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종교, 그 참을 수 없는 무거움
예수회 선교사들의 얘기 다룬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 ‘사일런스’, 관객 사로잡는 요소 거의 없고 잔인한 고문 장면 많아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신작 ‘사일런스(Silence)’ (국내 개봉 2월 28일)는 아무리 독실한 신앙이라도 시험에 들게 할 만한 수십 년의 극심한 고통과 끈질긴 인내를 다룬 영화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가 1966년 발표한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스콜세지 감독은 1989년 이 소설을 처음 읽고 영화 제작을 결심한 뒤 수십 년 동안 자금 마련에 힘써 왔다. 영화 속 주인공의 이야기만큼이나 힘든 과정이었다. 이 이야기가 마침내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이야기는 164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한다. 독실한 예수회 선교사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프란시스코 가루페(애덤 드라이버)는 일본에서 박해 받는 가톨릭교인들을 돕던 그들의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가 고문을 받고 신앙을 저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일본으로 가서 페레이라를 찾아보기로 하고 예수회에 승인을 요청한다. 나가사키 근처의 해변에 도착한 이들은 교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간다. 마을 주민들은 봉건영주와 사무라이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움에 떨며 밤의 어둠을 틈타 기도한다. 서양인 신부의 존재가 발각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초반의 이 장면들은 스콜세지 감독의 경찰 스릴러 영화 ‘디파티드’(2006)처럼 위험으로 가득 찼지만 의외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펄럭거리는 촛불과 안개, 그림자를 배경으로 박수를 치고 십자가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진흙투성이지만 믿음으로 빛난다. 마치 알프레히트 뒤러(16세기 독일 화가)의 그림처럼 단순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다.
“예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참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고 로드리게스는 말한다.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죄인들을 두루 아우르는 예수회의 가르침이다. ‘비열한 거리’(1973)의 마피아 단원들,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인간 주도의 구원을 꿈꾸는 트래비스 비클, ‘분노의 주먹’(1980)에서 피투성이 순교자처럼 벌을 달게 받는 무명 복서 제이크 라모타 등이다.
‘사일런스’는 스콜세지의 감독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혀 왔던 믿음과 의심의 모순이 넘치는 고차원의 종교 영화다. 두 주인공 중 스콜세지 감독 스타일에 더 어울려 보이는 쪽은 드라이버다. 몹시 쇠약해진 바이런(19세기 영국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처럼 여위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쪽은 아기 사슴 밤비처럼 눈이 크고 수줍은 가필드다. 그는 교활한 종교재판관 이노우에(이세이 오가타)의 손에 걸려든 뒤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 갈등을 일으킨다.오페라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처럼 부채질을 하면서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는 오가타의 모습은 ‘차이나타운’(1974)의 존 허스턴 이후 가장 음흉스럽다. 그는 이 교활한 인물을 뻔뻔하고도 태평스럽게 연기한다. 오가타는 잡혀온 교인들을 고문하면서 그들에게 “왜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느냐?”고 말한다. 마치 고문 과정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고문하는 쪽이라는 투다. ‘카지노’(1995)에서 조 페시가 한 남자의 머리를 기계로 조이는 고문을 하면서 던진 말을 떠올린다.
‘사일런스’는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가톨릭교 포교 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2시간 41분 동안이나 펼쳐진다. 영화에 나오는 예수회 선교사들처럼 스콜세지 감독도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엔 관객을 혹하게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음악이 별로 안 나오고 지저분하고 불결한 장면이 많으며 고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교인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히고 산 채로 화형당하며 도살된 돼지처럼 피 흘리며 죽어간다. 로드리게스는 “신음하는 이들에게 그분의 침묵을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을 원망한다.
영화에는 또 ‘사일런스(침묵)’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신학적인 논쟁이 많이 나온다. 이 논쟁은 로드리게스의 상급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와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독백, 사악한 이노우에와의 정면 대결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간을 잘 선택해서 관람해라. 그리고 관람 뒤엔 아무런 스케줄도 잡지 말아라.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영화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인간 정신의 승리’라는 상투적인 홍보를 늘어놓지만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고 난해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스런 뭔가가 느껴진다. 스콜세지 감독의 최근 작품 대다수는 그가 초기 작품에서 절박하게 집착했던 문제를 그저 건드리는 시늉만 하는 듯했다. ‘사일런스’는 오랜만에 그 초기의 절박함이 다시 드러나는 영화다. 그 결과 거의 신의 은총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 톰 숀 뉴스위크 기자
ⓒ이코노미스트(https://economist.co.kr) '내일을 위한 경제뉴스 이코노미스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야기는 1643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시작한다. 독실한 예수회 선교사 세바스티앙 로드리게스(앤드류 가필드)와 프란시스코 가루페(애덤 드라이버)는 일본에서 박해 받는 가톨릭교인들을 돕던 그들의 스승 페레이라(리암 니슨)가 고문을 받고 신앙을 저버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 말을 믿지 않는 로드리게스와 가루페는 일본으로 가서 페레이라를 찾아보기로 하고 예수회에 승인을 요청한다. 나가사키 근처의 해변에 도착한 이들은 교인들이 모여 사는 작은 마을로 간다. 마을 주민들은 봉건영주와 사무라이들에게 발각될까 두려움에 떨며 밤의 어둠을 틈타 기도한다. 서양인 신부의 존재가 발각되면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다.
초반의 이 장면들은 스콜세지 감독의 경찰 스릴러 영화 ‘디파티드’(2006)처럼 위험으로 가득 찼지만 의외로 감동적이기도 하다. 펄럭거리는 촛불과 안개, 그림자를 배경으로 박수를 치고 십자가를 주고받는 사람들의 얼굴은 진흙투성이지만 믿음으로 빛난다. 마치 알프레히트 뒤러(16세기 독일 화가)의 그림처럼 단순하면서도 시선을 사로잡는 이미지다.
“예수는 선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비참하고 타락한 사람들을 위해 죽었다”고 로드리게스는 말한다. 스콜세지 감독의 영화에 등장하는 죄인들을 두루 아우르는 예수회의 가르침이다. ‘비열한 거리’(1973)의 마피아 단원들, ‘택시 드라이버’(1976)에서 인간 주도의 구원을 꿈꾸는 트래비스 비클, ‘분노의 주먹’(1980)에서 피투성이 순교자처럼 벌을 달게 받는 무명 복서 제이크 라모타 등이다.
‘사일런스’는 스콜세지의 감독 생활 내내 그를 괴롭혀 왔던 믿음과 의심의 모순이 넘치는 고차원의 종교 영화다. 두 주인공 중 스콜세지 감독 스타일에 더 어울려 보이는 쪽은 드라이버다. 몹시 쇠약해진 바이런(19세기 영국 시인 조지 고든 바이런)처럼 여위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이야기의 축을 이루는 쪽은 아기 사슴 밤비처럼 눈이 크고 수줍은 가필드다. 그는 교활한 종교재판관 이노우에(이세이 오가타)의 손에 걸려든 뒤 양심의 시험대에 올라 갈등을 일으킨다.오페라 ‘나비부인’의 나비부인처럼 부채질을 하면서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웃는 오가타의 모습은 ‘차이나타운’(1974)의 존 허스턴 이후 가장 음흉스럽다. 그는 이 교활한 인물을 뻔뻔하고도 태평스럽게 연기한다. 오가타는 잡혀온 교인들을 고문하면서 그들에게 “왜 내 인생을 이렇게 힘들게 만드느냐?”고 말한다. 마치 고문 과정에서 가장 힘든 사람은 고문하는 쪽이라는 투다. ‘카지노’(1995)에서 조 페시가 한 남자의 머리를 기계로 조이는 고문을 하면서 던진 말을 떠올린다.
‘사일런스’는 선뜻 추천하기 어려운 영화다. 17세기 일본을 배경으로 가톨릭교 포교 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2시간 41분 동안이나 펼쳐진다. 영화에 나오는 예수회 선교사들처럼 스콜세지 감독도 고난의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영화엔 관객을 혹하게 할 만한 요소가 거의 없다. 음악이 별로 안 나오고 지저분하고 불결한 장면이 많으며 고문 장면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하다. 교인들이 파도가 몰아치는 바닷가에 세워진 십자가에 못박히고 산 채로 화형당하며 도살된 돼지처럼 피 흘리며 죽어간다. 로드리게스는 “신음하는 이들에게 그분의 침묵을 어찌 설명해야 합니까?”라고 하느님을 원망한다.
영화에는 또 ‘사일런스(침묵)’라는 제목이 무색할 정도로 신학적인 논쟁이 많이 나온다. 이 논쟁은 로드리게스의 상급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와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독백, 사악한 이노우에와의 정면 대결로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봐야 할 이유가 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시간을 잘 선택해서 관람해라. 그리고 관람 뒤엔 아무런 스케줄도 잡지 말아라. 극장을 나온 뒤에도 영화에서 헤어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할리우드는 ‘인간 정신의 승리’라는 상투적인 홍보를 늘어놓지만 한마디로 규정하기 어렵고 난해한 영화다.
하지만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고집스런 뭔가가 느껴진다. 스콜세지 감독의 최근 작품 대다수는 그가 초기 작품에서 절박하게 집착했던 문제를 그저 건드리는 시늉만 하는 듯했다. ‘사일런스’는 오랜만에 그 초기의 절박함이 다시 드러나는 영화다. 그 결과 거의 신의 은총과도 같은 작품이 탄생했다.
- 톰 숀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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