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서민증세’인가 ‘공평과세’인가
[김수헌의 경제에 비친 세상 읽기] ‘서민증세’인가 ‘공평과세’인가
신종 전자담배 세금 논쟁 가열... 자유한국당의 담뱃값 인하 움직임이 변수 2005년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출입기자였던 필자가 기억하기에 세금과 관련해 가장 뜨거웠던 이슈는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 강화였다. 이것은 당시 8·31 부동산 종합대책의 핵심 내용 가운데 하나였다. 그 무렵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세금 관련 이슈 가운데 하나를 또 꼽으라면, 주세(酒稅)법 개정(주세율 조정)안을 들 수 있겠다. 이것은 8·31 대책 일주일여 뒤 발표한 세제개편안에 담겨있었다. 부동산 세금 강화정책은 국회를 거치면서 대체로 신속하게 관련 법 개정이 진행됐다. 하지만 소주세율 인상안은 거센 반발에 직면했다. 거의 모든 매체가 서민증세라는 논리를 내세워 화살을 퍼부었던 데다, 반대 국민여론 또한 거세지자 당시의 여당마저 등을 돌렸다. 정부는 결국 주세율 조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최근의 세금 이슈를 살펴보니 묘하게도 당시 상황과 겹치는 느낌이 든다. 올해 국민들의 경제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세금 이슈를 고르라고 한다면 8·2 부동산 대책에 따른 양도세 강화를 들 수 있겠다. 양도세 중과세 방안은 다주택자들에게 주로 해당되는 문제다. 다만, 앞으로 1가구 1주택자도 이른바 ‘거주기간’ 요건을 충족해야만 양도세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게 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전반에 걸친 이슈라고 할 수 있겠다.
부동산 세금 말고 또 하나를 거론하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지난 6월쯤 받았다면 아마도 “소주세율 인상 여부”라고 답했을 것 같다. 지금(9월 중순)으로부터 약 석달 전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정부가 8월 발표 예정인 세제개편안에 고도주(도수가 높은 술) 증세안이 포함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고도주 증세란 곧 소주 증세를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고도주 증세 등의 주세 개편은 중장기 과제”라고 밝히면서 당장의 소주 증세 추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소주 증세와 비슷하면서 불씨가 살아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신종담배 관련 세금 문제다. 신종담배란 이른바 궐련형 전자담배를 말한다. 지난 5월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 이름의 전자담배를 국내에 출시한 이후 ‘서민증세’ 대 ‘공평과세’ 논쟁이 치열하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 불씨가 일단 꺼진 사안이긴 하지만, 우선 주류세부터 먼저 보자.
소주회사에서 소주를 제조해 출고하는 가격, 즉 병당 출고 원가(소주회사 마진 포함)가 500원이라고 가정하자. 이 가격에 주세 72%(360원)가 붙는다. 또 주세액의 30%(108원)만큼 교육세가 부가된다. 이걸 다 더한 가격(968원)에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 10%(96.8원)가 붙어 약 1065원의 공장도 출고가가 정해진다. 부가세까지 다 고려하면 소주회사 출고원가의 100%를 살짝 웃도는 수준의 세금이 붙는 셈이다. 소주는 주류 도매상을 거쳐 음식점 등으로 공급되는데, 유통 과정에서 300~400원의 마진이 붙는다. 대형마트에서 소주를 산다면 병당 1200~1400원에 살 수 있다. 대중음식점 메뉴판에 적힌 소주 1병 가격이 보통 4000원 안팎, 번화가의 괜찮은 고깃집이라면 5000원 정도 받는다. 식당이 음식보다는 술을 팔아 남기는 이윤이 더 짭짤하다는 통설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2005년 당시 정부는 소주와 위스키에 대한 주세를 72%에서 90%로 올리려 했다. 소주처럼 도수가 높은 술에 대한 소비를 줄여 고도주 과음에 따른 사회적 비용(질병, 교통사고, 각종 폭행 사건 등)을 줄이는 한편 증류주에 대한 세부담을 국제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맥주에 대한 주세는 2001년 100%에서 2005년 90%로 낮아졌다. 2007년까지 72%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이미 법에 정해져 있었다. 정부는 그래서 소주세율을 올리더라도 전체 주류에 대한 국민 세부담은 크게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고도주 고세율, 저도주 저세율’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상황은 만만치 않았다. 서민들이 즐기는 대표적 술인 소주에 대해 세금을 늘리는 것은 세수 확대를 위해 서민증세하겠다는 이야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정부는 소주 세율을 올리더라도 출고가가 97원 정도 인상되고, 소비자 가격으로는 100~200원 오르는 효과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국민들의 부담이 그리 크게 늘지 않을 거라는 분석이었다. 그러나 한번 불붙은 서민증세론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았다. 여론이 들끓고 여당 내에서도 소주 증세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나오자 정부는 결국 주류세 개정안을 접어야 했다. 노무현 정부에 이어 이명박 정부도 주세 개정에 손을 대보려 했지만,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하고 포기했다.
주세 개정이 올 들어 화제로 떠오른 건 지난 6월 말 조세재정 연구원이 개최한 ‘주세 합리적 개편안 공청회’ 때문이었다. 정부가 세제개편에 참고하기 위해 성명재 홍익대 교수에게 주세 개편 방향에 대한 용역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날 성 교수가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음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19조원 수준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주세율을 ‘종가제’가 아닌 ‘종량제’로 개편하는 한편 주세율 자체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주세는 제조사의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주세, 그리고 주세에 부가되는 교육세를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이것을 알코올 도수와 알코올 함량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제 방식으로 바꿔 고도주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해야 국민건강 증진과 사회적 비용 충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5년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기획재정 부는 상당히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토론자로 나선 기재윤승출 과장은 “종량제 개편에 대해 상반기까지 정부 관련 부처가 태크크포스를 꾸려 검토했고,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소주값 인상을 국민들이 얼마나 저항없이 받아들일지 고민”이라며 솔직한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결론은 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소주 세율은 지난 2000년 이래 지금까지 72%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증류식 소주(일반적인 전통소주 제조법)에는 50%, 희석식 소주(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현대식 소주제조법)에는 35%의 주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위스키 수출국가들과의 통상마찰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권고로 2000년부터 증류식, 희석식 모두 72%로 대폭 인상됐다.
맥주 주세의 동향은 반대다. 지난 1996년까지만 해도 150%의 높은 주세율이 적용되다가 점차 하향 조정돼 2001년 100%로 떨어졌다. 다시 단계적 하향 과정을 거쳐 2007년부터 소주와 같은 세율(72%)로 낮아졌다. 위스키나 브랜디 역시 90년대 초반에는 100%를 웃도는 수준이었는데 2000년 72%로 낮아진 이후 지금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종량제로 개편될 경우 수입맥주와 위스키 등 수입 주류가 우리나라 주류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으로 우려한다. 종량제 개편은 결국 국민건강 증진이나 사회적 비용 충당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차라리 음주교육이나 홍보강화 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주세 개편의 전제 조건으로 일반국민들의 소주 증세 수용 여부에 집착하는 한 오랫동안 주세는 손대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제 담배로 넘어가보자. 흡연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4년 9월 정부가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15년 1월부터 2500원짜리 담배가격이 4500원으로 올랐던 사실을. 이 무렵 필자 주변의 흡연자 중 꽤 많은 사람이 담배가격 인상을 계기로 금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흡연자로 돌아왔고, 이 중 일부는 올해 5월 출시된 이른바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로 전환했다. 담배 세금은 술 세금보다 좀 더 복잡하고 항목도 많다. 우리가 흔히 보는 일반담배(일반 궐련형 담배)에 붙는 세금은 원래 두 가지다. 담배소비세와 이 세액을 기준으로 부가되는 지방교육세다. 부가가치세까지 포함하면 총 세 가지였다. 세금 말고 기금 부담금이 3종류가 매겨진다. 국민건강증진기금 부담금이 담배소비세액에 연동돼 부과된다. 폐기물처리 부담금과 연초 경작안정화기금 부담금도 있다. 금액으로는 기준세금인 담배소비세가 가장 크고, 그 다음이 국민건강증진 부담금, 지방교육세 순이었다. 그런데 정부가 2015년 1월부터 담뱃값을 대폭 올리기 위해 신설한 세금이 있다. 개별소비세다. 담배소비세를 100으로 본다면, 개별소비세는 58 정도의 비율도 부과된다. 건강증진부담금 다음으로 많다.
일반담배(일반 궐련형 담배)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또 하나 사람들이 애용하는 담배로 2010년 무렵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전자담배가 있다. 여기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니코틴용액을 사용하는 것과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전자담배에는 니코틴용액량(밀리리터 단위)이나 연초 고형물의 무게(밀리그램 단위)를 기준으로 과세되면서 일반담배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세금과 부과금이 매겨졌다.
그런데 올해 초 담배 과세체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필립모리스가 신종 전자담배를 우리나라 시장에 출시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세법상으로 전자담배에 대한 규정은 니코틴용액과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경우 등 2가지 밖에 없었다. 필립모리스가 출시할 전자담배는 ‘아이코스’라는 전자기기에다 일반담배와 길이만 다를 뿐 성분 등이 거의 똑같은 궐련담배(담배명 히츠, 1갑 20개피)를 끼워 피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태우지 않고 가열해서 찌는 방식으로 흡입한다고 하니, 일반담배와 전자담배의 성격을 모두 갖춘 이른바 ‘하이브리드형’이었다.
아이코스는 이미 2014년 말 일본에서 출시돼 선풍적 인기를 끌며 일본 담배시장에서 점유율을 9%선으로 끌어올렸던 터라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초기부터 상당한 판매고를 올릴 가능성이 컸다. 일반담배로 간주해 같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 연초 고형물 형태의 전자담배 기준을 적용해 일반담배보다 크게 낮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를 놓고 입법 공백을 메워야 할 국회에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연초 고형물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1차 정리됐다.
그런데 개별소비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방세인 담배소비세가 결정되면서 지방교육세·건강증진부담금 등도 확정됐다. 하지만 국세인 개별소비세 부과 수준을 놓고 아이코스 출시 직전까지 국회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5월 아이코스를 수입·출시하면서 일본 등 해외 선례를 적용하며 개별소비세를 파이프담배 기준(126원)으로 신고했다. 이는 일반담배 1갑에 부과되는 594원보다 훨씬 낮을 뿐 아니라 기존 전자담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4500원짜리 일반담배 1갑에는 총 3323원의 세금·부과금이 들어있다. 소비자 판매가격 대비 약 74%의 비중이다. 아이코스 기기를 이용해야 하는 4300원짜리 궐련형 전자담배(히츠) 1갑에는 절반 수준인 1740원, 담배가격 대비 약 40%의 세금·부과금이 적용됐다. 어쨌든 아이코스는 출시와 함께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이 급속하게 늘어갔고,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세금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일부 의원들이 궐련형 전자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일반담배와 같은 594원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과세 근거 미비로 사실상 일반 궐련담배와 다를 것이 없는 제품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게 됐고, 외국계 담배회사의 과도한 이익을 보장해 줄 이유가 없는 데다, BAT(브리티시아메리카토바코)가 조만간 아이코스와 똑같은 경쟁 제품 ‘글로’를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에 세금을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 이유였다.
개소세 인상안이 1차 관문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위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되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다 지난 8월 말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개정반대 의사를 제시하며, 결국 전체회의 통과가 무산됐다. 반대 의원들은 개소세 인상으로 아이코스 히츠 가격이 오를 경우 서민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해외 국가들이 일반담배보다 세금을 훨씬 낮게 적용해주고 있는데 우리만 국민들의 부담을 키울 필요가 없으며, 일반담배보다 훨씬 덜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궐련형 전자담배를 국민들이 추가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게 해서 국민건강 증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15년 흡연율을 크게 떨어뜨리겠다며 담배값을 대폭 인상했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서민증세가 된 경험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달리 찬성 의원들은 유해성의 정도에 따라 담배 과세 정도를 정하는 것은 아니며, 담배회사의 주장 말고는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다는 명확한 연구결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낮은 세금 자체가 흡연을 지속하거나 새로 흡연을 시작하는 유인이 될 수 있고, 궐련형 전자담배가 덜 유해하다는 믿으면서 흡연량을 늘리는 경우도 발생하기 때문에 세금을 올리는 것이 옳다고 반박했다. 결국 개소세 개정 문제는 9월 정기 국회에서 재논의하는 것으로 일단 매듭지어졌다.
이미 아이코스를 구입한 흡연자들은 전자담배 세금 인상 가능성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담배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아 비흡연자들에게 주는 피해도 줄일 수 있고, 기존 담배보다는 크든 적든 유해성이 약한 것이 확실한 데도 세금을 올릴 필요가 있느냐며 커뮤니티 등에서 성토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아이코스를 출시해 초기 시장을 장악해가던 필립모리스는 물론, 8월 출시 이후 맹렬한 마케팅을 준비하던 BAT 측도 세금 인상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이들 업체들이 우려하는 것은 개소세 인상 정도가 아니다. 현재 갑당 개소세가 126원에서 594원으로 올라봐야 인상 금액은 468원 수준이다. 이익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재 갑당 4300원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략을 업체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개소세 인상을 계기로 담배소비세까지 오를 가능성이다. 실제로 몇 명의 여야 의원들은 본세인 담배소비세 자체를 일반담배 수준인 1007원(궐련형 전자담배는 528원)으로 올리는 안을 이미 발의해놓은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담배소비세에 연동돼 지방교육세와 건강증진부담금까지 다 오르기 때문에 세금 증가액이 거의 1500원 이상이 된다. 일반담배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 이 경우 업체들은 아이코스나 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 가격을 상당폭 인상할 수밖에 없다. 필립모리스 측은 아이코스가 출시된 세계 25개국 중 어느 나라도 일반담배와 동일한 수준의 세금을 매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적어도 개소세에 이어 추가로 세금이 오르는 상황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담배 세금 문제에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담배 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권 여당 시절 담배 가격 인상을 주도했음에도 지금은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개소세 인상을 주도한 대표 주자가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는데, 그는 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중진이기도 하다. 홍준표 당 대표가 서민 부담 감소를 명분으로 담배 가격 인하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고, 당내 다른 의원이 담배 가격 인하와 관련한 법안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김 의원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개소세 인상이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무산된 가장 큰 이유가 재경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의 반대였음을 감안하면, 가을 국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담배소비세 인상은커녕 개소세 개정 단계에서부터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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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도세 부담 커지는 와중에…
부동산 세금 말고 또 하나를 거론하라고 한다면 뭐가 있을까? 이런 질문을 지난 6월쯤 받았다면 아마도 “소주세율 인상 여부”라고 답했을 것 같다. 지금(9월 중순)으로부터 약 석달 전 시점으로 돌아가보면, 정부가 8월 발표 예정인 세제개편안에 고도주(도수가 높은 술) 증세안이 포함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했다. 고도주 증세란 곧 소주 증세를 말한다. 그러나 정부가 “고도주 증세 등의 주세 개편은 중장기 과제”라고 밝히면서 당장의 소주 증세 추진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그런데 소주 증세와 비슷하면서 불씨가 살아있는 것이 하나 있다. 신종담배 관련 세금 문제다. 신종담배란 이른바 궐련형 전자담배를 말한다. 지난 5월 필립모리스가 ‘아이코스’ 이름의 전자담배를 국내에 출시한 이후 ‘서민증세’ 대 ‘공평과세’ 논쟁이 치열하다. 이 문제를 살펴보기 전 불씨가 일단 꺼진 사안이긴 하지만, 우선 주류세부터 먼저 보자.
소주회사에서 소주를 제조해 출고하는 가격, 즉 병당 출고 원가(소주회사 마진 포함)가 500원이라고 가정하자. 이 가격에 주세 72%(360원)가 붙는다. 또 주세액의 30%(108원)만큼 교육세가 부가된다. 이걸 다 더한 가격(968원)에 마지막으로 부가가치세 10%(96.8원)가 붙어 약 1065원의 공장도 출고가가 정해진다. 부가세까지 다 고려하면 소주회사 출고원가의 100%를 살짝 웃도는 수준의 세금이 붙는 셈이다. 소주는 주류 도매상을 거쳐 음식점 등으로 공급되는데, 유통 과정에서 300~400원의 마진이 붙는다. 대형마트에서 소주를 산다면 병당 1200~1400원에 살 수 있다. 대중음식점 메뉴판에 적힌 소주 1병 가격이 보통 4000원 안팎, 번화가의 괜찮은 고깃집이라면 5000원 정도 받는다. 식당이 음식보다는 술을 팔아 남기는 이윤이 더 짭짤하다는 통설이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2005년 당시 정부는 소주와 위스키에 대한 주세를 72%에서 90%로 올리려 했다. 소주처럼 도수가 높은 술에 대한 소비를 줄여 고도주 과음에 따른 사회적 비용(질병, 교통사고, 각종 폭행 사건 등)을 줄이는 한편 증류주에 대한 세부담을 국제 수준으로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였다. 맥주에 대한 주세는 2001년 100%에서 2005년 90%로 낮아졌다. 2007년까지 72% 수준으로 낮추는 것이 이미 법에 정해져 있었다. 정부는 그래서 소주세율을 올리더라도 전체 주류에 대한 국민 세부담은 크게 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한마디로 ‘고도주 고세율, 저도주 저세율’ 정책을 밀고 나가겠다는 이야기였다.
종량제로의 주세 개편은 장기 과제로
주세 개정이 올 들어 화제로 떠오른 건 지난 6월 말 조세재정 연구원이 개최한 ‘주세 합리적 개편안 공청회’ 때문이었다. 정부가 세제개편에 참고하기 위해 성명재 홍익대 교수에게 주세 개편 방향에 대한 용역을 의뢰했다. 그리고 이날 성 교수가 주제 발표자로 나섰다. 그는 음주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19조원 수준에 이른다는 연구결과가 있음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주세율을 ‘종가제’가 아닌 ‘종량제’로 개편하는 한편 주세율 자체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우리나라 주세는 제조사의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주세, 그리고 주세에 부가되는 교육세를 매기는 종가세 방식이다. 이것을 알코올 도수와 알코올 함량 등을 기준으로 세금을 부과하는 종량제 방식으로 바꿔 고도주에 대한 세율을 대폭 인상해야 국민건강 증진과 사회적 비용 충당이라는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05년의 트라우마가 남아있는 기획재정 부는 상당히 조심스런 입장을 보였다. 토론자로 나선 기재윤승출 과장은 “종량제 개편에 대해 상반기까지 정부 관련 부처가 태크크포스를 꾸려 검토했고, 공감한다”고 언급했다. 하지만 “소주값 인상을 국민들이 얼마나 저항없이 받아들일지 고민”이라며 솔직한 생각을 숨기지 않았다. 결론은 장기 과제로 검토하겠다는 이야기였다.
소주 세율은 지난 2000년 이래 지금까지 72%가 계속 유지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증류식 소주(일반적인 전통소주 제조법)에는 50%, 희석식 소주(공장에서 대량 생산되는 현대식 소주제조법)에는 35%의 주세가 부과됐다. 그러나 1990년대 말 위스키 수출국가들과의 통상마찰과 세계무역기구(WTO)의 권고로 2000년부터 증류식, 희석식 모두 72%로 대폭 인상됐다.
맥주 주세의 동향은 반대다. 지난 1996년까지만 해도 150%의 높은 주세율이 적용되다가 점차 하향 조정돼 2001년 100%로 떨어졌다. 다시 단계적 하향 과정을 거쳐 2007년부터 소주와 같은 세율(72%)로 낮아졌다. 위스키나 브랜디 역시 90년대 초반에는 100%를 웃도는 수준이었는데 2000년 72%로 낮아진 이후 지금까지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종량제로 개편될 경우 수입맥주와 위스키 등 수입 주류가 우리나라 주류시장을 크게 잠식할 것으로 우려한다. 종량제 개편은 결국 국민건강 증진이나 사회적 비용 충당 등 정책 목표를 달성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며, 차라리 음주교육이나 홍보강화 등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주세 개편의 전제 조건으로 일반국민들의 소주 증세 수용 여부에 집착하는 한 오랫동안 주세는 손대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제 담배로 넘어가보자. 흡연자들은 기억할 것이다. 2014년 9월 정부가 금연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2015년 1월부터 2500원짜리 담배가격이 4500원으로 올랐던 사실을. 이 무렵 필자 주변의 흡연자 중 꽤 많은 사람이 담배가격 인상을 계기로 금연을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 중 상당수는 다시 흡연자로 돌아왔고, 이 중 일부는 올해 5월 출시된 이른바 궐련형 전자담배 사용자로 전환했다.
전자담배 인기에 관련 제품 출시 줄이어
일반담배(일반 궐련형 담배)에 비해서는 미미하지만 또 하나 사람들이 애용하는 담배로 2010년 무렵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전자담배가 있다. 여기에는 2가지 종류가 있는데, 니코틴용액을 사용하는 것과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전자담배에는 니코틴용액량(밀리리터 단위)이나 연초 고형물의 무게(밀리그램 단위)를 기준으로 과세되면서 일반담배에 비해서는 훨씬 낮은 세금과 부과금이 매겨졌다.
그런데 올해 초 담배 과세체계에 문제가 발생했다. 필립모리스가 신종 전자담배를 우리나라 시장에 출시할 계획을 밝힌 것이다. 세법상으로 전자담배에 대한 규정은 니코틴용액과 연초 고형물을 사용하는 경우 등 2가지 밖에 없었다. 필립모리스가 출시할 전자담배는 ‘아이코스’라는 전자기기에다 일반담배와 길이만 다를 뿐 성분 등이 거의 똑같은 궐련담배(담배명 히츠, 1갑 20개피)를 끼워 피우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태우지 않고 가열해서 찌는 방식으로 흡입한다고 하니, 일반담배와 전자담배의 성격을 모두 갖춘 이른바 ‘하이브리드형’이었다.
아이코스는 이미 2014년 말 일본에서 출시돼 선풍적 인기를 끌며 일본 담배시장에서 점유율을 9%선으로 끌어올렸던 터라 우리나라 시장에서도 초기부터 상당한 판매고를 올릴 가능성이 컸다. 일반담배로 간주해 같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 연초 고형물 형태의 전자담배 기준을 적용해 일반담배보다 크게 낮은 수준의 세금을 부과할 것인가를 놓고 입법 공백을 메워야 할 국회에서 논란이 있었다. 결국 연초 고형물 기준을 적용하는 것으로 1차 정리됐다.
그런데 개별소비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지방세인 담배소비세가 결정되면서 지방교육세·건강증진부담금 등도 확정됐다. 하지만 국세인 개별소비세 부과 수준을 놓고 아이코스 출시 직전까지 국회에서 합의를 보지 못한 것이다. 결국 한국필립모리스는 지난 5월 아이코스를 수입·출시하면서 일본 등 해외 선례를 적용하며 개별소비세를 파이프담배 기준(126원)으로 신고했다. 이는 일반담배 1갑에 부과되는 594원보다 훨씬 낮을 뿐 아니라 기존 전자담배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4500원짜리 일반담배 1갑에는 총 3323원의 세금·부과금이 들어있다. 소비자 판매가격 대비 약 74%의 비중이다. 아이코스 기기를 이용해야 하는 4300원짜리 궐련형 전자담배(히츠) 1갑에는 절반 수준인 1740원, 담배가격 대비 약 40%의 세금·부과금이 적용됐다. 어쨌든 아이코스는 출시와 함께 인기를 끌면서 판매량이 급속하게 늘어갔고,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세금 문제는 이렇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런데 지난 6월 말 일부 의원들이 궐련형 전자담배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일반담배와 같은 594원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의 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과세 근거 미비로 사실상 일반 궐련담배와 다를 것이 없는 제품에 낮은 세율을 적용하게 됐고, 외국계 담배회사의 과도한 이익을 보장해 줄 이유가 없는 데다, BAT(브리티시아메리카토바코)가 조만간 아이코스와 똑같은 경쟁 제품 ‘글로’를 국내에 출시할 계획이기 때문에 세금을 빨리 정상화해야 한다는 것이 개정 이유였다.
개소세 인상안이 1차 관문인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소위에서 만장일치로 합의되면서 국회 본회의 통과는 시간문제로 보였다. 그러다 지난 8월 말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분위기는 순식간에 바뀌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이 개정반대 의사를 제시하며, 결국 전체회의 통과가 무산됐다. 반대 의원들은 개소세 인상으로 아이코스 히츠 가격이 오를 경우 서민 부담이 커진다는 것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해외 국가들이 일반담배보다 세금을 훨씬 낮게 적용해주고 있는데 우리만 국민들의 부담을 키울 필요가 없으며, 일반담배보다 훨씬 덜 유해한 것으로 알려진 궐련형 전자담배를 국민들이 추가 부담없이 선택할 수 있게 해서 국민건강 증진도 기대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2015년 흡연율을 크게 떨어뜨리겠다며 담배값을 대폭 인상했지만 결국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 결국 서민증세가 된 경험을 되풀이하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자담배 업체 진짜 걱정은 담배소비세 인상
이미 아이코스를 구입한 흡연자들은 전자담배 세금 인상 가능성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담배 냄새가 별로 나지 않아 비흡연자들에게 주는 피해도 줄일 수 있고, 기존 담배보다는 크든 적든 유해성이 약한 것이 확실한 데도 세금을 올릴 필요가 있느냐며 커뮤니티 등에서 성토하는 분위기다. 지난 5월 아이코스를 출시해 초기 시장을 장악해가던 필립모리스는 물론, 8월 출시 이후 맹렬한 마케팅을 준비하던 BAT 측도 세금 인상안에 대해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사실 이들 업체들이 우려하는 것은 개소세 인상 정도가 아니다. 현재 갑당 개소세가 126원에서 594원으로 올라봐야 인상 금액은 468원 수준이다. 이익이 다소 감소하더라도 시장점유율 확대를 위해 현재 갑당 4300원의 가격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략을 업체는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부분은 개소세 인상을 계기로 담배소비세까지 오를 가능성이다. 실제로 몇 명의 여야 의원들은 본세인 담배소비세 자체를 일반담배 수준인 1007원(궐련형 전자담배는 528원)으로 올리는 안을 이미 발의해놓은 상황이다. 이렇게 되면 담배소비세에 연동돼 지방교육세와 건강증진부담금까지 다 오르기 때문에 세금 증가액이 거의 1500원 이상이 된다. 일반담배와 별 차이가 없어진다. 이 경우 업체들은 아이코스나 글로 등 궐련형 전자담배 가격을 상당폭 인상할 수밖에 없다. 필립모리스 측은 아이코스가 출시된 세계 25개국 중 어느 나라도 일반담배와 동일한 수준의 세금을 매기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적어도 개소세에 이어 추가로 세금이 오르는 상황만은 막겠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앞으로의 담배 세금 문제에는 중요한 변수가 하나 있다. 야당인 자유한국당이 담배 가격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집권 여당 시절 담배 가격 인상을 주도했음에도 지금은 인하를 주장하고 있다. 개소세 인상을 주도한 대표 주자가 김광림 자유한국당 의원이었는데, 그는 당 정책위의장을 맡고 있는 중진이기도 하다. 홍준표 당 대표가 서민 부담 감소를 명분으로 담배 가격 인하에 대해 강한 의지를 내보이고 있고, 당내 다른 의원이 담배 가격 인하와 관련한 법안 개정안을 발의해 놓은 상황임을 고려하면 김 의원의 입장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 특히 개소세 인상이 재경위 전체회의에서 무산된 가장 큰 이유가 재경위원장인 자유한국당 조경태 의원의 반대였음을 감안하면, 가을 국회에서 궐련형 전자담배에 대한 담배소비세 인상은커녕 개소세 개정 단계에서부터 차단될 가능성이 크다.
※ 필자는 국제경제와 금융시장을 분석하는 미디어&리서치 ‘글로벌모니터’ 대표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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