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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셋, 한국경제 | 아동복지 투자 늘리자] 18세 이하 입원진료비는 국가가 책임지자

[리셋, 한국경제 | 아동복지 투자 늘리자] 18세 이하 입원진료비는 국가가 책임지자

입원진료비 지원 땐 비용 연 4600억 … 건보 흑자의 3%만 투자하면 해결
“민구의 꿈이 궁금해요.” 걸그룹 걸스데이의 혜리가 병상에서 민구(11)를 안고 있는 아빠에게 묻는다. 민구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빠와 혜리를 번갈아 본다. 민구는 뇌를 다쳐 말을 못하고 잘 움직이지도 못하는 중병을 앓고 있다. 딱한 사정이 나갈 때마다 TV 화면의 자동응답전화(ARS) 모금 액수가 가파르게 올라간다. 2014년 7월 방영된 KBS 1TV의 ‘사랑의 리퀘스트’의 한 장면이다. 매주 토요일 저녁 이 프로그램이 방영될 때마다 시청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전화기 버튼을 눌렀다. 1997~2014년 868억원을 모금해 의료비·주거비 등으로 지원했다.

‘사랑의 리퀘스트’는 외국에서 보기 힘든 프로그램이었다. 선진국은 아동 진료비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 한국은 이런 제도가 없어 측은지심(惻隱之心·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의존했다. 박근혜 정부는 ‘암·뇌질환·심장병·희귀병 100% 건강보험 보장’으로 제도화를 시도했다.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2004년 3월 어느 날 한순간의 사고가 인천에 사는 민혁(15·가명)이네 가정을 송두리째 바꿔놨다. 생후 18개월 민혁이가 주방과 연결된 문이 열리면서 펄펄 끓는 가마솥에 빠졌다. 전신 85% 화상이었다. 치료비를 대기 위해 서울의 아파트를 팔았다. 아빠 박혁기(54)씨는 민혁의 간병과 재활치료를 보조하기 위해 직장을 관뒀다. 민혁이는 매년 수술을 받는다. 지금까지 17차례 받았다. 한 번에 1400만원이 든다. 박씨는 빌딩 청소와 식당일로 월 100만원을 버는데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정부의 생계비 지원금(68만원)과 초록우산어린이재단 후원금(20만원), 병원이 수시로 연결해주는 수술비 후원금으로 버틴다. 박씨는 “화상 치료비가 건강보험이 안 되는 게 많은 데다 계속 치료해야 하므로 중도 포기하는 사람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며 “후원금을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고 말했다.

저출산이 심화되고 있지만 여전히 민구 같은 아이들이 아파도 걱정 없이 치료받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을 끌어올리려는 노력 못지않게 아이들이 건강하게 자라는 게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중앙일보·JTBC의 국가 개혁 프로젝트 ‘리셋 코리아’ 보건복지분과는 ‘아동 의료비 국가 보장’을 어젠다로 제시했다.
 아동 의료비 지원, 저출산 극복에 도움
송인한(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분과장은 “국가 보장을 통해 아동 복지 투자 확대, 건강지수 향상, 출산율 제고라는 세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의료관리학) 교수는 “모든 어린이가 사회적·경제적·지리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영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아동 의료비 지원 정책이 아이에 대한 사회 투자이고, 양육·건강을 사회가 책임진다는 점에서 찬성한다”며 “장기적으로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

위원들은 18세 이하 아동 입원진료비 95% 보장(5% 환자 부담)을 선호했다. 여기에는 건강보험 진료비뿐만 아니라 비보험 진료비 비용도 포함한다. 입원이 외래 진료보다 중증도가 높은 점을 고려해 외래 진료비는 제외하자고 제안했다. 김윤 교수는 아동의 한 해 입원진료비(104만 건, 2014년 기준)를 기준으로 할 때 4594억원이 필요하다고 추정했다. 환자 부담률을 10%로 하면 2300억원이 필요하다.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언제까지 어린이 병원비를 방송 모금에 의지해야 하는가”라며 “건보 재정 흑자(20조원)의 3%인 5000억원이면 바로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병원 문턱이 낮아지면 불필요한 진료가 늘 수 있는 점을 경계했다. 2006년 6세 미만 무상 입원을 시행했다가 전년에 비해 비용이 11.7%(6~10세는 7.3% 증가) 늘어 2년 만에 폐지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자는 뜻이다. 권용진 서울대병원 교수는 “공공전문진료센터로 지정된 어린이병원의 중증 진료비에 한해 지원하되 연간 환자 부담을 100만원으로 묶자”고 제안했다. 진미정 서울대 소비자아동학과 교수는 “희귀병과 중병 치료비 지원에 집중하되 가족의 간병 부담을 완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스기사] 해외에선 어떻게 - 영국은 16세 이하 약값 부담 ‘제로’
외국에선 아동 의료를 무상으로 보장해주거나 진료비 상한선을 설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공공 의료가 발달한 유럽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지난해 말 발표된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는 19세 미만에게 본인 부담 상한제를 적용한다. 아동은 원칙적으로 진료비를 연간 650유로(약 78만원, 2015년 기준)까지만 내면 된다. 이를 넘어가는 비용은 국가가 모두 부담한다. 제도의 혜택을 받은 아동은 한 해 1만1226명(2013년 기준)으로 적지 않다. 프랑스는 16세 미만에게 본인 부담금 경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들은 어른처럼 ‘주치의’ 제도를 적용받지 않는다. 주치의가 아닌 의사에게 진료를 받아도 건강보험 혜택을 진료비의 70%까지 받을 수 있다. 의사 선택의 폭과 혜택이 상대적으로 넓은 것이다. 이탈리아는 저소득 가정의 6세 이하 아동에게 본인 부담금을 전액 면제해준다. 16세 이하와 장애인·희귀질환자 등 취약 계층은 치과 진료를 무료로 받을 수 있다. 영국은 16세 미만 아동이 약 처방을 받을 경우 본인 부담이 전혀 없다. 또 이탈리아와 마찬가지로 유아·청소년의 치과 진료는 모두 무료로 이뤄진다.

일본도 아동 의료를 적극 보장한다. 중앙 정부는 중증·희귀난치성 질환을 앓거나 장애가 있는 아동의 진료비를 대부분 보장해준다. 한국처럼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적어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 지원 체계도 질환별·증세별로 세분화해 우리보다 보장해주는 폭이 넓다. 김한석 서울대병원 소아과 교수는 “일본은 건강보험으로 거의 모든 치료를 보장할 수 있다. 중증이거나 희귀난치성 질환을 앓는 아동도 기저귀 등 소모품 비용을 빼면 거의 무료로 진료를 받는다”고 말했다. 일본은 비용 지원 외에 인프라에도 많은 투자를 한다. 만성 적자에 시달리는 어린이병원에는 진료 수가를 올려줘 수익성을 맞춰주고 시설 설치도 지원한다. 병원에 가지 않고 집에서 지내면서 치료·간호를 받을 수 있는 재택 의료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정부가 앞장서서 꼭 필요한 아동 의료를 유지하도록 돕는 역할을 맡는 것이다.

하지만 무상 의료에 가까운 국가에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가 종종 부작용으로 나타나곤 한다. 입원을 필요 이상으로 길게 하는 등 꼭 받지 않아도 되는 의료서비스를 추가로 더 받는 일이 생기는 것이다.

김한석 교수는 “일본에서도 응급실이 공짜라서 아이들이 부모 손을 잡고 편하게 드나드는 풍경이 나타나곤 한다. 의료비를 완전 무상으로 하면 모럴 해저드가 나타날 수 있기 때문에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섬세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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