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축구의 기본에 초점 맞춰야”
“중국은 축구의 기본에 초점 맞춰야”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출신의 쑨지하이, 자금력 앞세운 외국 용병 스카웃 경쟁에 쓴소리 쑨지하이(39)만큼 중국 축구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중국 축구의 전설로 불리는 그는 지난해 말 21년 선수 경력을 마감하고 은퇴했다. 중국 동북부 랴오닝성의 다롄 스더 FC에서 프로축구 선수 생활을 시작한 그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크리스탈 팰리스를 거쳐 맨체스터 시티에서 뛰었다. 맨체스터 시티에서 2002년부터 2008년까지 6년간 130경기를 뛰면서 4골을 기록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 골을 넣은 최초의 중국인 선수였으며 2002년 10월, 버밍엄시티와의 2:0 승리 경기에서 헤딩골을 기록했다.
아울러 중국이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역대 수비수 중 한 명인 쑨지하이는 2015년 9월에 맨체스터 시티 명예대사로 임명됐으며, 10월엔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9년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잠시 뛰다가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중국 프로축구에 거대 자본과 외국인 인기 선수들이 용병으로 유입되면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다. 그 이래 중국 축구클럽, 특히 슈퍼리그 소속 팀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럽의 전통 깊은 팀에 갈수록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은 스포츠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만 유독 축구에선 저조한 실적을 보인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2월 ‘중국 축구 개혁 종합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목표는 앞으로 4년 동안 유소년 축구선수 3000만 명을 육성하고, 앞으로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며, 2050년까지 ‘세계의 축구 강국’이 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중국은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외국인 명감독과 선수들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중국 슈퍼리그의 외국 용병 스카웃에는 천문학적 이적료와 연봉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미드필더 출신인 오스카는 이적료 6000만 파운드(약 890억원)에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중국 상하이 상강으로 자리를 옮겼다. 첼시의 스트라이커 디에고 코스타도 중국 톈진 콴잔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액수의 이적료를 제안 받았지만 아직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월엔 맨체스터 시티 출신인 카를로스 테베즈가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 중국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그가 주급으로 61만5000파운드(약 9억1000만원)를 제안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테베즈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중국 슈퍼리그가 이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세계 축구계에 파란을 일으키자 급기야 중국 정부마저 우려를 표명하며 무분별한 투자를 제한할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 체육총국은 최근 “구단의 지나친 지출과 과도한 연봉의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고액 계약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를 고려 중이며 투자 제한을 통해 합리적인 계약을 맺게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중국 축구클럽의 지도자를 꿈꾸는 쑨지하이는 거액이 오가는 선수 이적에는 축구의 기본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3월 3일 시작되는 중국 슈퍼리그의 새 시즌을 앞두고 그로부터 자신의 경력과 중국 축구의 앞날에 관해 들어봤다.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했나?
1997년 중국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고 훈련하러 영국에 처음 갔다. 그 다음 곧 다롄 스더에서 잉글랜드 크리스털 팰리스로 적을 옮겼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테리 베너블스 감독 아래 코치를 맡고 있던 테드 벅스턴이 중국 국가대표팀의 자문역으로 중국에 온 것이 계기였다. 그는 내가 디비전 원에서 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베네블스 감독에게 추천했다.
내겐 모든 게 신선했다. 생활 습관, 관행, 연습이 중국과 달랐다. 디비전 원은 2부 리그였지만 중국에서보다는 리듬이 빠르고 선수들이 더 강했다. 내겐 큰 도전이었지만 난 실력을 닦았다.
사실 영국에 가기 전에 약간 망설였다. 연봉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생소한 나라에 가서 적응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한 시즌을 지내고 나자 영국 축구 시스템, 분위기와 팬 등 모든 것이 너무 그리웠다. 특히 나는 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더 나은 수준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맨체스터 시티를 택했다.
팀 동료들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나?
난 영어를 거의 못했다. ‘생큐, 하우 두 유 두?’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영국에 도착하기 전엔 언어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구는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다는 게 좋은 점이다. 언어를 몰라도 상관없다. 규칙이 어디서든 똑같기 때문이다. 출전을 많이 하면서 코치와 팬들이 내 실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생활의 어려운 점도 서서히 극복할 수 있었다.
10대 시절 브라질 훈련 캠프 팀에 선발되지 못해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1990년대 중반 중국의 청량음료 제조사 젠리바오 그룹은 중국 10대 선수들을 뽑아 브라질에 보내 5년 동안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후원했다).
1977년 이후 출생한 선수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프로그램이라 난 나이가 경계선에 걸려 브라질에 가는 젠리바오 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득이 됐다. 그런 좌절을 겪으며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중국 축구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당시 중국 슈퍼리그의 투자와 시설은 지금처럼 좋지 않았지만 리그 수준은 상당했다. 물론 슈퍼리그는 2001~2002년 경기 조작와 심판 부정 등 스캔들에 휘말렸다. 일부 선수는 경기를 두고 벌이는 불법 도박에 연루됐다.
케빈 키건과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 시절 맨체스터 시티에서 뛴 소감은?
그 시기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경기장에서 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키건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이며 좀 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피어스 감독은 집중력과 의지력이 매우 강했다. 각각 고유한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잉글랜드 전통 축구 스타일에 속했다. 난 그들과 함께 뛰면서 정말 행복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 국가대표팀에 소속된 경험은 어땠는가?
사실 내가 경기에 투입된 시간은 짧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의 코스타리카팀을 상대한 첫 경기에서 전반전 20분이 경과했을 때쯤 발목 부상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중국팀의 일원이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경기에서 뛴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 팀은 월드컵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다른 팀에 비하면 우린 초등학교 1학년생과 같았다. 특히 우리는 우승팀 브라질과 3위 팀 터키가 들어 있는 ‘죽음의 조’에 속했다. 우린 경험을 쌓고 배우기 위해 경기를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물론 좀 더 잘해서 골을 넣거나 비길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컸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중국 축구에서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가?
그때 만해도 슈퍼리그의 광저우 에버그란데만이 비교적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었다. 2009년 중국에 돌아갔을 땐 다른 클럽들은 그 정도로 투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슈퍼리그에서 뛴 마지막 3년 동안 중국 클럽들은 투자와 선수 영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각 클럽의 전략과 사업철학은 서로 달랐다.
거액의 연봉을 받는 외국인 스타 용병들의 중국 슈퍼리그 유입을 어떻게 보나?
유명한 외국인 선수와 감독들이 중국에 오는 것은 중국 축구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영입 경쟁을 벌이며 외국인 선수와 감독을 통해 중국 축구를 바꾸려는 것은 옳지 않다. 진정한 변화와 개혁은 유소년 선수 배양, 감독과 심판의 자질 향상 등 하부구조에서도 필요하다. 바람직한 축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외국인 선수나 감독의 영입보다 훨씬 중요하다. 영입된 외국인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면 그건 좋다. 하지만 거액의 연봉에 맞지 않는 실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도 적지 않다. 보상을 적게 받는 중국인 선수들은 그런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맥이 빠진다.
현재 스타 외국인 선수들에게 제시되는 연봉이 지속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는가?
연봉과 투자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면 궁극적으로 유소년 선수 배양에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뛰어난 선수가 소수일 땐 몸값이 높은 게 옳다. 재능 있는 중국인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면 외국인 선수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엔 중국 축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중국은 축구의 기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선수와 감독, 심판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훈련을 강화하고 경기장을 더 만들어야 한다. 또 어린이들이 축구를 즐기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팬 문화도 더 건전해질 것이다. 중국 축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 테디 커틀러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아울러 중국이 유일하게 본선에 진출한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도 국가대표 선수로 활약했다. 팬들에게 사랑받는 역대 수비수 중 한 명인 쑨지하이는 2015년 9월에 맨체스터 시티 명예대사로 임명됐으며, 10월엔 잉글랜드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2009년 셰필드 유나이티드에서 잠시 뛰다가 중국으로 돌아간 그는 중국 프로축구에 거대 자본과 외국인 인기 선수들이 용병으로 유입되면서 일어난 엄청난 변화를 목격했다. 그 이래 중국 축구클럽, 특히 슈퍼리그 소속 팀은 막대한 자금력으로 유럽의 전통 깊은 팀에 갈수록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중국은 스포츠에서도 뛰어난 기량을 보이지만 유독 축구에선 저조한 실적을 보인다.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지난해 2월 ‘중국 축구 개혁 종합 방안’을 내놓았다. 이에 따르면 중국의 목표는 앞으로 4년 동안 유소년 축구선수 3000만 명을 육성하고, 앞으로 월드컵 대회를 유치하며, 2050년까지 ‘세계의 축구 강국’이 되는 것이다. 그에 따라 중국은 세계무대를 주름잡는 외국인 명감독과 선수들 영입에 사활을 걸고 있다.
특히 중국 슈퍼리그의 외국 용병 스카웃에는 천문학적 이적료와 연봉이 제시된다. 예를 들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미드필더 출신인 오스카는 이적료 6000만 파운드(약 890억원)에 스탬퍼드 브리지에서 중국 상하이 상강으로 자리를 옮겼다. 첼시의 스트라이커 디에고 코스타도 중국 톈진 콴잔으로부터 어마어마한 액수의 이적료를 제안 받았지만 아직 합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월엔 맨체스터 시티 출신인 카를로스 테베즈가 아르헨티나의 보카 주니어스에서 중국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그가 주급으로 61만5000파운드(약 9억1000만원)를 제안 받았다고 보도했지만 테베즈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부인했다.
중국 슈퍼리그가 이처럼 막강한 자금력을 동원해 세계 축구계에 파란을 일으키자 급기야 중국 정부마저 우려를 표명하며 무분별한 투자를 제한할 움직임을 보인다. 중국 체육총국은 최근 “구단의 지나친 지출과 과도한 연봉의 외국인 선수 영입을 통해 사회적 문제가 나타나고 있다”면서 “고액 계약에 대한 제한이나 규제를 고려 중이며 투자 제한을 통해 합리적인 계약을 맺게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중국 축구클럽의 지도자를 꿈꾸는 쑨지하이는 거액이 오가는 선수 이적에는 축구의 기본에 대한 투자가 반드시 따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3월 3일 시작되는 중국 슈퍼리그의 새 시즌을 앞두고 그로부터 자신의 경력과 중국 축구의 앞날에 관해 들어봤다.
잉글랜드 축구에 대한 첫 인상은 어떠했나?
1997년 중국 국가대표팀으로 월드컵 예선을 준비하고 훈련하러 영국에 처음 갔다. 그 다음 곧 다롄 스더에서 잉글랜드 크리스털 팰리스로 적을 옮겼다. 크리스털 팰리스의 테리 베너블스 감독 아래 코치를 맡고 있던 테드 벅스턴이 중국 국가대표팀의 자문역으로 중국에 온 것이 계기였다. 그는 내가 디비전 원에서 뛸 수 있다고 생각하고 베네블스 감독에게 추천했다.
내겐 모든 게 신선했다. 생활 습관, 관행, 연습이 중국과 달랐다. 디비전 원은 2부 리그였지만 중국에서보다는 리듬이 빠르고 선수들이 더 강했다. 내겐 큰 도전이었지만 난 실력을 닦았다.
사실 영국에 가기 전에 약간 망설였다. 연봉은 별 차이가 없었지만 생소한 나라에 가서 적응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한 시즌을 지내고 나자 영국 축구 시스템, 분위기와 팬 등 모든 것이 너무 그리웠다. 특히 나는 내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 더 나은 수준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맨체스터 시티를 택했다.
팀 동료들과의 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나?
난 영어를 거의 못했다. ‘생큐, 하우 두 유 두?’ 정도만 할 수 있었다. 영국에 도착하기 전엔 언어가 큰 문제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축구는 세계 어디를 가나 똑같다는 게 좋은 점이다. 언어를 몰라도 상관없다. 규칙이 어디서든 똑같기 때문이다. 출전을 많이 하면서 코치와 팬들이 내 실력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낯선 타국 생활의 어려운 점도 서서히 극복할 수 있었다.
10대 시절 브라질 훈련 캠프 팀에 선발되지 못해 실망했다는 이야기를 어느 기사에서 본 적이 있다(1990년대 중반 중국의 청량음료 제조사 젠리바오 그룹은 중국 10대 선수들을 뽑아 브라질에 보내 5년 동안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후원했다).
1977년 이후 출생한 선수에게만 자격이 주어지는 프로그램이라 난 나이가 경계선에 걸려 브라질에 가는 젠리바오 팀에 선발되지 못했다. 하지만 그게 오히려 득이 됐다. 그런 좌절을 겪으며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을 때 중국 축구의 수준은 어느 정도였나?
당시 중국 슈퍼리그의 투자와 시설은 지금처럼 좋지 않았지만 리그 수준은 상당했다. 물론 슈퍼리그는 2001~2002년 경기 조작와 심판 부정 등 스캔들에 휘말렸다. 일부 선수는 경기를 두고 벌이는 불법 도박에 연루됐다.
케빈 키건과 스튜어트 피어스 감독 시절 맨체스터 시티에서 뛴 소감은?
그 시기는 내게 매우 중요했다. 경기장에서 만이 아니라 인생에서도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키건 감독은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의 전설이며 좀 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피어스 감독은 집중력과 의지력이 매우 강했다. 각각 고유한 장점이 있었다. 하지만 둘 다 잉글랜드 전통 축구 스타일에 속했다. 난 그들과 함께 뛰면서 정말 행복했다.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최초의 중국 국가대표팀에 소속된 경험은 어땠는가?
사실 내가 경기에 투입된 시간은 짧았다. 2002년 한일 월드컵 본선의 코스타리카팀을 상대한 첫 경기에서 전반전 20분이 경과했을 때쯤 발목 부상으로 교체됐다. 하지만 지금까지 유일하게 월드컵 본선에 진출한 중국팀의 일원이 된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경기에서 뛴 시간은 길지 않았지만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리 팀은 월드컵에서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다른 팀에 비하면 우린 초등학교 1학년생과 같았다. 특히 우리는 우승팀 브라질과 3위 팀 터키가 들어 있는 ‘죽음의 조’에 속했다. 우린 경험을 쌓고 배우기 위해 경기를 한다는 자세로 임했다. 물론 좀 더 잘해서 골을 넣거나 비길 수 있었다면 하는 아쉬움도 컸다.
영국에서 중국으로 돌아갔을 때 중국 축구에서 일어난 변화를 느낄 수 있었는가?
그때 만해도 슈퍼리그의 광저우 에버그란데만이 비교적 많은 투자를 하는 편이었다. 2009년 중국에 돌아갔을 땐 다른 클럽들은 그 정도로 투자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슈퍼리그에서 뛴 마지막 3년 동안 중국 클럽들은 투자와 선수 영입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하지만 각 클럽의 전략과 사업철학은 서로 달랐다.
거액의 연봉을 받는 외국인 스타 용병들의 중국 슈퍼리그 유입을 어떻게 보나?
유명한 외국인 선수와 감독들이 중국에 오는 것은 중국 축구의 발전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과도하게 영입 경쟁을 벌이며 외국인 선수와 감독을 통해 중국 축구를 바꾸려는 것은 옳지 않다. 진정한 변화와 개혁은 유소년 선수 배양, 감독과 심판의 자질 향상 등 하부구조에서도 필요하다. 바람직한 축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외국인 선수나 감독의 영입보다 훨씬 중요하다. 영입된 외국인 선수가 뛰어난 기량을 보인다면 그건 좋다. 하지만 거액의 연봉에 맞지 않는 실력을 가진 외국인 선수도 적지 않다. 보상을 적게 받는 중국인 선수들은 그런 외국인 선수들을 보면 맥이 빠진다.
현재 스타 외국인 선수들에게 제시되는 연봉이 지속가능한 수준이라고 보는가?
연봉과 투자가 서서히 정상으로 돌아가면 궁극적으로 유소년 선수 배양에서 효과가 나타날 것이다. 뛰어난 선수가 소수일 땐 몸값이 높은 게 옳다. 재능 있는 중국인 선수들이 많이 등장하면 외국인 선수의 수요가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현 추세가 지속된다면 2030년엔 중국 축구가 어떤 모습일지 상상도 할 수 없다. 중국은 축구의 기본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무엇보다 선수와 감독, 심판의 수준을 높일 수 있도록 훈련을 강화하고 경기장을 더 만들어야 한다. 또 어린이들이 축구를 즐기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자연히 팬 문화도 더 건전해질 것이다. 중국 축구는 아직 갈 길이 멀다. 하지만 가능성은 충분하다.
- 테디 커틀러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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