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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섹스가 만났을 때

기술과 섹스가 만났을 때

오르가슴 경험하지 못한 10~15% 여성 위한 스마트 바이브레이터 ‘라이오니스’, 질 내 움직임 측정해 절정의 패턴 파악한다
여성들은 라이오니스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자신의 성적 반응을 탐구할 수 있다.
리즈 클린저는 가방 속으로 손을 집어넣어 지난 4년간 개발해온 바이브레이터를 꺼낸다. 둥근 머리 아래 탄력적인 클리토리스 자극봉이 있는 연한 청회색 도구다.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된 손잡이에는 쉽게 눈에 띄는 곳에 단추가 2개 달려 있다. 그녀는 “우리는 그것을 호기심쟁이의 바이브레이터로 부른다”고 말했다. “의도적으로 보통 바이브레이터같이 디자인했지만 사용 후 앱과 동기화해 결과가 어떤지 볼 수 있다는 점이 다르다.”

우리는 미국 맨해튼 중심가 공동작업공간의 소파에 앉아 있다. 우리 주변에는 온통 남자들뿐이다. 바로 뒤 개인 책상에 한 남자가 앉아 노트북 컴퓨터를 들여다본다. 그리고 긴 나무 테이블에 몇 명이 더 모여 있다. 이유는 뻔하겠지만 그들은 가끔씩 우리 쪽을 힐끔거린다.

클린저(29)는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태연하다. 이른바 ‘세계에서 가장 똑똑한 바이브레이터’ 라이오니스(Lioness) 제조사의 CEO 겸 공동창업자다. 말하자면 여성의 질에 쓰는 피트니스 트래커다. 배송비를 제외한 가격이 229달러인 라이오니스에는 4개의 센서가 달려 있다. 2개는 골반저(pelvic floor) 패턴 측정용, 1개는 온도 측정용, 나머지 하나는 움직임 감지용이다. 그리고 사용 후 데이터를 앱으로 전송해 이용자가 자신의 성적 반응을 탐구하고 오르가슴 패턴을 파악해 파트너와 대화하도록 한다.

“이게 오르가슴이에요!” 클린저가 아이폰을 손에 들고 앱에 표시된 그래프의 가장 높고 넓은 봉우리들을 가리키며 말한다. “그래프는 골반저 움직임을 초 단위로 측정한다. 시간의 흐름에 따른 변동 추이를 볼 수 있고 오르가슴 동안 일종의 패턴이 나타난다.” 앱은 또한 이용자의 오르가슴을 애니메이션으로 나타내고(고동 치는 동그라미들), 섹스 일기 또는 사용 중의 느낌을 기록(알코올이나 커피 소비를 추적)할 수 있게 하고, 이용자의 성적 흥분 패턴을 다른 이용자의 데이터와 비교해 바이브레이터의 새로운 사용법을 제안하기도 한다(보도 자료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런 오르가슴 패턴을 가진 다른 사람들은 라이오니스를 윗쪽으로 기울이는 것을 즐기는 듯하다’).

여성들이 자신의 몸과 성생활을 더 잘 이해하고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파트너와 더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표라고 클린저 CEO는 말한다. 하지만 그 많은 데이터로 여성이 정확히 무엇을 해야 할까? 클린저 CEO는 이렇다 할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여기서 또 다른 의문이 꼬리를 물었다. 침실의 IT가 어느 정도라야 많다고 할까?

기술과 섹스의 만남은 라이오니스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수년 동안 투자자와 기술자들은 섹스의 즐거움을 더 해주겠다며 깜찍한 이름을 가진 스마트 제품을 다수 내놓았다. 러브라이프 크러시(Lovelife Krush, 149달러)는 케겔 운동(골반저근 강화 운동)용 핏비트인 셈이다. 센서가 내장돼 골반저 근육의 압력·통제력·지구력을 측정한다. 내년 초 출시예정인 바지니(VaGenie)도 거의 비슷한 기능이다. 둘 다 전용 앱과 연동한다. 피에라(199~249달러)는 가벼운 자극과 부드러운 흡입력으로 섹스 전 혈행과 피부 윤활을 개선해 여성의 흥분을 돕는다. 애프터글로 바이브레이터(Afterglow vibrator, 129달러)는 펄스웨이브 광기술을 이용해 “자연스럽게 흥분하도록 돕는다.” 하반신마비 환자, 장애인과 관절염환자용 바이브레이터도 있다.이들 스마트 섹스완구는 속도조절 기능과 패턴이 더 많고 방수도 된다. 하지만 그것 말고는 20달러짜리 표준 바이브레이터보다 더 낫다는 증거는 많지 않다. 게다가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다. 2014년 위-바이브(We-Vibe)는 앱과 연동하는 바이브레이터로 폰섹스에 혁명을 불러왔다. 한 사람이 사용하는 동안 또 한 사람이 옆방이나 지구 반대편에서 그것을 제어할 수 있게 했다. 이 제품에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위-바이브를 개발한 캐나다 업체 스탠더드 이노베이션스는 최근 집단 소송을 당해 375만 달러의 합의금을 지불했다. 그들은 앱을 이용해 고객의 바이브레이터 이용방식에 관한 데이터를 수집한다는 의혹을 샀다.

라이오니스의 리즈 클린저 CEO(가운데)는 “여성들이 파트너와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려는 목표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여성 중 10~15%가 오르가슴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통계를 더 심각한 문제로 여기는 시각도 있을지 모른다. 마이클 크리크먼은 “자신의 클리토리스가 어디 있는지 모르는 여성도 많다”고 말했다. 산부인과 의사이자 성의학 부인과 의사이며 미국 성교육자·카운슬러·치료사협회(AASECT) 인증 임상 섹스 카운슬러로 ‘서던캘리포니아 성건강·서바이버십 센터’ 대표를 맡고 있다. 약 10년 동안 뉴욕시에 있는 메모리얼 슬로운-케터링 암센터의 성의학·재활 프로그램을 운영했던 그는 “오르가슴이 전에는 천둥과 번개 치는 듯했는데 지금은 똑똑 떨어지는 빗방울 같다는 말을 폐경기 여성들로부터 때때로 듣는다”고 말했다. “커플들은 성적 권태기를 맞는다. 치료의 일환으로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해 여성이 변화에 적응하고 약간의 성적탐구를 통해 성경험을 강화하도록 돕기도 한다.”

치료용으로든 쾌락용으로든 바이브레이터 시장은 수십억 달러 규모에 달한다. 시장조사 업체 테크나비오에 따르면 미국의 섹스 웰니스(웰빙과 조화) 시장은 2015년 61억3000만 달러에 달했으며 2020년에는 97억5000만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2015년 섹스 완구 판매는 27억7000만 달러로 그 시장의 절반 가까이를 차지했다. 요즘에는 갖가지 형태·사이즈·색깔 그리고 온갖 페티시(특정 신체부위나 사물에 대한 성적 집착) 또는 욕구에 맞춰 완구가 출시된다. 섹스 완구는 1860년대 후반~1870년대 조시 테일러라는 미국인 의사가 증기 마사지·진동 테이블 특허를 출원하면서 처음 등장한 이후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그 뒤 1880년대 조셉 모티머 그랜빌이라는 영국인 의사가 배터리로 작동되는 무게 18㎏의 바이브레이터를 발명했다. 20세기로 넘어갈 즈음 바이브레이터는 재봉틀·선풍기·주전자·토스터에 이어 다섯번 째로 전동화되는 가정용품이 됐다. 당시 바이브레이터는 대체로 신경발작·졸도부터 산부인과 질환과 불안까지 여성의 갖가지 문제에 대한 만병통치약으로 간주됐다. 그리고 대부분 어떻게든 쾌락과 관련 있다기보다는 파괴의 도구에 더 가까워 보였다.1920년대 들어서자 여성지와 가정 관련 매체들이 ‘모든 고통을 완화하고 질병을 치료하는’ 거의 신비에 가까운 바이브레이터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기 시작했다. 1968년 히타치가 선보인 540g 30㎝ 짜리 개인용 마사지기 매직 완드(Magic Wand, 마법의 지팡이)는 사랑 받는 섹스 완구 겸용으로 쓰이게 됐다. 지난 수십 년 사이 바이브레이터는 마침내 미국 가정의 어두운 양말장에서 벗어나 양지로 나왔다.

라이오니스 앱은 시간 경과에 따라 골반저 움직임을 도표로 나타내 사용 중 흥분도의 변화를 보여준다.
1989년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맥 라이언은 요란한(그러나 가짜) 오르가슴으로 뉴욕시의 한 만찬 레스토랑을 정적에 빠뜨렸다. 잠시 후 가까이 앉아 있던 머리 희끗희끗한 나이든 여성이 웨이터에게 “나도 저 여자가 먹는 걸로 하겠어요”라고 말해 쾌감이 젊은이만의 특권이 아님을 우리 모두에게 상기시켜줬다. 1990년대 초 여성들의 터퍼웨어 파티(Tupperware parties, 식품보존용 밀봉용기 판매원이 가정을 방문해 여는 상품설명회)가 섹스 완구 파티로 바뀌었다. 그리고 1998년 미국인의 사랑을 받던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캐리·서맨사·샬롯·미란다)은 한 에피소드에서 토끼 귀 모양의 클리토리스 자극봉이 달린 새 바이브레이터의 장점을 찬양하는 데 모든 시간을 할애했다. “이거 핑크색이야, 여아용!”이라는 샬롯의 말은 두고두고 화제가 됐다.

오늘날 기술은 남녀의 성관계 그리고 쾌락의 체험 방식(혼자서든 파트너와 함께든)에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전역에서 18~60세 여성 3800명의 표본을 추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전체 여성의 절반가량이 바이브레이터를 이용한다. 그런 여성은 부인과 검진을 받고, 자기진단을 하고, 애정관계에 더 긍정적으로 접근하는 비율이 더 높다. 그러나 정말로 오르가슴 도표를 작성해 시간대별로 비교할 필요까지 있을까. 정말로 라이오니스가 필요할까?

임상심리학자 겸 성건강 선구자 레슬리 쇼버는 “자신의 성적 흥분을 그다지 인식하지 못하거나 오르가슴에 잘 오르지 못하는 여성에게는 이것을 통해 받는 바이오피드백이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섹스와 생식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암환자와 생존자 대상의 디지털 건강 업체 윌2러브(Will2Love)를 설립했다. “그러나 일반 여성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바이브레이터를 사용하면서 ‘앱이 지금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 할까? 그것은 수행불안(performance anxiety, 특정 행위의 실패에 대한 불안)을 조장할 뿐이다. 여성은 항상 성관계 중 ‘내 파트너가 만족하고 있을까? 내가 너무 늦게 오르가슴에 도달하는 걸까’ 하는 생각에 여념이 없다. 근육 긴장 패턴을 통해 언제나 똑같이 얻기 원하는 성경험을 찾을 수 있다는 생각은 착각이다. 근사한 성경험은 파트너가 어떻게 하는지 또는 혼자라면 어떤 판타지를 갖고 있는지에 좌우되지 근육수축이 더 오래 지속되느냐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크리크먼 박사도 같은 생각이다. 뉴스위크와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라이오니스 웹사이트의 글을 소리 내 “시간대별 흥분과 오르가슴 패턴을 추적함으로써 자신의 몸에 무엇이 효과적인지 파악할 수 있다”고 읽더니 이렇게 덧붙였다. “그런데 나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건 두 사람 간의 커뮤니케이션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애정관계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수 있다. 사람의 경험은 사람과의 상호작용과 피드백에서 비롯된다. 사람들이 질의 온도와 그 변화에 신경 쓰게 될까? 애정관계가 너무 기계적으로 변하는 건 아닐까? 굳이 말하라면 성관계라는 개념에서 인간적인 측면을 상실하게 될 것이다.”그러나 섹스와 기술은 이미 밀접한 연관성을 갖고 있다. 생리 측정 앱 클루를 이용해 14만 명 이상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근 조사에 따르면 오늘날 5명 중 1명은 앱을 이용해 섹스에 관한 정보를 얻는다. 조사에선 앱을 이용해 자신의 성행위를 측정한다는 답변도 40%에 달했다(섹스 또는 데이트 상대 물색에 앱을 이용하는 비율 34%보다 높다). 라이오니스에 불리한 소식은 성적 만족 측정에 앱을 이용한 비율은 3%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클린저 CEO는 여성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자신의 성적 경향을 탐구하려 한다는 사실에 기대를 건다. 그녀는 미국 중서부의 보수적인 가정에서 성장했다. 다트머스 칼리지에서 스튜디오 아트와 철학을 공부한 뒤 금융회사에 취업해 뉴욕으로 이주했다. 1년 뒤 회사를 그만두고 섹스완구 파티를 열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파티에서 누군가 ‘G 스팟(질 내 강렬한 성감을 일으키는 부분)이 뭐지? 내 몸 어디에 있는 거야?’ 라고 물었던 기억이 있다. 또 한번은 결혼 전 여성의 ‘독신생활 쫑파티(bachelorette party)’에서 예비신부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어.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어떻게 하는지 몰라. 좋은 방법 없어? 이게 정상인 거야?’ 그 말에 눈이 번쩍 떠졌다.”

클린저 CEO는 고등학교 때 처음 으슥한 CD점에서 바이브레이터를 현찰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대단히 불편한 경험이었다. 멋진 디자인의 고급 바이브레이터가 다양하게 구비된 성인용품점 베이브랜드가 아니었다. 온통 플라스틱 소재에 젤리 형태 제품들과 클리토리스 자극봉들뿐이었다. 나는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하는 바이브레이터를 만들고자 했다. 더 빠르거나 강하게 만들기보다는 디자인을 개선하고 구입방식과 경험을 향상시키는 데 중점을 뒀다.”

위-바이브 소송이 스마트 바이브레이터 시장에 먹구름을 드리우는 상황에서 클린저 CEO는 연구팀과 함께 이용자에게 완벽한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고 수집된 모든 데이터의 익명성을 유지하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그녀는 “민감한 데이터를 취급할 때의 모든 관행에 덧붙여 우리 측에서 데이터에 접근할 때 의도적으로 이용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도록 설정했다”고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양동이에 담긴 이용자 데이터에서 개인 정보 걸러내 데이터 ‘호수’에 쏟아버리는 데 비유한다. 일단 호수에 버려지면 어떤 ‘물’이 어떤 양동이에 담겼었는지 알아내기 어렵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그 모든 데이터로 자기 오르가슴의 그래프와 애니메이션을 바라보는 것 외에 정확히 무슨 일을 할까? 클린저 CEO는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이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자신의 신체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훗날 이 정보를 이용해 더 맞춤형의 지침과 지식을 제공하고 여성의 성적 경향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는 비전을 갖고 있다.”

미군에 근무하며 샌프란시스코 만안 지역에 거주하는 조앤 로(31)는 라이오니스 제품의 초기 베타 테스터로 자원했다. “라이오니스는 여성이 자신의 몸을 이해하는 과정의 공포감을 덜어준다.” 오르가슴을 경험하지 못한 10~15%의 여성 그리고 오르가슴을 느껴보지 못했다며 클린저 CEO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예비 신부에게는 라이오니스가 무엇보다 필요한 물건인지도 모른다.

- 애비게일 존스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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