비 옥션 이브닝세일 매출이 예상보다 13%나 많았다”며 “불확실성 확대로 출품을 미루던 콜렉터들도 적극적으로 출품에 나설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지난해 온라인 낙찰 비중이 전체의 20%에 달하는 등 허들이 낮아지고 접근 채널이 다양해진 점도 시장에는 긍정적이다.
- 김유경 기자 neo3@joongang.co.kr 지베르니> 칠판> 알제의> 언제> 점으로부터> 미인도> 묘법> 백자청화거북형> 서호방학도> 할머니> 점으로부터> 무제> 무제> 무제> 무제(untitled)> 빨래터> 미인도> 모나리자>이삭줍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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