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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남자 골프 60년史] 연덕춘에서 장이근까지 ‘필드의 스타는 계속된다’

[한국 남자 골프 60년史] 연덕춘에서 장이근까지 ‘필드의 스타는 계속된다’

강욱순 국제대회 최초 상금왕 올라... 한장상·최상호·최경주 등 빅스타 이어져
2017년 한국오픈 우승자 장이근. /사진·코오롱그룹
지난 4일 충남 천안 우정힐스컨트리클럽에서 열린 ‘코오롱 제60회 한국오픈’에서 무명이나 다름 없었던 신인 장이근이 챔피언에 올랐다. 오는 22일부터 경남 양산 에이원CC에서 제60회 한국프로골프(KPGA)선수권이 열린다. 환갑을 맞은 한국 남자 골프 역사를 시대별, 스타 선수별로 정리해본다.
 1960~70년대 | 한장상, 김승학
국내 프로 골프대회의 효시는 1958년 6월 12일부터 나흘간 지금의 어린이대공원 부지에 있던 서울CC에서 개최된 KPGA선수권이다. 한국오픈은 석 달 뒤인 9월 11일부터 나흘간 같은 코스에서 개최됐다. 당시 국내 골프장은 서울CC 외에 부산CC만 있었다. 프로는 캐디 출신의 예닐곱의 양성자(지금의 세미 프로)들을 중심으로 시작했지만 프로 골퍼를 키우려는 서울CC와 아마추어들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점차 늘게 된다. 골프 대회를 창설하는 데 산파 역할을 했던 연덕춘이 KPGA선수권에서는 4라운드 합계 18오버파 306타로 초대 챔피언에 등극했다.

석 달 뒤의 한국오픈은 프로와 아마추어 골퍼들이 함께 경기를 펼쳐 골프 활성화에 모태가 됐다. 아마추어 골프 최강자를 가리면서 프로 골퍼에 대한 인식도 바뀌게 하는 계기가 됐다. 미국의 군무원이던 무어가 4라운드 합계 18오버파 306타로 초대 챔피언이 됐다. 연덕춘은 318타로 5위에 그쳤다.

프로들만 출전했던 선수권은 이후 국내 프로들이 우승을 차지하지만 한국오픈은 63년 6회 대회까지는 미국·일본·대만 등 해외 선수들의 차지가 된다. 2~3회 우승자인 오빌 무디는 미8군 소속의 하사로 출전했다. 엄청난 장타자였던 그는 군 복무를 마치고 미국에 돌아가 프로가 되어 69년 US오픈에서 우승한다.

60년대 한국 골프에서 한장상을 빼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는 60년에 열린 3회 KPGA선수권을 시작으로 국내 대회 19승, 해외 3승을 쌓아올린다. 그중 선수권은 68년부터 71년까지 4연패를 포함해 7승, 한국오픈은 64년 7회 대회부터 4연패와 70년부터 3연패를 합쳐 역시 총 7승을 거둔다. 이 밖에도 동해오픈, 쾌남오픈 등을 우승하고 72년 일본의 메이저인 일본오픈에서 우승하는 쾌거를 거둔다.

70년대 국내 골프대회는 기업들이 스폰서로 참여하기 시작했다. 기업들은 자사 주력 상품을 대회 명칭으로 사용하는 스포츠 마케팅을 도입했다. 국내 처음으로 골프대회에 스폰서가 참여한 것은 76년 10월 13일 관악(오늘날 리베라) CC에서 열린 오란씨오픈골프선수권이다. 동아식품이 주최한 대회로 총상금은 150만원이었다. 조태운이 4언더파 284타로 우승했다.

77년에 태평양화학은 로얄(오늘날 레이크우드)CC에서 쾌남오픈골프선수권대회를 개최해 두 번째 골프 스폰서 기업이 됐다. 78년에는 여주CC가 개장을 기념하면서 광고·홍보 차원에서 여주오픈을 개최하기도 했다. 초대 우승자는 프로 데뷔 1년 차인 신예 최상호로 4라운드 합계 10언더파 278타를 기록하면서 우승해 골프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1980년대 | 최상호, 박남신, 최윤수
2005년 매경오픈 최고령 우승 및 통산 43승 달성한 최상호. / 사진·KPGA
77년 7번 만에 프로 테스트에 합격한 최상호는 데뷔 이듬해인 78년 여주오픈에서 첫 승을 올렸다. 이후 그는 96년 영남오픈에서 정상에 오를 때까지 19년 동안 단 두 해(79년, 88년)를 제외하고 매년 우승할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꾸준한 연습과 체형· 체력을 고려한 스윙 개발, 철저한 자기 관리가 맞물린 결과였다. 96년 최경주가 나타나기까지 80~90년대를 아우르는 한국의 ‘간판 스타’였다. 특히 2005년 남서울CC에서 열린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50세 나이에 정상에 올랐다. 그에 따라 통산 승수도 9년 만에 43승으로 올라갔다. 50세 이후 시니어투어 15승에 그랜드 시니어 6승을 추가했다.

80년대 또 다른 스타는 박남신이다. 프로 테스트를 10년 도전 끝에 힙겹게 합격한 뒤에 꾸준히 우승을 챙겨 생애 21승을 쌓았다. 86년 팬텀오픈을 시작으로 꾸준히 승수를 쌓아 2007년 금호아시아나오픈에서는 48세 나이에 연장전에서 우승했다. 하지만 ‘만년 2위’나 ‘2인자’라는 수식에서 보듯이 최상호, 강욱순, 최경주와 같은 당대 대표 선수의 그늘에 늘 가렸다.

이강선은 79년 오란씨오픈을 시작으로 93년 KPGA선수권에 이르기까지 8승을 거두었다. 90년 한 해 메이저급 3승을 거둬 최초로 상금 1억원을 넘긴 선수가 됐다. 최윤수는 80년 부산오픈을 시작으로 90년 KPGA선수권까지 11승을 올렸다. 그는 이후 시니어투어에서 26승을 거두면서 제2의 전성기를 누렸다.
 1990년대 | 강욱순, 최경주, 최광수
최경주 1999년 한국오픈 우승.
강욱순은 아시안투어의 개척자이자 상금왕을 두 번이나 차지한 한국 최초의 글로벌 스타다. 95년 일간스포츠오픈에서 첫 승에 이어 2승(챔피언시리즈)을 차례로 올린 후에 아시안투어에 전념했다. 그는 96년에 플레이어즈챔피언십과 쿠알라룸푸르 오픈에서 2승을 올리면서 그해 아시안투어 상금왕에 올랐다. 98년에도 2승(페리어홍콩오픈, 오메가PGA챔피언십)으로 2번째 상금왕에 등극했다.

강욱순이 아시아를 중심으로 우승 사냥을 다녔다면 국내에서는 ‘독사’라는 별명의 최광수가 89년 한국프로골프토너먼트를 시작으로 2005년 한국오픈까지 15승을 거둔다. 부산에서는 ‘부산 갈매기’라는 별명의 장타자 신용진이 92년 일간스포츠오픈부터 총 8승을 올렸다. 이때 등장한 매서운 눈빛과 검은 피부의 비범한 재능을 가진 세계적인 선수가 탱크 최경주다. 93년 프로에 데뷔한 최경주는 95년 팬텀오픈을 시작으로 꾸준히 승수를 추가했다. 그의 남다른 점은 98년 일본에서 기린오픈을 우승하면서 미국 무대를 처음 밟은 뒤로는 퀄리파잉스쿨을 통해 미국에 진출했고 거기서 투어를 개척한 데 있다. 2002년 컴팩클래식 우승을 시작으로 2011년 제5의 메이저라는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까지 PGA투어에서만 8승을 거둔다. 최경주는 국내에는 매년 SK텔레콤오픈에 출전해 3승을 거두었고, 2010년부터는 자신의 이름을 건 최경주인비테이셔널을 창설하기도 했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16승을 쌓아올리고 통산 28승을 거두었다.

90년대는 이처럼 국내에 머물지 않고 미국, 일본의 큰 무대를 두드린 선수들이 나왔다. 임진한은 국내 5승이지만 90년 일본 JGTO투어에서 싱가포르요코하마타이어클래식 등 3승을 거뒀다. 뒤를 이은 장타자 김종덕은 국내 9승에 JGTO에서는 97년 기린오픈을 포함해 4승을 달성했다. 허석호는 2000년대 일본에 진출해 8승을 거두고 최근 국내에 복귀했다.
 2000년대 | 양용은, 배상문, 김경태
보디빌더를 꿈꿨던 제주도 청년 양용은은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상경해 연습장에서 골프를 익혔다. 골프를 시작한 지 5년만인 96년 프로 자격을 딴다. 99년에 상금 9위에 들었으나 그해 상금액은 고작 1800만원에 불과했고, 월세방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골프를 그만둘까 고민했으나 다시 열정을 불태워 2002년 SBS프로골프최강전에서 첫승을 올렸다. 우승을 거둔 뒤로는 탄력을 받고 더 큰 무대로 진출했다. 2004년 일본에 진출해 썬크로렐라클래식에서 우승하면서 해외 대회에 매력을 느꼈다. 2006년 한국오픈 우승으로 유러피언투어 출전권을 얻어 상하이에서 열린 HSBC챔피언스에서 덜컥 우승했다. 2009년에는 소니오픈 우승에 이어 메이저 대회인 PGA챔피언십에서 타이거 우즈를 누르고 아시아인 최초로 메이저 트로피를 들어올린다.

배상문은 2005년 투어에 데뷔하고 이듬해 에머슨퍼시픽 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주목받았다. 국내 투어에서의 전성기는 2008년이다. 시즌 개막전 KEB한중투어인비테이셔널 우승에 이어 메이저인 한국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상금왕을 거머쥐었다. 이듬해도 한국오픈을 2연패 하더니 일본을 거쳐 미국PGA투어로 진출했다. 배상문은 미국에서 2승을 거두었고, 한국에서는 신한동해오픈에 출전해 2연패 하는 등 국내 9승을 보태며 통산 14승을 올리고 있다.

같은 나이의 김경태는 2007년 프로에 데뷔하던 해 개막전인 토마토저축은행오픈과 GS칼텍스매경오픈, 삼릉애플 시티오픈에서도 우승하면서 ‘괴물 신인’으로 불리게 된다. 이후 일본에 진출해 일본오픈을 제패하고 2015년 한 해만 5승을 거두며 상금왕에 오르는 등 JGTO에서만 13승을 달성했다.
 2016년대 | 김시우, 왕정훈, 안병훈
60년의 한국 남자 프로골프 역사에서 통산 10승 이상을 거둔 선수는 13명이다. 최상호, 박남신, 최광수 등 80~90년대 선수들이 주로 국내 무대에서 활동했다면, 2000년대 이후의 최경주, 양용은, 허석호, 김경태, 배상문 등은 해외에서 더 많은 우승을 거두면서 국내 무대를 병행했다.

현재 시점에서 되돌아보면 향후 한국 골프사에서 누가 가장 빛나는 선수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직 국내 우승은 미약하거나 혹은 없지만 미국, 유럽의 큰 투어 무대에서 활약하는 잠재력이 높은 젊은 선수들 때문이다.

김시우는 국내에서 고등학교에 다니다 미국으로 향했고, 2011년에 미 PGA투어 사상 최연소로 투어카드를 얻었다. 2부 투어에 잠시 머문 그는 지난해 윈덤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올해는 제5의 메이저라는 더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왕정훈은 필리핀에서 주니어 시절을 보낸 뒤 지난해 유러피언투어에서 2승을 거두며 신인상을 받았고, 올해도 1승을 추가했다. 안병훈은 지난 2015년 유러피언투어 메이저인 BMW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그해 국내로 들어와 신한 동해오픈에서 국내 첫 승을 챙겼다.

한국 선수들은 국내 투어만이 무대가 아니다. 이른 나이에 해외 큰 무대에 진출해 기량을 펼쳐나간다.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PGA투어 메이저 우승을 하거나 최다승인 8승을 거둔 것이 국내투어에서 성장해 나아간 양용은, 최경주였다면 현재 활약하는 선수들은 그보다 더 크고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리고 있다. 국내투어는 그들의 성장을 위한 디딤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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