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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 일본에서 배우는 ‘지방소멸’ 극복기] 창의와 협동으로 일군 ‘이토록 멋진 마을’

[르포 | 일본에서 배우는 ‘지방소멸’ 극복기] 창의와 협동으로 일군 ‘이토록 멋진 마을’

후쿠이·사바에·도야마의 지방 쇠락 극복 스토리...기업처럼 경영 목표 세워 철저히 실천, 여성 중시하고 교육 시스템 개혁



국내에서도 요즘 도시재생과 지역활성화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인구 감소로 시골마을이 사라지는 ‘지방소멸’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보다 20여 년 전에 저출산·고령화에 직면한 일본은 지역 개발을 추진해 지방소멸의 위기를 넘겼다. 지난 5월 말부터 5일 동안 일본의 사바에·도야마·오사카 등지를 돌며 성공 비결을 살펴봤다.
30여년 전 양돈농가가 수제햄 공방을 연 후 푸드마켓, 농가 레스토랑, 맥주 공방, 온천, 휴양시설을 더해 종합 농촌테마파크로 자리잡은 모쿠모쿠팜.
마스다 히로야가 2015년에 내놓은 [지방소멸]이라는 책은 인구 감소로 연쇄 붕괴하는 도시와 지방의 생존전략을 담고 있다. 가임 여성과 노령자의 비율로 일본 지방 인구의 지속가능성을 분석하고 앞으로 30년 안에 수많은 지역이 소멸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책은 한국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본과 같은 기준을 우리나라 기초단체에도 적용해봤더니 우리 지방 역시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특히 경상북도 의성군과 군위군이 앞으로 30년 안에 소멸할 가능성이 큰 곳으로 꼽혔다. 저출산·고령화로 몸살을 앓고 있는 지자체들은 ‘지방소멸’이라는 화두를 매우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 방안을 고심하던 중 접한 책이 [이토록 멋진 마을]이었다. [지방소멸]에서 말 그대로 지방소멸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면 [이토록 멋진 마을]에서는 이에 대한 해법을 모색했다. 원제는 [후쿠이 리포트]. 포브스재팬의 후지요시 마사하루 부국장이 후쿠이현·도야마현 주민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말을 듣고 그곳을 직접 탐방해서 쓴 행복도시 이야기다. [이토록 멋진 마을]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구절을 접했다. 후지요시가 한국인 부인과 함께 처가의 고향인 의성군을 여행했다는 내용이었다. 하필 의성이라니. 마치 무슨 운명의 끈이 연결된 것 같았다. 책을 구해서 김주수 의성 군수에게 전했다. 김주수 군수는 군청 직원들에게 책을 읽도록 권했고, 후지요시와 그의 부인 김향청씨와도 인연이 닿았다. 이를 계기로 의성군은 김주령 부군수를 단장으로 지역발전을 담당하는 간부 직원 중심으로 ‘이토록 멋진 마을 탐방단’을 꾸렸다. 필자는 안내와 자문을 맡아 동행했다.

디즈니랜드도 벤치마킹하는 모쿠모쿠팜:
5월 29일 새벽부터 서둘러 아침 일찍 오사카 간사이 국제공항에 내렸다. 잠시 기다려 대구에서 날아온 의성군 탐방단과 합류해 북쪽으로 향했다. 두 시간가량 달려 첫 탐방지인 모쿠모쿠팜에 도착했다. 모쿠모쿠팜은 미에현 이가시 산자락에 자리한 대표적인 농촌 체험 농장이다. 약 30년 전에 지역의 양돈농가 중심으로 수제햄 공방을 열었는데, 여기에 푸드마켓, 농가 레스토랑, 맥주 공방, 온천, 휴양시설을 하나씩 채워넣어 지금의 종합 농촌테마파크가 됐다. 모쿠모쿠팜은 오사카·교토 지역과 나고야시의 중간 지역에 자리했다. 연간 약 50만 명의 내방객이 찾는다. 매출액은 550억원에 이른다.

모쿠모쿠팜의 돈까스는 3㎝는 족히 될 두툼한 위용을 자랑한다.
모쿠모쿠팜은 7개의 경영목표를 세우고 그걸 철저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농업 진흥을 통해 지역을 활성화 한다’ ‘지역의 자원과 농촌문화를 지킨다’ ‘자연환경을 지키기 위해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맛있고 안전한 식품을 제공한다’ ‘소비자와 같이 감동을 나눈다’ ‘마음이 풍요롭고 웃음이 넘치는 활기찬 직장환경을 조성한다’ ‘협동의 정신을 최우선시하며 법과 민주적 규칙을 준수한다’ 등이다. 모쿠모쿠팜에 들러 곧바로 농가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번 탐방의 첫 메뉴라서 다들 기대가 컸다. 돈까스와 메밀소바 중에서 전원이 돈까스를 선택했다. 필자가 적극 추천했다. 모쿠모쿠팜의 돈까스에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이곳의 돈까스는 3㎝는 족히 될 두툼한 위용을 자랑한다. 먹기 전에는 텁텁하지 않을까 싶지만 살짝 베어 물어도 부드럽게 잘리고 무엇보다 육즙이 촉촉하게 흐른다. 고기가 두꺼운데도 겉의 튀김옷이 전혀 타지 않았다. 레스토랑 중앙에 자리한 커다란 튀김솥에서 특유의 저온 조리법으로 살펴가며 익힌 덕분이다. 돈까스에 곁들여 맥주 공방에서 만든 맥주 한 잔을 곁들였다. 유럽의 맥주 콘테스트에 나가 그랑프리를 수상한 적이 있는 유명한 맥주다. 일행 사이에서 감탄사가 이어졌다. 이 먼 산속의 레스토랑에 돈까스와 맥주 한 잔을 먹기 위해 두 시간을 달려올 만했다.

즐겁게 식사를 하고 입구의 낙농제품 공방 매장부터 차근차근 둘러보기 시작했다. 농장과 지역 농가에서 재배해 만든 과일잼과 각종 유제품이 전시돼 있었다. 모쿠모쿠의 대표적인 채소인 토마토를 따서 지은 토마토 카페에서는 햄 공방의 햄을 주요 재료로 만든 수제 버거도 팔고 있었다. 모쿠모쿠의 유명한 햄제품을 판매하는 매장을 지나면 돼지 공연장이 나온다. 돼지 공연장 주변에는 공연에 출연하는 돼지들이 그늘에서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맥주 공방과 작은 호숫가에 자리한 대식당, 사람들로 붐비는 공동 체험장을 차근차근 둘러보고 농장 측이 마련한 간담회장에 들렀다.

모쿠모쿠팜 농장과 지역 농가에서 재배한 과일로 만든 다양한 잼.
코모리(小森一秀) 본부장은 1시간여에 걸쳐 모쿠모쿠팜의 출발과 기업정신, 운영 현황을 자세히 들려줬다. 대화 중 관심을 끈 대목은 국가나 지자체의 보조에 의존하지 않고 철저하게 주민들이 단합해 여기까지 왔다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의 가치를 담아내 도시민의 지지와 응원을 얻어냈다는 내용이었다. 가령 시설 확장 과정에서 자금난을 겪을 당시 5만 명에 이르는 회원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어려움을 극복했다는 이야기가 놀라웠다. 모쿠모쿠팜의 주력 사업은 체험농장, e커머스(온라인 판매), 나고야·오사카 등지의 직영 레스토랑 운영이다. 순수익은 e커머스 분야의 기여도가 가장 크다고 한다. 체험농장에서는 수익이 거의 나지 않지만 고객을 확보하고 농업의 가치를 확산하는 마케팅의 기반이 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고 했다.

모쿠모쿠팜에 처음 들른 사람 중 일부는 농장 규모나 건물의 크기가 예상보다 압도적이지 않아 다소 실망했다고 말했다. 필자는 그게 모쿠모쿠팜의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모쿠모쿠팜은 지역의 경관과 지형·지세를 가능한 유지하며 체험장과 공방을 지었다. 그래서 넓은 산속에 자리하면서도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리고 불필요하게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면서 사람과 동식물이 한데 어우러져 있어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모쿠모쿠는 특유의 디자인 체계를 개발했다. 모든 안내판이나 인쇄물에 마치 어린 아이가 그린 손그림 같은 유머러스한 그래픽과 서체를 사용한다. 햄·돈까스·맥주 등의 먹거리는 일본 최고 맛집에 손색없는 품질을 자랑한다. 그러니 다니면서 기꺼이 돈을 쓰게 되고 떠날 때는 다시 오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모쿠모쿠팜의 매력의 원천을 탐구하기 위해 디즈니랜드에서도 찾아왔다. 코모리 본부장에게 모쿠모쿠팜의 목표를 물었다. 그는 “농촌의 가치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일을 계속할 것이며 은퇴자를 위한 휴양타운 건설 등을 추진하고 있다”고 답했다.

일본 최고의 행복도시 후쿠이현 사바에:
둘째 날에는 후쿠이현 사바에시로 향했다. 후쿠이현은 이시카와현·도야마현과 함께 우리나라 동해에 연한 호쿠리쿠(北陸)지역에 속한다(예전에는 니가타현까지 포함하기도 했다). 이 지역은 바다와 고산 준령을 끼고 있고 해산물과 문화관광 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유명하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이시카와현의 카나자와 미술관을 방문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이 지역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일본의 여러 지방도시 중에서 주민들의 행복도가 가장 높게 나타난 덕분이다.

모쿠모쿠팜 로컬푸드매장에 붙어있는 생산자 사진.
일본에서는 ‘제대로 된 풍요로움을 찾아보자’는 취지 아래 1992년부터 ‘풍요지표(新국민생활지표)’를 정해 전국의 도시별로 측정했다. ‘거주한다’ ‘일한다’ ‘치유한다’ ‘소비한다’ ‘기른다’ ‘공부한다’ ‘교류한다’의 8개 분야, 159개 항목의 지표로 수치를 산출한 후 도시의 행복도 순위를 매겼다. 1999년까지 8년간 이어진 순위 발표에서 8개 항목 모두 상위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린 곳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호쿠리쿠의 3개 현이었다‘살기 편함’ 항목에서 일본 1위인 도야마현은 1994년 종합 1위를 차지했고, 그 후 5년 연속 이웃 후쿠이현이 종합 1위를 독점했다(6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사이타마현 지사의 항의로 1999년 이후 순위 발표는 폐지됐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를 겪고 있는 일본에서도 호쿠리쿠의 이 지역들은 일본의 미래를 가늠하는 매우 중요한 시금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이른바 ‘후쿠이 모델’이라고 불리는 사바에시, 세계가 주목하는 콤팩트 시티의 성공 사례인 도야마시가 한국에도 큰 시사점을 주기 때문에 이번에 탐방지로 정했다.

사바에는 후쿠이와 함께 후쿠이현의 중심 도시다. 인구는 약 6만7000명으로 소도시다. 사바에의 상징은 안경이다. 일본에서 98%, 세계적으로 20%의 시장점유율을 자랑한다. 칠기와 섬유산업도 유명하다. 특히 이곳 칠기산업 생산량은 일본 전체의 90%를 점유하고 있다. 사바에는 인구는 적지만 혁신의 기운이 가득한 도시다. 사바에의 3대 산업인 안경·칠기·섬유는 첨단산업이 아니었다. 사바에 사람들은 “일본에서 가장 빨리 중국에 당한 곳”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초 최고의 매출을 기록한 안경산업은 이후 값싼 중국제의 공세로 어려움에 처했다. 관련 기업의 도산과 실직의 파고가 도시를 덮쳤다. 그러나 사바에는 거기서 좌절하지 않았고, 다른 첨단 산업을 기웃거리지도 않았다. 사바에는 기존 산업에서 확보한 소재 기술력을 바탕으로 각 산업의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려는 시도를 했다. 가령 안경 제조로 익힌 티타늄 가공기술을 의료·항공기부터 광센서까지 다른 업종에 적용시켰다. 그뿐 아니라 고난도의 가공기술을 더 발전시켜 인체의 뼈와 관절에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안경산업이 새로운 광맥을 여는 열쇠가 된 것이다. 칠기 산업에서도 역시 값싼 대체품이 시장을 잠식하자 내연성을 높인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에 나섰다. 섬유산업에서도 고어텍스 같은 첨단 소재를 개발해 스포츠와 차량, 항공 우주 분야로까지 확대했다. 현재 후쿠이의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기술 중 세계 점유율 1위는 40개, 일본 국내 점유율 1위는 50개가 넘는다.

소재와 기술 개발을 넘어선 산업 전반의 혁신도 추진했다. 예컨대 안경 하나만 해도 관련된 모든 분야의 생태계를 조성해 작은 기업끼리도 상호 경쟁과 협력을 이끌어 시너지 효과를 내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산업계 전체의 경쟁력이 높아졌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런 기업이 모두 지역 기반의 강소기업이라는 것이다. 일본에서도 간혹 대기업과 대규모 산업시설을 유치해 지역을 활성화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만인의 부러움을 받던 것도 잠시, 세계 경제의 장기 침체와 일본 경제의 불황으로 대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그런 도시들은 기업과 함께 침몰했다. 하지만 사바에는 사람들이 사양산업으로 치부한 산업을 오히려 강한 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업계 전체는 사양일지 모르지만 살아남은 기업은 오히려 강해졌다.

여러 지표로 봤을 때 후쿠이·사바에의 성취는 놀랍다. 전국 학력평가에서 초·중학교 모두 수위권이며 ‘살기 편함’ 항목에서 자가(自家) 비율 3위, 생활보호수급률은 아래에서 2위(1위 도야마현)이다. 그만큼 생활수준이 높다는 뜻이다. 또한 보육원 수용률 전국 1위, 완전실업률은 밑에서 2위, 정규직 사원 비율 3위, 장애인 고용률 2위, 평균 월급 1위다. 더욱 상징적인 것은 노동자 세대의 실수입 순위인데 세대당 월평균 소득이 63만 엔을 넘는다. 도쿄를 제치고 전국 1위다. 후쿠이현의 세대 수입이 높은 것은 맞벌이 비율이 전국 1위로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지방을 살리고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여성들이 매력을 느끼고 만족감을 가지는 게 중요하다. 사바에시청에서 마키노 시장과 분야별 담당 공무원들과 간담회를 했다. 사바에시는 양성평등을 실현하고 여성들의 직장생활을 지원하기 위해 보육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을 연구하고 시행하고 있다. 사바에는 여성들의 행복감 수준이 일본에서 최고 수준으로 나타났다. 풍부한 일자리와 직장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시의 행정 지원이 뒷받침된 덕분이다.

사바에 혁신의 또 하나 중요한 대목은 혁신적인 기풍을 시와 시민들 전체가 공유하는 교육시스템과 창업지원시스템이다. 사바에는 서구 선진국의 학교처럼 벽 없는 교실에서 토론식 교육을 펼친다. 지식과 정답을 암기하고 주입하는 방식에서 벗어나서 질문을 던지고 학생들 스스로 해결책을 강구하게 하는 식이다. 감성지수·체력 강화도 교육의 주요 목표다. 애향심도 고취한다. 그러다 보니 청년이 돼도 대도시에 나가지 않고 지역에서 취업하거나 창업을 모색한다. 인력 공급의 선순환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사바에는 창업자의 천국이기도 하다. 시민들이 다양한 창업 아이디어를 내면 산업계와 시에서 적극적으로 인큐베이팅에 나선다. “지역 자체가 자연스럽게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2010년 사바에는 마키노 시장의 주도로 ‘시민주역조례’를 제정했다. 시민의 제안을 토대로 만든 12조의 헌법 격이다. 한마디로 ‘도시 만들기를 시민 스스로의 힘으로 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 것이다. 처음에는 시의원들이 자신들의 권한을 침해한 것이라고 반발했지만 시장이 적극 추진했다. 마키노 시장은 시민을 고객에서 협력자로 바꿨다. 마키노 시장은 700~800개 행정사업 중 시에서 할 수 있는 일은 30~300개에 불과하다며 시민 주역 사업으로 먼저 100개를 골라 시행했다. 민간이 맡는 게 훨씬 효율적인 사업으로 교육연수, 결혼상담, 문화사업, 문화강좌나 음악회 같은 것에서 시작해 점차 복지행정으로 확대했다. 그 결과 시민사업이 보다 활성화되고 시민들의 사업 제안이 늘어났다. 이렇게 ‘새로운 공공’이 사바에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었다.

의성군을 위해 마련한 간담회 말미에 마키노 시장에게 “사바에 모델의 엔진이랄까, 핵심이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마키노 시장은 혁신을 들었다. 안경·섬유·칠기의 3대 전통산업을 포기하지 않고 더욱 업그레이드해서 경쟁력을 확보한 것. 이어 ‘애향심’을 강조했다. 우리 고장을 살기 좋고 자랑스러운 곳으로 만들고자 하는 애정이다. 그래서 그는 지금도 사바에 안에서 “계속 보물을 찾는 중”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율이 느껴졌다. 연초에 유후인을 방문했을 때, 50년 넘게 유후인의 지역운동을 주도해온 마조쿠지 준페이도 역시 ‘내 발 밑의 보물’과 ‘애향심’을 강조했다.

콤팩트 시티 도야마:
사바에의 기억을 담고 도야마로 발길을 옮겼다. 시청 근처 호텔에서 여장을 풀고 다음날 아침 걸어서 도야마 시청에 들어갔다. 도야마는 인구 42만 명의 중소도시다. 도시 전체가 차분하며 유럽풍의 기품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 곳곳에 유럽처럼 꽃이 많았다. 모리 시장이 유럽 시찰을 다녀와서 시행한 도시 경관 정책의 일환이었다. 도야마는 거리에 꽃바구니를 두고 전차에도 꽃장식을 한다. 심지어 꽃집에서 꽃을 사서 타면 대중교통 요금을 면제해주기도 한다. 꽃으로 마음을 순화시키면서 꽃 재배 농가를 지원하기 위함이란다.

사바에는 기존 안경·섬유·칠기산업의 기술을 기반으로 소재(재료) 혁신, 신상품·신제품 개발로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다. 이곳의 명소인 안경 박물관과 내부 전경.
도야마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 전략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콤팩트 시티 전략은 도시의 근간이 되는 대중교통을 따라 역세권을 중심으로 거주와 생활편의 기능을 집중하는 도심 중심의 개발 전략이다. 도야마현은 원래 도로정비율과 도로개량률이 전국 1위였다. 도로가 구석구석 잘 정비돼 있어 정체도 없고 자동차를 이용한 생활이 편리했다. 그러나 고령화로 인구 구성이 바뀌면서 이런 살기 편함이 역작용을 일으켰다. 도로 보수에 돈이 너무 들어간 것이다. 더구나 도로가 잘 정비돼 있어 시가는 계속 교외로 확산됐다. 반대로 도심 상가에 빈 점포가 눈에 띄기 시작하더니 결국 중심 상업지역의 땅값이 떨어지고 세수가 줄었다. 악순환의 시작이었다. 시가가 교외로 확대되자 행정비용도 늘어났다. 쓰레기 수거, 간병 서비스 순회, 도시 정비, 제설 비용이 늘었고 자연재해 발생 때 상호부조 능력도 떨어졌다.

모리 시장은 결단을 내렸다. 도시 확대를 멈추기로 했다. 도야마는 새로운 도시개발 전략을 강구했다. ‘꼬챙이와 경단형 도시구조’라는 계획이었다. 서비스 수준이 높은 공공교통 노선을 꼬챙이처럼 구축하고 그 역을 따라 일정 범위의 역세권(전차는 반경 500m, 버스는 반경 300m) 안의 지역을 거주 유도 지역으로 지정하고 키운 것이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도야마 세수의 절반 가까이가 도시계획세와 고정자산세에서 나왔는데 둘의 74%가 시가화(市街化) 구역에서 나왔다. 그런데 이 구역은 시 전체 면적의 5.8%에 불과했다. 중심 시가지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늘리고, 확보된 세수로 중산간지를 보조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도야마는 기존 철도와 버스 노선을 재정비하는 한편 LRT(Light Rail Transit)라는 저상고속전차를 도입해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하고 걸어 다니면서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그 결과 고령자의 외출 빈도가 늘고 중심지 상권이 활발해지기 시작했다. 역세권 지역에 주거·편의시설 개발을 늘리면서 이런 ‘경단 구역(연선 거주 유도 구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비율이 2005년 28%에서 2016년 37%으로 증가했다. 2025년에는 42%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이런 중심 시가지 지역 거주를 추진하기 위해 건설업체에 호당 100만 엔에서 120만 엔의 건설비를 지원했다. 중심지로 거주지를 옮기는 주민에게 호당 50만 엔의 주택구입비 또는 3년간 매달 1만 엔의 월세 보조금을 지원했다. 중심 시가지를 활성화하기 위해 전천후 다목적 광장인 그랜드플라자 정비 사업, 농산물 유통을 위한 지바몬야 총본점 운영, 고령자의 외출을 장려하는 외출정기권 사업, 프라이부르크시를 본뜬 자전거 시민 공동 이용시스템, 꽃을 이용한 도시 경관과 꽃 트램사업, 폐교를 활용한 온천 간병센터 운영 등의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도야마현의 전체 토지 평균 가격은 1995년 이후 25년간 연속으로 하락하고 있지만 도야마에서는 3년 연속 땅값이 올랐다.

우리만의 행복도시 모델을 찾아서:
마스다 히로야의 [지방소멸]이 우리에게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지방 도시뿐 아니라 대도시까지 쇠락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도시는 주민들이 일하고 자식을 낳아 기르고 휴식과 오락을 누리는 삶의 지속가능한 터전이어야 한다. 그러나 대도시이든 지방 중소도시이든 삶의 터전으로서 도시의 유효성은 크게 흔들리고 있다. 후쿠이 모델은 삶의 터전의 가치를 회복하고 있는 도시의 위기 극복 스토리다. 사바에·도야마의 성공 사례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할까.

도야마는 중심 시가지를 활성화시켜 세수를 늘려 다른 지역의 발전도 도모했다. 특히 기존 철도와 버스 노선을 재정비하는 한편 LRT(Light Rail Transit)라는 저상고속전차를 도입해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었다.
첫째 문제의식의 공유와 협력이다. 그들은 위기에 굴복하지 않고 도전의 기회로 삼았다. 나의 불편함을 자식과 자손들의 미래를 위해 양보하고 수용했고, 시와 기업과 시민들은 공동의 목표 아래 마음과 힘을 모았다. 둘째, ‘내 발 밑의 보물 찾기’ 즉, 이미 가지고 있는 경험과 기술을 재해석했다. 한계에 직면한 기존 산업을 버리지 않고 경험과 기술을 가다듬고 고도화해서 첨단 분야와 연결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했다. 셋째, 전통과 현대, 도시와 농촌의 가치의 융합이다. 전통과 농촌의 가치를 재해석하고 디지털 기술과 디자인과 융합해 현대인도 끌릴 수 있는 새롭고 즐거운 가치를 창조했다. 넷째, 젊은 세대, 특히 여성에게 초점을 맞췄다. 젊은 세대가 깃들 수 있는 첨단 디지털 분야를 강조한 오픈 이코노미를 만들어 창업을 육성하는 한편 여성들을 위한 보육시설과 양성평등을 구현하는 지원 시스템을 실현했다. 다섯째, 대기업이나 산업시설 유치보다 다양한 강소기업을 육성하고 이들이 연계해 산업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도록 장려했다. 여섯째, 교육 시스템의 혁신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를 양성하는 교육 시스템을 도입하고 자기 고장을 사랑하는 애향심을 고취했다. 그래서 청년들이 대도시에 나가더라도 늘 고향을 생각하며 고향의 발전을 위한 역할을 모색하게 했다. 상당수는 고향에 돌아가 창업하는 것을 꿈으로 여겼다. 4박 5일의 일정 동안 우리나라 지방과 도시의 미래 발전 방향을 고민하는 데 많은 영감과 통찰을 얻을 수 있었다. 지방소멸의 위기에 직면한 우리나라 지자체들도 후쿠이 모델에 못지 않은 성공 스토리를 만들 수 있기를 기대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박스기사] 인터뷰 | 마키노 햐쿠오 사바에 시장 - 온고지신의 정신으로 미래 대비


의성은 아직 농업이 주력이다. 사바에는 제조업이 중심인 것 같다. 앞으로 20년 후에 산업의 포트폴리오를 예상한다면.


“사바에의 안경·섬유·칠기는 모두 제조업이다. 모두 성숙된 산업으로 발전의 여지를 찾기 힘든 산업이다. 하지만 쇠퇴한 것이 아니라 축소됐다고 생각한다. 대신 소재(재료)의 혁신, 신상품·신제품의 개발 등으로 도전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을 시대의 요구에 맞게 재설계해서 혁신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또 3대 산업 하나하나가 특유의 기술을 보유하고 전문화된 분업체제를 취하고 있다. 하나하나의 기술이 여럿모여 최고의 상품을 만든다는 정신을 갖고있기 때문에 서로의 기술에 대해서도 숨지기 않는다. 이를 토대로 각 산업의 혁신이 이뤄지고 있다. 예컨대 안경산업은 의료기기·웨어러블 사업 등으로 확대되고 있다. 칠기산업에서는 식기세척기에 넣어도 되고, 열과 빛에도 강한 칠기를 개발했다. 라이프 스타일이 변화하면서 목제 식기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 ‘식기혁명’에 맞춰 개발한 것이다. 섬유산업에서는 항공우주산업, 에어백·시트 등의 자동차산업으로도 영역을 넓히고 있다. 미래에는 이런 혁신에서 나온 제품의 비중이 커질 것이다.”



양성평등이나 여성을 위한 정책이 굉장히 인상적이다. 미래를 내다보고 준비한 정책인가?


“1999년 일본 정부가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을 지정했다. 이에 따라 사바에에서는 2001년 남녀공동참획플랜을 만들고, 2003년에는 남녀공동참획추진조례를 만들었다. 시대의 변화의 흐름을 직면하고 실행에서 앞서 갈 수 있도록 노력했다. 남녀공동참획사회기본법은 남녀가 서로 인권을 존중하고,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남녀 공동이 참여하는 사회를 실현하기 위해서 만든 법률이다.”



시장님이 생각하는 사바에가 지닌 정신 또는 모델의 핵심은 무엇인가?


“사바에 모델의 핵심은 ‘안경의 마을 사바에(めがねのまちさばえ)’를 세계로 전달하는 것이다. 세계 어디를 봐도 반경 24km 이내에 지역 특성의 산업이 모두 모여있는 곳은 사바에 밖에 없다. 특히 사바에 상징을 안경으로 삼아 널리 알릴 계획이다. 일본만의 안경이 아닌, 세계의 안경으로 만들 것이다. 시계 하면 스위스가 떠오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스토리를 부여하는 것이가장 중요할 것 같다. 사바에의 제조업을 지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여성이다. 일본 모든 지역 중 여성이 가장 활발하게 활약하고 있는 곳이 사바에다. 인구 대비 사장이 가장 많은 곳 또한 사바에다.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고, 여성은 일하기 쉽고, 1세대당 소득이 높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이런 행복 스토리를 어떻게 잘 활용할 것인가가 과제다.”
 [박스기사] 인터뷰 | '이토록 멋진 마을' 저자 후지요시 마사하루 - 지자체장의 리더십이 무엇보다 중요


책을 쓰게 된 계기는?


“원래 일본의 행정기관 중 하나인 문부과학성 전문 기자로 오사카의 한 학교를 취재한 적이 있다. 오사카는 대도시인데도 학업 수준이 낮은 편이다. 이와 관련한 기사를 쓰기 위해 오사카 학교 교사들을 인터뷰했는데, 거의 대부분의 교사가 후쿠이현 이야기를 했다. 작은 도시인데도 학력 테스트에서 늘 상위권을 차지하는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비슷한 시기에 만났던 구글 관계자가 후쿠이현의 IT 산업이 굉장히 발달했다는 이야기를 해줬다.”



책에서 소개한 지역 중 사바에와 도야마를 방문했다. 두 지역의 성공 포인트는 뭐라고 생각하나?


“바로 시장(市長)이다. 마키노 하쿠오(사바에시장)와 모리 마사시(도야마시장)는 모든 사람을 자기편으로 만들어 간다는 공통점이 있다. 자신을 지지하는 사람도 많지만 시에서 시행하려는 정책에 반대하는 사람 또한 다수 존재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 결국은 자기편으로 만든다. 모리 시장의 경우 콤팩트 시티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마을 회의를 100번 넘게 열었다. 마키노 시장도 안에 있는 시간보다 밖에 있는 시간이 더 많다.”



요즘 일본의 젊은 세대들은 지역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요즘 젊은 세대들, 특히 도쿄대 등의 똑똑한 대학생들이 지역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일본 최대의 문제, 지역 활성화를 해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리더가 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비즈니스 플랜, IT 관련 아이디어 등을 겨루는 대학생 대상 콘테스트가 많은데 요즘에는 이런 곳에 참가하는 것보다 지역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자기가 실험해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고 지방으로 향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고 있다.”



지역 활성화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는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가?


“처음에는 단순히 ‘지방으로 오세요, 지방으로 이주해주세요’라는 메시지만 전달하는 데 그쳤다. 당연히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일방적인 메시지 전달보다는 직접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중앙정부와 지자체 협력으로 지방의 빈집을 활용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어느 지역에 살고 싶어하는 도시 사람에게 빈집 관련 정보와 혜택을 제공하는 것이다.”



의성군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한국의 지방소멸 가능 도시 1위라고 들었다. 그렇지만 위기가 아닌 엄청난 기회라고 생각한다. 마이너스일수록 무엇인가 할 수 있는 많은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또한 지역 활성화 문제는 한 국가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비슷한 상황에 놓인 한국과 일본이 많은 교류를 통해 서로 답을 찾아나가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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