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의 개천에선 용이 나오지 않는다
실리콘밸리의 개천에선 용이 나오지 않는다
열심히 공부해 좋은 학교와 직장에 들어가 출세하는 아메리칸 드림이 현실과 멀어진 배경에는 노사관계 변화와 주주 자본주의가 있어 옛날 아메리칸 드림 스토리는 간단명료했다. 학교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문을 갈고 닦은 뒤 직장을 얻어 버젓한 수입과 안정적인 급부(건강보험·연금 등)를 누린다는 내용이다. 한두 세대 전에는 수백~수천만 명이 실제로 그런 꿈을 실현했다. 그러나 언론인 릭 워츠먼은 그런 꿈이 갈수록 현실과 멀어진다고 말한다. 노사관계가 급변하고 지역 공동체 이해관계자들(stakeholders)보다 주주의 위상이 더 높아졌기 때문이다. 월스트리트저널 기자 출신인 워츠먼이 최근 ‘충성심의 종말, 미국 내 좋은 일자리의 부침(The End of Loyalty: The Rise and Fall of Good Jobs In America)’이라는 책을 펴냈다. 그는 IB타임스와 인터뷰에서 과거 대기업이 근로자와 퇴직자의 생계를 어떻게 책임졌는지 설명했다. 그러나 지난 30~40년 동안 회사와 근로자의 기본적인 관계가 변해 다른 무엇보다도 주주수익과 기업이익을 우선하기 시작했다고 그는 주장했다. 다음은 인터뷰를 축약한 내용이다.
20세기 중반 대기업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어떤 생활을 했는가? 그리고 오늘날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면에서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해 오늘날보다 일자리가 훨씬 안정됐다. 급여가 지속적으로 인상됐고 제2차 세계대전 후 194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급부도 오름세를 보였다. 1940년대 후반에는 예컨대 기본 건강보험 수혜자가 전체 근로자의 15~20%로 상당히 적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는 70% 이상으로 늘어났다. 당시에도 연금으로 불리는 제도가 있어 사람들이 은퇴 후 평생 동안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받았다.
그것은 여러모로 볼 때 노동자와 사용자 간 사회계약의 가장 완벽한 구현이었다. 노사간 평생에 걸친 상호 애정에의 기대가 그 토대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미국 노동력의 절반 정도가 확정급여 연금을 받게 됐다. 가계 소득 면에서 ‘미국 주식회사’는 기업이 실제로 근로자를 돌봐주는 일종의 민간복지체제였다.
당시 기업 경영자가 단순히 더 착해서 근로자에게 더 나은 임금과 급부를 제공했는가, 아니면 수 세대 전에는 노조가 더 강력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는가?
CEO가 더 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중대한 문화 요소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 미국 사회에 ‘나’보다 ‘우리’ 문화가 분명히 더 강했다. CEO도 단순히 주주 이익만 챙기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고르게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강조했다.
당시에는 정말 윤리관이 달랐다. 이 같은 더 큰 사회적 규범이 기업문화에 반영되고 강화했다고 본다. 그것이 하나의 요소였지만 당신이 말한 노조 역할론도 옳다. 책 앞부분에서 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책에선 전기 노조의 짐 캐리와 자동차 노조의 월터 루터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당신 말마따나 많은 보수와 급부가 종종 노조가 피를 뿌리는 힘든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교훈은 당시 그리고 그 이후 1950년대까지 노조가 충분한 견제력을 지녔다는 점이다(1950년대는 미국 민간부문 노동자의 약 25~35%가 노조에 소속됐다). 그에 따라 노조원에게 주는 혜택뿐 아니라 나머지 경제 분야에도 엄청난 낙수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져올 수 있었다(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논문이 다수 발표됐다). 이들 대형 산업노조를 통해 교섭 테이블에서 쟁취한 성과로 다른 블루칼라 노동자의 급여와 급부도 따라 인상됐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급부도 종종 노조가 쟁취하는 수준을 따라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노조는 사회계약을 형성하고 전체 근로자 복리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은 민간부문 노동자 중 노조 가입자 비율이 7%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만한 견제력도 없고 따라서 모두의 복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그런 낙수효과도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포드 자동차 창업자 헨리 포드는 근로자를 우대해서 회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유명했다. 오늘날의 기업 이념은 그와 다른 듯하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가?
헨리 포드가 직원 일당을 1달러에서 하루아침에 5달러로 인상한 일은 유명하다. 일정 부분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그런 방법으로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발상이다. 놀랍게도 갑자기 근로자가 포드 차를 구입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게 됐다. 1940년대~1950년대 나아가 1960년대까지 기업계 최고 경영진 사이에 그런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다. 나는 책에 찰리 윌슨 제너럴 일렉트릭 사장의 말을 인용했다. “내가 직원들에게 임금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우리 냉장고를 집에 들여 놓겠는가?”
당시 경영자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살펴 보자.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래리 서머스 같은 학자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구조적·만성적인 수요부진)에 관해 경고한다. 전체 노동력 중 80%의 임금이 수십 년 동안 정체되면서 경제 전반적으로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노동자의 호주머니에 돈을 넉넉히 챙겨주지 않아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서 거기에 진짜 걱정거리가 있다. 그때와 현재 사이의 대변천이 이뤄지는 동안에 실종된 것들이 사회계약을 바꿔놓은 온갖 요인들이라고 본다.
자동화, 신기술, 세계화, 세계 각지 저임 경쟁업체들과의 무역, 고졸 이하 학력으로 맡을 수 있는 힘들고 위험하고 종종 더러운 블루칼라 노동에서의 탈피 흐름 등이 그 원인이다(그런 3D 일자리가 중류층으로 상승하는 발판이었다. 웬만큼 돈을 벌고 질병과 은퇴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일자리가 임시직을 비롯한 온갖 형태로 쪼개졌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대형 변수가 있었다.
그러나 진짜 철학적인 변화는 앞서 말한 이해관계자 모델,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 균형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게 되면서 근로자, 고객 그리고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가 외면당했다. CEO는 실제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공공연히 외치다가 1980년대 들어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 1990년대까지 이어지더니 그 뒤 가속도가 붙으면서 오늘날까지 강세가 계속된다. 지금은 오로지 주주가치 극대화만 추구하는 전혀 다른 모델이 득세했다. 기업은 공공연히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 그룹보다 투자자를 우선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되면 숫자만 모두 중요할 뿐이다. 근로자의 가치는 떨어진다.
지금까지 묘사한 변화를 재촉한 결정적인 순간과 사람들이 있었는가?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1970년대 초반 경기침체가 두 차례 잇따랐는데 당시의 경기침체로 미국 기업계의 약점이 많이 노출됐다는 사실이다. 고실업과 고물가의 믿기 어려운 이중고가 시작돼 상당히 오랜 기간 미국을 휩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였다. 미국 기업이 이젠 세계무대에서 예전처럼 지배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것이 분명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73년과 당시의 경기침체 그리고 생산 그리고 실질임금이 사상 최초로 감소하기 시작한 시기에 발생한 석유위기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또 다른 요인은 그에 따른 철학적 변화 측면의 두 가지였다. 유명한 시카고대학 경제학자였던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스에 유명한 글을 기고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한 가지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경영진이 주주의 대리인 역할을 맡아 그들의 지시에 따르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익을 올리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경영자가 하는 그 밖의 일(구체적으로 인력확충 노력의 예를 들었다)은 ‘순전한(pure and unadulterated, 기고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주의라고 그는 덧붙였다.
투자자와 기업 경영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이해관계자 모델에서 이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 기업 진영에 선 다수의 학자 그룹이 그것을 이어받았다. 무엇보다도 1976년 당시 로체스터대학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과 윌리엄 메클링이 작성한 논문이 대표적이다. 젠슨은 경영자가 주주의 대리인이 돼야 한다는, 그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대리인 이론의 최대 지지자가 됐다. 그가 하버드대학으로 옮겨 메클링과 함께 작성한 논문은 역대 가장 많이 인용된 경영 분야 학술 논문이 됐다. 이번에도 주주가치 극대화가 경영진의 책무라는 내용이 주제였다.
신기술과 자동화는 어떤 역할을 했나?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사회계약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나는 신기술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본다. 한 가지는 자동화의 영향이다. 물론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진행돼온 과정이지만 여기서는 우리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 이야기하자. 분명 1950년대 이후 1950년대 중후반께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회사들은 공장뿐 아니라 지원 업무까지 자동화를 진행하면서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들을 도입했다.
미국에서 더는 제품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광공업 생산은 실제로 1950년대보다 많다. 단지 필요한 인력이 훨씬 적어졌을 뿐이다. 인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농업환경의 변화와 비슷하다. 많은 식량이 생산됐지만 농민이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작업이 자동화됐다. 그에 따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 생산에 1000명이 필요했던 일이 지금은 150~200명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필요인력이 갈수록 줄어든다. 1950년대의 공장 사진들을 보면 생산 노동자로 가득하다.
그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또한 그런 변화를 어느 정도 재촉했다. 운 좋게 좋은 교육을 받아 몇몇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지식 노동자가 돼 현 경제에서 대체로 제법 잘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가난한 이웃이나 저임 서비스 근로자를 위한 징검다리 일자리가 사라졌다. 경제학자들이 중간 계층의 공동화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기술의 또 다른 영향은 상당 부분 기업이 사실상 해외로 진출해 가장 저임의 노동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한 학술서적들도 있다. 리처드 볼드윈은 저서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에서 그런 추세가 계속 가속화하며 많은 일을 대단히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세계 어디로든 눈깜짝할 새 정보를 전송하고 가장 인건비 낮은 곳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21세기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실리콘밸리는 내가 말하는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쪽에는 지식근로자·코딩전문가·엔지니어·데이터전문가로 이뤄진 믿기 어려운 고액 연봉 일자리가 있다. 구글 직원의 삶은 달콤하다. 사무실에 푸스볼 테이블(손축구 게임기)이 있고 초밥 같은 음식이 무료 제공된다. 환상적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경제의 다른 구석에선 또 다른 근로자 계급이 급성장하고 있다.
앞서 말한 그룹의 평균 연봉은 데이터에 따라 다르지만 12만 달러 안팎이다. 아쉬울 게 없는 일자리다. 고용 스펙트럼의 반대편에는 평균 연간 소득 2만 달러 안팎의 근로자가 있다. 생활비가 비싼 곳에서 일하는 주로 임시직 또는 계약근로(gig) 방식의 독립 계약근로자다. 이들은 세법상 독립 계약근로자이며 기업 종업원이 아니다. 독립 계약근로자는 급부를 받지 못해 수입이 형편없다. 종종 대규모 단지의 첨단기술 기업 본사에서 셔틀버스 기사, 시설관리인, 수위, 경비원으로 일하는 주로 흑인과 라틴계다. 실리콘밸리 곳곳에 기업 본사 신축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최상위 계급과 이들 하위 소득자 간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그 최상위 계급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더 없이 좋은 일자리지만 노동통계국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100만 명 정도인 반면 연봉이 모두 2만5000달러도 안 되는 패스트푸드점 직원·수위, 가정 헬스케어 보조원 수는 그 몇 배 몇 십 배에 달한다. 지식 노동자 일자리가 좋긴 해도 실리콘밸리 일자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지 않는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더 강력한,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사회계약을 재구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이들 독립 계약근로자에게 이동식 급부(portable benefits, 전직한 근로자의 보험·연금 자격 유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임시직뿐 아니라 독립계약 근로자와 부정기 호출대기 근로자(on-call worker) 등을 포함하는 이런 유형의 비정규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절반에 달한다는 주장은 실상 크게 과장됐다. 측정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론 전체 근로자의 15~16% 선이다. 그것이 가장 근접한 통계라고 본다.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일종의 우버 기사로 뛰는 등 가계 수지를 맞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부업하는 사람들을 포함할 경우 어쩌면 전체 노동력의 30~35%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이들이 일시적 일거리를 좇아 옮겨 다녀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이동식 급부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뉴욕 주와 워싱턴 주에서 그런 방향으로 일부 흥미로운 진전이 있지만 현재로선 불행히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특히 저임직 종사자들 대상의 기존 노동기준을 실제로 지키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노동부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웨일이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들 온갖 위탁계약 일자리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일자리를 그는 분열된 직장(fissured workplace)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임금을 도둑 맞는다고 그는 말한다. 노동기준의 준수가 중요하다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다. 그들의 근무 일정이 아주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개인생활을 계획하고 자녀들을 돌봐주기 어렵게 비틀어진다. 기존 근로 관련 법규가 더 철저히 집행되기만 해도 상황이 많이 개선된다. 불행히 노동부 예산의 20% 이상 감축을 촉구하는 트럼프 정부에선 기대난망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많은 개선이 요구된다. 미국이 전반적으로 명실상부한 생활임금을 정해 물가상승에 연동시켜 더는 이 문제로 싸우지 않게 되면 좋겠다. 교육에 관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 한다. 훈련과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낙오하고 있다. 성인의 절반, 미국 인구의 절반 남짓한 사람이 중등교육 이후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다. 4년제는 물론 2년제 교육 또는 어떤 종류의 기술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한다.
현재의 경제, 요즘 같은 사회에선 교육 받지 않고는 정말 성공하기 힘든데 사람들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계속 배우고 학교에 다니고 새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와 같은 교육 시스템을 정말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책 측면에서 내가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교육의 혁신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책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막중한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기업의 철학·사고방식·문화·규범이 현재의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에서 탈피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우리가 투자자·고객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직원 처우가 좋은 기업에 투자와 매출을 몰아주는 방법이다.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고 근로자 보수와 처우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갈수록 늘어난다. 기업이 직원을 다시 자산으로 여기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 데이비드 시로타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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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중반 대기업 근로자는 일반적으로 어떤 생활을 했는가? 그리고 오늘날과는 어떻게 다른가?
그들의 삶은 근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면에서 오늘날과 크게 달랐다. 일선 현장에서 일하는 노동자까지 포함해 오늘날보다 일자리가 훨씬 안정됐다. 급여가 지속적으로 인상됐고 제2차 세계대전 후 1940년대 중후반부터 1970년대 초반까지 계속해 큰 폭으로 상승했다. 그리고 급부도 오름세를 보였다. 1940년대 후반에는 예컨대 기본 건강보험 수혜자가 전체 근로자의 15~20%로 상당히 적었지만 1970년대 초반에는 70% 이상으로 늘어났다. 당시에도 연금으로 불리는 제도가 있어 사람들이 은퇴 후 평생 동안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받았다.
그것은 여러모로 볼 때 노동자와 사용자 간 사회계약의 가장 완벽한 구현이었다. 노사간 평생에 걸친 상호 애정에의 기대가 그 토대를 이뤘다. 결과적으로 미국 노동력의 절반 정도가 확정급여 연금을 받게 됐다. 가계 소득 면에서 ‘미국 주식회사’는 기업이 실제로 근로자를 돌봐주는 일종의 민간복지체제였다.
당시 기업 경영자가 단순히 더 착해서 근로자에게 더 나은 임금과 급부를 제공했는가, 아니면 수 세대 전에는 노조가 더 강력해서 어쩔 수 없이 그래야 했는가?
CEO가 더 착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헤쳐 나오는 과정에서 대단히 중요한 역할을 한 중대한 문화 요소가 있었다고 본다. 당시 미국 사회에 ‘나’보다 ‘우리’ 문화가 분명히 더 강했다. CEO도 단순히 주주 이익만 챙기지 않고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고르게 이익이 돌아가야 한다고 공공연하게 강조했다.
당시에는 정말 윤리관이 달랐다. 이 같은 더 큰 사회적 규범이 기업문화에 반영되고 강화했다고 본다. 그것이 하나의 요소였지만 당신이 말한 노조 역할론도 옳다. 책 앞부분에서 나는 노동조합의 역할에 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책에선 전기 노조의 짐 캐리와 자동차 노조의 월터 루터 이야기를 주로 다뤘다. 당신 말마따나 많은 보수와 급부가 종종 노조가 피를 뿌리는 힘든 노력과 투쟁을 통해 쟁취됐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교훈은 당시 그리고 그 이후 1950년대까지 노조가 충분한 견제력을 지녔다는 점이다(1950년대는 미국 민간부문 노동자의 약 25~35%가 노조에 소속됐다). 그에 따라 노조원에게 주는 혜택뿐 아니라 나머지 경제 분야에도 엄청난 낙수효과(spillover effect)를 가져올 수 있었다(이를 뒷받침하는 연구논문이 다수 발표됐다). 이들 대형 산업노조를 통해 교섭 테이블에서 쟁취한 성과로 다른 블루칼라 노동자의 급여와 급부도 따라 인상됐다.
그리고 화이트칼라 근로자의 급부도 종종 노조가 쟁취하는 수준을 따라 오르는 경향을 보였다. 노조는 사회계약을 형성하고 전체 근로자 복리 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지금은 민간부문 노동자 중 노조 가입자 비율이 7%도 안 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만한 견제력도 없고 따라서 모두의 복리 수준을 향상시키는 그런 낙수효과도 더는 기대하기 어렵다.
포드 자동차 창업자 헨리 포드는 근로자를 우대해서 회사 제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론으로 유명했다. 오늘날의 기업 이념은 그와 다른 듯하다. 언제 어떻게 그렇게 변했는가?
헨리 포드가 직원 일당을 1달러에서 하루아침에 5달러로 인상한 일은 유명하다. 일정 부분 적어도 상징적으로는 그런 방법으로 선순환을 일으킨다는 발상이다. 놀랍게도 갑자기 근로자가 포드 차를 구입할 만한 경제력을 갖추게 됐다. 1940년대~1950년대 나아가 1960년대까지 기업계 최고 경영진 사이에 그런 정서가 널리 퍼져 있었다. 나는 책에 찰리 윌슨 제너럴 일렉트릭 사장의 말을 인용했다. “내가 직원들에게 임금을 충분히 주지 않는다면 그들이 어떻게 우리 냉장고를 집에 들여 놓겠는가?”
당시 경영자는 그런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요즘은 어떤지 살펴 보자. 하버드대학 경제학과의 래리 서머스 같은 학자는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 구조적·만성적인 수요부진)에 관해 경고한다. 전체 노동력 중 80%의 임금이 수십 년 동안 정체되면서 경제 전반적으로 근로자에게 지불하는 임금이 충분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다. 노동자의 호주머니에 돈을 넉넉히 챙겨주지 않아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지 않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서 거기에 진짜 걱정거리가 있다. 그때와 현재 사이의 대변천이 이뤄지는 동안에 실종된 것들이 사회계약을 바꿔놓은 온갖 요인들이라고 본다.
자동화, 신기술, 세계화, 세계 각지 저임 경쟁업체들과의 무역, 고졸 이하 학력으로 맡을 수 있는 힘들고 위험하고 종종 더러운 블루칼라 노동에서의 탈피 흐름 등이 그 원인이다(그런 3D 일자리가 중류층으로 상승하는 발판이었다. 웬만큼 돈을 벌고 질병과 은퇴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일자리가 임시직을 비롯한 온갖 형태로 쪼개졌다.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수많은 대형 변수가 있었다.
그러나 진짜 철학적인 변화는 앞서 말한 이해관계자 모델, 모든 이해관계자의 이익 균형에서 이탈한 것이었다. 주주 이익을 우선하게 되면서 근로자, 고객 그리고 그들이 속한 지역사회가 외면당했다. CEO는 실제로 1970년대 중반까지는 이해관계자 모델을 공공연히 외치다가 1980년대 들어 흐름이 바뀌기 시작해 1990년대까지 이어지더니 그 뒤 가속도가 붙으면서 오늘날까지 강세가 계속된다. 지금은 오로지 주주가치 극대화만 추구하는 전혀 다른 모델이 득세했다. 기업은 공공연히 다른 모든 이해관계자 그룹보다 투자자를 우선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되면 숫자만 모두 중요할 뿐이다. 근로자의 가치는 떨어진다.
지금까지 묘사한 변화를 재촉한 결정적인 순간과 사람들이 있었는가?
몇 가지 있었다. 한 가지는 1970년대 초반 경기침체가 두 차례 잇따랐는데 당시의 경기침체로 미국 기업계의 약점이 많이 노출됐다는 사실이다. 고실업과 고물가의 믿기 어려운 이중고가 시작돼 상당히 오랜 기간 미국을 휩쓴 스태그플레이션의 시기였다. 미국 기업이 이젠 세계무대에서 예전처럼 지배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못하리라는 일종의 신호탄이었다. 그것이 분명 촉진제 역할을 했다. 1973년과 당시의 경기침체 그리고 생산 그리고 실질임금이 사상 최초로 감소하기 시작한 시기에 발생한 석유위기를 중요한 분기점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또 다른 요인은 그에 따른 철학적 변화 측면의 두 가지였다. 유명한 시카고대학 경제학자였던 밀턴 프리드먼은 1970년 뉴욕타임스에 유명한 글을 기고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한 가지뿐이라는 주장이었다. 그것은 경영진이 주주의 대리인 역할을 맡아 그들의 지시에 따르고 그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가능한 한 많은 수익을 올리는 일이라고 그는 역설했다. 경영자가 하는 그 밖의 일(구체적으로 인력확충 노력의 예를 들었다)은 ‘순전한(pure and unadulterated, 기고문에서 이렇게 표현했다)’ 사회주의라고 그는 덧붙였다.
투자자와 기업 경영자는 프리드먼의 주장을 이론적 근거로 삼아 이해관계자 모델에서 이 같은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로 이행하기 시작했다. 그 뒤 기업 진영에 선 다수의 학자 그룹이 그것을 이어받았다. 무엇보다도 1976년 당시 로체스터대학 경영대학원의 마이클 젠슨과 윌리엄 메클링이 작성한 논문이 대표적이다. 젠슨은 경영자가 주주의 대리인이 돼야 한다는, 그것이 그들의 임무라는 대리인 이론의 최대 지지자가 됐다. 그가 하버드대학으로 옮겨 메클링과 함께 작성한 논문은 역대 가장 많이 인용된 경영 분야 학술 논문이 됐다. 이번에도 주주가치 극대화가 경영진의 책무라는 내용이 주제였다.
신기술과 자동화는 어떤 역할을 했나? 노동자와 사용자 간의 사회계약을 어떻게 바꿔놓았나?
나는 신기술을 두 가지 측면에서 본다. 한 가지는 자동화의 영향이다. 물론 인류 역사 전반에 걸쳐 진행돼온 과정이지만 여기서는 우리 주제와 관련된 부분만 이야기하자. 분명 1950년대 이후 1950년대 중후반께 제너럴 일렉트릭 같은 회사들은 공장뿐 아니라 지원 업무까지 자동화를 진행하면서 거대한 컴퓨터 시스템들을 도입했다.
미국에서 더는 제품이 생산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 광공업 생산은 실제로 1950년대보다 많다. 단지 필요한 인력이 훨씬 적어졌을 뿐이다. 인력이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다. 어떻게 보면 농업환경의 변화와 비슷하다. 많은 식량이 생산됐지만 농민이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작업이 자동화됐다. 그에 따라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조사에 따르면 1950년대 생산에 1000명이 필요했던 일이 지금은 150~200명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필요인력이 갈수록 줄어든다. 1950년대의 공장 사진들을 보면 생산 노동자로 가득하다.
그것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이 또한 그런 변화를 어느 정도 재촉했다. 운 좋게 좋은 교육을 받아 몇몇 전문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면 지식 노동자가 돼 현 경제에서 대체로 제법 잘 헤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의 가난한 이웃이나 저임 서비스 근로자를 위한 징검다리 일자리가 사라졌다. 경제학자들이 중간 계층의 공동화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이를 말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신기술의 또 다른 영향은 상당 부분 기업이 사실상 해외로 진출해 가장 저임의 노동시장을 활용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현상을 분석한 학술서적들도 있다. 리처드 볼드윈은 저서 ‘대수렴(The Great Convergence)’에서 그런 추세가 계속 가속화하며 많은 일을 대단히 적은 비용으로 할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세계 어디로든 눈깜짝할 새 정보를 전송하고 가장 인건비 낮은 곳을 찾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가 21세기 근로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실리콘밸리는 내가 말하는 시대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한쪽에는 지식근로자·코딩전문가·엔지니어·데이터전문가로 이뤄진 믿기 어려운 고액 연봉 일자리가 있다. 구글 직원의 삶은 달콤하다. 사무실에 푸스볼 테이블(손축구 게임기)이 있고 초밥 같은 음식이 무료 제공된다. 환상적이다. 그러나 실리콘밸리 경제의 다른 구석에선 또 다른 근로자 계급이 급성장하고 있다.
앞서 말한 그룹의 평균 연봉은 데이터에 따라 다르지만 12만 달러 안팎이다. 아쉬울 게 없는 일자리다. 고용 스펙트럼의 반대편에는 평균 연간 소득 2만 달러 안팎의 근로자가 있다. 생활비가 비싼 곳에서 일하는 주로 임시직 또는 계약근로(gig) 방식의 독립 계약근로자다. 이들은 세법상 독립 계약근로자이며 기업 종업원이 아니다. 독립 계약근로자는 급부를 받지 못해 수입이 형편없다. 종종 대규모 단지의 첨단기술 기업 본사에서 셔틀버스 기사, 시설관리인, 수위, 경비원으로 일하는 주로 흑인과 라틴계다. 실리콘밸리 곳곳에 기업 본사 신축 건물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최상위 계급과 이들 하위 소득자 간에 엄청난 격차가 존재한다.
또 다른 중요한 문제는 그 최상위 계급에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점이다. 물론 더 없이 좋은 일자리지만 노동통계국 데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소프트웨어 개발자가 100만 명 정도인 반면 연봉이 모두 2만5000달러도 안 되는 패스트푸드점 직원·수위, 가정 헬스케어 보조원 수는 그 몇 배 몇 십 배에 달한다. 지식 노동자 일자리가 좋긴 해도 실리콘밸리 일자리가 그렇게 많이 생기지 않는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더 강력한, 노동자에게 더 유리한 사회계약을 재구축하기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나?
내가 생각하는 한 가지는 이들 독립 계약근로자에게 이동식 급부(portable benefits, 전직한 근로자의 보험·연금 자격 유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점이다. 과장하고 싶지는 않다. 임시직뿐 아니라 독립계약 근로자와 부정기 호출대기 근로자(on-call worker) 등을 포함하는 이런 유형의 비정규 근로자가 전체 근로자의 절반에 달한다는 주장은 실상 크게 과장됐다. 측정 방법에 따라 다르지만 실제론 전체 근로자의 15~16% 선이다. 그것이 가장 근접한 통계라고 본다.
정규직 일자리를 갖고 있지만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일종의 우버 기사로 뛰는 등 가계 수지를 맞추기 위해 정기적으로 부업하는 사람들을 포함할 경우 어쩌면 전체 노동력의 30~35%까지 올라갈 수도 있다. 이들이 일시적 일거리를 좇아 옮겨 다녀도 계속 유지될 수 있는 이동식 급부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뉴욕 주와 워싱턴 주에서 그런 방향으로 일부 흥미로운 진전이 있지만 현재로선 불행히 어림도 없는 수준이다.
특히 저임직 종사자들 대상의 기존 노동기준을 실제로 지키도록 단속을 강화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의 노동부에서 일했던 데이비드 웨일이 이 문제에 관해 많은 연구를 했다. 이들 온갖 위탁계약 일자리와 패스트푸드 프랜차이즈 일자리를 그는 분열된 직장(fissured workplace)이라고 부른다. 많은 사람이 임금을 도둑 맞는다고 그는 말한다. 노동기준의 준수가 중요하다는 말도 그런 의미에서다. 그들의 근무 일정이 아주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개인생활을 계획하고 자녀들을 돌봐주기 어렵게 비틀어진다. 기존 근로 관련 법규가 더 철저히 집행되기만 해도 상황이 많이 개선된다. 불행히 노동부 예산의 20% 이상 감축을 촉구하는 트럼프 정부에선 기대난망인 듯하다.
이런 점에서 많은 개선이 요구된다. 미국이 전반적으로 명실상부한 생활임금을 정해 물가상승에 연동시켜 더는 이 문제로 싸우지 않게 되면 좋겠다. 교육에 관해선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다시 생각해야 한다. 훈련과 교육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우리는 지식의 시대에 살고 있다. 수많은 사람이 낙오하고 있다. 성인의 절반, 미국 인구의 절반 남짓한 사람이 중등교육 이후 어떤 교육도 받지 못한다. 4년제는 물론 2년제 교육 또는 어떤 종류의 기술 자격증도 취득하지 못한다.
현재의 경제, 요즘 같은 사회에선 교육 받지 않고는 정말 성공하기 힘든데 사람들에게 평생학습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계속 배우고 학교에 다니고 새 기술을 배워야 한다. 그와 같은 교육 시스템을 정말로 재검토해야 한다. 정책 측면에서 내가 한 가지를 할 수 있다면 그와 같은 교육의 혁신이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정책이 엄청나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정부가 막중한 역할을 맡아야 하지만 기업의 철학·사고방식·문화·규범이 현재의 주주가치 극대화 모델에서 탈피하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우리가 투자자·고객으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직원 처우가 좋은 기업에 투자와 매출을 몰아주는 방법이다. 기업 내부를 들여다보고 근로자 보수와 처우가 어떤지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도구가 갈수록 늘어난다. 기업이 직원을 다시 자산으로 여기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
- 데이비드 시로타 아이비타임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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