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와 통화한 까닭은] 한·인도, 경제동맹이자 민주주의 가치동맹국
[문재인 대통령, 모디 인도 총리와 통화한 까닭은] 한·인도, 경제동맹이자 민주주의 가치동맹국
문 대통령, 주변 3강 정상과 통화 후 이례적으로 모디와 전화 외교... 21세기형 강대국 인도와 협력 강화는 저성장 한국의 탈출구 19대 대통령에 오른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취임 직후부터 주요 국가의 정상들과 활발한 전화 외교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취임 당일인 10일 저녁 늦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한 것을 시작으로 이튿날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통화했다. 북핵을 비롯한 안보 현안과 무역 통상 등 과제가 많은 주요 국가 정상과의 통화 상견례는 한국 외교 관례상 사실상 정해진 수순이다. 트럼프와는 한미 동맹을 다지고, 시진핑과는 사드 등으로 생긴 갈등을 봉합해야 하며, 아베와는 위안부 합의 재협상 문제 등과 관련한 대화와 조정이 필요한 상환이기도 했다. 가장 이례적이고 주목되는 상황은 이들 한반도 주변 3강 정상과 통화한 직후 벌어졌다. 바로 문 대통령이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67)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 35분부터 약 25분간 모디 총리와 통화하면서 “북핵 문제에 대한 국제 대응에 있어서도 인도가 대한민국 입장을 지지하고 북핵 개발을 반대하면서 국제 사회의 제재에 함께 참여하고 있는 데 대해 높이 평가한다”며 북핵 해결을 위해 대화와 제재를 병행한다는 정책을 설명했다. 비동맹 세계에서 주도적인 지위를 누리는 인도에 새 정부의 대북 정책을 적극적으로 설명한 것은 눈길을 끌 수밖에 없다.
중요한 발언은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 이날 문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으로 양국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문화적·인적 교류를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에 따르면 이날 문 대통령이 “모디 총리의 ‘행동적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이라는 적극적 외교로 인도의 국제적 위상이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자 모디 총리는 “과거 주지사 시절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특히 한국이 인도 경제 발전의 모델이라고 늘 강조했다”고 화답했다.
모디 총리는 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0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당선 축하 메시지를 영어는 물론 한국어로도 트윗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모디 총리는 “문재인 후보의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뵙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올렸다. 11일 통화 직후에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조금 전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나눴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빌었으며 대통령께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인도를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라고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공개했다.
취임 직후 인도 총리와 신속하게 통화한 것은 역대 다른 대통령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 3강 국가와의 통화에선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와 조속한 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했지만 인도와는 시급한 현안이 사실 많지 않다. 대신 미래를 위한 경제와 안보 파트너라는 장기적인 포석이 담겨있다. 한국과 인도는 가까워져야 할 이유가 많다. 첫째가 경제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중국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더욱이 사드로 인한 무역보복 등 경제에 정치 문제가 혼입돼 혼탁한 양상이다. 불확실성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중국 경제는 성장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반면 인도는 인구 13억 명의 엄청난 시장에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둘째가 민주주의라는 가치동맹이다. 셋째로 중국에 대응하는 안보와 전략적 동맹으로서도 가치가 크다. 미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인도를 주목할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국제통화기금(IMF)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2조2653억 달러로 세계 7위다. 물가 등을 고려한 구매력(PPP) 기준 GDP에서 인도는 9조4893억 달러로 중국(23조1944억 달러)과 미국(19조4171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인도는 눈부신 경제성장을 계속해왔다. 2014년 7.2%, 2015년 7.6%, 2016년 7% 성장을 기록했으며 올해는 세계은행의 지난 1월 전망치 발표에서 7.6% 성장이 기대되고 있다. 중국이 지난 2014년 7.3%를 기록한 이후 2015년 6.9%에 이어 2016년 6.7%로 6%대 성장률에 머물고 있는 것과 비교된다. 이런 발전을 통해 올해 인도의 GDP는 명목금액 기준으로 2조4500억 달러를 넘어 프랑스를 누르고 세계 6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인도는 거대한 규모의 ‘성장 발전기’를 돌리는 경제대국인 셈이다. 특히 중국의 경제성장이 갈수록 둔화하는 와중에 인도가 거둔 이러한 실적은 전 세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인구가 2017년 기준으로 13억2657만 명이나 되다 보니 1인당 GDP는 그리 많지 않다. IMF에 따르면 2016년 통계상 인도의 명목금액 기준 1인당 GDP는 1723달러로 세계 141위에 불과하다. 콩고(1723달러), 가나(1569달러), 케냐(1516달러), 경쟁국인 파키스탄(1516달러)과 비슷하다. PPP 기준으로 해도 6616달러로 123위다. 2016년 1인당 GDP가 명목금액 기준 8260달러로 세계 73위, PPP 기준으로 1만5424달러로 84위에 오른 중국과 비교하면 한참 밀린다. 인도가 여전히 경제성장에 목말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의 경제 구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6년 기준으로 농수산광업 등 1차산업 16.5%, 제조업 29.8%%, 서비스업 45.4%로 구성돼 있다. 고용은 1차산업이 49%, 제조업이 20%, 서비스업이 30%를 차지한다. 중국은 인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2015년 기준으로 농수산광업 등 1차산업 9%, 제조업 40.5%, 서비스업 50.5%다. 고용은 1차산업이 29.5%, 제조업이 29.9%, 서비스업이 40.6%를 차지한다. 산업 구조상 인도는 제조업 강화를 통한 성장 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가난한 농촌 인력을 산업인력이나 서비스업 인력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과 손잡고 제조업을 강화하는 데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루 1.9달러인 빈곤선 이하로 살아가는 주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2.4%에 이르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는 필수적이다. 현재 중국의 빈곤선 이하 인구는 5.1%에 불과하다. 인도가 빈민층을 줄이고 제조업 분야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으로선 소프트웨어 인력을 비롯한 인도의 정보기술(IT) 분야 인력이 필요하다. 인도에선 고교에서 남자 우등생은 공과대학에, 여자 우등생은 의과대학에 각각 진학하는 전통이 있다. 어려서부터 구구단이 아닌 십구단을 외우고 자란 수학과 과학 인재가 넘치는 곳이기도 한다. 한국과 인도가 협력할 분야는 한둘이 아니다. 철강·조선·자동차·전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하다. 모디의 인도를 눈여겨봐야 할 또 다른 이유가 ‘민주주의 가치 동맹’이다. 인도는 흔히 ‘세계 최대의 민주주의 국가’로 불린다. 인도는 1947년 독립 이후 지금까지 다당제와 보통·비밀·직접 투표를 바탕으로 하는 의회민주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영국 웨스터민스터 방식의 의회민주주의 제도를 운영하며 수시로 정권이 교체되는 모범적인 민주주의 국가다. 지구상에서 가장 복잡한 나라로 통하는 인도에서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것은 전 세계에 많은 교훈을 준다. 인도는 인구만 많은 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다언어·다종족·다종교 사회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 공식 조사 결과 이 나라에는 1652개의 언어가 사용된다. 3억~4억 명이 사용한다는 힌디어 인구가 가장 많지만 웬만한 나라의 인구인 1000만 명 이상이 쓰는 언어만 13개나 된다. 1만 명 이상이 쓰는 소수어도 122개에 이른다. 이러한 언어적 복잡성 때문에 영어가 이 나라의 공용어로 사용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영어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모국어 하나만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인구 국민의 문자해독률도 2011년 기준 74% 정도다. 국민의 넷 중 하나는 글을 모르는 문맹자이다. 따라서 글을 몰라도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인도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이를 위해 인도가 고안한 지혜가 정당의 상징 기호다. 인도의 모든 정당은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 등 기호를 하나씩 가지고 투표용지와 선거운동에서 이를 내세운다. 인도의 모든 정당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정당을 하나씩 가지면서 유권자가 글자를 몰라도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예로 모디 총리가 소속한 인도국민당(BJP)의 상징은 연꽃이며,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는 손바닥을 상징으로 쓴다.
민주주의가 꽃핀 인도에는 정당도 많다. 지난 2014년 선거 직전에 인도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전국정당 6개와 지역정당 47개, 군소정당 1563개나 된다. 서로 다른 3개 주에서 국회 의석의 2%(11석) 이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원과 주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4개 이상의 주에서 6% 이상을 득표하거나 4석 이상의 국회 의석을 확보해야 전국 정당으로 인정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지역 정당으로 취급받아 중앙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선거에서 의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거나 기준 이하의 득표율을 얻은 정당은 선거 직후 해산된다. 인도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민주주의다.
인구가 많고 문맹자가 적지 않으며 국토가 넓은 데다 절차가 복잡해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 세계 숱한 비민주주의 국가를 부끄럽게 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다. 거대한 인구, 공산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 민주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을 내세우며 공산당 일당독재를 합리화하는 중국과 인도를 비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제16대 총선 당시 인도 인구는 12억3639만 명이었는데 전체 유권자는 8억1450만에 이르렀다. 그 해 4월 7일부터 5월 12일까지 9단계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66.4%인 5억4000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가해 세계 최대 규모의 민주주의 선거로 기록됐다. 모디 총리가 11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민주주의의 힘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국민에게도 축하를 드린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뤄진 공감 차원으로 짐작할 수 있다. 모디는 복잡한 인도의 종교지형에서 다수파인 힌두교도를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80.46%)가 다수지만 이슬람(13.43%)도 상당한 숫자다. 1억6000만~1억7000만 명에 이르는 무슬림(이슬람교도) 인구는 인도네시아와 파키스탄에 이어 세계 3위 규모다. 그 외에 기독교(2.34%), 시크교(1.87%), 불교(0.77%), 자이나교(0.41%) 등 주요 종교와 함께 정령숭배(0.72%)를 비롯한 수많은 소수종교가 존재한다. 이 거대한 나라의 통일을 유지하고 통합과 번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강력한 리더십과 정치적인 실적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모디가 신앙심 깊은 힌두교도를 넘어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힌두민족주의자라는 점이다. 카스트에 따라 가업인 홍차 행상을 하던 아버지를 돕다 버스터미널에서 형제들과 더불어 홍차 판매대를 운영하던 그는 1971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힌두교도가 압도적인 인도는 이웃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과 전쟁을 치렀다.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찔렀고 힌두교도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힌두민족주의가 판을 쳤던 시기였다. RSS는 1980년대에 인도국민당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모디는 통신 교육을 통해 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구자라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모디는 선거 기획에서 비상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1995년과 1998년 구자라트 주의회 선거에서 BJP의 선거 전략 수립과 실천을 지휘했다. BJP는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뒀다. BJP에서 모디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그 결과 모디는 2001년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주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의 정치적인 경력과 선출직 정치인 경험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했다.
모디는 2001년 10월부터 총리 취임 직전인 2014년 5월 21일까지 13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지사직을 유지했다. 그는 이미 2007년부터 구자라트주의 최장수 주지사로 기록됐다. 그가 최장수 기록을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발전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뒀으며 실제로 고속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모디는 인구 6000만 명의 구자라트주에서 경제성장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면서 적극적으로 외자 유지 활동을 벌였다. 그는 친기업적인 정치인, 행정가로 이름을 날렸다. 규제 철폐를 통한 외국인 투자 유치와 사회 인프라 확충을 통한 경기 상승과 경제 기반 마련이라는 그의 경제전략은 구자라트주의 고속성장을 견인했다. 모디는 이러한 친기업 정책을 바탕으로 주지사에 취임한 2001년 이후 10년간 구자라트주에서 연평균 약 13%의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인도 전국 평균(7%)의 두 배에 가까운 고속 성장이다. 그 결과 구자라트주는 현재 인도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활기차다. 빈곤층의 비율은 빠른 속도로 줄어왔다. 그는 구자라트주에서 경제성장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이라는 평범한 인도인의 희망을 이뤄준 셈이다. 주지사로서 그의 성공을 익히 알고, 이를 평가하는 중산층과 젊은이들이 지난 선거에서 그의 주된 지지층이 됐다. 그는 총선 공약대로 인도 전역에 10개에 이르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일부 유통 부문을 제외한 경제 전 분야를 외국 기업에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고 있다. 거대한 건설과 유통 붐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과 부자, 외국자본에 적대적인 정책을 펴면서 빈민층에 대한 복지정책에 주력해온 옛 집권당 INC와 비교된다. 외국인 투자가들과 외국계 기업들은 INC 정권의 과도한 규제와 투자 장벽에 절망했다. 그 결과 그 기간 동안 인도 경제는 연 5%의 성장률에 만족해야 했다. 노동인구는 매년 1200만 명이 늘고 있는데 새로운 일자리 마련은 200만 개에 그쳤다. 인도 국민은 충분한 일자리 공급 없는 INC정권의 복지정책에 회의를 느꼈다. 한때 중국과 함께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 성장을 보였던 인도는 정체기에 빠지는 듯했다. 1990년대와 2000년대에 초고속성장의 맛을 본 인도인들은 INC에 등을 돌렸다. 중산층은 기회를 요구했으며 청년들은 일자리를 원했다. 그들은 대안으로 BJP와 모디를 선택했다. 모디는 이를 잊지 않고 인도 경제의 체질을 바꾸고 고속성장을 추구하고 있다. 규모나 영향력에서 이미 세계 수준인 인도 경제는 전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인도가 한국 경제의 발전을 위한 전략적 미래 파트너로 각광받는 이유다.
모디가 한국의 투자와 협력을 얻으려면 인도 사회의 체질개혁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사회주의와 국수주의, 그리고 비동맹주의 성향의 INC가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외국의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 봐야 마을의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역 주민이 적지 않다. 문맹이고 아무런 기술이 없는 마을 사람에겐 거대한 산업시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남의 경제설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이 반대하면 웬만한 경제적 이익이 있어도 산업시설이 들어서기가 쉽지 않은 나라가 인도다. 포스코의 제철 공장을 세우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인도의 변화와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나란히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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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과 넷째로 정상 통화한 모디 총리
중요한 발언은 경제 분야에 집중됐다. 이날 문 대통령은 모디 총리에게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 개선으로 양국 간 무역과 투자를 확대하고, 문화적·인적 교류를 강화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등 적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윤영찬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에 따르면 이날 문 대통령이 “모디 총리의 ‘행동적 동방정책(Act East Policy)’이라는 적극적 외교로 인도의 국제적 위상이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하자 모디 총리는 “과거 주지사 시절에도 한국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다. 특히 한국이 인도 경제 발전의 모델이라고 늘 강조했다”고 화답했다.
모디 총리는 문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10일 공식 트위터 계정에 당선 축하 메시지를 영어는 물론 한국어로도 트윗하는 등 적극적인 행동으로 눈길을 끌었다. 모디 총리는 “문재인 후보의 대한민국 대통령 당선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인 한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위해 가까운 시일 내에 만나뵙기를 바랍니다”라는 내용을 올렸다. 11일 통화 직후에는 공식 트위터 계정에서 “조금 전 문재인 대한민국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나눴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빌었으며 대통령께서 가까운 시일 내에 인도를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는 말씀을 전했습니다”라고 영어와 한글로 동시에 공개했다.
취임 직후 인도 총리와 신속하게 통화한 것은 역대 다른 대통령에게선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주변 3강 국가와의 통화에선 북핵 문제에 대한 공조와 조속한 정상회담 등에 대해 논의했지만 인도와는 시급한 현안이 사실 많지 않다. 대신 미래를 위한 경제와 안보 파트너라는 장기적인 포석이 담겨있다. 한국과 인도는 가까워져야 할 이유가 많다. 첫째가 경제다. 한국 기업이 많이 진출한 중국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더욱이 사드로 인한 무역보복 등 경제에 정치 문제가 혼입돼 혼탁한 양상이다. 불확실성이 그만큼 많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중국 경제는 성장이 갈수록 둔화하고 있다. 반면 인도는 인구 13억 명의 엄청난 시장에다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곳이다. 둘째가 민주주의라는 가치동맹이다. 셋째로 중국에 대응하는 안보와 전략적 동맹으로서도 가치가 크다. 미국도 이를 주시하고 있다.
인도를 주목할 가장 큰 이유는 경제다. 국제통화기금(IMF) 2016년 통계에 따르면 인도의 명목금액 기준 국내총생산(GDP)은 2조2653억 달러로 세계 7위다. 물가 등을 고려한 구매력(PPP) 기준 GDP에서 인도는 9조4893억 달러로 중국(23조1944억 달러)과 미국(19조4171억 달러)에 이어 세계 3위다.
경제동맹으로서의 인도
하지만 인구가 2017년 기준으로 13억2657만 명이나 되다 보니 1인당 GDP는 그리 많지 않다. IMF에 따르면 2016년 통계상 인도의 명목금액 기준 1인당 GDP는 1723달러로 세계 141위에 불과하다. 콩고(1723달러), 가나(1569달러), 케냐(1516달러), 경쟁국인 파키스탄(1516달러)과 비슷하다. PPP 기준으로 해도 6616달러로 123위다. 2016년 1인당 GDP가 명목금액 기준 8260달러로 세계 73위, PPP 기준으로 1만5424달러로 84위에 오른 중국과 비교하면 한참 밀린다. 인도가 여전히 경제성장에 목말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인도의 경제 구성도 눈여겨볼 만하다. 2016년 기준으로 농수산광업 등 1차산업 16.5%, 제조업 29.8%%, 서비스업 45.4%로 구성돼 있다. 고용은 1차산업이 49%, 제조업이 20%, 서비스업이 30%를 차지한다. 중국은 인도와 사뭇 대조적이다. 2015년 기준으로 농수산광업 등 1차산업 9%, 제조업 40.5%, 서비스업 50.5%다. 고용은 1차산업이 29.5%, 제조업이 29.9%, 서비스업이 40.6%를 차지한다. 산업 구조상 인도는 제조업 강화를 통한 성장 정책을 추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를 통해 가난한 농촌 인력을 산업인력이나 서비스업 인력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한국과 손잡고 제조업을 강화하는 데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하루 1.9달러인 빈곤선 이하로 살아가는 주민의 비율이 전체 인구의 12.4%에 이르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이는 필수적이다. 현재 중국의 빈곤선 이하 인구는 5.1%에 불과하다. 인도가 빈민층을 줄이고 제조업 분야의 성장을 이루기 위해선 한국의 기술과 노하우, 투자가 필요하다. 한국으로선 소프트웨어 인력을 비롯한 인도의 정보기술(IT) 분야 인력이 필요하다. 인도에선 고교에서 남자 우등생은 공과대학에, 여자 우등생은 의과대학에 각각 진학하는 전통이 있다. 어려서부터 구구단이 아닌 십구단을 외우고 자란 수학과 과학 인재가 넘치는 곳이기도 한다. 한국과 인도가 협력할 분야는 한둘이 아니다. 철강·조선·자동차·전자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협력이 가능하다.
가치 동맹으로서의 인도
문제는 영어는 제대로 교육을 받은 사람만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모국어 하나만 아는 사람도 적지 않다. 게다가 인구 국민의 문자해독률도 2011년 기준 74% 정도다. 국민의 넷 중 하나는 글을 모르는 문맹자이다. 따라서 글을 몰라도 투표할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인도 민주주의의 유지를 위해 필수불가결하다. 이를 위해 인도가 고안한 지혜가 정당의 상징 기호다. 인도의 모든 정당은 자신을 상징하는 동물 등 기호를 하나씩 가지고 투표용지와 선거운동에서 이를 내세운다. 인도의 모든 정당은 이런 서비스를 통해 정당을 하나씩 가지면서 유권자가 글자를 몰라도 투표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예로 모디 총리가 소속한 인도국민당(BJP)의 상징은 연꽃이며, 제1야당인 인도국민회의(INC)는 손바닥을 상징으로 쓴다.
민주주의가 꽃핀 인도에는 정당도 많다. 지난 2014년 선거 직전에 인도선거관리위원회에 등록된 정당은 전국정당 6개와 지역정당 47개, 군소정당 1563개나 된다. 서로 다른 3개 주에서 국회 의석의 2%(11석) 이상을 차지하거나, 국회의원과 주의원을 뽑는 총선에서 4개 이상의 주에서 6% 이상을 득표하거나 4석 이상의 국회 의석을 확보해야 전국 정당으로 인정받는다. 그렇지 못하면 지역 정당으로 취급받아 중앙정부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한다. 선거에서 의석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거나 기준 이하의 득표율을 얻은 정당은 선거 직후 해산된다. 인도의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 민주주의다.
인구가 많고 문맹자가 적지 않으며 국토가 넓은 데다 절차가 복잡해서 민주주의를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전 세계 숱한 비민주주의 국가를 부끄럽게 하는 대표적인 국가가 인도다. 거대한 인구, 공산당이 국가를 지배하는 당-국가 체제, 민주주의 체제의 비효율성을 내세우며 공산당 일당독재를 합리화하는 중국과 인도를 비교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모디 총리가 집권한 2014년 제16대 총선 당시 인도 인구는 12억3639만 명이었는데 전체 유권자는 8억1450만에 이르렀다. 그 해 4월 7일부터 5월 12일까지 9단계를 거치며 전국적으로 치러진 선거에서 전체 유권자의 66.4%인 5억4000만 명 이상이 투표에 참가해 세계 최대 규모의 민주주의 선거로 기록됐다. 모디 총리가 11일 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의 대선 승리를 진심으로 축하하며 민주주의의 힘이 승리할 수 있음을 보여준 한국 국민에게도 축하를 드린다”고 말한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 이뤄진 공감 차원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한국으로 눈 돌리는 친기업 정치인 모디 총리
문제는 모디가 신앙심 깊은 힌두교도를 넘어 다른 종교에 배타적인 힌두민족주의자라는 점이다. 카스트에 따라 가업인 홍차 행상을 하던 아버지를 돕다 버스터미널에서 형제들과 더불어 홍차 판매대를 운영하던 그는 1971년 힌두민족주의 단체인 민족의용단(RSS)에 가입하며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힌두교도가 압도적인 인도는 이웃 무슬림 국가 파키스탄과 전쟁을 치렀다. 무슬림에 대한 적대감이 하늘을 찔렀고 힌두교도만의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힌두민족주의가 판을 쳤던 시기였다. RSS는 1980년대에 인도국민당을 만들어 현실정치에 참여했다. 모디는 통신 교육을 통해 델리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으며, 구자라트대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런 모디는 선거 기획에서 비상한 능력을 발휘했다. 그는 1995년과 1998년 구자라트 주의회 선거에서 BJP의 선거 전략 수립과 실천을 지휘했다. BJP는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를 거뒀다. BJP에서 모디의 주가는 상한가를 쳤다. 그 결과 모디는 2001년 인도 서부의 구자라트주 주지사에 당선됐다. 그의 정치적인 경력과 선출직 정치인 경험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했다.
모디는 2001년 10월부터 총리 취임 직전인 2014년 5월 21일까지 13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지사직을 유지했다. 그는 이미 2007년부터 구자라트주의 최장수 주지사로 기록됐다. 그가 최장수 기록을 세운 데는 이유가 있었다. 경제발전 정책을 최우선 순위에 뒀으며 실제로 고속 성장을 이뤘기 때문이다. 모디는 인구 6000만 명의 구자라트주에서 경제성장 계획을 의욕적으로 추진해 성공을 거뒀다. 외국인 투자를 환영하면서 적극적으로 외자 유지 활동을 벌였다. 그는 친기업적인 정치인, 행정가로 이름을 날렸다. 규제 철폐를 통한 외국인 투자 유치와 사회 인프라 확충을 통한 경기 상승과 경제 기반 마련이라는 그의 경제전략은 구자라트주의 고속성장을 견인했다. 모디는 이러한 친기업 정책을 바탕으로 주지사에 취임한 2001년 이후 10년간 구자라트주에서 연평균 약 13%의 경제성장률을 이뤘다. 인도 전국 평균(7%)의 두 배에 가까운 고속 성장이다. 그 결과 구자라트주는 현재 인도 전체 수출의 25%를 차지할 정도로 활기차다. 빈곤층의 비율은 빠른 속도로 줄어왔다. 그는 구자라트주에서 경제성장을 통한 보다 나은 삶이라는 평범한 인도인의 희망을 이뤄준 셈이다. 주지사로서 그의 성공을 익히 알고, 이를 평가하는 중산층과 젊은이들이 지난 선거에서 그의 주된 지지층이 됐다. 그는 총선 공약대로 인도 전역에 10개에 이르는 신도시를 건설하고 일부 유통 부문을 제외한 경제 전 분야를 외국 기업에 개방하겠다는 공약을 실천하고 있다. 거대한 건설과 유통 붐을 통해 경제성장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경제성장 외치며 집권한 모디
모디가 한국의 투자와 협력을 얻으려면 인도 사회의 체질개혁을 주도할 필요가 있다. 인도는 사회주의와 국수주의, 그리고 비동맹주의 성향의 INC가 오랫동안 집권하면서 자본주의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외국의 거대한 공장이 들어서 봐야 마을의 삶에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지역 주민이 적지 않다. 문맹이고 아무런 기술이 없는 마을 사람에겐 거대한 산업시설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남의 경제설비일 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주민이 반대하면 웬만한 경제적 이익이 있어도 산업시설이 들어서기가 쉽지 않은 나라가 인도다. 포스코의 제철 공장을 세우기가 그렇게 힘들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 인도의 변화와 한국의 적극적인 투자와 협력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문재인 대통령과 모디 총리는 나란히 승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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