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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논은 ‘제2의 코닥’ 아니다

캐논은 ‘제2의 코닥’ 아니다

로쿠스 반 이페렌 유럽 법인 대표, 연구개발·생명과학 업종 기업 인수 등으로 온라인 선두기업들 따라잡으려 안간힘
캐논의 로쿠스 반 이페렌 유럽 사업부 대표는 디지털 고객과의 새로운 소통 채널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일본 가전 대기업 캐논이 디지털 혁명을 따라잡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감안할 때 유럽 법인 대표는 상당히 쾌활해 보인다. 정중한 태도의 네덜란드 출신 로쿠스 반 이페렌 대표(63)가 영국 런던 서부 스토클리 파크에 있는 널찍한 사무실의 회의 테이블 앞에 앉아 있다. 그는 복사기부터 할리우드 영화제작용 렌즈에 이르기까지 온갖 제품을 생산하는 캐논그룹이 문제 없이 돌아간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시가총액 410억 달러의 캐논이 유력한 제2의 코닥 후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카메라 대기업 코닥은 디지털 사진의 부상으로 몰락했다. 코닥은 남들보다 먼저 그 신기술 특허권을 신청하고도 그와 관련된 미래를 내다보지 못했다. 캐논의 경우엔 이메일의 성장과 보편화된 스마트폰 ‘셀카’가 캐논의 핵심 카메라·프린터 사업에 그런 영향을 미칠지 모른다.

반 이페렌 대표는 “코닥과의 비교는 얼토당토않다”고 말했다. “우리는 새 영역으로 진출하고 있다. 새로운 방식으로 고객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간다.”

그러나 1933년 도쿄에서 정밀렌즈 기업으로 출범한 캐논의 실적을 보면 방심은 금물이다. 지난해 매출이 3조 8000억 엔으로 10.5% 떨어졌다. 순이익은 1510억 엔으로 3분의 1 가까이 감소했다. 흑백 복사기 판매가 줄고 디지털 카메라 시장이 꾸준히 축소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 이프렌 대표는 최신 5개년 계획에 착수한 지불과 12개월 밖에 안 됐음을 강조한다. 국내공장 증설, 연구개발 확대, 상업용 복사기, 네트워크 카메라, 생명과학업종 기업 인수 등이 계획에 포함된다. 지난 3월 초 캐논은 도시바의 의료장비 사업부를 6655억 엔에 인수했다. 경영난에 처한 일본 라이벌 도시바가 미국 원자력 사업에서의 회계 스캔들로 인한 적자를 메우려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반 이페렌 대표가 추진하는 사업 중 하나가 회원제 서비스다. 1990년대 미국 컴퓨터 그룹 IBM이 컨설팅 서비스로 진로를 바꿨듯이 캐논은 하드웨어 판매에 덧붙여 회원제 서비스 판매로 수익 감소를 보완하려 한다. 캐논은 컨설팅과 아웃소싱 등의 사업으로 눈을 돌려 액센추어나 캡제미니 같은 업체들과 경쟁할 작정이다.

반 이페렌 대표는 “기업의 운영비는 통상적으로 5~7%”라고 말했다. “우리가 컨설팅 서비스 또는 그 전체 담당 인력의 인계를 통해 그 비용을 낮춰줄 수 있다. 예컨대 우리는 컬러 복사기가 필요 없는지, 그리고 흑백 복사기로 대체해야 하는지 분석할 수 있다.”

캐논은 또한 대기업의 문서관리 업무를 대행한다. 반 이페렌 대표는 “사무실에서 서류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건 이젠 주지의 사실이다”고 말했다. “사무실에는 두 종류의 서류가 있다. 첫째는 사무실에서 업무용 문서로 사용되다가 작업이 끝나면 버려지는 종이다. 또 하나는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꺼내보는 완성된 저장용 문서다. 저장된 데이터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그리고 우리가 기업의 문서 데이터 관리를 도울 수 있다.”

캐논은 2020년까지 소프트웨어와 서비스 판매를 대략 2배로 늘려 그룹 매출의 절반까지 끌어올리고, 흑백 복사기 판매 감소를 컬러 복사기 매출로 메워 업무용 프린터 사업의 정체된 매출을 증대한다는 야심적인 목표를 갖고 있다.

캐논은 또 카메라 판매감소 대책을 강구한다. 그들은 내년 콤팩트 카메라 매출의 13%, 더 고급 교체형 렌즈 모델의 7% 감소를 예상한다. 그러나 지난해 촬영된 1조 장이 넘는 사진 중 스마트폰을 이용한 사진이 대략 80%선을 넘었다. 반 이페렌 대표는 스마트폰 이용자 1만2000명을 대상으로 자체 실시한 최근의 조사를 인용했다. 그는 “더 좋은 사진을 찍고 싶다는 답변이 30%에 달했다”며 “이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캐논이 2015년 인수한 라이프케이크(Lifecake)를 지목한다. 가족시장을 겨냥해 공개되지 않은 가격에 사들인 런던의 사진공유 앱이다. 부모가 자녀와 가족의 중요한 순간들을 담은 사진을 저장·공유할 수 있다.

실제 이용자가 190만 명에 달하는 이 앱은 그 뒤로 애완동물과 자동차 같은 다른 테마군으로 영역을 넓혔다. 반 이페렌 대표는 그 앱을 가리켜 사진들을 다시는 들여다보지 않는 평범한 이미지에서 다시 소중한 기억들의 보고로 만드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이 충분히 많아진다면 그들이 고품질 카메라 구입에 돈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캐논은 믿는다. 그러나 캐논이 대적하는 기업들은 막대한 기반에 자금이 풍부하고 이용자층을 완벽히 이해하는 기성 소셜네트워크 업체들이다. 예를 들면 페이스북 산하의 사진 공유 플랫폼 인스타그램이다. 리서치 그룹 스태티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월별 실제 이용자수가 6억 명에 달했다. 역설적으로 한때 캐논이 세계 최대 전자업체들에 도전하는 패기만만한 신흥 기업이었던 적도 있었다.
사진공유 서비스 시장은 인스타그램의 독무대다. 2016 리우 올림픽에 출전한 영국 대표팀이 인스타그램에 올린 셀카 사진.
캐논은 1970년대 복사기 시장에 뛰어들어 당시 시장 최대 기업인 미국의 제록스에 도전해 결국 따라잡았다. 연구개발에 돈을 쏟아붓고 특허를 세심하게 관리하면서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계산기·복사기·카메라 전반에 걸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반 이페렌은 자신이 11년 동안 이끌던 네덜란드 업체 ‘오세’가 2010년 경쟁사 캐논에 11억 달러에 넘어갈 때 함께 적을 옮겼다. 그는 아인트호벤공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1978년 오세에 입사했다. 착실히 승진의 사다리를 밟아 올라 1999년 CEO가 됐다. 캐논은 고급 프린팅 시장에서 명성을 얻어 세계 은행의 80%를 고객으로 끌어들였다.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로 은행과 기타 금융회사들이 지출을 삭감하면서 매출이 감소했다.

반 이페렌 대표는 “그 당시 회사가 경영난을 겪었다”며 “파트너의 필요성이 확연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그는 협상팀을 이끌고 18개월에 걸쳐 7개 기업과 비밀 회담을 가진 뒤 캐논과 회사를 합치기로 했다.

그가 2년 동안 통합 작업을 이끈 뒤 2012년 미타라이 후지오 캐논 회장이 그에게 계속해 유럽 사업부 책임자를 맡아 달라고 요청했다. 반 이페렌 대표는 주중에는 켄싱턴에 있는 아파트에서 생활하지만 주말에는 네덜란드 남동부 벤로의 자택에서 가족(부인과 두 자녀)과 함께 지낸다.

1970년대~80년대 기술혁명의 중심이었던 캐논은 이제 온라인 선두기업들을 따라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반 이페렌 대표는 “디지털화로 우리의 비즈니스 모델부터 고객 커뮤니케이션 방식까지 온 세상이 바뀌고 있다”며 “우리가 어떻게 적응하느냐가 문제”라고 말했다. 전 세계 전자업체들이 매일 아침 자신들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 로저 베어드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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