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위대한 디자인을 찾아서
가장 위대한 디자인을 찾아서
클립부터 가상현실 기기까지 미국의 대학교수들이 꼽은 5가지 제품훌륭한 디자인은 제품의 외형뿐 아니라 기능도 한층 높여준다. 그런 제품은 보기 좋고, 사용하기도 좋으며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해 주기도 한다. 디자인학과 교수 다섯 명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역대 디자인이 가장 뛰어난 제품은? 또 그 이유는? 교수들의 답변은 저렴하고 일상적인 제품부터 값비싼 최신 것까지 다양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그 모든 제품들은 시행착오와 독창적 발상의 사례를 보여줬다. 1920년대 초 덴마크 디자이너 폴 헤닝센은 밤중에 코펜하겐 시내를 관찰하면서 가정용 조명의 질이 너무 떨어진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그는 백열전구에서 빛이 갈라져 나오는 현상이 발생하고 과도한 눈부심을 유발한다는 데 주목했다. 당시 사람들은 전구를 아무런 가림막 없이 사용하거나 전등갓 하나를 달고 사용하고 있었다.
헤닝센은 이 문제를 해결할 새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등은 ‘집안의 빛이라는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과업을 완수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썼다. ‘그 목적은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평온하고 안락한 저녁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헤닝센은 과학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전등갓을 여러 개 사용해서 방 안에 은은한 빛을 퍼뜨릴 방법을 연구했다.
1924년, PH램프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전등은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 빛을 발산한다. 빛이 균등하게 확산되도록 여러 겹으로 설치된 전등 갓 때문이다. 이 전등갓들은 광원과 주변 어둠 사이의 대비를 줄여주는 효과를 일으킨다.
헤닝센이 개발한 세련되고 날렵한 형태의 이 전등은 1925년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Decorative and Industrial Arts)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후 이 전등은 왕들이 사용했던 아티초크 램프 등 여러 파생 제품들을 낳았다. 1938년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탑승하는 열차에 헤닝센의 전등이 설치됐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 제품들은 요즘에도 구입할 수 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클립을 일상의 평범한 존재로 여겨왔다. 어렸을 때는 클립을 구부려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거는 도구로 사용했다. 10대 때는 친구들에게 고무줄을 날려보낼 때 썼다. 90년대엔 클립을 펴서 컴퓨터 속에 걸린 플로피 디스크를 꺼낼 때 사용했다.
젬 클립(gem paper clip)으로 특허가 걸려 있는 클립이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입학한 뒤였다. 클립은 우아하고 기능적이다. 게다가 지속가능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재질인 강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클립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먼 길을 지나왔다. 당초에 클립은 종이 여러 장을 꿰어 한 묶음으로 만들기 위한 핀이었다. 날카로웠기 때문에 사용하기도 어려웠고 찔려서 다치는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점차 개선해 나갔다. 뽀죡한 바늘 모양이었던 클립은 보다 종이에 쉽게 꽂아 넣을 수 있도록 한쪽 끝에 수평으로 와이어가 부착된 T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디자인도 종이에 구멍을 남기기는 마찬가지였다.
1890년 미국과 유럽의 발명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클립 개발에 나섰다. 18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발명가 매튜 스쿨리는 와이어를 구부려 두 개의 동그란 고리를 만듦으로써 제품을 개선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고리 하나에서 삐져 나온 와이어가 종이에 걸려서 종이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발명가들도 저렴하고 안전하면서 재사용이 가능한 종이 바인더를 꿈꾸며 무수히 많은 제품을 내놓았다.
마침내 1899년 미국 코네티컷 주의 발명가 윌리엄 미들브룩이 젬 클립과 이를 제조하기 위한 기계를 개발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클립과 같다. 두 개의 고리가 얽혀 있는 이 절묘한 디자인은 여러 장의 종이를 한데 묶기에 충분했다. 부러지거나 종이나 손가락에 손상을 입히는 일도 없었다.
오늘날 미국인은 매년 110억 개의 클립을 구입하지만 이 클립들이 모두 종이를 묶는 데 쓰이지는 않는다. 미들 브룩은 자신의 발명품이 크리스마스 장신구를 거는 고리나 고무줄 총의 재료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1958년 미국 워싱턴 덜레스 국제공항의 메인 터미널 디자인을 의뢰받은 건축가 에로 사리넨은 가구 디자이너 레이와 찰스 임스 부부에게 연락했다. 임스 부부는 자신들의 발명품인 라운지 의자로 저명한 디자이너였다. 사리넨은 이들에게 가격이 적절하면서도 튼튼하고 보기 좋고 다용도로 쓸 수 있는 공용 의자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1962년 이 부부는 직렬식 슬링 좌석 시스템(tandem sling seating system)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사리넨의 터미널에 맞춰 디자인됐지만 매우 실용적이어서 미국 전역의 공항에서 좌석 시스템으로 빠르게 채택됐고, 머지않아 전 세계로 확산됐다.
공용 의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에 튼튼하면서도 유지보수가 쉬워야 한다. 비용도 중요해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을 늘 좌절하게 하는 제품이다. 임스 부부의 좌석 시스템은 이 모든 문제들에 우아하면서도 단순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20세기 중반 모더니스트 디자인의 상징적 사례가 됐다.
이 의자는 분리 배송이 가능하고 결합과 유지보수가 쉽고 잘 변형되지도 않았다. 튼튼하면서도 다리가 많지 않아 의자 아래를 청소하기도 용이했다. 설치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의자 한 줄은 2개가 될 수도, 8개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의자 제조엔 단 3개의 재료만 사용됐다. 알루미늄, 비닐, 합성고무의 일종인 네오프렌은 모두 저렴한 재료들이지만 의자는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의자 쿠션은 탈부착이 가능하면서도 결코 찢어지지 않았다. 또 넓은 좌석은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놓친 여행자들이 터미널에서 밤을 보낼 때는 임스 라운지 의자와 같은 각도로 설계된 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붙이기에도 그만이었다. 미국 산업 디자이너 헨리 드레이푸스의 AT&T 모델 500 전화기는 20세기의 가장 상징적이면서도 훌륭한 제품 가운데 하나다. 이 전화기와 그 디자인 과정은 오늘날 사용되는 많은 디자인 원칙의 표본이 됐다.
구멍 뚫린 다이얼이 달린 다이얼식 전화기는 20세기 초반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벽에 나사로 고정됐거나 듣고 말하기 위해 각각 별도의 장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전화기 사용자는 교환기로 통화자를 연결하는 교환원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교환이 자동화되자 디자이너들은 보다 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교환원 대신 전화 이용자들이 직접 복잡한 번호 조합을 다이얼로 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델 500 이전 제품들도 이런 수요들을 해결하는 데는 근접했지만 모델 500은 전화기의 사용 방법을 완전히 바꿔놓을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면서 디자인을 향상시켰다. ‘프랑스 전화기’라 불렸던 AT&T의 첫 다이얼식 전화기는 1927년 발매됐다. 이 전화기는 스피커와 마이크를 결합한 통합형 수화기를 탑재했지만 이용하기가 불편했다. 드레이푸스가 1936년 내놓은 모델 302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역시 수화기의 형태가 어색했다.
그리고 1949년 드레이푸스가 모델 500을 내놓았다. 새로운 플라스틱 기술을 도입한 이 전화기의 수화기는 끝이 둥글고 매끄러웠으며 균형이 잡혀 있어 사용하기 거추장스러웠던 이전 모델보다 한층 나았다. 다이얼의 숫자 아래에 문자를 써놓기 시작한 것도 이 전화기가 처음이었다. 이 방식은 사업가들에게 큰 기회를 가져다 줬다. 이제 전화 번호를 보다 외우기 쉬운 문장 형태로 홍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카드업체 익스프레스는 자사 전화번호를 1-800-THE-CARD로 홍보했다.
또 모델 500은 최초로 디자인 과정에 인체공학과 인지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AT&T와 드레이푸스는 세계 최초의 산업 심리학자인 존 칼린을 고용하고 실험을 통해 새 디자인을 평가하도록 했다. 다이얼의 구멍 아래에 하얀 점을 찍거나 전선의 길이를 정하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사항도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정해졌다.
모델 500은 그 후속 제품까지 포함해 1620만 대가 판매됐다. 거의 미국의 온 가정마다 한 대씩 보급된 것이다. 이 전화기는 향후 수십 년 간 미국 가정의 거실과 부엌, 사무실 한 켠을 차지했다. 지난 수년 새 많은 가상현실(VR) 안경이 출시됐다. 가격은 3000달러에서 5000달러로 저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제품들 가운데 하나인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는 지난해 출시 이래로 수천 개가 판매됐다.
홀로렌즈는 이용자가 3D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에 있는 물건들도 볼 수 있게 했다. VR 속 사물들을 조작하려면 이용자들은 손짓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혹은 단지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이 제품은 인체공학에 기반을 두고 디자인됐다. 이용자는 자신의 머리 크기에 맞춰 제품의 머리끈이나 안경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안경을 쓰거나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도 이 제품을 착용할 수 있다. 이는 HTC 바이브 등 무겁고 착용이 번거로운 다른 VR 기기들과 홀로렌즈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홀로렌즈를 위해 개발된 새로운 세대의 비디오 게임이 많다.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고용주는 이 제품이 근무 생산성을 개선하고 일부 직업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데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제조하는 기업 티센크루프는 엘리베이터 기술자에게 홀로렌즈를 지급했다. 기술자가 이 제품을 통해 훨씬 더 간편하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좁은 엘리베이터 통로 안에서 일하면서도 이 기계를 이용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 의과대학에선 홀로렌즈를 이용해 해부용 시체 없이도 의사들을 훈련하고, 자동차업체 볼보는 새 자동차 모델을 만든다. 가격이 더 내려가면 현재 수천 단위인 이 제품 시장이 금세 백만 단위로 확장될 것이다.
- 아이비타임즈 편집부
※ [이 기사는 더컨버세이션에 먼저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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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헤닝센의 PH램프 | 캐서린 앤더슨(조지워싱턴대학 교수)
헤닝센은 이 문제를 해결할 새 디자인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등은 ‘집안의 빛이라는 가장 어렵고도 고귀한 과업을 완수하게 될 것’이라고 그는 썼다. ‘그 목적은 집과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아름답게 만들고, 평온하고 안락한 저녁을 가져다주는 것이다.’ 헤닝센은 과학적인 접근법을 택했다. 전등갓을 여러 개 사용해서 방 안에 은은한 빛을 퍼뜨릴 방법을 연구했다.
1924년, PH램프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전등은 보기에도 좋을 뿐 아니라 눈에 부담을 주지 않는 빛을 발산한다. 빛이 균등하게 확산되도록 여러 겹으로 설치된 전등 갓 때문이다. 이 전등갓들은 광원과 주변 어둠 사이의 대비를 줄여주는 효과를 일으킨다.
헤닝센이 개발한 세련되고 날렵한 형태의 이 전등은 1925년 개최된 파리 만국박람회(International Exhibition of Modern Decorative and Industrial Arts)에서 금메달을 수상했다. 이후 이 전등은 왕들이 사용했던 아티초크 램프 등 여러 파생 제품들을 낳았다. 1938년엔 덴마크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탑승하는 열차에 헤닝센의 전등이 설치됐다. 독창적인 디자인의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이 제품들은 요즘에도 구입할 수 있다.
윌리엄 미들브룩의 젬 클립 | 로레인 저스티스(로체스터공과대학 교수
젬 클립(gem paper clip)으로 특허가 걸려 있는 클립이 완벽에 가까운 디자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대학교 디자인학과에 입학한 뒤였다. 클립은 우아하고 기능적이다. 게다가 지속가능하고 재활용할 수 있는 재질인 강철로 만들어졌다.
그러나 클립은 우리가 오늘날 알고 있는 완전한 형태로 만들어지기까지 먼 길을 지나왔다. 당초에 클립은 종이 여러 장을 꿰어 한 묶음으로 만들기 위한 핀이었다. 날카로웠기 때문에 사용하기도 어려웠고 찔려서 다치는 사고도 종종 발생했다. 그래서 점차 개선해 나갔다. 뽀죡한 바늘 모양이었던 클립은 보다 종이에 쉽게 꽂아 넣을 수 있도록 한쪽 끝에 수평으로 와이어가 부착된 T핀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이 디자인도 종이에 구멍을 남기기는 마찬가지였다.
1890년 미국과 유럽의 발명가들은 새로운 형태의 클립 개발에 나섰다. 1898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의 발명가 매튜 스쿨리는 와이어를 구부려 두 개의 동그란 고리를 만듦으로써 제품을 개선했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남았다. 고리 하나에서 삐져 나온 와이어가 종이에 걸려서 종이가 찢어지는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발명가들도 저렴하고 안전하면서 재사용이 가능한 종이 바인더를 꿈꾸며 무수히 많은 제품을 내놓았다.
마침내 1899년 미국 코네티컷 주의 발명가 윌리엄 미들브룩이 젬 클립과 이를 제조하기 위한 기계를 개발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클립과 같다. 두 개의 고리가 얽혀 있는 이 절묘한 디자인은 여러 장의 종이를 한데 묶기에 충분했다. 부러지거나 종이나 손가락에 손상을 입히는 일도 없었다.
오늘날 미국인은 매년 110억 개의 클립을 구입하지만 이 클립들이 모두 종이를 묶는 데 쓰이지는 않는다. 미들 브룩은 자신의 발명품이 크리스마스 장신구를 거는 고리나 고무줄 총의 재료로 쓰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임스 부부의 직렬식 슬링 좌석 | 크레이그 보겔(신시내티대학 교수)
1962년 이 부부는 직렬식 슬링 좌석 시스템(tandem sling seating system)을 공개했다. 이 시스템은 사리넨의 터미널에 맞춰 디자인됐지만 매우 실용적이어서 미국 전역의 공항에서 좌석 시스템으로 빠르게 채택됐고, 머지않아 전 세계로 확산됐다.
공용 의자는 많은 사람이 이용하기 때문에 튼튼하면서도 유지보수가 쉬워야 한다. 비용도 중요해 미적으로 아름다운 것을 추구하는 디자이너들을 늘 좌절하게 하는 제품이다. 임스 부부의 좌석 시스템은 이 모든 문제들에 우아하면서도 단순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면서 20세기 중반 모더니스트 디자인의 상징적 사례가 됐다.
이 의자는 분리 배송이 가능하고 결합과 유지보수가 쉽고 잘 변형되지도 않았다. 튼튼하면서도 다리가 많지 않아 의자 아래를 청소하기도 용이했다. 설치도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었다. 의자 한 줄은 2개가 될 수도, 8개가 될 수도 있었다.
게다가 이 의자 제조엔 단 3개의 재료만 사용됐다. 알루미늄, 비닐, 합성고무의 일종인 네오프렌은 모두 저렴한 재료들이지만 의자는 비싸고 고급스러워 보였다. 의자 쿠션은 탈부착이 가능하면서도 결코 찢어지지 않았다. 또 넓은 좌석은 다양한 체형의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다. 비행기를 놓친 여행자들이 터미널에서 밤을 보낼 때는 임스 라운지 의자와 같은 각도로 설계된 이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눈을 붙이기에도 그만이었다.
헨리 드레이푸스의 모델 500 전화기 | 칼레 리티넨(케이스웨스턴리저브대학 교수)
구멍 뚫린 다이얼이 달린 다이얼식 전화기는 20세기 초반에 처음 등장했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벽에 나사로 고정됐거나 듣고 말하기 위해 각각 별도의 장비가 필요했다. 게다가 전화기 사용자는 교환기로 통화자를 연결하는 교환원에게 전화를 해야 했다. 교환이 자동화되자 디자이너들은 보다 더 직관적인 인터페이스를 제공할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교환원 대신 전화 이용자들이 직접 복잡한 번호 조합을 다이얼로 돌려야 했기 때문이었다.
모델 500 이전 제품들도 이런 수요들을 해결하는 데는 근접했지만 모델 500은 전화기의 사용 방법을 완전히 바꿔놓을 몇 가지 기능을 추가하면서 디자인을 향상시켰다. ‘프랑스 전화기’라 불렸던 AT&T의 첫 다이얼식 전화기는 1927년 발매됐다. 이 전화기는 스피커와 마이크를 결합한 통합형 수화기를 탑재했지만 이용하기가 불편했다. 드레이푸스가 1936년 내놓은 모델 302는 금속으로 만들어졌는데 역시 수화기의 형태가 어색했다.
그리고 1949년 드레이푸스가 모델 500을 내놓았다. 새로운 플라스틱 기술을 도입한 이 전화기의 수화기는 끝이 둥글고 매끄러웠으며 균형이 잡혀 있어 사용하기 거추장스러웠던 이전 모델보다 한층 나았다. 다이얼의 숫자 아래에 문자를 써놓기 시작한 것도 이 전화기가 처음이었다. 이 방식은 사업가들에게 큰 기회를 가져다 줬다. 이제 전화 번호를 보다 외우기 쉬운 문장 형태로 홍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카드업체 익스프레스는 자사 전화번호를 1-800-THE-CARD로 홍보했다.
또 모델 500은 최초로 디자인 과정에 인체공학과 인지 전문가들을 채용했다. AT&T와 드레이푸스는 세계 최초의 산업 심리학자인 존 칼린을 고용하고 실험을 통해 새 디자인을 평가하도록 했다. 다이얼의 구멍 아래에 하얀 점을 찍거나 전선의 길이를 정하는 것 같은 아주 작은 사항도 소비자의 의견에 따라 정해졌다.
모델 500은 그 후속 제품까지 포함해 1620만 대가 판매됐다. 거의 미국의 온 가정마다 한 대씩 보급된 것이다. 이 전화기는 향후 수십 년 간 미국 가정의 거실과 부엌, 사무실 한 켠을 차지했다.
마이크로소프트 홀로렌즈 | 칼라 비비애나(콜먼 매릴랜드대학 교수)
홀로렌즈는 이용자가 3D 디지털 세계와 상호작용하면서 동시에 현실 세계에 있는 물건들도 볼 수 있게 했다. VR 속 사물들을 조작하려면 이용자들은 손짓을 하거나 말을 하거나 혹은 단지 쳐다보기만 하면 된다.
이 제품은 인체공학에 기반을 두고 디자인됐다. 이용자는 자신의 머리 크기에 맞춰 제품의 머리끈이나 안경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이용자들은 자신의 안경을 쓰거나 머리를 포니테일로 묶고도 이 제품을 착용할 수 있다. 이는 HTC 바이브 등 무겁고 착용이 번거로운 다른 VR 기기들과 홀로렌즈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홀로렌즈를 위해 개발된 새로운 세대의 비디오 게임이 많다. 뿐만 아니라 최근 많은 고용주는 이 제품이 근무 생산성을 개선하고 일부 직업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는 데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예를 들어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제조하는 기업 티센크루프는 엘리베이터 기술자에게 홀로렌즈를 지급했다. 기술자가 이 제품을 통해 훨씬 더 간편하게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기술자들은 좁은 엘리베이터 통로 안에서 일하면서도 이 기계를 이용해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됐다. 또 의과대학에선 홀로렌즈를 이용해 해부용 시체 없이도 의사들을 훈련하고, 자동차업체 볼보는 새 자동차 모델을 만든다. 가격이 더 내려가면 현재 수천 단위인 이 제품 시장이 금세 백만 단위로 확장될 것이다.
- 아이비타임즈 편집부
※ [이 기사는 더컨버세이션에 먼저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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